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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쿠라를 돌아보니 볼거리라고 한다면 고쿠라성 밖에 없는 것 같았다. 확실히 후쿠오카에 비하면 중심지는 훨씬 작아서 도시를 돌아다니는 것도 금방이었기 때문에 곧바로 고쿠라성을 목적지로 잡았다. 단순하게 멀리 보이는 고쿠라성이 그나마 유명한 관광지이겠거니 생각하면서 걸었다.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화려하게 치장된 다리를 건넜다. 주말이라 그런지 가족이나 연인끼리 나들이를 즐기는 모습이 많이 보였다. 게다가 날씨까지 화창하고 따뜻했으니 그야말로 최적의 조건이었던 셈인데 여행하던 당시 12월의 겨울날씨라고 믿기 힘들정도로 너무 따뜻했다. 물론 밤에는 조금 쌀쌀한 정도였지만 낮에는 봄처럼 긴팔 하나만 입어도 될 정도로 날씨가 좋은 경우가 더 많았다. 


다리를 건너고, 공원을 가로질러 걸어가니 드디어 고쿠라성을 마주 대할 수 있었다. 만화속에서만 등장할 법한 그런 성이었는데 특히 일본에서 보는 첫 번째 성이라 마냥 신기하기만 했다. 


고쿠라성을 들어가는 입구로 가기 위해 약간 비탈진 언덕을 올라가는 도중 뭔가 분위기가 이상함을 느꼈다. 머리는 알록달록하고, 이상한 복장을 한 사람들이 간혹 보이기 시작했는데 그건 다름아닌 만화나 게임속 캐릭터를 똑같이 따라하는 코스프레였던 것이다. 

코스프레를 한 사람들이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있었는데 이 신기한 광경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몰래 사진을 찍으려고 했다. 그러자 내가 카메라를 들고 셔터를 만지작거리는 것을 본 사람이 손을 저으면서 안 된다고 했다. 나야 한국에서도 코스프레 현장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원래 이 사람들은 그냥 자기들끼리 사진을 찍으려고 했던 것인데 모르는 사람이 찍으면 문제가 되는 것으로 받아 들였다. 괜히 사진찍으려다 뻘쭘해지던 순간이었다. 

그래서 그냥 사진 찍으려는 것을 포기하고 언덕길을 올라 고쿠라성의 입구에 도착했다. 고쿠라성 앞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코스프레 한 엄청난 수의 사람들을 보고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올라오는 길에 본 몇 명의 사람들은 정말 소수인원이었고, 위로 올라오니 마치 메인스타디움에서 공연을 하는 것처럼 사방에 코스프레 한 사람들 뿐이었다. 대략적으로 둘러봐도 100명은 넘어 보였는데 평범한 의상을 한 시민들이 더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가만히 지켜보다보니 비록 아까 전에는 사진을 찍지 못하게 말렸지만, 이렇게 신기한 코스프레 현장을 사진으로 담고 싶어졌다. 10분 넘게 주변을 둘러보다가 가장 독특한 무사복장을 하고 있는 무리로 가서 사진을 찍을 수 있냐고 정중하게 물어봤다. 언덕길에서 나를 제지하던 사람들 때문에 걱정을 했는데 이들은 웃으면서 아주 흔쾌하게 허락해줬다.


사진을 찍겠다고 하니 가지고 있는 칼과 창으로 멋진 포즈까지 취해줬다. 사진을 찍고나서 내가 한국사람이라고 하니 매우 친근하게 대해줬다. 자신들이 직접 만들었다는 창도 만져볼 수 있게 해주고, 이 코스프레를 한 애니메이션의 제목이 '센고쿠 바사라'라는 얘기도 해줬다. 


고스프레를 한 사람들과 사진도 같이 찍었는데 역시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진이 나왔다. 


사진을 찍고나서 바로 옆에 있던 독특한 캐릭터들도 사진을 찍고 싶다고 얘기를 하니 내 대신 얘기를 해주기도 했다. 이 애니메이션에 대해서 전혀 아는 바가 없으니 어떤 캐릭터인지 도무지 파악을 할 수 없었는데 겉모습만 봐서는 무척 강해 보였다. 


재미있는 것은 코스프레를 한 사람도 카메라를 들고 서로 사진을 찍어주기도 하고, 모델이 되는 사람들은 멋진 의상과 소품으로 포즈를 취하는 장면을 자주 볼 수 있었다. 그러니까 이 코스프레를 하는 모임이 얼마나 정기적으로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코스프레를 하는 것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가끔 이렇게 모인 사람들끼리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모델이 되는 일종의 취미활동인 셈이다. 

나는 처음으로 모델이 되어준 무사들에게 고맙다고 하고,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한 번 코스프레를 찍어보니 더 많은 사람들을 찍어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이미 나에게 고쿠라성은 관심 밖이었다.  

