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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쿠라성을 나왔을 때는 이미 저멀리 해가 사라진 뒤였다. 서서히 어둠이 내려앉는 고쿠라에서 나는 어디로 가야할지 방황을 하기 시작했다. 내 여행은 항상 방황으로 시작해서 방황으로 끝난다. 그렇게 뚜렷한 목적지도 없이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멀리서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도배가 되어있는 열차가 다가왔다. 딸랑거리는 소리를 내며 오기는 했지만 너무 느려서 전혀 위협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이렇게 느린 열차를 타고 있으면 답답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조차 들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탑승객들이 어린 아이들을 포함하는 가족들이라서 괜찮은가 보다. 기차는 아주 천천히 내 옆을 지나쳐 갔다. 


고쿠라성을 지나면 곧바로 등장하는 곳이 리버워크다. 이곳에는 거대한 쇼핑센터가 자리잡고 있는데 바로 옆에는 NHK방송국을 비롯해서 신문사까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복합센터이다. 


리버워크는 화려한 색상의 빛으로 눈을 즐겁게 해주는 곳이기도 했다.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한껏 멋을 낸 리버워크는 온통 별천지였던 것이다. 


쇼핑센터 내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가장 중심부에는 거대한 크리스마스 트리가 세워진 상태였고, 이 트리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는데 정신 없었다. 


여행을 하면서 가장 힘든 곳이라고 한다면 바로 쇼핑센터다. 애초에 돈이 없어서 기념품을 살 엄두도 나지 않지만 그것보다도 쇼핑센터를 돌아다니면 급격하게 다리가 아프고, 쉽게 피로감을 느낀다. 물론 가끔은 쇼핑센터도 구경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만 일본에서는 유난히 쇼핑센터를 지나칠 일이 많아서인지 꼭 구경해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리버워크를 빠져나오니 어느새 어둠이 한층 짙게 깔리기 시작했다. 거리는 한층 어두워지기는 했지만 가로등을 대신해서 크리스마스 장식들이 화려하게 어둠을 밝히고 있었다. 


날씨가 조금 쌀쌀해졌다. 12월이라는 한겨울임에도 후드티 하나만 입고 다녀도 될 정도로 고쿠라는 너무 따뜻한 날씨였는데 그건 낮에만 해당하는 사실이었다. 조금 싸늘함을 느끼면서 다리를 건너갔다. 

낮에 고쿠라를 돌아다녔을 때는 사람도 안 보이고 너무 조용한 도시가 아닌가 싶었는데 밤이되니 사람도 꽤 많아지고, 어둠속에 은은하게 깔린 불빛이 많아져서 활기를 띄고 있었다. 


그냥 고쿠라를 걸어다녔다. 


일본에서는 어느 도시를 가도 쇼핑 아케이드가 있었다. 지붕으로 하늘이 가려져 있고, 그 양 옆으로는 상점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곳을 아케이드라고 불렀는데 고쿠라에도 꽤 긴거리를 포함하는 쇼핑 아케이드가 있었다. 상대적으로 쇼핑센터를 둘러보는 것보다는 옛날식 쇼핑센터라고 볼 수 있어서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게다가 이 아케이드를 지나치면 고쿠라역으로 갈 수 있으니 일부러 지나칠 필요는 없었던 이유도 있었다. 


아케이드에는 항상 인산인해를 이룬다. 고쿠라는 다른 도시의 아케이드에 비하면 조금은 좁아 보이기도 했다. 아케이드 내부에도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평소보다 더 밝아 보였다. 


기모노를 전문적으로 파는 상점인가 본데 그냥 모델이 눈에 띄어서 사진을 찍어봤다. 


일본에서 가장 놀랐던 것은 바로 빠칭코였다. 빠칭코가 있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어서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지만 이렇게 규모가 클 줄은 몰랐던 것이다. 일본의 상점들은 정말 소박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규모가 작은 곳이 많았다. 포장마차도 그랬고, 라멘집도 딱 먹을 공간만 허락된 곳이 많았는데 이는 일본 사람들의 성향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은 바로 빠칭코다. 거의 왠만한 마트 규모를 넘어선 빠칭코가 쇼핑 아케이드 한복판에 자리를 잡고 있는 것도 모자라 이런 빠칭코들이 여러곳이 성행하고 있었다. 누가 더 거대하게 빠칭코를 차리는지 경쟁이라도 하듯이 여기저기에서 생겨나고 있었다. 그것도 바로 옆 빠칭코에서 새로운 빠칭코를 개업한다. 거대한 빠칭코도 그렇고 안에서 열심히 구슬을 모으는 사람들이 신기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