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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그래? 그럼 캄보디아로 놀러 와라. 보고 싶다.”

기가 막혔다. 당시 나는 이제 막 호주 멜번에 도착한 상태였다. 네이트온을 켜자 나에게 안부를 물은 뒤 무작정 놀러오라고 했는데 처음에는 그저 웃어넘겼다. 아니 여기가 어딘데 캄보디아까지 가냐고 반문했지만 이내 이 사람의 말이 농담이 아닌 진심임을 깨달았다. 근데 더 웃긴 사실은 ‘캄보디아로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라는 생각이 이미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는 점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캄보디아로 놀러 오라고 했던 사람은 2007년에 배낭여행을 하다 만난 상민이형이었다. 우리는 같이 태국과 라오스를 여행했고, 베트남에서도 우연히 다시 만났다. 한국에서도 몇 번 만났을 정도로 인연을 이어가고 있었는데 당시 형이 지내고 있던 캄보디아 프놈펜으로 놀러오라 했던 거다.

어떻게 했을까? 결국 나는 호주에서의 모든 일정을 최소화하고 항공권부터 알아봤다. 며칠 뒤 케언스 여행을 집어넣고, 시드니에서 홍콩으로, 홍콩에서 태국으로, 마지막으로 태국에서 캄보디아로 가는 항공편을 모두 예약했다.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일정에 나 스스로도 놀랐다. 사실 상민이형을 만나려는 목적도 있었지만 그것보다 호주 생활이 너무 지겨웠던 이유도 있다. 빨리 호주를 떠나고 싶었다.

당시 이동 경로를 보면 확실히 간단히 결정해 갈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프놈펜 공항에 도착한 뒤 마중 나온 형과 어렵지 않게 재회할 수 있었다. 정말 반가웠다. 아무리 내가 꼬임에 넘어갔다 해도 반가운 마음은 진심이었다.

하지만 날벼락과 같은 소식을 나에게 전해주었는데 갑자기 바쁜 일이 생겨 제대로 놀아줄 수 없다는 말을 했다. 먹여주고 재워준다는 말에 날아 왔건만 이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정말 미안해하다는 말을 연신하면서 도착한 그날 배터지도록 삼겹살을 사줬다.

며칠 뒤에는 나를 낡은 가이드북만 쥐어준 채 휴양도시인 시하눅빌로 보내버렸다. 덕분에 프놈펜이 아닌 생각지도 못한 캄보디아 남부 여행이 시작된 거다. 그것도 혼자. 물론 상민이형은 내가 캄보디아에 있는 동안 일부러 한국 식당에 가서 밥을 사줄 정도로 많이 챙겨줬다. 나도 그 당시 상황이 웃음이 나올 정도로 좀 어이없었지만 조금의 원망도 하지 않았다.

우리가 다시 만난 건 작년 서울이었다. 이번엔 캄보디아 생활을 접고 세계일주를 앞둔 상태였다. 오랜만에 술잔을 기울이며 앞으로의 행보와 과거의 추억을 끄집어냈다. 난 상민이형을 만날 때면 프놈펜으로 날아갔던 이야기를 꺼낸다. 아마 두고두고 하게 될 이야깃거리가 되지 않을까. 미안하다는 말을 듣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라오스를 함께 여행했던 게 계기가 되어 인연이 되었고, 그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진다는 사실만으로도 무척 즐겁다.

작년 가을부터 상민이형이 세계일주를 시작했으니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최근에 들은 소식으로는 네팔에 있다고 했는데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되면서도 조금은 부럽다. 아마 이 형과는 이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또 만날 수 있으리라.

행운이 가득한 여행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