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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티라나에 도착한 이후 나는 적당히 시간을 때우려 돌아다니기만 했다.


따뜻한 햇살을 맞으며 공원을 산책하거나 커피를 마시는 게 하루 일과였다.


티라나 역시 여행자가 워낙 없어 저녁에도 항상 혼자였다. 뭘 해야 할지 몰라 동네 펍에서 맥주 한 잔 하면서 엽서를 썼다.


티라나 동네를 걷다 보면 시장에 온 것처럼 노점이 많이 보인다. 딸기가 100렉인 것을 보고 바로 구입했다.


티라나에 있는 동안 시간은 참 빨리갔다.


티라나 외곽에 있는 다이티(Dajti) 산을 갔다. 오로지 케이블카를 타겠다고 찾아간 건데, 정말 케이블카만 타고 돌아왔다. 정상에는 딱히 볼만한 게 없었다.


대신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가득 받았다. 처음에는 멀리서 중국 사람이라며 킥킥대긴 했으나 원래 알바니아와 코소보 사람들과 대화를 나눠보면 그들이 정말 친하게 지내고 싶어 한다는 걸 알게 된다. 여기서도 내가 한국 사람이라고 말하자, 이것저것 묻고 사진을 찍자고 했다. 심지어 케이블카 내에서는 나와 함께 사진을 찍고 싶다고 말하는 엄마와 아들도 있었다. 내가 연예인도 아닌데 말이다.


티라나에서도 올드 브릿지가 있다.


독재자 호자 시절 무지막지하게 만든 벙커가 여전히 공원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다.


인터넷으로 찾아보기 전까지는 이 건물의 이름이 피라미드인 것을 몰랐다. 흉물스럽게 남아 있는 이 건물 역시 호자 시절 만들어진 것으로, 지금은 거의 놀이터다. 주로 어린 친구들이 이 피라미드의 벽을 오르곤 한다.


지나가면서 몇 번 아이들이 올라가는 걸 봤기 때문에 나 역시 올라가고 싶어졌다. 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벽을 타기 시작했지만 거의 정상에 올라갔을 무렵 페인트 자국이 있어 살짝 미끄러웠고, 그래서 뒤를 돌아 아래를 내려보니 엄청난 높이에 무서워졌다.


웃고 있어도 웃는 게 아니었다.


티라나에서 가볍게 다녀올 수 있는 듀레스(Durrës)에 갔다. 알바니아의 대표적인 항구 도시이자, 두 번째로 큰 도시로 상징성이 있을 것 같았는데 생각보다 볼만한 건 별로 없었다.


바다가 보이는 쪽은 카페가 늘어서 있다.


듀레스 역시 여행자가 없는 건 마찬가지라 다들 나를 신기하게 쳐다본다. 특히 그들이 보기에 더 특별했던 아시아인이니.


듀레스에서 가장 큰 볼거리는 로마 시대의 원형 경기장이다. 그러나 막상 원형 경기장 앞에 붙어 있던 입장료 300렉을 보자 들어가고 싶은 생각이 사라졌다. 매표소의 아주머니는 나에게 학생이냐고 물었고 내가 아니라고 하니, 1유로(140렉)에 들어가란다. 분명 학생이 아니라고 했는데 왜 반값이 되었는지 알 수가 없지만, 그럼에도 난 들어가지 않았다. 별로 땡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듀레스에도 성이 있지만 일부만 남아있다. 대신 평지에 있어 다른 성처럼 땀을 뻘뻘 흘리며 오르지 않아도 된다.


어느 골목길에는 여러 개의 벽화가 있었는데 뭔가 숨겨진 관광지를 발견한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다. 사실 원형 경기장 바로 옆에 있어 찾기 어렵지도 않지만 며칠 전에 봤던 <걸어서 세계속으로> 알바니아편에서는 전혀 소개하지 않아 뭔가 특별하게 느껴졌다.


하늘은 참 맑았다. 그리고 더웠다.


듀레스에서 돌아온 후 난 저녁을 먹기 위해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여기에서 터키 친구들을 아주 우연히 만나게 되었고, 난 이틀간 그들의 집에서 묵었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박물관은 별로였다.


치맥은 언제나 옳다.


원래 티라나를 떠나려 했지만 당시 만나기로 했던 네덜란드 여행자 이리스(주로 아이리스라 불렀지만)와 연락이 끊겨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때 마침 이틀 전에 만났던 터키인 술레이만이 자신의 집에서 지내도 된다고 해서 티라나에서 이틀 더 지내게 되었다.


