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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로 돌아와 칠레 여행을 이어갔다. 이제 북쪽으로 쭉쭉 올라가면 되는데 늪에 빠진 것처럼 산티아고를 쉽게 벗어날 수 없었다. 아무래도 지난 번과는 달리 한인 숙소인 고려민박에서 지내다 보니 자연스레 여러 사람을 만나게 되었고, 매일 놀고 먹다 보니 다음날을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너무 술만 마시는 것 같아서 뒷산 산크리스토발(San Cristóbal)에 오르기로 했다. 아직 쌀쌀한 날씨가 이어졌지만 꽃이 활짝 핀 것을 보니 봄이 오고 있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남미 어디를 가나 길거리에는 강아지가 참 많다. 산크리스토발 올라가는 길에 늘어져 누워있는 여러 강아지들이 빤히 쳐다보는 게 귀엽게 느껴졌지만 이내 경계하는 태세를 취해 피했다.


전망대까지 쉽게 올라갈 수 있는 푸니쿨라가 있었지만 숙소에서 만난 한국인 여행자와 함께 걸어서 올라가기로 결정했다. 이제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했는데 특이하게도 사촌들과 여행을 하고 있었다. 


갑자기 더워진 날씨에 땀이 조금 났지만 사실 걸어 올라가는데 그리 힘든 곳은 아니다.

 

그리 높지 않음에도 시원한 경치를 보여준다. 


가족 단위로 나들이 온 사람도 많았고, 여행자도 꽤 많이 보였다.


계단을 따라 조금만 올라가면 성모 마리아 상이 있다. 신기하게도 남미에는 산크리스토발이라는 지명이나 언덕이 굉장히 많고, 꼭 정상에는 예수 상이나 십자가가 있었다.


조금 계단을 올랐다고 지쳤는지 아니면 모처럼 여유를 즐기고 싶었던 것인지 많은 사람들이 성모 마리아 상 앞에서 앉아 있거나 누워 있었다. 서울에 살면서 남산도 오르지 않았던 지난날의 나를 생각하며 나 역시 이곳에서 앉아 한참 동안 시간을 때웠다.


산크리스토발을 내려오는 도중 신기해 보이던 음료가 눈에 띄었다. 다들 마시길래 호기심에 하나 달라고 했다. 이름은 모떼꼰우에시요(Mote con Huesillo)로 복숭아티에 옥수수를 넣은 맛이라고 할까. 달달하고 친숙해서 생각했던 것보다 더 괜찮았다.


하늘이 아주 맑지는 않았지만 고층 빌딩으로 가득한 도시를 한참 동안 바라보다 내려왔다.


산티아고에서는 매일 술술술이었다. 어쩌다 죽이 잘 맞았던 몇 명의 사람을 만나다 보니 자연스럽게 술자리가 계속되긴 했는데 매일 새벽 4시까지 술을 마시는 건 고통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다시는 술을 마시지 말아야겠다는 헛된 다짐을 하게 된다.


저녁이 되면 삼삼오오 다시 모여들고, 술을 세팅했다. 칠레와 페루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피스코를 비롯해 럼이나 맥주를 계속 마시다 보면 어느새 아침이었다. 참 징하게 마셨다.


가끔 술을 마시다 배고파지면 혹은 술에 취한 사람이 쏘겠다고 하면 양념치킨을 먹었다. 한인촌이라 무려 배달도 가능했다. 거의 2년 만에 양념치킨을 먹어보는 것 같은데 정말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 있었나 싶었다.


산티아고에는 한식당이 굉장히 많은데 다른 나라보다 양도 많고 맛도 괜찮았다. 게다가 밥이 부족하면 더 먹으라고 공짜로 주는 경우도 많았다. 몇 번 가봤던 유럽의 한식당과는 분위기나 음식의 질이 많이 달랐다. 다만 인심 좋은 숙이네는 간판만 보고 기대를 했는데 왜 인심이 좋은지는 모르겠다.


산티아고의 번화가는 한인촌과는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다. 때문에 이곳의 분위기는 물건을 파는 사람들로 가득하고, 깨끗하지 않으며 조금 복잡하다고 해야 할까. 


