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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간의 일몰을 구경하러 쉐산도 파고다를 다녀온 뒤에는 이미 사방이 어두워진 상태였다. 칠흙같이 어두워지는데는 정말 오래 걸리지 않았고, 제대로 된 가로등이 있을리가 없는 우리는 멀리서 보이는 불빛에 의지하며 방향감각을 찾아야 했다. 

바간 여행의 친구였던 러시아 여인 비키는 마차를 타고 돌아가기로 했고, 나는 자전거를 하루 빌렸기 때문에 자전거를 타고 돌아가야 했다. 대략 8시에 게스트하우스에서 보자고 한 뒤에 헤어졌다. 


나는 엽서를 사주고 싶었던 그 꼬마 아이를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찾아보고 싶어서 자전거 페달을 밟고 아난다 파고다 방향으로 돌렸다. 아난다 파고다에 그 꼬마 아이가 산다고 들었기 때문에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돌아본 것이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그 아이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엽서를 사주지 못했던 것은 미얀마를 떠나올 때까지도 계속 마음에 걸렸을 정도로 너무 아쉽고 미안했던 순간이었다. 


아난다 파고다 방향으로 들어오니 놀이기구처럼 보이는 것들이 움직이고 있었는데 너무 어두운 저녁이라 그런지 아니면 원래 인기가 없는 것인지 매우 한산해 보였다. 사실 내가 생각하던 그런 놀이기구에 비하면 매우 조잡한 수준이긴 했다. 

나는 올드바간에서부터 자전거를 타고 낑낑대며 냥우까지 달렸다. 하루종일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녀서 다리에 힘이 거의 없었던 상황이었지만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밤이 되어 쌀쌀해진 탓에 더이상 땀이 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미얀마를 여행했을 때는 1월이라 남쪽의 양곤을 제외하면 밤에는 항상 쌀쌀해서 긴팔을 입고 다녀야 할 정도였고, 심지어 추위에 벌벌 떨기도 했다. 

어두운 도로 위를 자전거를 타고 가니 여간 힘든게 아니었다. 가끔씩 내 앞과 뒤에서 비집고 들어오는 자동차나 마차 때문에 피해야 했고, 가로등도 없던 도로라서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가끔씩 도로를 이탈하기도 했다. 정말 깜깜해서 길도 보이지 않았고, 나는 거의 감에 의지해서 자전거를 타야 했다. 

한참 후에 냥우에 도착해서 게스트하우스에 돌아와서는 자전거를 반납했는데 나는 직원에게 이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느라 너무 힘들었다고 하소연을 하기도 했다. 그래도 낮에만 하더라도 거의 죽을듯이 힘들었고, 다리에 알베길 줄 알았는데 저녁이 되니 또 멀쩡했다. 땀과 먼지로 얼룩진 몸을 샤워로 깨끗하게 씻어낸 뒤에 로비로 나왔다. 잠시 후에 비키도 나왔고 우리는 저녁을 먹으러 전 날에 갔었던 인디안 레스토랑 근처로 향했다. 

어두워진 밤거리를 걸으면서 너무나 시골스러웠던 바간이 이제는 익숙해짐을 느꼈다. 하지만 이제는 떠나야 할 때가 왔다. 나는 다음 날 아침 버스로 만달레이를 가야 했고, 비키는 비행기를 타고 양곤으로 돌아가는 일정이었다. 

"아웅산 수치가 정말 미얀마에서 존경받는 인물이라 생각해?" 비키가 갑자기 물었다. 
"어... 그건 영어로 설명하기가 참 어려운거 같은데?" 영어교사까지 했다고 하는 비키와는 달리 내 영어 실력으로는 그런 어려운 질문을 답변하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비키는 괜찮다면서 자꾸 영어로 말하는 시도를 해봐야 늘거라고 얘기했다. 

미얀마를 설명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이 있었으니 그 여인이 바로 아웅산 수치다. 바로 미얀마의 영웅이라 일컫는 아웅산 장군의 딸로 NLD(민족민주연합)라는 야당의 지도자이고, 1991년에는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런 아웅산 수치 여사는 국제적으로 존경받는 인물인데(정확히 말하면 서구권) 선거에서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미얀마의 군부세력은 아예 선거를 무시해버리고는 아웅산 수치를 계속 괴롭히고 몇 차례 가택연금을 하게 된다. 현재도 아웅산 수치는 가택연금 상태이다. 

