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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여자였던 비키와 걸어서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빤히 쳐다봤다. 아무래도 동양인과 서양인이 함께 돌아다니는 모습이 무척 이상하게 느껴졌나 보다. 가끔은 우리를 보고 여자친구냐 혹은 결혼한 사이냐고 묻는 어이없는 질문도 받아 봤다. 동양인과 서양인의 조합이 그렇게 어울리지 않았나 보다. 

우리는 무작정 지도를 보면서 걸었다. 바간은 정말 광활한 지역이었고, 애초에 이 몇 천개가 된다는 파고다를 다 본다는건 불가능했다. 비키와 나는 그냥 자유롭게 걷다가 자유롭게 보고 싶다는 생각에 지도로 대충 방향을 잡고 걸었던 것이다. 

그런데 정말 너무 더웠다. 지난 밤에 추위에 벌벌 떨었던게 거짓말 같을 정도로 너무 더웠다. 게다가 바간 지역에 관광객들을 위한 도로가 포장되어 있을리 만무했다. 흙먼지를 열심히 날리면서 걸어다녔다. 


멀리서 땃빈뉴 파고다가 보였고, 우리는 그 옆에 있는 파고다부터 갔다. 처음에 이 곳이 탈로민로 파고다인줄 알았다. 하지만 다음 날이 되어서야 나와 비키가 갔었던 이 곳이 탈로민로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방에는 파고다가 솟아 있었다. 


파고다에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것은 역시나 물건을 팔려고 하는 사람들이었다. 떡하니 기다리고 있었던 사람들을 바라보니 캄보디아 앙코르왓이 생각났다. 거의 비슷한 느낌으로 기념품을 비롯한 수공예품, 그리고 엽서 등을 팔고 있었다. 간곡하게 하나 팔아달라는 사람들의 모습도 비슷했다. 

우선 파고다에 들어왔으니 나는 슬리퍼를 벗었는데 비키는 왜 그랬는지 신발을 신고왔기 때문에 신발과 양말까지 벗어야 했다. 미얀마에 있는 모든 파고다는 아무리 작은 곳이라도 신발을 벗어야 했다. 어차피 나야 슬리퍼만 질질 끌고 다녔으니 벗는건 크게 상관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물건 좀 사달라고 붙었는데 나와 비키는 우리에게는 필요 없는 물건이니 나중에 보겠다고 하자 아주머니가 그러면 파고다 구경하고 나와서 다시 보라고 했다. 캄보디아 앙코르왓도 그랬지만 바간도 엄청난 강매에 시달려야 했다. 


바간에는 파고다가 너무 많아서 여기가 어디었는지 이름이 기억이 안 난다. 주요 파고다의 이름은 그래도 기억하는 편인데 아마 책을 뒤져봐야지 겨우 알아낼 수 있을 것 같다. 


꼬마 아이들은 여기가 놀이터였다.  


파고다 안으로 들어가서도 역시 물건 강매에 시달려야 했다. 이번에는 그림이었는데 조금 신기했던 것은 강변에 있는 모래로 그린 것들이라고 한다. 그림에 관심이 있다면 하나 구입해도 괜찮겠지만 애석하게도 난 이런 것들에 관심이 없는 편이었다. 


파고다 안에는 당연히 부처상이 빠질 수가 없다. 


멀리 땃빈뉴 파고다가 보였다. 땃빈뉴 파고다는 바간에서 가장 높은 파고다로 높이가 61미터이다. 


우리에게 관심을 끌려고 따라왔던 아주머니가 계단을 따라 올라갈 수 있다고 얘기를 해줬다. 아마도 우리에게 약간의 가이드를 해주고 다시 물건을 팔 생각인듯 보였다. 하지만 미얀마 사람들이 대부분 그랬듯이 나쁜 사람은 별로 없었다. 단지 그들의 생계라는 점이 무척 안타깝기만 하다. 

바간의 모든 파고다가 그렇긴 했지만 여기도 역시 계단은 무척 가파르고 좁았다. 계단의 통로도 무척 좁아서 동굴을 빠져나가는 느낌인데 천천히 발을 디디며 올라가니 밝은 바깥 세상이 나왔다. 


비록 이 파고다가 높은 곳도 아니고, 경치를 감상하는 그런 포인트도 아니지만 사방에 솟아있는 파고다를 바라보니 이건 저절로 감탄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다만 여기에도 낙서가 있었다. 근데 이존기라고 쓴거를 보니 한국 사람이 쓴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미얀마에서 한국 드라마의 인기는 상상 이상으로 대단할 정도니까 말이다. 


파고다 꼭대기에 올라 사방을 돌아가며 사진을 찍었다. 이 당시만 해도 지도를 보면서 어느 파고다인지 확인해 보았는데 아난다 파고다, 땃빈뉴 파고다, 담마양지 파고다 등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바간의 풍경은 캄보디아 앙코르왓에 비교해서 화려하거나 멋스럽지는 않았지만 이 엄청난 파고다를 바라보면 누구라도 경이로움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이는 전부 불심의 힘으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강제적인 노역이 아니라 그들이 현세에 쌓을 수 있는 최고의 공덕이라고 여긴 것이라 더욱 대단했던 것이다. 이런 각기 다른 모양의 파고다가 이 곳에는 사방에 있었다.

우리는 이곳에서 다음 목적지를 어디로 가볼까 하다가 바로 앞에 보였던 땃빈뉴 파고다로 정했다. 아무래도 가장 가까운 곳이고, 가이드북에서도 꼭 가봐야 하는 장소라고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다. 


파고다에 올라 비키와 나는 서로 사진을 찍어줬다. 혼자 여행을 하다보면 사진을 찍을 때가 가장 불편한 법이다. 비키는 자신이 혼자 여행하다가 셀카로 찍고, 타이머를 맞춰 놓고 찍는 것도 한계가 있어서 항상 보면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들이 풍경 밖에 없다고 했다. 나도 웃으면서 절대적으로 공감하면서 앞으로는 서로 사진을 많이 찍어주자고 했다. 


계단은 올라갈 때보다 내려갈 때 더 조심해야 했다. 안은 무척이나 어두웠고, 계단의 폭은 너무나 좁았다. 


이제 겨우 파고다를 한군데 봤을 뿐이다. 우리가 앞으로 가야할 곳은 너무나 많았던 상태였다. 


가르침을 받고 있는 중일까?


우리가 밖으로 나오자마자 다시 물건을 살펴보라는 아주머니들에 의해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멈춰서야 했다. 열심히 보기는 했지만 나에게는 필요가 없을거 같았고, 비키는 냥우 시장에서 이미 한 개를 산 뒤였다. 너무 애처로울 정도로 물건을 사달라는 곳도 꽤 많았는데 이 곳도 예외는 아니었다. 


바간의 풍경은 정말 이색적이었다. 그 어떤 나라에서도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풍경이었다. 마차와 우차가 흙먼지를 일으키면서 달리는 모습과 더불어 멀리 배경이 되었던 수 많은 파고다는 바간에서만 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무지하게 오래된 차량에는 사람들이 거의 매달려 있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타고 있었고, 우리 앞에 지나가자 손을 흔들면서 환호를 했다. 웃음이 났다. 바간은 시간이 멈춰버린 곳이자 급박하게 살아가는 현대인의 마음도 멈춰버리게 만든 곳이었던 것이다. 


자유를 꿈꾸며 날아온 미얀마, 나는 이 곳에서 여행의 즐거움을 서서히 느끼고 있었다. 

* 책을 찾아보니 내가 올라갔던 곳은 쉐구지 파고다인 것으로 추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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