남미를 여행하다 보면 어디든지 아르마스 광장(Plaza de Armas)이 있다. 그래서 아르마스 광장을 먼저 찾고, 그 주변을 돌아보는 건 남미를 여행하는 가장 쉬운 방법 중 하나다. 산티아고의 경우 과거에는 아르마스 광장이 도시의 중심지였지만 지금은 고층빌딩이 있는 신도시가 있어 산티아고의 중심지라 할 수 없다. 어쨌든 관광객은 많다.


마침 주말이라 아르마스 광장에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광장의 한쪽에는 전통적인 혹은 원주민의 춤을 추고 있었다. 백인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아르헨티나에 비해 칠레는 원주민이 꽤 있고, 백인 역시 원주민과의 혼혈이 많아 이런 전통적인 춤이 어색하지는 않다.


사실 춤보다도 그들의 복장과 몸에 그린 하얀 선이 더 인상적이었다.


꼬마의 몸짓이 무척 귀엽다.


정확히 어떤 공연인지는 모르겠지만 한동안 자리를 뜨지 않고 관람했다.


광장에는 산티아고 대성당, 중앙우체국, 라모네다 궁, 역사 박물관 등이 있어 칠레에서 중요하고 역사적인 장소다.


여행을 하면서 무수히 많은 성당을 가봤기에 크게 관심은 없지만 잠깐 들어 가봤다. 바깥은 공연이나 관광객들로 시끄러운데 성당에 들어서자 엄숙하고도 조용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버스킹을 비롯해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재미있는 분장이 많다. 우리나라에서는 흔치 않지만 여행을 하다 보면 흔하게 볼 수 있는 장면이다.


낮부터 술을 얼마나 한 건지 쿵짝이는 장단에 맞춰 막춤을 선보이는 아저씨도 있었다.


한인촌 주변은 주말이나 늦은 밤에는 분위기가 어둡지만 낮에는 어느 다른 골목과 그리 다르지 않다. 남미를 여행하면서 조금 의아했던 건 한인들이 사는 곳은 대게 우범지역이라는 점이다.


매일 숙소에서 술만 마시다 하루는 밖으로 나가봤다. 한인촌 주변으로 대학이 몇 군데 있어 낮부터 술을 마시는 풍경을 쉽게 볼 수 있다. 당연히 밤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보이고, 가게에서는 시끄러운 음악이 흘러나온다. 적당히 괜찮아 보이는 곳에 들어가 칵테일을 주문했다. 1잔 가격에 2잔을 주는 '해피아워'였지만 어차피 의미가 없다. 가게를 닫는 시간까지 계속 해피아워였기 때문이다.


거의 일주일 동안 산티아고에서 있었는데 대체 뭐했는지 모르겠다. 대학생들이 노는 곳이라 당연하겠지만 늦은 시각까지 신나게 놀 수 있는 곳일 줄 몰랐다.


제법 괜찮은 펍이나 클럽이 있었다. 칵테일만 마셨던 우리는 술을 더 마셔도 되는데 갑자기 배고프다는 생각에 피자를 사서 돌아왔다.


계속 술만 마시다 보니 산티아고 여행이라고는 혼자 아르마스 광장을 갔던 것 밖에 없었다. 마침 고려민박 사장님이 직접 가이드를 해주겠으니 따라오라고 해서 갑작스레 워킹투어를 하게 됐다.


먼저 가게는 작지만 싸고 괜찮은 커피숍을 소개해줬다. 여기서 커피를 마시면서 대화를 나눴다. 물론 스페인어를 못하는 내가 끼어들 틈이 없었지만.


바로 옆에는 와플가게가 있었는데 굉장히 유명한 맛집인가 보다. 와플을 주문하는데도 한참 시간이 걸렸다.


호기심에 와플 하나를 주문했는데 생각했던 것과는 조금 다른 형태였다. 맛있긴 했는데 너무 달았고, 가격도 조금 비싼 편이었다.


도시의 전경을 볼 수 있는 산타루시아 언덕(Cerro Santa Lucia)에도 갔다. 산크리스토발과는 달리 높지 않은 작은 언덕인데다가 도심 안에 작은 공원이 아기자기하게 있어 가볍게 산책하기에 좋았다. 


모처럼 날씨도 좋아 걷는데 땀이 날 정도였다.


