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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빠산 투어를 다녀온 후에 이탈리안 커플은 나에게 다음 날 일출을 보고 싶으면 새벽 5시에 오라고 제안했다. 그들은 다음 날 만달레이로 떠나기 전에 일출을 보려고 했던 것이다. 나는 일출을 보고 싶었기 때문에 새벽에 찾아가겠다고 말하고는 쉽게 헤어졌다. 

나와 비키는 숙소로 돌아와 씻고나서 늦은 점심을 먹기로 했다. 뽀빠산 다녀올 때 오픈카를 타서 그런지 정말 엄청나게 탔다. 얼굴과 팔은 새빨갛게 변한 상태였고, 살짝 따겁기까지 했다. 


먼저 씻고 게스트하우스 로비로 나와보니 게스트하우스 직원들이 사진을 찍으면서 웃고 떠들면서 놀고 있었다. 가만히 구경하던 나도 같이 껴서 사진을 찍었는데 이들은 다른 여행객을 향해 나를 가리키며 우리 직원이라고 장난치기도 했다. 여기 게스트하우스 직원들도 참 친절해서 기억에 많이 남았던 곳이었다. 


잠시 뒤에 비키가 나왔고 같이 점심을 먹으러 나갔다. 우리는 조금 걷다가 일본식 식당에 들어갔다. 일본인이 운영하는 것은 아니었고 그냥 일어가 적혀있었던 식당이었는데 메뉴를 보니 일식이 있긴 있었다. 다만 일식은 기본이 3000~4000짯이 넘는 꽤 비싼 음식이라 우리는 간단하게 크레페와 음료 등을 주문했다. 


식사가 나오기 전에 차가 나왔다. 


내가 먹었던 것은 요거트&과일과 야채 그레페였다. 고기를 거의 안 먹었던 비키가 야채 크레페를 시켜서 나도 따라 시킨 것이었는데 생각보다 맛은 괜찮았다. 가격도 800짯(약 800원)밖에 안 했으니 매우 만족스러운 식사였던 셈이다. 

밥먹고 난 후에 비키와 어디로 갈지 대화를 나눴는데 아무래도 우리는 뽀빠산 갔다와서 피곤한 것도 있으니 멀리 가지 말고 가까운 곳이나 가보자고 의견이 일치했다. 냥우에서 가까운 곳 중에서 가장 유명한 파고다는 쉐지공이었는데 걸어서도 충분히 갈 수 있는 거리였다. 우리는 바로 쉐지공으로 목적지를 정한 뒤에 천천히 걸어갔다. 


바간에 처음 도착했을 때 새벽이라 주위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던 버스터미널이었는데 낮에 보니 참 심심한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새벽에 벌벌 떨면서 사이까를 타고 게스트하우스를 찾아다녔던 기억이 다시 새록새록 났다. 


버스터미널을 지나 조금 더 걸으니 황금빛 파고다가 나왔다. 단번에 이 곳이 쉐지공 파고다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쉐지공 파고다를 들어가려고 하니 그 앞에는 역시나 기념품을 파는 아주머니들이 계셨다. 또 우리는 강매에 시달려야 했는데 비키는 구경은 했지만 도저히 못 사주겠다고 했고, 나 역시 절대 안 사는 타입이라 우리에겐 필요 없는 물건이라고 얘기했다. 

하지만 이 분들은 어찌나 우리를 붙잡는지 계속 구경하라고 했는데 한 아주머니가 내 손을 붙잡고 이거 하나만 사주면 큰 도움이 될거다라는 말 한마디에 무너져서 결국 한 개를 구입하고 말았다. 1000짯짜리 하나를 구입했는데 아주머니는 돈을 기념품에다가 툭툭치면서 이 돈이 나에게 행운을 가져다 줄거라면서 고맙다고 했다. 하지만 비키는 구경만 하고  구입하지 않아서 그런지 다른 아주머니한테 약간의 미움을 받기도 했다. 

사실 아무리 내가 배낭여행자라고 하더라도 이 아주머니의 기념품 하나정도 사줘도 상관 없기는한데 전 날 사주지 못했던 꼬마 아이들의 엽서가 떠올랐다. 차라리 난 꼬마 아이들의 엽서나 기념품을 사주고 싶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쉐지공 파고다에 들어가보니 중앙에 있던 거대한 황금빛 불탑이 보였다. '황금모래 언덕의 파고다'라는 뜻의 쉐지공 파고다는 바간지역에서도 순례의 장소일정도로 꽤 유명한 곳이었다. 쉐지공 파고다의 황금빛은 양곤의 쉐다공 파고다가 떠오르게 했다. 물론 규모는 양곤의 쉐다공 파고다가 훨씬 거대하긴 했다. 내가 본 미얀마 최고의 파고다는 단연 쉐다공 파고다였다. 


비키는 해가 질 때 멋있어질거 같다면서 여기서 기다리자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그냥 이 곳에서 철퍼덕 주저 앉아서는 해가 지기를 기다렸다. 기다리는 와중에 미얀마 엄마, 아이와 인사도 나누고 잠시 대화도 했다. 그럴 때마다 빠지지 않고 우리에게 물어보는건 비키와 나와의 관계였다. 서양인과 아시아인이 같이 돌아다니는게 무척 신기했나 보다. 


