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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드고리차는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작은 도시였다. 분명 수도인데 어딜 가도 한적한 분위기였다. 그런데 난 이 황당할 정도로 조용하고, 작은 도시가 마음에 들었다. 아마 대부분의 여행자에게는 반나절 '깜'도 안 되겠지만. 난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마음에 들면 며칠이고 더 머문다. 그게 내 여행이자, 하고 싶었던 여행 방법이다.


늦은 밤에 도착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숙소가 별로라 다른 곳으로 옮겼다. 옮긴 숙소는 올드타운 끝자락에 위치한 곳으로, 위치는 그리 좋지 않았으나 시설이나 가격면에서 전보다 훨씬 좋았다.


짐을 놓고 포드고리차 탐험에 나섰다. 올드타운에 있는 시계탑을 뒤로 하고 강을 건너면 시내로 갈 수 있다.


시티 센터라고 해서 다를 건 없었다. 정말 이렇게 사람이 없을 수 있나.


한 가지 재밌는 점을 발견했는데 포드고리차 거리 곳곳에는 이런 로봇이 있다. 처음 분수대 옆에 있는 로봇을 보았을 때는 특이하긴 해도 그저 하나의 전시물이라는 생각으로 넘어갔는데 걷다 보니 이런 로봇이 하나 둘이 아니었다. 왜 로봇이 있는지 물어본다는 게 깜박했다.


몬테네그로를 여행하고 있는 오스트리아 모자를 만났다. 그것도 무려 3번이나. 내가 옮기기 전 호스텔에서 30분가량 수다를 떨었고, 그리고 길 위에서 두 번이나 마주쳤는데 노모는 웃음을 지으며 나에게 사람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정말 작은 도시라는 말을 건넸다.


호스텔에도 사람은 많지 않았다. 몇몇 여행자와 대화를 나누었지만 포드고리차에서 대부분 하루만 머물기 때문에 그리 친해진 경우는 없었다. 나도 참 이상하다. 이렇게 여행자 친화적이지 않은 도시에서 5일이나 지내다니.


하루는 영화 <어벤져스>를 보러 갔다. 정말 어이없게도 포드고리차 시내에는 영화관이 없어 걸어서 50분 걸리는 델타시티 쇼핑몰까지 찾아갔다.


호스텔에서 누워만 있다가 스텝이 추천해 준 호수를 보러 비르파자르(Virpazar)를 갔다. 가는데 1유로 밖에 들지 않아 깜짝 놀랐다.


생각보다 너무 작았다. 그런데 지나다니는 사람은 전부 여행자뿐이었다. 호수를 간다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너무 비싸진 물가와 딱히 볼거리가 눈에 띄지 않아 포드고리차로 빨리 돌아왔다.


언덕 위에 있던 성도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전에 입장료가 있다는 것을 알고 들어갈 생각조차 하지 않았지만.


포드고리차에서 버스를(사실상 밴) 타고 몬테네그로 최대 관광지인 코토르로 향했다. 구불구불 산을 따라 이동하더니 전망이 탁 트인 도시가 등장했는데, 이곳이 부드바(Budva)였다.


코토르(Kotor)는 크로아티아의 두브로브니크(Dubrovnik)를 연상케했다.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성도 그렇고, 성 안에 형성된 올드타운, 그리고 비싼 물가까지 정말 비슷했다.


대신 올드타운 규모가 두브로브니크보다 작다.


한국 사람들은 크로아티아로 몰리지만 서양인들에게는 코토르도 인기 있는 여행지 중 하나다.


첫 날에는 가볍게 동네를 돌아보다가 일찍 잠이 들었다.


둘째 날에 코토르의 성벽을 올랐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북문을 통하면 3유로를 내지 않고도 오를 수 있다고 한다.


산을 따라 오르면 아드리아해와 올드타운이 어우러진 멋진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


대신 걸어서 산을 올라야 한다. 어차피 케이블카가 있다 하더라도 걸어서 올랐겠지만, 경사가 심해 생각보다 힘들었다. 두브로브니크에서도 걸어서 두 번이나 올라갔던 나지만, 코토르에서는 그러고 싶진 않았다.


