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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슬부슬 비가 오던 저녁, 야권의 유력한 대권 후보라고 할 수 있는 민주통합당의 문재인 의원과 블로거가 만났다. 사실 정치인과의 만남이 잊을만하면 으레 있는 행사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번엔 무게가 조금 달랐다. 그것은 대선을 앞두고 만나는 정치인, 그것도 대선에 출마하겠다고 한 문재인이기 때문이었다. 아직 대선은 몇 달이나 남았지만 내 눈앞에 있는 이 남자가 대통령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사뭇 기대가 됐다.


문재인 의원이 등장했을 때는 환호와 함께 동시에 수 십대의 카메라 셔터가 터져 흡사 연예인이 등장한 것처럼 느껴졌다. 참석했던 블로거가 대부분 젊은층이라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문재인 의원의 높은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간담회는 블로거가 질문을 하면 문재인 의원이 답변을 하는 식으로 진행됐다.


보통 이런 간담회가 있으면 어떤 질문을 하는 게 좋을지 미리 생각하기 마련이다. 어쨌든 블로거의 자격으로 간담회에 참석을 했으니 이왕이면 블로그의 성격과 비슷한 질문이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난 여행이나 관광산업과 관련된 질문을 대강 생각해서 갔는데 문제는 내게 질문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지난번 박원순 서울 시장과의 간담회 때도 질문을 못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그냥 지나치고 싶지 않았다.

다행히 2차 뒤풀이 장소에서 문재인 의원과 아주 잠깐이나마 대화할 수 있었다. 사실 입이 근질거려 도저히 참을 수 없었는데 마침 사진 촬영을 하다가 질문을 못했다고 얘기를 꺼낼 수 있었다. 문재인 의원은 사인 공세와 사진 촬영으로 정신이 없는 와중이었지만 조용히 웃으면서 내 질문이 무엇이었냐며 관심을 보였다.



사실 나도 정신이 없어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것 같지만 내 질문의 요지는 이랬다. 우리나라 여행 정책은 지극히 후진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대표적인 예로 수 없이 많은 축제를 들 수 있는데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나 진짜 여행자를 위한 정책이 아닌 가시적인 성과를 보이기 위해 가장 쉬운 방법인 축제만 개최한다. 당연히 막대한 예산을 들여 개최한 축제가 정말 성과가 있는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 

박람회만 개최하면 1000만 관람객이 올 것이라는 엉터리 예측을 한 여수 엑스포나 대국민 사기극이나 다름없는 제주도 7대 세계자연경관 선정을 위한 노력만 봐도 우리나라가 얼마나 보여주기 식 정책을 펼쳤는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꼭 이렇게 국가적으로 막대한 예산이 들어갔던 정책만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각 지역에서 이름도 모르는 축제가 열리고, 그나마 그 축제도 명맥을 잇지 못하고 없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축제를 개최하고, 타이틀에 선정이 되면 여행자가 몰릴 것이라는 이런 구시대적인 발상은 꼭 개선되어야 한다. 그래서 난 지역만이 가진 색채를 살릴 수 있는 지원을 하고, 전통과 문화를 보존하고 있어 여행자가 365일 언제라도 찾고 싶을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의견을 냈다. 

문재인 의원은 기본적으로 동의했다. 난 잘 몰랐는데 원래 여행을 좋아했다고 하면서 자신이 히말라야 트레킹을 갔을 때를 이야기했다. 그곳은 히말라야 산맥보다도 근처에 있던 시장이 워낙 유명해 많은 여행자가 찾는 것을 보고 훌륭한 관광 상품이었다는 것을 떠올렸다고 한다. 난 문화를 심을 수 있는 정책을 많이 만들어 달라고 하자 문재인 의원은 우리나라도 이제 많이 바뀌어 가는 추세라고 덧붙였다.


