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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5시 반에 잠들긴 했어도 나는 아침이 되자 눈이 번쩍 떠졌다. 주변에 둘러보니 사람들이 하나 둘씩 깨어났는데 자연스럽게 이야기꽃이 펼쳐졌다. 사실 DDM은 도미토리이기 때문에 가격이 싸다는 것 밖에 좋은 점이 별로 없긴 하지만 자연스럽게 여행자와 정보를 공유하거나 친해질 수 있었다.

어디를 다녀왔는지 묻는 것부터 시작해서 앞으로 어느 곳을 여행할 때의 조언을 주고 받기도 하고, 왜 여행을 하고 있는지 서로의 이야깃거리를 꺼내 놓는다. 이름이나 나이는 그리 중요한 사항이 아니었다. 아저씨, 누나, 동생들이 모여 여행의 즐거움에 흥분을 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아낌없이 털어 놓는 순간이었다.

나는 어느 한 친구와 이야기를 주고 받았는데 그 때 나이가 같다는 것을 알고 이름도 말하면서 자연스럽게 친해지게 되었다. 동완이라고 이야기를 했던 이 친구는 태국에 이미 여러번 와 봤었고, 앞으로 태국 북부쪽으로 가볼 생각이라고 했다.


우리는 짜오프라야강으로 갔다. 수상버스를 타고 강 반대편으로 건너가기 위해서 였다. 여전히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고 있어 눈을 제대로 뜨기조차 힘들정도로 후덥지근한 날씨였다.


짜오프라야강의 탁한 색깔과 함께 보이던 라마 몇 세인지 기억이 안 나던 다리가 보였다. 라마는 태국 국왕을 뜻하는데 현재의 국왕은 라마 9세로 국민들의 절대적인 존경을 받고 있다.


수상버스를 타고 강을 건너갔다. 보이는 것은 수상버스를 타고 가면서 본 보트인데 라오스의 메콩강 스피드 보트와 유사해보였다. 수상버스는 여러 형태가 있는데 이 때 타고간 것은 단지 강만 건너가는 것으로 가격은 3밧(약 100원)이었다. 07년도에는 2밧 아니었나?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우리는 길거리 노점에서 국수를 하나 먹었다. 영어는 잘 통하지 않았는데 새삼 태국이 영어를 다 잘하는게 아니라는걸 깨닫게 되었다. 내가 카오산에 있었으니 다들 영어를 잘하는 것처럼 느껴졌던 것 뿐이었다. 손짓발짓으로 시켜먹은 20밧짜리 국수는 정말 맛있었다. 비록 위생상태는 좋아보이지는 않아도 주인아저씨한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주면서 맛있게 잘 먹었다.


한참을 돌아다니다가 다시 카오산으로 돌아왔다. 내가 언제부터 카오산 예찬론자가 되었는지 카오산만 보면 칭찬하며 구경하게 되었다.


여기서 쉽게 볼 수 있는 옷은 기본이었고, 신발과 수영복은 휴양을 즐기기 위해 남쪽으로 떠나는 여행자의 발길을 멈추게 했다. 그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속옷도 많이 보였다.


카오산에서만 볼 수 있었던 가짜 신분증 만드는 곳이었다. 국제학생증은 물론 가짜 학위증명서 뿐만 아니라 FBI 신분증까지 있는데 피식 웃으면서 구경하기에는 재미있다. 국제학생증은 한번 만들어볼까 했는데 은근히 돈이 아깝다는 생각에 흥정만 가볍게 해봤다.


손님은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거울을 들여다 보고, 그 뒤에서는 한명 혹은 두명이 달라붙어 열심히 머리를 쇳덩이와 함께 문지른다. 카오산에서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재미있는 풍경이 바로 레게머리하는 곳이다. 그들의 손놀림이 거의 신기와 같아 보였다. 한번쯤 도전해 보고 싶기도 했지만 머리는 어떻게 감아야 하지라는 원론적인 물음에 시도를 해보지 않았다.


먹거리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춘권이나 소세지, 꼬치는 물론이고 외국인들에게 가장 사랑 받는 팟타이는 인기 만점이다. 나는 거의 매일 팟타이를 먹었을 정도로 무척이나 사랑했었다. 팟타이는 태국식 볶음 면요리인데 외국인들 기호에 맞게 변형이 되어서 달콤하면서 부담없게 먹을 수 있어서 특히 좋아한다. 가격은 보통 20~30밧정도로 무척 저렴하다. 간식거리로 제격이었는데 나는 가끔 맥주와 함께 먹기도 했다.


시끄러운 음악소리에 쫓아 가보면 불법복제 음반을 판매하고 있는 곳이 있다. 외국인 특히 서양권 여행자들이 많기 때문에 그들의 최신 음악이 빠르게 업데이트 되고 있었다. 그리고 07년도에 비해 독특했던 점은 바로 아이팟 혹은 아이폰에 음악이나 영화를 넣어주는 서비스를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과연 카오산 정말 발빠르게 변화하고 있었다.


대낮부터 맥주를 마시는 풍경은 이상하지 않았다. 뭐... 아침부터 맥주를 마시는 사람도 봤으니깐 말이다. 사실 서양권에서는 그게 당연한 것인지 몰라도 내가 호주에서도 저런 풍경을 자주 봤었다.


조용했던 카오산은 저녁 시간이 되면서 더욱 활기를 찾았다.


내가 정말 좋아했던 과일 파는 곳. 파인애플, 파파야, 수박, 망고 등을 파는데 일반적으로 동남아의 수박은 맛이 없었다. 대신에 파인애플이나 망고는 정말 달아서 내가 좋아하는 과일이었다.


람부트리 거리를 걸었을 때 익숙해 보였던 그 강아지 자신의 집인냥 세븐일레븐 문 앞에서 잠을 청하고 있었다. 왜 저기에서 항상 있었냐면 세븐일레븐에서 흘러나오는 시원한 에어컨 바람때문이었다.


07년도에 찍었던 사진인데 이녀석 똑같다. 09년도에 세븐일레븐의 문 앞 자리를 사수하고 있었다. 그랬다. 단순했지만 태국에 와서 즐거웠던 것은 내 예전 기억이 새록 새록 나게 만들어줬던 이런 사소한 것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녁으로 거리 노점에서 팔고 있던 볶음밥을 먹었다. 30밧(약 1000원)에 해결할 수 있는 나의 한끼에 행복해 할 수 밖에 없었고, 더불어 예전의 여행 기억이 떠올랐다.


밤의 카오산은 멈출 수 없는 활화산과도 같았다.


난 이 카오산의 중앙에 서서 사진을 찍었다. 생각해보니 07년도에 저 옷을 입고 캄보디아로 향했었는데 나는 태국에서 샀던 저 옷을 다시 입고 돌아왔다.

숙소로 돌아와서는 동완이와 어떤 한 동생과 맥주를 마셨다. 이름은 기억이 안 나는데 대학원생으로 너무나 답답해서 갑자기 짐을 싸고 한국을 나왔다고 했다. 조만간 남부쪽으로 가서 스쿠버 다이빙을 할 것이라고 했다. 아무튼 이들과 맥주를 3병정도 먹었을 무렵 나는 너무 졸려서 먼저 올라가서 그대로 골아 떨어졌다. 피로가 겹친 탓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