땀으로 흠뻑 젖은 몸을 식히며 주변 경치를 바라봤다.


올드타운 내에 있는 정교회는 잠깐 들어갔다 나오는 식으로 도장만 찍었다.


호스텔에서 만난 카자흐스탄인, 브라질인, 아르헨티나인과 수다삼매경에 빠지게 되었다. 카자흐스탄인 안드레이는 한국 광주에서 영어 교사로 지냈던 적이 있어서 그런지 한국 예찬론을 막 펼치고 있었고, 그때 뒤에 있던 내가 한국인이었으니 내가 섞이게 된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브라질인 조반나와 아르헨티나인 게르만은 여행을 각각 10개월, 8개월 하고 있는 중이었다.


페이스북을 통해 엽서를 받고 싶은 사람이 있는지 물어봤는데 생각보다 많았다. 일단 4명에게만 엽서를 쓴 뒤 동네 산책에 나섰다.


유난히 서양인 단체 관광객이 많이 보였다.


난 샌드위치를 하나 사들고 성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는 코토르 성을 바라보며 샌드위치를 한 입 물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번 여행에서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은 파리에서 에펠탑을 보는 것도, 프라하에서 야경을 보는 것도 아니었고, 오로지 이런 자유로운 시간을 가져 보는 것이었다. 정말로 그랬다. 난 '멍 때리기'를 해보고 싶었다. 한국에서는 아까운 시간이지만, 여기서는 이렇게 써도 전혀 아깝지 않았다.


광장에서 핸드 메이드 공연을 봤다. 손으로 만든 동작들 하나에 사람들은 웃음을 짓고, 때로는 놀라워하며 박수를 보냈다.


골목길에 앉아 자신이 직접 만든 기념품을 팔던 꼬마아이가 무척 귀여웠다.


갑자기 쏟아진 소나기, 비가 그친 뒤 창문을 통해 언덕을 바라보며 저녁을 맞이했다.


원래 코토르는 3일이면 충분할 거라 생각했다. 아무리 내가 '멍 때리기'를 했어도 코토르가 그리 크지도 않고, 물가도 비싸기 때문이다. 다만 카자흐스탄 친구 안드레이가 자전거를 타고 헤르체그노비(Herceg Novi)까지 갔다는 얘기를 듣고 나도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숙소를 더 싼 곳으로 옮긴 후 자전거를 빌렸다.


출발부터 쉽진 않았다. 도로는 좁은데다가 날씨는 덥고, 심지어 언덕도 자주 등장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자전거를 타기 시작한지 1시간 만에 후회가 됐다. 전날 그렇게 '멍 때리기'를 하고 싶다 하더니 오늘은 다시 '개고생 모드'라니, 정말 어이가 없었다.


미친 듯이 페달을 밟았지만 헤르체그노비까지는 무려 43km나 떨어져 있었고, 언덕을 만날 때면 나는 쓰러져 끊어질 듯한 다리에게 휴식을 보장해야 했다. 역시 자전거는 아무나 타는 게 아니다. 예전부터 그랬지만, 자전거 여행자를 진심으로 존경하게 되었다.


5시간 반 만에 헤르체그 노비에 도착했을 때는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체력을 보충하기 위해 겨우 늦은 점심을 먹고, 날이 어두워질까 다시 페달을 밟았다.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에 끔찍했다. 결국 어두컴컴해진 9시 반이 되어서야 코토르에 도달할 수 있었다. 11시간 만이다. 구글맵을 통해 지난 거리를 따져보니 무려 73km가 나왔다.


덕분에 다음날은 침대에 누워 하루 종일 쉬기만 했는데 이날 저녁에 매우 인상적인 여행자를 만났다. 네덜란드 배낭여행자 아이리스는 현재 1년 반 동안 히치하이킹으로만 여행을 하고 있었는데 노숙을 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개고생이 여행의 정답은 아니지만 최근 '이 정도면 할 만큼 했지'라는 식의 나약해진 나의 마음을 다지기엔 이처럼 좋은 계기가 없었다. 우리는 가지고 있던 히치하이킹용 사인을 들고 사진을 같이 찍었다. 다시 길 위에서 만나자며.


