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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원래부터 걷는 여행을 더 좋아했다. 특히 도착한 첫날은 걸으면서 도시를 구경, 사람구경을 하며 천천히 눈에 익히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여행지를 얼마나 많이 돌아보는지와 같은 하드코어적인 여행보다도 여기에 사는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지와 같은 모습을 보는게 나만의 여행법이라고 하는게 맞을 것이다. 걷다가 힘들면 좀 쉬면 되는 것이고, 맛있어 보이는 음식이 보이면 먹으면서 돌아다니면 된다. 그게 바로 자유여행의 매력이다. 


나카스에서부터 늘어선 포장마차는 텐진으로 가는 거리에서도 볼 수 있었다. 참 신기한 것은 인도 한복판에 저녁이 되면 포장마차가 생긴다는 점이었다. 떡하니 인도의 반을 차지하고 있는데 도시의 미관을 해친다는 생각보다는 후쿠오카의 매력이 바로 포장마차라는 확신을 들게 만들었다. 차가워진 공기를 피하기 위해 사람들은 좁은 포장마차로 모여들었고, 거기에 앉아 떠들면서 술 한잔하는 모습이 도시를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항상 포장마차의 등불을 보면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일본의 가게나 포장마차를 보면 어김없이 매달려있는 이 등불이 뭔지는 나는 정확히 모른다. 그런데도 항상 이것만 보면 찍어댔다. 아마 내가 일본이라는 느낌이 오는 것은 스시도 아니고 라멘도 아닌 바로 이 등불이라고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텐진까지 천천히 걸어갔다. 후쿠오카에서는 하카타역도 있고, 나카스도 있지만 가장 중심거리라고 볼 수 있는 곳은 바로 텐진이다. 대형 쇼핑몰이 밀집해 있고, 도로도 가장 넓었다. 하지만 다른 도시들과는 다르게 중심부였지만 뭔가 화려함이 보이지 않았다. 늦은 시각이라 그런지 쇼핑몰은 닫기 직전의 상태였고, 어째 북적임은 나카스보다 못했다. (물론 나중에 텐진를 다시 돌아다녀보니 이 거리가 아닌 사이사이 골목에 사람들이 넘쳐났다) 


텐진에도 포장마차는 불을 밝히고 있었는데 나무판자로 만들어진 조금은 부실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내가 본 일본의 포장마차는 다 저랬다. 의자도 좁고, 바람이 세차게 불면 쓰러질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안으로 들어가보면 생각보다 아늑한데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마치 어렸을 때 기지를 만든다고 상자와 나무조각으로 집을 지었던 그런 향수가 느껴진다. 


후쿠오카 지도를 보며 목표지점으로 삼은 곳은 나가하마쪽 방향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시스템이 잘 갖춰진 일본이라고 하더라도 길 찾는데 어려움은 한국과 다름이 없었다. 일본이나 우리나 비슷한 방식이라 그런지 몰라도 정확한 방향을 지도를 보며 쉽게 찾을 수 없었다. 덕분에 나는 나가하마쪽이 아니라 반대방향으로 걷고 있었다는 사실을 한참 뒤에야 알 수 있었다. 이미 1시간을 넘게 걸었는데 다시 나가하마쪽으로 가기는 무리였다. 

확실히 거리명이 쉽게 보여서 찾을 수 있는 나라는 호주였다. 다른 유럽국가나 북미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여행했던 나라 중에서 호주는 거리명 혹은 도로명으로 쉽게 길을 찾을 수 있었다. 

그렇게 후쿠오카의 밤거리를 한참동안 헤매고 있을 때 이니그마님으로부터 나카스에서 보자는 문자가 왔다. 이번 여행은 네이버 여행블로거 이니그마님(http://www.gloriousld.com)과 큐슈일주를 같이 하는 일정이었는데 사실 우리는 같이 돌아다닌 적이 거의 없다. 심지어 이동할 때도 다른 기차를 타고 다른 시각 도시에 도착해서 따로 돌아다닐 정도였으니 동행은 했으되 여행은 따로 하는 신기한 형태였다. 어차피 우리 둘 다 혼자다니는 것도 좋아해서 그런지 크게 문제되는 부분도 없었다. 


어쨋든 나는 문자를 받고 나카스쪽으로 다시 걸어왔다. 어차피 나는 나카스 방향으로 걷고 있는 중이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이니그마님보다 더 일찍 도착할 수 있었다. 