계단을 따라 오르면 정상에 닿을 수 있다. 사람이 많아 계단을 이동하는데 힘겨웠다.


그리 높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산티아고를 감싸고 있는 설산까지 보였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어느 공원을 지나쳤는데 눈에 띄는 이상한 조형물이 있었다. 비정상적으로 다리가 두껍고, 비율이 맞지 않는 말이었다. 당시에는 그냥 한 귀로 흘려 보냈는데 콜롬비아의 유명한 화가이자 조각가인 페르난도 보테로의 작품이었던 것이다. 물론 콜롬비아를 여행할 때는 어디를 가나 보테로의 작품을 접할 수 있었다.


주말이라 마트는 문을 닫았지만 재래시장에서는 싱싱한 채소와 과일을 살 수 있다.


칠레를 여행하는 동안 밖에서 먹었던 적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는데 이날도 마찬가지였다. 갑자기 요리가 하고 싶어 미리 사둔 만두를 이용해 만둣국을 끓여봤는데 다들 맛있다고 난리였다. 여행하다 보니 내 음식 솜씨에 자신감이 붙는 건지 아니면 오랜만에 먹는 만둣국이 그리웠던 건지 헷갈리지만.


산티아고에서 놀고 먹고 지내고 있었지만 사실 빨리 다음 목적지를 정해 이동해야 정상적인 여행자였다. 물론 노력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남미에서 유일하게 비자가 필요한 볼리비아라서 허겁지겁 비자를 신청하고 금요일 아침에 느긋하게 대사관을 갔는데 오전 11시까지 영사 업무를 한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비자 신청서를 인쇄해서 갔어야 했는데 나와 종원이형은 정말 대책 없이 아무 것도 준비하고 가지 않았다. 결국 비자를 신청하지 못했고, 비자가 없었으니 주말에 산티아고를 떠날 수 없었다.


월요일에는 무조건 비자를 받아야 한다며 아침 일찍 일어나 지하철을 타고 볼리비아 대사관으로 갔다.


볼리비아 대사관은 남미에서 가장 높다는 코스타네라 센터(Costanera Center) 맞은편에 있다. 한국 여권 소지자의 경우 볼리비아 비자는 신기하게도 별도의 비용이 필요하지 않았다. 물론 대사관에서 미리 비자를 받을 경우에만 해당하고 국경에서 도착 비자를 받는다면 100달러가 든다고 한다. 아무튼 산티아고에 있는 볼리비아 대사관에서 오전 11시 전에 비자 신청서를 내고 잠시 기다리면 오후 4시에 다시 오라는 말을 듣게 된다. 정확히 4시에 돌아가면 비자가 붙어 있는 여권을 받게 된다.


볼리비아 비자도 받았겠다 이제는 무거워진 몸을 이끌고 이동할 때가 왔다. 커다란 배낭을 메는 게 정말 어색했다. 한 달 넘게 아르헨티나부터 칠레까지 함께 여행했던 종원이형은 아르헨티나로 가서 헤어졌고, 산티아고에서 매일 술과 함께 했던 동빈이와 미은이랑 버스터미널에서 작별인사를 했다.


익숙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것 같은 이 느낌, 오랜만에 혼자가 됐다. 야간 버스를 타고 내가 이동한 곳은 라세레나(La Serena)였다. 그런데 너무 이른 새벽에 도착해 예약했던 호스텔 문이 닫혀 있었다. 난감했다. 밖에서 1시간 동안 기다리니 아주머니 한 분이 오셔서 문을 열어줬다. 호스텔 청소를 하는 분이기도 했고 너무 이른 아침이라 다른 직원이 없어 체크인을 할 수 없었다. 아주머니는 소파에 누워 눈을 붙이라는 말을 했고, 나는 그러겠다고 했다. 졸리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10분 만에 골아 떨어졌다.


몇 시간을 잤는지 날이 밝았다. 체크인을 하고 잠깐 침대에 누워있다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처음이라 어디가 중심지인지 감이 잡히지 않아 무작정 바다가 있는 곳을 향해 걸었다. 


해변에 다다르자 파로 기념탑(Faro Monumental) 혹은 라세레나 등대라 불리는 건축물이 보였다.