잊고 있었는데 또 다른 재밌는 만남도 있었다. 두 명의 남녀 여행자가 호스텔로 들어왔는데 나를 보자마자 흠짓 놀라더니 "혹시, 너 이름이 김 아니야?"라고 물었다. 나도 깜짝 놀라며 대체 우리가 어디서 만났는지 기억을 더듬었다. 아주 잠깐 대화를 해서 기억이 안 났던 건데 약 1주일 전 코소보 프리즈렌에서 만났던 미국인들이었다. 여행자를 다시 만나는 건 정말 재밌다.


아이리스 때문이었는지 몰라도 난 다음날 히치하이킹을 시도했다. 기다린지 5분 만에 멀리서 3명의 남자가 날 불렀고, 그들은 부드바(Budva)까지 태워줬다. 유쾌했던 러시아인들이었다.


부드바 역시 규모는 코토르보다 작아도 올드타운이 있다. 부드바를 싫어하는 여행자가 많은데 난 의외로 마음에 들었다.


코토르와는 달리 바로 앞에 해수욕장이 있어 햇살을 맞는 여행자들이 많았다. 본격적으로 휴가철이 되면 사람들이 얼마나 많아질지 모르겠다.


나 역시 맑은 물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발을 담갔다.


호스텔에는 술을 마시거나 휴식을 취하기 적당한 공간이 있었는데 저녁만 되면 삼삼오오 모여 술을 마셨다. 게임도 하고, 주는 술을 받아 마셨는데 이상하게 여기에서 만난 사람들과는 그리 친해지지 않았다.


다음날은 스베티 스테판(Sveti Stefan)을 찾아갔다. 몬테네그로에서 나름 유명한 곳이지만, 안에는 레스토랑을 예약하지 않는 이상 들어갈 수 없다. 코토르로 돌아올 때는 독일인 아저씨가 태워줘서 편하게 올 수 있었다.


부드바의 올드타운 역시 매우 작아 계속해서 갔던 곳을 또 가는 식으로 돌아다녔다.


더워지면 그늘진 곳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하나 먹었다.


바닷가를 따라 형성된 레스토랑은 배낭여행자가 가기엔 너무 비싸보였다. 그래도 분위기는 괜찮아 보여 나중에 누군가와 함께 온다면 좋을 것 같았다.


부드바에서는 이상하게 여러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는 게 이상했던 순간이라 혼자 나와 맥주 한 잔 마셨다. 그러고 보니 코토르에서 만났었던 프랑스인도 얼굴을 봐도 아는 척도 안 하는 등 영 별로였다.


아무튼 난 부드바를 떠났다. 아무런 계획도 없었지만 배낭을 메고 길 위로 나섰다. 더이상 배낭의 무게도 무더워진 날씨도 나에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길을 걷다가 에펠탑과 유사한 조형물을 발견했는데 아마도 레스토랑에서 의도적으로 설치한 모양이다.


언덕을 따라 걸으니 부드바 주변의 경치가 한눈에 보였다.


처음 히치하이킹을 하려던 곳이 적당하지 않아 걸었고, 다시 히치하이킹을 해보려다가 잘 안 되는 것 같아 또 걸었다. 그렇게 2시간은 걸었던 것 같다. 그런 뒤 히치하이킹을 하려고 손을 들었는데 정말 5분도 되지 않아 한 대의 차가 멈췄다. 이번에도 러시아인들이었다.


약 50분 만에 바르(Bar)에 도착했다.


바르에서 무언가 보겠다는 생각이 아니라, 일단 가고 보자는 생각이었는데 정말 특별한 게 없었다. 새로 지은 교회는 너무 반짝여서 어색할 지경이었다.


