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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1년의 여정을 마치고 다시 평범한 일상이 이어졌을 때였다. 호주에서 1000km가 넘는 거리를 이동했던 것도, 홍콩의 화려한 네온사인 아래에서 걸었던 것도 마치 꿈을 꾸었던 것처럼 느껴졌던 그때였다. 절대 다른 대학생들처럼 똑같이 토익 공부나 하며 지내지 말겠다는 나의 다짐은 한국 사회속에서 무기력하게 무너졌을 때였다.

어느 날 누군가의 초청으로 연주회에 갔다. 졸업 연주회는 아니었는데 어쨋든 음악에 대해서 잘 모르거니와 나로써는 알아들을 수 없는 이탈리아어인지 프랑스어인지 모를 노래를 듣고 있으니 정말 힘들었다. 그렇다고 음악을 싫어한다거나 거부하는 생활은 절대 아니었지만 나의 따분한 일상이 겹쳐서 그런지 이 연주회가 나에게는 너무도 어울리지 않았다. 

'연주회를 관람하며 앉아 있는 것보다 나에게는 땡볕에서 돌아다니는게 더 어울릴지도 몰라!'

그랬다. 나는 그 연주회에 와 있는 순간에도 여행을 꿈꾸고 있었던 것이다. 항상 만사가 귀찮다고 움직이기 싫어하는 내가 어디론가 움직이고 싶다는 욕구가 솟구친다는 사실에 나 자신조차 놀랐다. 남들이 볼 때는 취업을 준비해야 하는 이 시기인데도 말이다. 이번에 떠나게 되면 현실도피라는 꼬리표가 따라 다닐지도 모른다.

이제 내 눈 앞에 있는 연주회는 안중에도 없었다. 여행을 하면 어디로 갈 것인지 자금은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 머릿속은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학교는 다니고 있었지만 그냥 무작정 한 달 떠나볼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 생각은 잠시 뒤에 접었다. 이왕 떠나기로 생각한거 마음 편히 떠나려면 4학년 2학기 종강을 한 뒤에 떠나는게 좋을 것 같았다. 어차피 연말이니 무슨 준비를 할 마음도 생기지 않을게 분명했다.

그럼 어디로? 이미 나는 가까운 나라는 거의 다 가 본 상태였다. 베트남이나 태국을 다시 가볼까 하다가 아무래도 나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여행지였다. 그나마 물가가 싼 동남아를 곰곰히 생각하다가 문득 미얀마가 떠올랐다. 제대로 알아보지는 않았지만 누군가가 미얀마가 그렇게 좋다는 이야기를 했던 것이다. 미얀마라면 내가 아직 가보지 못한 미지의 여행지이고, 분명 물가도 그리 비싸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 섰다. 그 날 이후 가끔 미얀마에 대해 살펴 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가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했음에도 불구하고 여행 준비는 항상 뒷전이었다. 인터넷으로 정보를 알아보는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돈을 모으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원래 여행 준비는 철저하게 하지 않는 편이라서 그런지 정말 인터넷에 있는 미얀마 여행기도 읽어보지 않았다. 정말 여행은 갈 수 있을까?

나는 12월 중순이 되어서야 부랴 부랴 여행 방법에 대해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 미얀마는 육로로는 입국이 불가능한 나라였다. 따라서 무조건 항공편를 이용해야 했는데 태국에서 비행기표를 구해서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문제는 비자였다. 분명 크리스마스인 12월 25일에는 미얀마 대사관이 업무를 하지 않을 것으로 판단이 되었는데 문제는 그 다음 날이 토요일이었다.