이미 나카스에서 맥주를 마셨지만 이 작은 포장마차 거리는 뭔가 재미있었다. 야타이라고 불리는 포장마차 몇 개 주위로 사람들은 가득했고, 그 앞에서 술을 마시는 사람들과 라멘을 먹는 사람들이 어우러져 복잡함을 이루고 있었다. 원래 이런 풍경을 좋아해서 그런지 몰라도 나카스의 포장마차가 유명세에 비해 소규모라 하더라도 전혀 실망스럽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나카스의 포장마차들은 전혀 서민스럽지 않은 비싼 가격을 자랑하고 있었다. 


나카스 근처에서 30분정도 배회하고 있으니 이니그마님이 나타났다. 나는 텐진 시내를 돌아다니고 있는 동안에 이니그마님은 지하철을 타고 후쿠오카타워를 다녀온 것이다. 이렇게 같이 비행기를 타고 날아오기는 했지만 서로 다른 여행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출출함에 야식을 먹기로 하고 야타이 몇군데를 둘러보다가 라멘가게로 들어갔다. 우리가 앉은 자리 바로 앞에는 형제로 보이는 두 사람이 정신없이 요리를 하고, 주문을 받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무척 재미있었다. 주문을 받거나 요리를 손님에게 전해줄 때 외치는 소리도 활기가 넘쳤고, 두 형제가 업무분담을 하며 준비를 할 때도 호흡히 딱딱 맞는 것이었다. 

그러나 웃겼던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이니그마님은 일본어에도 능숙하셔서 일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했는데 순간 메뉴판의 한자를 보고 나가사키 라멘이라고 읽었다. 그러자 뚱뚱한 아저씨가 "형님 나가사키라니요? 여긴 후쿠오카라고요!" 라고 한국말을 하는 것이었다. 물론 능숙한 한국어가 아니라 몇 개의 단어만 나열하는 수준이었지만 갑작스러운 형님 호칭에 너무 깜짝 놀랐다. 이니그마님이 메뉴를 잘못 본 것인데 나가사키라멘이 아니라 나가하마라멘이었던 것이다. 어쨋든 계속되는 형님이라는 말에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얼핏봐도 우리가 더 어려보였는데 형님이라고 하면서 한국어로 대화까지 이어가려는 모습이 무척 익살스러웠기 때문이다.  


면을 삶고 라멘 육수를 붓는 모습이 내가 상상하던 라멘의 모습 그대로였다. 그러면서도 이 형제는 어찌나 호흡이 잘 맞는지 정신없는 와중에도 각자 할 일을 분담하고 있었다. 한 사람은 뚱뚱하고 한 사람은 말라서 체격이 전혀 다른 그들이 형제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비슷한 옷을 입고 있고, 외모 또한 비슷해서 형제라는 확신이 들었다. 분명 조금 더 둥글둥글하게 생긴 뚱뚱한 사람이 동생일 것이다. 


주문했던 얼음 동동 띄운 술과 라멘이 나왔다. 한국에서 일본식 라멘을 먹어본 적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진짜 제대로 된 일본식 라멘을 먹는 것은 처음이었다. 게다가 여기는 진짜 일본이 아닌가. 만화책이든 일본관련 방송을 보면 항상 호기심을 가지고 봤던 라멘이었는데 자연스레 기대감을 가지고 먹기 시작했다. 

간혹 일본 라멘을 먹어본 사람들 중에는 맛이 없다고 평하는 경우도 있어서 걱정도 조금 들었는데 먹어보니 꽤 맛있었다. 우리나라의 얼큰한 라면과는 전혀 다른 형태이지만 진한 국물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게다가 얹혀진 고기는 입맛을 돋구기에 충분했다. 


우리 바로 앞에서는 밀려드는 주문때문인지 정신없이 일을 하고 있었다. 이 아저씨들도 내가 낮에 봤던 우동집처럼 바쁘지만 뭔가 즐거워 보이는 모습이 보였다. 바쁘게 손은 움직이면서 뭐라고 외치는데 이건 마치 새벽 시장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풍경이었다. 


우리에게 자꾸 '형님'이라며 한국어도 말을 했던 아저씨의 익살스러우면서도 푸근한 표정이 너무 좋았다. 이니그마님이 사진을 찍겠다고 요청하니까 바쁜 와중에도 우리를 향해 포즈를 취해 주셨다. 그러면서 한국어로 감사합니다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우리는 라멘을 다 먹고 일어나 하카타쪽으로 걷기 시작했지만 밤은 깊었는데도 나카스의 포장마차에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다. 이미 난 느꼈지만 가격은 비록 비싸더라도 여기에 오면 분위기도 있고, 다른 사람을 만나는 즐거움이 있어 인기가 있는 장소같았다. 한국인이라면 이 형제가 운영하는 가게에 들러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형님소리에 라멘 한그릇을 웃으면서 비울 수 있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