바르에서 뭘 할지 계획을 세우지 않은 내가 어느 숙소에서 묵을지 생각했을 리가 없다. 난 2시간 동안 동네를 헤매다 바르의 옆동네라 할 수 있는 수자니(Susanj)쪽 아파트를 찾았다. 넓긴 했지만 깨끗하지 않아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20유로에서 13유로까지 가격이 떨어져 결국 하루 지내기로 결정했다.


바르 역시 여행자가 많지 않았다. 수자니에서부터 이어진 산책로는 걷기 괜찮았지만 그 외에는 딱히 오래 머물 이유를 찾지 못했다. 동네를 걷다가 커피를 마시고, 저녁을 먹는 것으로 바르에서의 일과를 마무리했다.


어차피 바르를 기대했던 것은 아니니 미련 없이 다음날 떠났다.


역시 배낭을 메고 도시 밖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히치하이킹을 시도했는데 이번에는 정말 손을 들기도 전에 차가 먼저 멈춰섰다. 몬테네그로인으로 독일어만 가능해 의사소통은 불가능했지만 여행자인 나를 보며 무척 좋아했다. 다만 가끔씩 말을 하면서 운전대를 놓는 바람에 식겁할 때가 많았다.


사실상 몬테네그로의 마지막 여행지인 울친(Ulcinj)에 도착했다. 몬테네그로의 내륙 쪽을 여행하지 못한 것은 조금 아쉽지만 이미 난 알바니아 국경 코앞까지 온 상태였다. 


울친은 다른 지역과는 달리 무슬림 비율이 무척 높다. 그 이유는 국경 근처에 있는 도시라 알바니아인이 무려 85%에 달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난 손을 들어 인사를 건네는 아저씨의 안내를 받아 조용히 사원에 들어가 사람들이 기도하는 모습을 바라봤다.


울친 역시 올드타운이 있다. 언덕 위에 거대한 성이 자리 잡고 있는데 코토르나 부드바와 다른 점이라고 한다면 성 바깥에 올드타운이 있다.


올드타운 주변을 걷다가 발견한 이 조형물은 흡사 전투기의 뒷꼬리를 연상케했다.


다음날에는 성에 올라갔다. 레스토랑이 어김없이 자리 잡고 있는 성이지만 일반 가정집도 쉽게 발견할 수 있어 흥미로웠다.


울친의 올드타운 지역도 해변이 있다. 물이 그리 맑진 않았지만 부드바나 다른 곳에 비해 부드러운 모래로 이루어져 해수욕을 즐기기엔 더 좋아 보였다.


여름이 되면 여기도 여행자가 많아진다고 하는데 과연, 아직까지는 믿기 어렵다.


대신 현지인들이 자유롭게 해변에서 뛰어 놀고 있다.


다른 여행자와의 만남은 언제나 즐겁다. 호주인 멜리사와 코트니는 아다 보야나 섬을 다녀온 후에 다시 또 만났다.


울친에서 이틀을 보낸 후 나는 아다 보야나 섬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아다 보야나 섬 근처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한 형태의 가옥들. 실제로 사람이 사는 것 같지는 않고, 바다로 흘러가는 강에서 물고기를 잡을 때 이용하는 것 같다.


결국 히치하이킹을 성공했다. 이 친구는 원래 섬까지 데려다 줄 생각이 아니었으나 나와 대화를 나누던 중 내가 다시 걷는 게 안타까웠는지 끝까지 데려다 주겠다며 말을 바꿨다.


보야나 섬은 정말 조용했다. 아무리 비수기라고 하지만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은 없었으며, 해변에서 본 몇 명의 사람이 전부였다.


난 여기서 카우치서핑으로 알게 된 스테판과 오스트리아인 플로리안을 만날 예정이었으나 도무지 그들을 찾을 방법이 없었다. 그때 리투아니아인과 함께 있었던 드라고 아저씨를 만나게 되었고, 혹시라도 그들을 만나지 못하면 자신의 텐트에서 자라고 호의를 베풀어줬다. 게다가 스테판을 알고 있다며 계속해서 전화를 시도했다.


