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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오산로드에 있다보면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것이 사실이지만 반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게 되어버려 상당히 무료해지기도 한다. 내가 방콕을 여행하는건지 아니면 카오산로드에 머물려 지내는건지 알 수가 없어지는 지경에 이르게 되는데 그래서 나는 더 빨리 미얀마로 가고 싶어졌다.

아침을 간단하게 먹고 할게 없었던 나는 갑자기 시암에 가보고 싶어졌다. 그것도 걸어서 말이다. 시암까지는 절대로 가까운 거리가 아니었음에도 천천히 방콕 시내를 구경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걷기 시작했는데 나중에는 왜 그랬을까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카오산로드에서 벗어나 민주기념탑을 지날 때만 해도 내 발걸음은 상당히 여유로웠다.


가지고 있는 지도와 주변 거리를 비교해가면서 걸었는데 걸어서 가는데도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찾아갈 수 있었다. 다만 계속 걸어야 했기에 힘이 들었을 뿐이었다.

횡단보도를 건너기 위해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데 내 옆에 있었던 외국인 부부가 가볍게 인사를 건넸다. 나도 가볍게 인사를 하니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물어봤다. 나는 한국 사람이라고 하니 자신은 미국인이라며 휴가로 여기에 왔다는 이야기를 해줬다. 짧게 나눈 인사였지만 한국에 대해서는 아주 잘 알고 있었던것 같았다.


한참을 걸어가다가 다리를 건너니 어느 재래시장이 나타났다. 여기까지 걸어오는데도 이미 1시간 넘게 걸렸던것 같은데 농산물을 팔고 있던 시장으로 보였다.


맛있어 보이는 음식이나 쇼핑하는 사람들이 가득했던 곳이 아니라 도매시장처럼 보였던 곳으로 방콕의 또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곳이었다. 이 시장을 지나가면 곧 바로 다른 시장과 연결되어 있는데 그 곳이 바로 '보베시장'이었다. 마치 우리나라의 5일장이 들어선 것처럼 도로 옆에도 천막이 설치되어 있어 각종 물건을 팔고 있었다.


날씨도 더운데 사람도 많아서 그런지 더욱 덥게 느껴졌다. 대형 쇼핑몰과는 다른 분위기가 연출되고, 내가 어렸을 때 많이 봤던 재래시장의 분위기를 가득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걷느라 너무 많이 흘린 땀을 보충하기 위해 세븐일레븐에 들어가서 20밧짜리 슬러쉬 하나를 사먹었다. 양이 워낙 많아서 시암까지 가는 동안 계속 먹을 수 있었다.


보베시장을 지나고 어느 작은 다리를 건널 때 쯤 운하에서 내달리는 작은 배를 볼 수 있었다. 짜오프라야강을 빼놓고는 방콕을 제대로 얘기할 수 없을 정도로 그들의 생활의 일부분이기도 한데 그 강과 곳곳에 연결되어있는 운하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강이나 운하를 통해 외곽지대까지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걷다가 지쳐있을 때쯤 우리나라로 치면 거대한 마트가 보여서 그곳에서 좀 쉬다가 또 걸어갔다. 여태까지 걸어온게 있는데 여기서 택시를 타고 시암까지 가기는 싫었다.


정말 얼마나 오래 걸었을까? 멀리서 거대한 빌딩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시암은 태국인이나 외국인들이나 가장 번화한 곳으로 거대한 빌딩, 호텔, 쇼핑센터가 몰려 있는 곳이었다. 이정표에는 시암스퀘어라고 적혀 있는 것이 보였고, 크게 어려움 없이 찾아갈 수 있었다.


열차가 이 쪽으로 다니나 보다.


드디어 도착한 시암. 옛 기억이 새록 새록 났다. 시암은 07년도에 가보고 처음 왔던 것인데 사진으로 보면 잘 모르지만 정말 거대한 쇼핑몰이 근처에 몇 개가 있어서 가장 번화한 곳이라 불릴만한 곳이었다. 그 쇼핑몰들도 어찌나 큰지 한국에서 보던 쇼핑센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우선 더우니까 에어컨 바람이라도 쐬러 안으로 들어갔다.


땀에 쩔어서 들어간 곳에서는 태국인들 뿐만 아니라 관광을 온 외국인들도 정말 많이 보였다. 그런데 이런 거대한 쇼핑센터 내에서도 복제시디를 버젓이 팔고 있다는게 놀라웠다.

쇼핑센터끼리도 지상, 지하로 연결되어 있는 곳도 많아서 꽤나 복잡한 편이다. 가전제품을 보다가 휴대폰 매장도 구경하고, 기념품 티셔츠를 파는 곳에 내려가 한 바퀴 돌아봤다. 사실 마땅히 살 마음도 없는데 시암까지 왜 왔나 싶기도 했다.


그러다가 한 가전제품 매장에 들어갔는데 TV에서는 소녀시대 노래가 흘러나왔다. 여러 모니터에서 소녀시대가 나오니 이거 참 신기하다 싶을 정도였다. 하긴 생각해보면 이 쇼핑센터 내부에서도 가끔 한국 노래가 흘러나오기까지 했으니 우리나라 아이돌의 인기가 태국에서 어느정도인지 실감할 수 있었다. 뭐... 나 역시 TV속의 소녀시대를 멍하니 쳐다보긴 했다.

시암을 더 자세히 구경하고 싶었지만 사실 왔었던 곳이기도 했고, 원래 쇼핑센터를 돌아다니는게 밖에서 돌아다니는 것보다 몇 배의 체력을 요구하기 때문에 너무 다리가 아파왔다. 이미 카오산로드에서 시암까지 걸어오는 것만으로도 무척 힘든 여정이었던 것이다. 너무 피곤해서 택시를 잡아타고 카오산로드로 돌아가기로 했다.

택시를 혼자 타니 요금이 조금 걱정이 되긴 했지만 사실 태국의 택시는 그렇게 비싼 편이 아니다. 게다가 택시도 에어컨이 빵빵할 정도로 나쁘지 않아서 택시를 타고 다니는게 훨씬 좋다. 카오산로드까지 돌아오는데도 요금은 고작해야 60밧 나왔다.


카오산로드 맨 끝쪽 도로에서 내렸는데 이상한 국기가 걸려있었다. 아마 노랑색으로 보아서 태국 왕실을 뜻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무슨 날인가 싶어 생각해보니 연말이라서 그런거 같다.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오는 길에 파인애플 하나 10밧짜리 사서 우물우물 먹으면서 걸었다.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하자마자 갑자기 비가 쏟아지는데 12월이었던 그 시기에 쉽게 볼 수 없었던 양이었다. 우기라면 저런 비가 매일 쏟아지는데 어쨋든 저런 폭우가 쏟아지기 전에 돌아와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앞으로 시암을 갈 때는 걷지 말고 택시를 타야 겠다고 생각했다. 택시는 좋은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