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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들뜨게 하는 것은 항상 좋은 음식과 멋진 장소가 아니었다. 물론 카오산로드의 경우는 화려함의 극치이기 때문에 멋진 장소에 해당하긴 했지만 배낭여행의 경우는 꼭 그런 장소가 즐거움을 가져다 주는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호주의 멋진 건물보다도 동남아의 현지 생활을 엿볼수 있는 골목이나 무얼 먹을지 고민을 하게 만드는 노점이 바로 그런 예다.

외로움에 사무쳐 그냥 책을 보면서 잠이 들었다. 겨우 잠에서 깰 때 쯤에는 이미 사방이 어두워져 있었던 상태였다. 이 250밧짜리 싱글룸은 사실상 가장 싸구려 방으로 맨 꼭대기에 있었다. 태국에서 가장 비싸게 지냈던 방인데도 이런 싸구려 대접을 받아야 한다니 참 이상했다.


창 밖으로 보이던 이상한 불빛은 왓아룬에서 나왔던 것일까? 그냥 멍하니 밖을 바라보다가 나는 또 밖으로 나갔다.


여전히 시끄러운 음악소리와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가 섞여 이 곳은 나의 현실과 맞닿아 비현실이 되어버렸다. 내가 정말 이렇게 외로움을 느끼고 싶어서 생일이며, 크리스마스이며, 연말을 무시하고 날아온 것일까? 이제는 더이상 태국의 후덥지근한 날씨도, 화려한 불빛과 음악도 나를 즐겁게 해주지 않았다.


혼자 밥을 먹고 와서는 혼자서 맥주를 마셨다. 보통 혼자서 맥주를 마시면 금세 외국인 친구들과 어울려 놀곤 했는데 어째 이 날은 나와 눈이 마주치거나 유쾌하게 웃으면서 같이 마실 수 있는 친구들이 생기진 않았다. 혼자서 맥주를 마시면서 거리를 바라보는데 정말 한국인들도 많이 지나갔다. 한국 사람이 싫은 것은 아니지만 나같은 여행자와는 전혀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 보여서 아니 그냥 호화로운 여행객들이 많아 보여서 그게 싫었다. 미얀마에 날아가도 이렇게 한국인들이 많을까?


혼자서 맥주를 마신 뒤에는 역시 혼자서 카오산로드를 걸었다.

나는 여행을 떠나면 무언가 깨달을 수 있다는 단순한 기대감이 있었다. 그래서 4학년 2학기 종강하자마자 비행기에 올라탄 것이다. 취업을 앞 둔 나에게 새로운 자극제가 되길 기대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여행을 떠나온지 일주일 째 나는 하염없이 방콕 거리를 방황하고 있을 뿐이었다.

사람들은 즐겁게 떠들고, 강아지들은 사람들 틈에서 서성이고, 시끄러운 음악소리가 사방에서 울리는 이 곳에서 뭔가를 깨닫겠다는 것은 또 무슨 생각이었을까?

방랑자가 된다는 것은 쉽지 않은데도 나는 그런 모습을 동경해서 어설프게 따라하는 그런 놈이었다. 나의 크나큰 착각이었다. 외로움에 사무쳐 감성적인 생각을 하다가 겨우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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