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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타리카인 카를로스 한국에 오다!

생각지도 못한 카를로스의 방문 소식이었다. 가까운 곳도 아니고 무려 독일에서 날아온다는데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정확히 말하자면 카를로스는 페이스북을 하지 않아서 그의 여자 친구 마시다(항상 난 마싯다라고 불렀지만 보다 정확한 발음은 마시다였다)를 통해 한국 방문 소식을 알게 되었지만 아무튼 기분 좋은 소식이었다. 

며칠 뒤 카를로스가 정말 오긴 왔는지 아니면 나를 만나러 서울에 오는지 궁금해 애간장이 탈 무렵 카를로스로부터 메일이 도착했다. 그는 제주도에서 일을 하다가 출국 전에 서울로 올라갈 예정이라고 했는데 몇 번 이메일을 주고받으면서 홍대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잡을 수 있었다.

카를로스와 만나기로 한 그날의 날씨는 최악에 가까웠다. 갑작스러운 태풍 탓에 밖에서 누굴 만난다는 것은 감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였지만 그래도 외국에서 나를 만나러 온 친구가 있었기에 기분 좋게 달려갔다. 다행스러운 것은 밤에는 비가 그쳐서 우산 없이 돌아다닐 수 있었다.

아무튼 약속 시간에 딱 맞춰서 홍대 입구 앞에 있는 숙소 근처로 가니 카를로스가 멀리서 나를 알아보고는 손을 흔들었다. 우리는 어색하지 않게 악수를 하고, 두 팔을 벌려 안았다. 당연한 소리지만 외국에서 만난 친구를 한국에서 다시 만나니 정말 신기하고 반가웠다. 

그런데 만나자마자 카를로스는 청천벽력과 같은 심각한 말을 했다. 전날 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친구들과 밖을 돌아다녔는데 지갑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맥주를 마셨던 곳에서 지갑을 놓고 온 것 같다고 했다. 서둘러 전날 맥주를 마셨다는 곳을 가보니 아직 7시가 되지 않아 가게 문을 열지도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가게 문을 열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여분의 카드가 있다고 말하는 카를로스와는 달리 나는 걱정되는 마음에 가만히 앉아 있질 못했다.

7시가 조금 넘어 점원인지 주인인지 모를 사람이 계단을 따라 올라왔다. 어제 이곳에서 지갑을 잃어버린 것 같은데 혹시 본적이 있냐고 물어봤는데 놀랍게도 가게 안에 보관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지갑을 열어 보니 외국인 신분증이 있어 오늘 찾으러 오지 않았으면 경찰서로 갈 예정이었다고 한다. 정말 너무 기뻐서 카를로스와 나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카를로스는 지갑에 있던 신분증을 꺼내 자신의 얼굴 옆으로 가져갔다. 확실히 자신의 지갑이었고, 돈이나 카드도 하나도 사라지지 않았다. 아마 카를로스는 이 사건을 통해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무척 좋아졌을 거다. 원래는 곧바로 저녁을 먹기로 했는데 지갑을 찾은 기념으로 이 가게에서 맥주를 마시기로 했다. 이름 하여 ‘지갑 찾은 기념 맥주 파티’였다.

“우리가 얼마 만에 만났지? 미얀마를 여행한지 3년만인가?”

카를로스는 일부러 한국 맥주인 드라이피니시D를 꺼내 몇 모금 마시면서 말했다. 2010년 1월에 미얀마를 여행했으니 약 2년 반이 지난 시점에 우리는 다시 만났는데 어색함이 전혀 없었다. 이런 게 바로 여행의 매력일까? 우리는 지난 추억을 안주 삼아 그 자리에서 맥주 두 병씩 후딱 해치웠다. 미얀마 여행을 하던 그 순간으로 돌아간 것처럼 정말 즐거웠다! 


채식주의자라는 걸림돌, 막걸리와 모듬전은 어때?

카를로스가 미처 채식주의자라는 생각을 하지 못한 탓에 큰 난관에 부딪혔다. 홍대 골목은 항상 곱창 냄새가 풍기고, 지글거리는 삼겹살 익는 소리로 가득한데 대체 이곳에서 채식이 왠말이냔 말이다. 심각하게 고심하는 나를 바라보며 자신은 평소에도 비빔밥을 즐겨 먹는다고 말했지만 썩 내키지 않았다. 특별한 음식을 소개해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무작정 홍대 골목을 걷기만 했을 때 불현 듯 떠오른 것이 있으니 바로 막걸리였다. 마침 카를로스도 막걸리를 마셔 본적이 없다고 했다. 막걸리와 함께 먹는 전은 고기가 안 들어간 것도 있으니 채식주의자에게도 잘됐다 싶어 얼른 옛날식 주점으로 갔다. 가게 앞에는 아주머니들이 분주하게 전을 부치고 있었는데 카를로스는 이 모습이 신기했는지 사진을 찍고 싶다고 했다. 