2차 뒤풀이는 문재인 의원이 아주 잠깐 들렀기 때문에 다시 간담회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블로거들은 정치, 경제, 사회, 생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질문을 쏟아냈다. 때로는 정치 평론가처럼 날카로운 질문을 하는가 하면, 때로는 장내를 웃음바다로 만들 정도로 황당한 질문도 나왔다.

그중에서 기억나는 질문을 꼽아본다면 몇 가지가 있다. 먼저 대통령이 되기 위해 필수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가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무관심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해결해야 좋을지 묻는 질문에는 한 번에 바뀔 수는 없지만 우리의 삶을 결정하고, 삶을 바꿀 수 있는 게 바로 정치라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고 답했다.

가까운 예로 서울만 봐도 시장만 바뀌었을 뿐인데 많은 변화가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학생들이 계속해서 반값 등록금을 주장했기 때문에 정치권에서도 이를 인식하고, 정책으로 내놓는 노력을 하게 된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문재인 의원이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했는데 구체적인 계획에 대한 질문에는 먼저 선거문화부터 바꿔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대통령이 되는 과정부터 맑고, 투명하도록 선거자금을 국민에게 모두 공개해야 한다고 했다. 특히 개인의 재산뿐만 아니라 일가 친인척까지 재산을 공개하고, 선거 전과 선거 후의 재산이 어떻게 변동되는지 확인해 비리를 차단하겠다고 했다. 아무래도 이날 가장 강력하게 주장한 내용이라 그런지 비리문제 해결에 대해서는 마음에 들었다.


이날 이런 딱딱한 질문만 나온 것만은 아니었다. 간혹 재미있는 질문이 나오기도 했는데 문재인 의원이 예전에 키웠다는 고양이 찡찡이의 안부를 묻거나 <나는 꼼수다>의 김어준이 문재인 의원을 띄워줬는데 고맙게 생각하느냐를 묻기도 했다. 문재인 의원은 김어준에게 전혀 고맙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에 모든 사람이 웃었는데 그 이유는 자신을 떠밀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간담회를 지켜보면서 내가 느낀 문재인은 확실히 인간미나 깨끗함은 매력적이었다. 구수한 목소리, 깔끔한 인상, 청렴한 이미지, 그리고 인기도 많아 야권 후보로서 참 마음에 든다. 하지만 정책에 대한 다소 원론적인 답변이 아쉽고, 언변 능력이 부족해 보인다는 점은 정치인에게 치명적이라 생각한다.

꼭 말을 잘해야 정책을 잘 만들고, 실행할 수 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당내 경선이나 대선 후보 토론회 등을 할 경우 경쟁력이 약해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 말을 잘하는 몇몇 정치인을 생각하면 주로 야권에 많았다는 점을 떠올릴 때 확실히 마이너스 요인이 될 수 있다. 


행사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하자면 박원순 서울 시장과의 간담회 때보다는 전체적으로 진행이 나아지긴 했지만 30명이 넘는 블로거가 참석하다 보니 많은 사람에게 질문의 기회가 돌아가지 못한 점은 여전히 아쉬운 대목이었다. 서울 시장과의 간담회 때 질문을 했던 사람은 이번에도 하던데 내가 너무 안 보이는 자리에 앉았나 보다.

또한, 질문자 역시 블로거들만이 생각할 수 있는 이색적이면서 다채로운 질문이 적었다는 점도 무척 아쉬웠다. 너무 정치 평론가가 할 수 있는 질문이 많았고, 중복되는 질문도 많았다. 간혹 가벼운 주제의 질문은 문재인 의원의 평소 모습이나 성향을 알 수 있기 때문에 나쁘지는 않았지만 결혼을 축하해달라는 의견은 조금 자제했으면 좋지 않았나 생각한다. 


ⓒ 시앙라이(krlai.com)

아무튼 앞으로 대선은 몇 달 남았다. 이날 간담회의 참석한 누군가가 말한 것처럼 그는 대통령이 되기 위해 국민에게 면접을 보는 자리였는지도 모른다. 앞으로 더 많은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정책을 가다듬는 노력을 해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