약 3시간 뒤에야 스테판과 연락이 닿았고 난 텐트에 있던 내 배낭을 가지러 드라고 아저씨의 자전거를 타고 갔다. 그리고 돌아오는 도중 울친에서 만났던 스웨덴인 제이콥과 캐나다인 케일리를 다시 만나 사진을 찍게 되었다. 이들은 자전거를 타고 잠깐 온 거라 나와 만났을 때는 울친으로 돌아가는 도중이었다.


해변이 어디인지, 그들이 어디서 캠핑을 하고 있는지 헤매다 발견한 늪지대 위의 문.


마침내 그들을 만났다. 다만 호스트인 스테판은 보이지 않았으며 오스트리안 플로리안과 더불어 전혀 예상치 못한 남자 두 명과 만나게 되었다.


그때부터 캠핑이라 부르지만 실제로는 노숙 생활이 시작됐다. 플로리안은 오스트리아부터 몬테네그로까지 히치하이킹 및 캠핑을 하며 여행하고 있었는데 19살이라는 말에 엄청 놀랐다.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 친구도 유럽에서 그리 흔한 여행자는 아니지만, 우리나라 어린 친구들의 여행 방법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들었다. 어떤 여행이 옳다고 할 수 없다. 그리고 어떤 여행을 고집할 필요도, 이유도 없다. 다만 관광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젊은 시절의 여행과는 분명 다르다. 확실히. 과거 우리나라에서도 유행처럼 번졌던 무전여행이 떠올랐다.


각오는 하고 왔지만 아무 것도 없는 환경이었다. 그럼에도 해변에 앉아 맥주 한 캔을 마시는 건 나쁘지 않았다.


밤에는 불을 피우고 어둠 속에서 플로리안이 만든 스파게티를 먹었다. 쉴새 없이 몰아치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땅콩을 먹고, 눕고, 기타를 치며 시간을 보냈다.


텐트가 없던 나는 바닥에 매트리스를 깔고 침낭만 덮은 채 잠을 잤다. 배낭여행자의 캠핑은 낭만과 거리가 멀었다. 간밤에 바람은 엄청나게 불었지만 다행히 침낭이 있어 춥진 않았다.


온몸이 부스스했지만 우리는 다시 불을 피운 뒤 커피를 마시고 빵을 뜯어 먹으며 아침을 보냈다. 그리고는 쓰레기가 가득한 해변을 따라 걸었다. 우리가 발자국을 만들면 금세 파도가 밀려와 지워버렸다.


밤에는 손님이 몇 명 찾아왔지만 실제로 같이 지낸 사람은 오스트리아인 플로리안과 마케도니아인 알렌 이렇게 2명이었다. 오후엔 태양이 뜨거워 그늘진 곳에 누워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가 서로 모여 땅콩을 먹으며 시시콜콜 잡담을 했다. 아무데나 철푸덕 앉는 건 노숙자의 기본 자세였다.


저녁으로 또 파스타를 만들어 먹었다.


저녁엔 드디어 카우치서핑 호스트인 스테판을 만났다.


바깥에서 생활하는 그야말로 노숙이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건 얼마든지 있다. 아무도 없는 해변에서 멍하니 불을 쬐던 것마저도.


이틀 째 씻지도 못하니 몸이 찝찝했다. 난 다시 울친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플로리안은 여기서 5월 내내 지낸다고 했지만 나는 애초에 하루나 이틀만 있을 예정이기도 했고, 알바니아로 넘어가야 했기 때문이다.


마침 차가 있던 알렌이 울친까지 태워줬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포옹을 하고 여러 번 손을 흔드는 것으로 작별을 했다.


울친에 도착한 뒤 다시 이틀간 지냈다. 몬테네그로를 평하자면 확실히 크로아티아에 비할 정도의 관광대국은 아니지만 아름다운 자연과 오래된 성과 유적이 있어 있을 건 다 있었고, 많은 사람을 만나 즐겁기도 하면서 자극도 많이 받고, 그 덕분에 낯선 곳을 여행하게 된 것 같다. 일종의 성취감도 더해졌다고 해야 할까. 투박하지만 충분히 매력 있는 몬테네그로가 개인적으로 크로아티아보다 더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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