문제는 그 뿐만이 아니었다. 12월과 1월 사이는 최대 성수기라서 그런지 방콕-양곤행 비행기의 가격이 무지하게 비싸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가장 싸다는 에어아시아 검색을 해도 10000밧은 그냥 넘어버렸다. 날짜를 조정해보니 6000밧에도 뜨는데 비자가 언제 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예약을 할 수 없는 입장이었다. 결국 한국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고 태국으로 날아서 어떻게든 해보자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마음 놓고 태국행 비행기표를 예매하려고 했다. 20일로 넘어가면서 가격이 무지하게 올라가긴 했지만 그래도 싼 비행기는 충분히 검색이 되었다. 안심을 하고 예약을 누르는 순간 '대기 예약'으로 처리가 되었다. 내가 너무나 여유롭게 지내고 있었던 그 시기는 이미 항공편 예약을 하기엔 너무나 늦어버린 순간이었다. 너무 놀라서 여러 비행기를 눌러봐도 전부 '대기 예약'으로만 떴다. 혹시나 싶어서 5개 항공사를 예약해봤지만 대기 예약이 풀리지는 않았다.

머리를 쥐어 뜯으며 여유롭게 지내던 과거를 원망했다. 망했다. 여행을 못 간다는 생각을 하니 눈 앞이 캄캄했다. 캠코더를 헐 값에 팔았는데 또 코 앞으로 다가온 기말고사도 신경쓰지 않고 여행만을 상상했는데 한 순간에 무너졌다. 내 안 중에도 없던 기말고사는 무시한지 오래였고, 오로지 항공권을 찾는데 안간힘을 썼다. 비싼 항공권도 역시나 자리가 없었다.

그렇게 3일 째 항공권만 검색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중화항공의 4석이 보였다. 흥분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얼른 예약 버튼을 눌렀다. 대기도 아니었고 좌석이 있었던 OK사인이 떴던 항공권이었다. 예약을 하자마자 침대에 누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가만... 발권은 언제까지 였지?'

다시 예약했던 사이트에 접속해서 발권기한을 보니 당일 오전 9시까지였다. 너무 깜짝 놀라서 새벽 2시 반이었던 그때 결제를 해버렸다. 그렇게 캠코더를 팔아서 생긴 50만원으로 항공권을 사버렸다.

예약을 한 다음날 대학교를 다니면서 마지막 시험을 치르기 위해 밤을 새겠다고 학교 도서관에 있었지만 집중이 될리가 없었다. 내 머릿속은 온통 여행 생각뿐이었다. 다음날 거의 비몽사몽으로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재무관리' 시험을 보고나니 속이 너무 후련했다.


그 후 은행으로 달려가 친구가 갚은 돈 50만원과 당시 내 수중에 있던 7만원 가량의 돈을 미국 달러로 환전해버리고, 애드센스 수익이었던 330달러를 외환통장에서 찾아버렸다. 집에 있던 호주 달러 몇 장을 합치니 800달러가 좀 넘었는데 그것이 내 한달 여행 경비였다. 그렇게 나는 다시 여행을 시작했다. 한국으로 돌아온지 불과 6개월 밖에 되지 않았던 시점이었다. 그것이 여행에 대한 그리움이었는지 아니면 현실도피였는지 그것도 아니면 미얀마라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이었는지 떠나던 그 순간까지도 알 수가 없었다.

19일에 항공권을 발권하고, 20일에 학교 도서관에서 밤을 새고(실제로는 계속 잤다), 21일에 실질적으로 졸업이었던 종강을 했다. 그리고는 22일 새벽 나는 인천공항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탔다. 대책 없었다고는 하지만 나의 여행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드디어 가장 최근에 여행을 했던 미얀마 여행기를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호주 이야기가 끝나면 이제 제 블로그에 쓸 이야기가 없어지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는데 작년 12월에 떠났던 미얀마 여행 덕분에 당분간은 걱정 없습니다. 항상 제 여행기는 사진보다도 글이 중심이었고, 사소한 것도 기록하는 방식입니다. 미얀마 여행기도 그렇게 기록될 예정이라 꽤 오래 걸릴듯 싶습니다. 내일 부터 시작되는 2박 3일간 동원 훈련을 마치고 본격적인 미얀마 여행기를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ㅠ_ㅠ

2010/04/20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