사실 해변에 오면 북적이고 가게도 많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한적했다. 기대했던 것보다 딱히 볼만한 게 없어 보여 돌아왔다.


이번에는 반대 방향으로 걸었다. 라세레나에 대학교가 많은지 대학생이 유난히 많이 보였다.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날씨가 점점 따뜻해졌다. 토레스델파이네에서 얼어 죽을 것 같다고 말한 게 거짓말 같다.


라세레나에는 오래된 교회와 건축물이 많아 역사적으로 중요한 도시라고 하는데 내가 꼼꼼히 살펴볼 리가 없다. 


차가 다니지 못하는 거리 양 옆으로는 여러 가게가 자리를 잡고 있고, 특별하지는 않지만 그 거리를 따라 구경하며 걸었다. 분명 평일 낮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거리에 나와 있었다. 다들 뭐 하는지 모르겠다.


애초에 가이드북도 없이 여행하는 나라서 라세레나에 대해 아는 건 하나도 없었다. 마침 호스텔 벽면에는 인근 지역 몇 군데를 소개하는 안내판이 있었다. 아마 엘키 밸리가 여행자들이 많이 가는 곳인 것 같은데 아침 일찍 투어로 가야 해서 늦었고, 지금이라도 당장 갈 수 있는 코킴보(Coquimbo)부터 일단 가보기로 했다. 코킴보는 라세레나와 거의 같은 생활권이라 버스를 타고 30분이면 도착한다.


깔끔했던 라세레나와 비교해 코킴보는 조금 더 낡고, 정돈되지 않은 느낌이었다. 아마 몇 년 전 이 지역에서 강진이 일어나 쓰나미로 큰 피해를 입어서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골목길을 조금 걷다 곧장 바다가 보이는 해안가로 갔다. 멀리 라세레나가 보였다.


수산시장 근처로 가니 관광지 분위기 나는 기념품 가게가 모여있었다.


근처에 포장마차처럼 작은 가게가 있어 이곳에서 점심을 해결하기로 결정했다. 메뉴판을 들여다 봐도 까막눈이라 무슨 말인지 모르지만 다행히 앞에 사진이 몇 장 있었다. 아주머니와 되지도 않는 스페인어, 그리고 사진을 가리키며 주문을 성공했다. 이미 몇 번 먹어봤던 조개스프였지만 홍합이나 백합이 가득 들어 있어 무척 맛있게 먹었다. 


사실 조개스프로 끝인 줄 알았는데 생선튀김이 이어서 나왔다. 알고 보니 메뉴 2개에 4,000페소였다. 보통 7,000에 10달러로 계산했으니 4,000페소면 약 7천원 정도인 셈이다. 충분히 배불리 먹고도 가격까지 저렴해 무척 만족스러웠다. 


수산시장에 가니 다양한 해산물로 눈길을 끌었다. 빵빵해진 배만 아니었다면 비린내 나는 시장 한쪽에서 세비체를 먹었을 텐데 조금 아쉽다. 


비린내 나는 수산시장을 걷다 상어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코키모 시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십자가가 있다. 당시에는 귀찮다는 생각에, 어쩌면 언덕을 오르면 힘들 거라는 생각에 가지 않았는데 나중에 찾아 보니 십자가가 굉장히 크고 전망대 역할을 하고 있어 코킴보 시내를 보기 무척 좋은 것 같다.


사실 코킴보에 온 이유는 오로지 바다사자를 구경하고 싶어서였다. 수산시장 근처에 있다고 들었는데 찾지 못해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봤다. 하지만 바다사자를 스페인어로 어떻게 말해야 할지 난감했다. 휴대폰에 있는 번역기 앱을 이용해 바다사자를 쓰니 방금 전까지만 해도 스페인어를 쏟아내던 아저씨는 이제야 이해한다는 의미로 환하게 웃더니 바로 뒤에 있던 철창으로 데려갔다.


수산시장의 물고기를 호시탐탐 노리던 커다란 펠리칸이 먼저 보였다.


날개를 펴면 무척 거대해지고 위협적이라 그리 친근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정말로 바위 위에서 누워 있는 바다사자를 볼 수 있었다. 작고 날쌘 물개와는 달리 바다사자는 몸집이 크고, 생김새도 많이 달라 귀엽다는 표현을 쓰기 어려웠다. 