티라나에서 이틀 더 지내는 동안 영화를 보면서 쉬거나 술레이만과 동네를 돌아다니곤 했다.


알바니아는 교환 학생으로 온 케만과 술레이만. 아마 이스탄불에서 또 만나게 될 것 같다.


티라나에서 무려 10일이나 지낸 후 이동한 곳은 베라트(Berat)다. 버스를 타고 도착했는데 터미널이 중심지에서 굉장히 멀었다. 택시 아저씨를 보자마자 괜히 기분이 안 좋아져 걸어서 시내까지 갔다. 50분 정도 걸렸다.


베라트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물이라 가까이 가보니 대학교였다.


날씨는 굉장히 더웠고 중심지의 카페 거리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의 도시라 관광객이 무척 많을 줄 알았는데 도시는 무척 차분했다. 대신 언덕을 따라 형성된 마을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다리를 사이에 두고 이슬람교와 그리스도교(정교회, 카톨릭)를 믿는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다.


베라트의 볼거리라면 역시 산 위에 있는 베라트 성이다. 언덕이 상당히 가파르다.


베라트 성의 규모는 상당히 거대했다.


다른 성에 비해 베라트 성이 특별했던 이유는 여전히 사람들이 살고 있는 거주지라는 점이다.


그래도 성에 오르니 몇 명의 관광객은 볼 수 있었다.


베라트 성에서 바라보는 경치는 정말 끝내줬다. 성을 돌아다니다가 주민이 파노라마 보는 장소가 있다고 알려줘서 갔는데 베라트 전체가 눈에 들어왔고 이는 한눈에 다 담을 수 없었다.


시원하게 펼쳐진 경치만큼이나 살짝 불어오는 바람에 땀이 식는 그 느낌이 좋았다. 베라트에 잘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을 꼭 잡고 걸어가는 노부부의 모습을 보면서 괜스레 미소가 지어졌다.


낮에는 그렇게 한가하던 거리가 밤이 되니 사람들로 가득해졌다. 이렇게 활기찬 도시일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무리에 뒤섞여 걷다가 커피 한 잔 마시고 숙소로 돌아갔다.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축구를 보길래 국가대표 경기라도 하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챔피언스리그였다. 대부분 바로셀로나를 응원하고 있었다.


체리가 정말 싸서 매번 사서 먹었다.


다음 목적지는 알바니아에서 마지막 도시라고 여겼던 포그라데츠(Pogradec)였다.


베라트 외곽까지 걸어간 후 일단 엘바산(Elbassan)을 목표로 히치하이킹을 했다. 20분 정도 기다린 후 만난 현지인이 코제어(Kuçovë)까지 태워줬다. 그리고 여기서 동네를 걸었는데 아무래도 외국인은 전혀 올 것 같지 않은 곳이라 많은 관심을 받았다. 외곽을 빠져 나가기 전에 오픈카를 히치하이킹해서 약 3분 이동했고, 그 다음 커플이 탄 차를 히치하이킹했다. 좁고 구불구불한 도로라 히치하이킹이 어려울 것 같았는데 의외로 쉽게 성공했다.


엘바산에 도착해 점심으로 케밥을 먹고 바로 도시 외곽을 향해 걸었다. 그런데 한 대의 차가 내 앞에 멈추더니 어디로 가냐고 물었다. 포그라데츠까지 간다고 하니까 마침 자신의 어머니와 함께 코루처(Korcë)로 가는 길이라며 태워줬다.


1시간 정도 달리니 오흐리드 호수가 나타났다.


물론 가는 방향이긴 했지만 딱 내가 원하는 지점까지 데려다줘서 정말 고마웠다.


여기서 아주 놀랍게도 이리스를 다시 만났다. 이리스는 호스텔에서 봉사를 하고 있었는데 여기 주인으로 인해 모든 게 엉망이 되었다고 한다. 뭐가 어찌된 일인지 모르겠지만 결론적으로 모두가 해고된 상태였고, 이제 이 호스텔은 더 이상 운영하지 않는다고 했다.


가볍게 포그라데츠를 둘러봤는데 특별해 보이진 않았다. 깨끗하지 않은 호수, 거리는 놀이터에 온 것 같은 풍경, 그렇지만 그리 나쁘지 않았다. 우리는 슈퍼에서 맥주를 사다가 호수를 바라보며 마셨다.


당나귀와 할아버지가 우리 옆을 지나갔다.


포그라데츠에서는 딱 하루만 묵고 떠났다. 그리고 난 알바니아를 떠날 수 있을 줄 알았다. 마케도니아 국경까지는 걸어서 2시간이면 갈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졌는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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