"글쎄... 내가 많은 것을 알지는 않지만 아웅산 수치가 분명 민주화에 기여한 것은 맞긴 하지만 확실히 그녀의 의도를 모르겠어. 책에서 보니 그녀의 관심사는 미얀마의 민주화가 아니라 서구권 나라의 입맛에 맞게 움직이는 것 같단 말이야. 실제 미얀마 사람들도 그녀를 좋아하는지는 의문이고..." 어설픈 영어로 대답했다. 비키도 내 말을 이해했는지 자신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짤막한 대답을 했다. 


우리는 어제 밤에 식사를 했던 레스토랑 바로 옆으로 갔다. 여기 식당은 전혀 바간과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꽤나 분위기 있는 조명을 갖추고 있었는데 이 거리의 3~4개 정도의 식당이 그러했다. 식당 앞에서 치킨과 생선을 직접 굽고 있는 모습이 너무나 맛있게 보여서 치킨과 생선을 선택하고는 따로 밥과 샐러드도 주문했다. 마지막 밤이라서 그런지 엄청나게 먹어댄 것이다. 


많이도 시켰다. 너무 어두워서 사진을 제대로 찍을 수 없었던 까닭에 음식들이 맛있게 보이지 않지만 대체적으로 괜찮았다. 단, 치킨은 너무 딱딱해서 먹기가 너무 힘들었다. 비키는 직원에게 "생선은 괜찮은데 이 치킨은 너무 딱딱하잖아요. 내 친구가 도저히 먹을 수가 없네요." 가벼운 항의를 하기도 했다. 식사와 함께 맥주도 빠질 수 없어서 미얀마 비어를 2병 마셨다. 

비키와는 양곤에서 외국인이라곤 우리 둘 밖에 없었던 바간행 버스 옆자리에 탔고, 새벽에 도착해서 그 어둡고 추울 때 같이 게스트하우스를 찾아다닌 인연으로 바간에서는 항상 같이 다닌 여행 친구였다. 서로 혼자 여행을 다니던 처지라 여행자를 만났을 때는 무척 반가웠었다. 


플래시가 터지면서 사진이 좀 이상하게 나오긴 했다. 어쨋든 우리는 맥주를 마시면서 사진을 보내줄 이메일을 주고 받기도 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짧은 기간동안 만나서 여행을 했지만 꽤나 잘 맞아서 즐거운 여행을 할 수 있었다. 

10시가 가까워지자 레스토랑은 문을 닫으려고 했다. 미얀마에서는 10시만 되면 접는 분위기였는데 여기도 예외는 아니었다. 왜 이렇게 일찍 닫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결국 우리는 아쉬운 마음을 가지고 거리를 나왔는데 숙소로 돌아가는 도중에 불이 켜져 있던 가게가 보여 한 잔을 더 마시러 들어갔다. 어차피 양곤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남은 돈을 처리할 예정이라며 자신이 맥주를 사겠다고 했던 것이다. 

이 작은 식당에 우리 둘이 있었고, 저 옆 테이블은 서양인들이 8명쯤 몰려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 외에는 이 작은 마을은 무척 조용한 편이었고, 다른 여행자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맥주를 마시다보니 알게된 사실은 이 곳에 있던 아저씨가 바로 옆 핀사루파 게스트하우스에서 봤던 아저씨였던 것이다. 우리는 그 게스트하우스에서 딱 하루만 머물로 잉와 게스트하우스로 옮긴 까닭에 조금 미안한 상태라서 그런지 비키는 이 식당의 음식이 훌륭하다고 칭찬했다. 그 아저씨도 분명 친절했던 사람이라 그런지 몰라도 우리를 기억했고, 우리가 자리에서 일어나기 전에 명함을 건네주면서 친구들에게 꼭 알려달라는 말도 했다. 

맥주를 마시고 일어나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온 우리는 마지막 작별인사를 했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 비행기를 타야했던 비키, 나 역시 새벽에 일어나 버스를 타고 만달레이로 가야했기 때문이었다. 나에겐 약간 누나뻘이었던 비키는 나를 가볍게 토닥여주면서 함께해서 정말 즐거운 여행이었다고 했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비키와는 Facebook으로 가끔씩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현재 비키는 남미를 여행중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