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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의 여름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의 혹독한 새벽 추위가 지나간 후 나의 두번째 출근이 시작되었다. 이 곳에 있을 때는 항상 이른 새벽에 나가야 했기 때문에 씻지도 않고 나갔다. 초기에는 새벽 6시까지 출근이었지만, 낮 시간대가 점점 빨라지면서부터는 새벽 5시 반까지 출근했다. 마을과는 거리가 꽤 있었던 만큼 최소 30~40분전에는 일어나야했다.

농장에 도착하니 뭔가 낌새가 이상했다. 우리가 차에서 내리자마자 아직 포도가 덜 익었다며 오늘은 일을 안 한다고 했다. 원래라면 일을 안하면 좋아하는게 정상일지 모르지만, 호주에서는 한푼이라도 더 벌어야 했는데 그 하루 안 하는 것은 나에게 타격이 무척 컸다.

뭐... 포도가 안 익었다는데 어쩔 수 없지.


세인트조지로 돌아와서 곧바로 IGA(슈퍼마켓)로 가서 우리에게 필요한 물품들을 사기 시작했다. 버너, 후라이팬, 식재료, 냄비... 사야될게 너무 많아서 그런지 장을 보고 나왔을 때는 두 손 가득했다. 짐을 싣고 있을 때 한국 사람으로 보이는 두 사람이 보였고, 어떻게 하다보니 우연찮게 인사하게 되었다. 알고보니 같은 농장에서 같은 팀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농장이 큰 까닭에 4개팀이 있었는데 그 중 우리 팀은 유난히 한국 사람이 많았었다.

그러던 도중 우리와 함께 했던 형이 전화를 받고 오더니 브리즈번으로 돌아가야 할거 같다고 했다. 호주에서는 간호학을 전공하고 있었는데 마침 어느 곳에서 면접을 볼 수 있게 되었다고 아무래도 가는게 좋겠다고 했다. 그리고는 앞에 있는 사람들에게 우리를 부탁하는 식으로 말하고 전화번호를 받게 되었다.

캐러반파크로 돌아와서 형은 예상대로 짐을 싸기 시작했고, 아마도 돌아올 거야라고 얘기했지만 나는 믿지 않았다. 농장에서 일하고 온 첫 날 형은 우리에게 한국 사람이 너무 많아서 별로 좋은 정보도 아니었던거 같다고 했고, 1.2불이라는 말도 안 되는 임금을 받고 어떻게 일하냐고 푸념을 했었다. 그리고  내 눈에는 딱 하루였지만 농장 일에 대해서  힘들어 하는게 역역하게 보였었다. 짐을 싸는 형의 모습은 농장을 떠나게 된다는 기쁨이 더 커보였는데 짐을 다 차에 싣고는 곧 연락을 준다는 말과 함께 떠났다. 순식간에 사라지는 자동차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커져가는 당혹스러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아~ ㄴ어무미엄ㄴ엄낭무오풑ㅌ쿠찬옴오ㅜㅠㅠㅁ은ㅁ업ㅈ둠ㄴ어난ㅁ 으악!!!!
이제 어떡하지?


힘들게 농장에 왔고, 일도 금방 얻었기 때문에 모든게 쉽게 풀린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농장에 온지 단 이틀만에 최대 위기가 찾아온 것이다. 문득 농장에 오기 전에 싸이월드 메인에 써놓은 글이 떠올랐다.

'가끔은 내가 미친것 같다. 하지만 20대에 국제미아되어 보는 것도 나쁘진 않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