이윽고 해가 서서히 저물었는데 쉐지공 파고다는 조금 붉어지긴 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멋있는 장면은 나오지 않아서 살짝 아쉽기는 했지만 어쨋든 쉐지공 파고다에서 충분히 머물면서 보고 가는거라 괜찮았다. 


우리가 돌아갈 때 미얀마 아이들과 만나서 잠시 이야기도 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버스터미널에 들러서 다다음날의 만달레이행 버스 티켓을 예매했다. 컴퓨터는 있을리가 없었는데 버스를 예매하는 과정도 장부에 적었고, 버스 티켓도 직접 적어서 줬다. 


잠시 숙소에 돌아오니 게스트하우스 직원들이 TV를 보고 있었는데 역시나 한국 드라마였다. 미얀마에서는 더빙되지 않은 한국 드라마가 매일 저녁에 방영하고 있었는데 그 인기는 내가 가보았던 어느 나라보다도 높았다. 미얀마에서 TV속 한국말이 들리니 무척 신기하기만 했다. TV속에 나오는 말을 내가 그대로 따라 말을 하니 직원들도 나를 쳐다보면서 웃었다. 

저녁 먹으러 나왔을 때 냥우의 밤은 매우 어두웠다. 사실 도시라고 보기엔 어려운 시골 마을이었기 때문에 불빛이 많지 않았다. 비키는 론리플래닛에서 봤던 인디안 식당을 가자고 제안을 해서 찾아갔는데 꽤나 멀었다. 올드바간 방향으로 약 15분정도 내려가다가 갈림길이 나올 때 좌측길로 가니 조금 근사할만한 레스토랑들이 나왔다. 


우리는 이 곳에서 네덜란드 부부를 다시 만났다. 두 사람 다 체형은 거대하신 편이고, 아주머니는 여전히 굉장히 독특한 장신구로 치장이 되어있었다. 그들은 밥을 거의 다 먹고 맥주를 마시는 중이었는데 자연스럽게 합석을 하게 되었다. 

이 분들은 다음 날 만달레이로 간다고 했는데 배를 타고 간다고 했다. 이런 정보를 전혀 몰랐는데 바간에서 만달레이까지 배를 타고 갈 수 있었던 것이다. 흡사 라오스 메콩강 보트처럼 이동한다고 하는데 대신에 버스보다 더 오래 걸렸고, 가격도 더 비쌌다. 배를 타고 간다는 말에 솔깃하긴 했지만 이미 버스를 예약한 상태였고, 시간이 더 오래걸리는 배를 타고 싶지는 않았다. 

아저씨의 경우 아주머니보다도 말 수가 없었던 편이고 아주머니는 굉장히 수다스러웠다. 네덜란드 부부와 여러 이야기를 했는데 솔직히 첫인상이나 겉모습은 좋게 보지 않았던게 사실인데 생각보다 그들은 올바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다름이 아니라 그들은 가난한 나라라고 해서 무시하던 그런 어글리 여행자들도 아니었고. 그것뿐만 아니라 후원에도 관심이 무척 많은 사람이었다. 

우리는 생각보다 진지한 이야기가 오고 갔다. 서로 여행을 하면서 느낀 감정들이었는데 가난한 나라를 여행하며 아이들에게 돈을 줘야 하는 문제라든가, 기념품을 다 사줄 수 없는 문제들, 그리고 라오스가 서양 여행자들로 넘쳐나서 어지럽히는 것이 싫다는 이야기 등을 이야기했다. 

잠시 뒤에 그 분들은 자리를 떴고, 나와 비키는 미얀마 비어를 마신 후에 만달레이 비어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만달레이 비어는 파란색과 빨간색이 있는데 파란색이 알콜 도수가 좀 더 낮았고, 밋밋한 맛이 난다고 하길래 빨간색을 한 병 시켰다. 맛은... 확실히 미얀마 비어가 훨씬 좋았다. 

10시가 가까워져서 우리는 숙소로 돌아갔다. 미얀마에서는 조금 신기한게 10시정도만 되면 미얀마의 대부분의 상점은 닫았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냥우 전체가 갑자기 정전이 되어버렸다. 가뜩이나 어두운 마을인데 정전까지 되어버리니 칠흙같이 어두워서 걷고 있었던 내 발조차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미얀마에서 정전은 너무나 당연한 현상이었다. 거리는 너무나 어두웠지만 하늘을 바라보니 별들은 빼곡하게 박혀있었다. 

숙소로 돌아오니 게스트하우스 직원들은 이미 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것도 게스트하우스 로비에서 말이다. 이곳도 이들에게는 직장이자 잠자리였던 셈이다. 비키가 조금 아쉬웠는지 2층에 올라가 맥주나 한 잔 더 하자고 제안을 했고, 게스트하우스 냉장고에 있던 타이거 맥주 한 캔을 집어 들고 올라갔다. 


맥주를 마시면서 정전때문에 여전히 깜깜했던 냥우를 바라봤다. 밤이되니까 날씨는 무척 추워졌지만 기분은 무척 좋았다. 미얀마 여행 5일째 되던 밤이 지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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