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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성 바울 성당 유적 앞에 섰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할까?‘


지도에 나와 있는 유적지와 문화유산을 살펴보면서 앞으로 갈 곳을 골라보는데 이 앞에서 쉽게 발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성 바울 성당은 그만큼 나를 사로잡았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성 바울 성당 유적지 앞에서 사진을 찍으며 감상하고 있었다. 나는 서둘러 다른 곳으로 이동하지 않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계단 위에서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는 사람은 물론이고, 지나가는 사람, 앉아 있는 사람들을 둘러 봤다.



내가 추구하는 여행은 확실히 특별하지 않았다. 그냥 발걸음이 이끄는 데로 움직였다가 조금 힘들면 그냥 쉬었다. 그게 나의 여행 스타일이었다. 물론 가끔은 관광지를 찾아 열심히 돌아다니기도 했지만 꼭 그것만이 여행의 전부가 아니다. 조금 더 거창하게 말하자면 여행을 온 몸으로 느껴보고 싶었다.


홍콩에서 마카오로 온 뒤 불과 몇 시간 만에 마카오가 너무나 친숙해졌다. 오래되고 낡아 보이는 건물틈사이로 포르투갈의 흔적을 찾는다고나 해야 할까?


꼬마 아이가 뾰루퉁한 표정으로 누군가를 기다리는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나는 아쉬웠지만 성 바울 성당을 뒤로 하고 다시 걸었다.


좁은 골목길 사이로 걷다 보니 살짝 헤매기도 했지만 다행스럽게도 이정표가 곳곳에 설치되어 있어 크게 어려움은 없었다. 주요 유적지에서는 관광객들이 많이 보였는데 이렇게 골목 사이를 지나다보니 여행자는 나 혼자뿐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터벅터벅 걷는 이 길이 마치 20년 전으로 돌아간 듯 많은 이질감이 느껴졌다.  


성 도미니크 성당이었지만 외관만 살짝 구경하고 곧바로 이동했다.



성 도미니크 성당 뒤쪽으로 걷다 보면 커다란 정원이 나타나는데 이곳이 바로 까모에스 정원이다. 마카오 사람들의 휴식처로 보였는데 어쩌다 보니 이런 깊숙한 곳까지 들어와 버린 것이다.



계단을 따라 올라갔다.


곳곳에서는 아저씨들이 장기를 두는 것으로 보였는데 그 모습을 살짝 지켜봤다. 확실히 날이 덥긴 더워 장기 두는 것을 구경하던 아저씨도 배를 훤히 드러내고 계셨다.  



그렇게 이 정원을 돌아다니고 있을 때 매우 독특한 동상을 하나 발견했다. 멀리서 봐도 갓을 쓰고 있는 인물의 동상이라 어쩐지 조선시대 사람으로 보였다. 나는 점점 가까이 가면서 우리의 조상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동상 아래에는 한국인 최초의 사제 김대건이라는 이름이 명확하게 적혀 있었다. 김대건이라면 나도 어렸을 때 위인전을 통해 읽었던 기억이 난다.


김대건 신부는 마카오에서 사제 수업을 받았다. 그래서 그걸 기념하기 위해 마카오와 홍콩 교민들이 한국인 최초의 신부 김대건 동상을 건립하였다고 한다. 정면에는 한글로 적혀있었고, 다른 쪽에는 영문과 중국어로도 적혀 있었다.


사실 기억은 정확히 나지 않지만 원래 이 까모에스 정원에 온 목적은 다른 곳에 있었다. 게다가 내가 관광안내센터에서 가지고 온 안내서에도 이러한 내용이 담겨 있지 않았는데 예상치도 못하게 이곳에서 한국인의 발자취를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비록 내가 천주교는 아니더라도 우리나라의 최초의 신부가 이곳에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나중에 다시 기억할 수 있는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