가게 안은 무척 비좁았다. 시끌벅적하고 복잡해 시장을 연상케 했지만 카를로스는 이런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나보다. 잠시 후 나온 모듬전 중에서 일부러 호박전, 두부전, 버섯전 등을 골라 줬고, 주전자에 담긴 막걸리 한 사발을 따라줬다. 과연 코스타리카 친구에게 모듬전과 막걸리는 어땠을까? 

"음~ 베리 나이스!"


완전한 채식주의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고기가 약간 들어간 전도 집어 먹었다. 카를로스는 익숙하지 않은 젓가락질로 하나씩 집어 먹을 때마다 눈을 살짝 감고, 고개를 끄덕이며 맛을 음미했는데 그 모습을 보니 나름 내 선택이 괜찮았던 것 같아 뿌듯했다. 


옆에 있던 닭볶음탕에도 대해서도 물었다. 치킨스프라고 이야기 했는데 아무래도 보글보글 끓던 빨간 국과 자극적인 향기 때문인지 맛있어 보였나 보다. 우리는 시끄러운 와중에도 정신없이 대화를 이어갔다. 


모듬전과 막걸리 한 주전자를 해치우고 다시 홍대 거리로 나섰다. 독일에서 날아온 코스타리카인 카를로스의 눈에는 한국이 어떻게 보일지 궁금하기만 했다. 아무튼 오랜만에 만나서 추억을 공유하는 것도 그리고 반가운 만남을 이어가는 것도 정말 즐거웠다. 


배부르긴 했지만 마지막으로 맥주 한잔 더 하려고 조용한 펍에 갔다. 메뉴판에는 비싼 일본 맥주가 가득했지만 카를로스는 꼭 어느 것이 한국 맥주인지 확인한 후 주문했다. 여기서 맥주를 딱 한잔씩만 하고 헤어졌다. 내일은 자신이 꼭 계산한다고 강하게 주장하면서 말이다. 


코스타리카인이 반한 한국 음식, 감자전과 두부김치

다음날도 우린 만났다. 원래는 저녁에 종로를 같이 가려고 했는데 카를로스의 출국이 너무 이른 시각이라 걱정된다며 쉬는 것을 원했다. 그래서 그냥 홍대에서 다시 만나 간단하게 맥주를 마시게 되었다. 가뜩이나 서울에서 짧게 머무는데 마지막 날이라고 안 보면 서운 할 것 같았다. 


간단하게 맥주를 마시자고는 했지만 소주도 마셨으니 결코 가볍지는 않았다. 제주도에서 딱 한잔만 마셔봤다는 소주를 몇 잔이나 마시게 되었고, 더불어 안주도 무려 3개나 주문해 본의 아니게 배부른 밤이 되었다. 이번에도 채식주의자인 카를로스를 위해 메뉴 고민을 하게 되었는데 마침 눈에 띈 감자전과 두부김치가 그리고 도토리묵이 괜찮아 보였다. 처음에는 감자전과 두부김치만 주문했으나 나중에는 도토리묵까지 시켰다. 


카를로스는 간단하게 ‘포테이토 피자’라고 소개한 감자전을 먹더니 정말 맛있다며 감탄했다. 그리고 의외의 반응은 두부김치에서 나왔다. 평소 김치를 싫어한다는 카를로스가 따끈하게 데워진 김치를 보고 신기하다는 말과 함께 맛있다고 얘기하는 것이었다. 이 친구가 살고 있는 독일 본에는 한식당이 한 군데 밖에 없다고 하는데 이런 뜨거운 김치 메뉴는 없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진짜 맛있는 김치를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인지 모르겠다. 아무튼 전날 먹었던 모듬전보다 훨씬 맛있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심지어 사진으로 남겨달라고 부탁하며 먹었던 음식의 이름을 기억하려고 애를 썼다. 사실 듣기만 해서 이름을 기억하기란 매우 어렵다. 이미 여러 차례 가르쳐 준 ‘감사합니다’도 자꾸 까먹었는데 발음도 어려운 도토리묵, 감자전이 쉬울 리 없다. 


너무 짧게 머물러서 제대로 한국에 대해 소개하지도 못했고, 더 즐거운 추억을 만들지 못해 아쉽긴 했다. 그럼에도 카를로스는 서울도 마음에 들었고, 나를 만날 수 있어서 정말 만족스러웠다고 대답했다. 인연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라 생각하기 때문에 즐겁게 다음을 기약할 수 있었다. 언제든지 독일로 놀러오라는 말이 아니더라도 몇 년 후 한국에 다시 올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소식도 전해줬기 때문이다. 

카를로스는 끝까지 고맙다고 말했는데 나도 친구를 다시 만날 수 있어 정말 즐거운 시간이었다. 또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다음에는 더 맛있는 한국 음식, 더 흥미로운 한국 문화를 소개해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