그나저나 얘네들은 손이 없는데 어떻게 생선을 잡고, 어떻게 먹을까? 갑자기 궁금해졌다.


코킴보는 언덕이 많아 멀리서 보면 어디가 언덕이고, 어디가 집인지 경계가 모호하다.


호스텔로 돌아와 쉬고 있을 때 나와 눈이 마주친 한 여자가 같이 맥주 한 잔 하지 않겠냐고 물었다. 우물쭈물 거리긴 했지만 친절하게 무리로 이끄는데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호주, 미국, 아일랜드 등 다양한 국적의 여행자는 몇 명은 친구였고, 몇 명은 여행 중에 만나 함께 하고 있다고 했다. 우리는 늦은 시각까지 맥주를 마시며 수다를 떨었다. 혼자였지만 언제나 새로운 친구들을 만날 수 있어 무척 즐거웠다.


라세레나를 떠나 칠레 북부의 이끼께(Iquique)로 이동했다. 이끼께는 메마른 사막 위에 있는 도시로 칠레의 북부에 위치하고 있다. 칠레는 푼타아레나스(Punta Arenas)부터 올라왔으니 거의 최남단에서 최북단까지 종단한 셈이다. 


여기서 산티아고에서 헤어졌던 비호와 은정이를 다시 만나 또 밤새 술을 마시고, 낮에는 요리를 해서 먹고 지냈다.


사실 관광지로도 꽤 유명한 곳이지만 아직 비수기라 그런지 여행자는 별로 없는 것 같았다. 게다가 멀리서도 보이는 모래언덕 때문인지 도시가 전체적으로 황량해 보였다.


여행자는 보통 패러글라이딩을 하거나 해변에서 서핑을 즐긴다. 내가 지낸 곳에서는 서핑하는 모습은 볼 수 없었지만 패러글라이딩은 정말 많이 봤다.


해변이 그리 예쁘진 않다. 이끼께는 칠레의 자유무역지대로 지정된 곳으로 큰 항구가 있고, 고속도로를 통해 페루와 볼리비아를 잇고 있다. 바다가 없는 볼리비아의 경우 이곳을 통해 무역을 한다고 한다. 구석에는 거대한 면세점도 있어 카메라 렌즈를 싸게 구입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했는데 소니 렌즈는 거의 취급하지 않았고, 전자제품도 그리 싸지 않았다.


이끼께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편하게 쉬다 보니 2주가 훌쩍 지나갔다. 


조금 생뚱맞긴 하지만 야마와 악어를 볼 수 있는 곳도 있다.


날씨가 좋은 날 해변에 가니 경치가 제법 괜찮았다. 점점 여름으로 접어들고 있는 중이라 확실히 분위기가 달라지는 것 같다.


이끼께에서 너무 오래 지낸 탓에 이동하는 게 너무 어색했다. 오랜만에 배낭을 챙겨 오랜만에 버스를 탔다. 방심하기 가장 쉬운 날이었는데 역시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이끼께에서 야간 버스를 타고 깔라마(Calama)로 왔지만 너무 이른 새벽에 도착해 사무실 문이 닫혀있었다. 갑작스런 추위에 배낭에서 옷을 꺼내 입고 벌벌 떨면서 날이 밝기를 기다렸는데 정말 몇 분 사이에 내 발 아래에 있던 작은 배낭이 없어졌음을 깨달았다. 여권과 신용카드, 그리고 카메라가 있는 가장 중요한 배낭이라 멘붕에 빠졌고, 나는 미친 듯이 동네를 뛰어다녔다. 당연히 깔라마가 작은 동네도 아니고 내가 뛰어다닌다고 해서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깔라마에 좀도둑이 많다는 경고는 여행하면서 수없이 들었는데 내가 당하게 될 줄이야.