이번에는 조금 더 여성스러운 옷차림을 한 사람에게 다가가 사진을 찍을 수 있냐고 물어봤다. 두 사람은 당연하다는 듯이 내 부탁을 들어줘서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사진을 찍으면서 내가 한국 사람이라고 말을 하니 "안녕하세요"라는 말을 넌지시 건넸다. 익숙하지 않은 말이었는지 아는 한국어를 기억해내려고 애를 쓰기도 했는데 마땅히 할 말이 없었는지 자신의 휴대폰이 삼성이라고 꺼내서 보여줬다. 캐릭터는 어디에서 나오는지 궁금해서 물어보니 어느 게임이라고는 했는데 웃긴 것은 제목을 모른다는 것이었다. 

너무 재미있었다. 나는 난생 처음보는 신기한 장면을 카메라에 계속 담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이들과 계속 대화를 나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언어적인 한계가 있어 알아 듣기는 힘들었지만 그래도 인터넷을 보고 모인 사람들이라는 것과 고등학생이나 대학생은 물론 일반인까지 폭넓은 연령층이 이곳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닌자들은 어디서 많이 본 캐릭터 같아 친숙하기는 한데 전혀 아는 바가 없다. 역시 이럴 때는 오타쿠가 능력을 발휘하는 법인데 아쉽게도 나는 일본 문화에 대해서 아는게 너무 없었다. 


어느 애니메이션의 캐릭터인줄 알면 좀 더 재미있었을텐데 아쉽기만 하다. 아마 그랬다면 말을 더 많이 하면서 친해질 수도 있었을텐데 애석하게도 아는 캐릭터가 하나도 없었다. 


근처를 방황하다가 아까 전에 만났던 여인을 다시 찍을 수 있었다. 그런데 주변에 아이가 계속 있고, 한 남자가 열중해서 사진을 찍는 것이 꼭 가족으로 보였다. 고등학생 정도로 보았는데 설마 엄마란 말인가?


고쿠라성 앞 넓은 공터에는 코스프레 한 사람들이 가득했다. 구석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냥 둘러보다가 사진을 부탁하기도 했다. 여기 여자 두 명은 구석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중국풍의 분위기가 느껴지는 의상이었다. 


여기는 옆에서 조명까지 동원해서 촬영을 하길래 망설였는데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물어보니 역시 흔쾌히 포즈를 취해줬다. 뻗은 부채에서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이 두 사람도 앉아서 놀고 있다가 내가 사진을 부탁하니 사진 찍을 시간이라면서 일어나 포즈를 취해줬다. 완전히 정반대였던 캐릭터였는데 그중에서 오른쪽은 아주 강해 보였다.   


교복으로 보이는 옷을 입은 이 두 사람은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알아서 여러 포즈를 취해줬다. 카메라를 쳐다보기도 했고, 두 사람이 얼굴을 맞대기도 했는데 나중에 사진을 다시 보니 손을 꼬옥잡고 있는게 보통 사이가 아니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딱 한 장만 찍도록 허락한 칼잡이들도 있었다. 

그런데 사진을 보고 있을 때 아까 언덕길에서 내가 사진 찍는 것을 제지했던 사람이 멀리서 찍은 사진들을 지워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에게 사진을 부탁해서 찍은 사진들은 그냥 넘어갔지만 다른 사진들은 대부분 지우라고 하는 것이었다. 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멀리서 찍은 사진들은 그 자리에서 다 지워줬다. 


이날 여기에 있었던 사람들은 대부분 여자였는데 고쿠라성을 들어가기 직전에 코스프레 한 남자도 볼 수 있었다. 코스프레는 주로 여자들이 하는지 남자는 거의 볼 수 없었다. 

고쿠라성 앞에서 사진을 찍다보니 어느덧 2시간이 훌쩍 지나버렸다. 원래의 목적은 고쿠라성이었는데 이대로 시간이 늦어 들어가보지도 못할 것 같아 입장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코스프레 한 사람들도 하나 둘씩 철수를 하고 있었고, 2시간 넘게 코스프레 한 사람들을 보고, 사진도 찍었으니 이제 더이상 아쉬움도 없다는 것이었다. 

아무튼 나는 코스프레를 보면서 계속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는데 그만큼 일반 사람들의 생각으로는 그들의 의상이나 행동이 너무 튀어보였다. 머리는 가발을 쓰거나 염색을 하고, 구입을 하지 못하면 의상이나 소품을 직접 제작하기도 하는데 과연 쉽게 이해가 될까? 

하지만 코스프레를 전혀 접하지 못한 나도 이런 신기한 장면을 보니 그들의 문화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건 가상의 인물을 실제로 표현하는 즐거움이 될 수도 있겠고, 캐릭터가 정말 좋아서 따라하고 싶은 욕구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또 좋아하는 캐릭터의 모습을 서로 사진에 담는 목적일 수도 있다. 최소한 평범한 모델 사진보다는 재미있니깐 말이다. 아마 일본 여행을 하면서도 쉽게 다시 볼 수 없는 코스프레 현장이 아닌가 싶은데 정말 놀랍고도 즐거웠던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