경찰서로 가서 허탈한 마음 내려놓고, 사정을 설명했다. 여행하면서 벌써 4번째 찾아온 경찰서다. 1시간 동안 스페인어로 힘겹게 설명하니 힘이 다 빠졌다. 그런데 이상하게 덤덤했다. 마치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알았다는 것처럼. 수중에 가진 돈은 고작 20,000페소뿐이었다. 산티아고로 돌아갈 돈도 넉넉하지 않은데다가 카드도 몽땅 잃어버려 이끼께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커다란 배낭 하나만 메고 깔라마 시내를 걸었다. 산티아고와는 달리 작은 버스터미널이 굉장히 많아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 나름 고급인 투르버스를 타려고 터미널을 찾는 도중 친절한 아저씨 몇 명을 만났다. 어떤 아저씨는 나에게 휴대폰을 가급적이면 꺼내지 말라는 충고를 해주고, 다른 아저씨는 영어로 자신도 멕시코에서 안 좋은 일을 당한 경험이 있다며 도와주겠다고 했다. 이름도 물어보지 못했는데 택시에 나를 태우더니 돈을 대신 내줬다. 정말 고마웠다.


외곽에 있는 버스터미널에 도착해 이끼께로 돌아가는 버스표를 샀다. 그리고는 심하게 나를 자책하며 시간이 자나가길 기다렸다. 한참 후 동양인 여행자로 보이는 한 아저씨가 배낭 두 개를 들고 터미널로 들어왔다. 그런데 몇 분도 되지 않아 아주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터미널을 계속 돌아다니길래 불러서 무슨 일이 있냐고 물었다. 일본인이라고 했던 그 여행자는 순식간에 배낭을 도둑맞았다는 것이었다. 이 터미널은 나름 깨끗하고 경비원도 있어 괜찮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 일본인 여행자도 당했다. 나도 몇 시간 전에 작은 배낭을 도둑맞았다고 위로를 했고, 우리 둘 다 쓴웃음을 지었다.


생각하고 싶지 않은 시간이 지나고 현실을 맞았다. 산티아고로 돌아와 여권을 재발급하고, 카드를 받고, 카메라를 새로 구입했다. 거기에 볼리비아 비자도 새로 받아야 했다. 여행이고 뭐고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러나 이렇게 불명예스러운 마침표는 원치 않았고, 무엇보다 여행을 더 이어가자는 의지가 더 강했다.


산티아고에서 여권을 기다리는 동안 페이스북을 통해 알게 된 분과도 만났다. 발파라이소를 여행하고 산티아고로 돌아오셨는데 마침 내가 도둑을 맞고 산티아고로 돌아와 만날 수 있었다. 여행 잘 보고 있었다며 저녁을 사주셨는데 정말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게다가 전날 박정희과 전두환을 미화하는 이상한 할아버지와 너무나 대비된 과거 독재정권에 맞서기도 했던 멋진 분이셨다.


버스를 타고 거의 하루가 걸리는 깔라마까지 돌아가는 거야 큰 문제는 아니었지만 볼리비아 우유니에서 전 직장 선배를 만나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서둘러야 했다. 대륙을 넘을 때를 제외하고 비행기를 단 한 번도 타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피치 못할 사정이 있고, 육로 이동은 한국에서 아프리카까지만 해당한다는 나름 합리화를 한 뒤 공항으로 갔다. 아쉽지만 아따까마는 포기했다.


이른 새벽에 공항에 와서 잠을 거의 못 잤다. 새벽 6시에 비행기가 떴고 나는 그대로 기절했다. 잠깐 눈을 떴을 때 지평선 너머로 태양이 떠오르고 있었다.


배낭을 털렸던 곳이라 다시는 오고 싶지 않았지만 볼리비아로 가기 위해서는 무조건 깔라마를 거쳐야 했다. 도착하자마자 다음날 우유니로 출발하는 버스를 예매하고, 숙소로 들어갔다. 어차피 깔라마에서 돌아다니고 싶은 생각도 없어 버스터미널 근처에 있는 숙소의 싱글룸을 예약했는데 이른 아침에 체크인을 해줘서 정말 좋았다.


하루 종일 안 나가도 되겠다 생각했지만 몸이 근질근질한 것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점심을 먹으러 잠깐 돌아다니고, 저녁에는 길거리에서 꼬치도 먹고 이곳저곳을 돌아봤다. 이렇게 보면 정말 평범한 동네인데 왜 나는 여기서 도둑을 맞았는지 모르겠다.


칠레에서 2달 반 동안 여행하면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여행을 포기하고 싶을 만큼 위기도 있었지만 결국 마무리하고 새로운 여행을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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