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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마모토로 향한다. 미야자키에서의 짧고 정신없었던 여정은 끝나고, 또 새로운 도시로 향하고 있었다. 언제나 여행을 하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새로운 나라, 혹은 새로운 도시로 이동할 때는 기분이 무척 이상하다. 그게 설렘인지 혹은 두려움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약간의 떨림이 느껴진다.

'그래. 이런 기분때문에 나는 여행을 계속하고 있는 것일지도 몰라.'


미야자키에서 구마모토로 이동하는 여정은 이러했다. 곧바로 구마모토로 가는 열차가 없었기 때문에 서쪽에 위치한 가고시마로 먼저 이동한 다음 곧바로 구마모토로 가는 열차를 갈아타는 방법이었다. 사실 가고시마도 너무 가보고 싶었는데 생각만큼 시간이 허락치않아서 과감히 패스하기로 했다.

가고시마에서 열차를 갈아타야 하는데 혹시나 열차를 제대로 갈아타지 못할까봐 걱정이 되어 잠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그래서 혼자하는 여행은 항상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다. 더구나 여기는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일본이지 않는가.

창밖을 바라보니 뿌연하늘이 금방이라도 비가 올 것만 같았다. 덜컹거리며 시골마을을 빠르게 지나가는 열차 안에서 감상에 빠진 것도 잠시 옆자리에 놓은 비닐봉지를 꺼내들었다.


보기만 해도 너무 고마웠다. 히치하이킹을 통해 역까지 무사히 도착한 것도 모자라 이렇게 한가득 '프레젠또'를 받았으니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나는 삿포로 맥주를 먼저 집어들고 마시기 시작했다. 사실은 맥주가 그렇게 땡기지는 않았지만 빨리 먹어치워야 할 것만 같았다. 삼각김밥도 먹고, 질겅질겅 씹히기만 하는 소세지 종류도 먹었다.


열차 안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원래 일본의 열차는 이렇게 한적한 것인지 아니면 내가 탔던 열차들만 그런지 알 수가 없다. 창밖을 바라보는 것도 조금 지루할즈음 잠이 들었다.


얼마나 졸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눈을 떠보니 갑자기 뿌연 하늘이 아닌 푸른 바다가 내 눈앞에 나타났다. 한눈에 보기에도 범상치 않은 산이 저멀리 솟아있었고, 그 앞에는 작은 조각배들이 떠있었다. 경치가 너무 멋져서 카메라 셔터를 눌렀지만 사실 장애물이 너무 많아 제대로 된 사진을 찍기란 쉽지 않았다.

이때는 그저 멋진 산이라고 그냥 넘어갔지만 나중에 알고보니 이 산이 가고시마의 유명 관광포인트인 사쿠라지마였던 것이다.


가고시마에 도착했다. 여기서 나는 구마모토로 가는 열차를 갈아타야 했다. 그런데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는 막막함이 또 밀려왔다. 바로 앞에 보이는 열차가 구마모토로 가는 열차일까? 갈아타는 시간이 거의 없기 때문에 마음은 급한데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다. 구마모토로 가는 열차는 신칸센인데도 불구하고 노란색 열차가 내 앞에 보이면 어떡하냐고.

노란색 열차에 올라가 누군가에게 표를 보여주니 확실히 이 열차는 아니라는 답변을 얻게 되었다. 방황하는 내가 할 수 있는건 JR직원뿐이었다. JR직원은 나에게 계단을 따라 올라가라는 이야기를 해주었고, 까막눈인 나는 그냥 그가 일러준대로 계단을 올랐다. 올라가서도 역시 JR직원을 찾아가 신칸센을 어디서 타는지 물어서 겨우 찾아갈 수 있었다.


사실 갈아타는 시간은 충분했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어정쩡한 방황덕분에 출발 직전에 신칸센을 찾을 수 있었다. 내가 알던 하얀색의 매끈하게 생긴 신칸센이 맞았다. 열차 정면을 찍어볼 시간도 없어서 대충 올라탔다.

'휴~ 생각보다 갈아타는 것도 쉽지 않네.'

일본에서는 열차를 갈아탈 때 바로 앞에 있기 때문에 쉬울거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곳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항상 이렇게 아슬아슬하기는 했지만 잘(?) 이동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신칸센은 정말 깨끗했다. 그리고 아늑했다. 기존에 내가 탔던 다른 특급열차는 신칸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이다. 정말 빠르게 이동하는데 속도감은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안정감이 있었고, 전체적인 분위기도 비행기에 올라탄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한국어로 방송도 해줬다.


역시 신칸센은 빠르긴 빨랐다. 빠르게 지나치는 풍경이 신칸센의 속도를 대략적으로 짐작할 수 있게 만들어줬다. 그런데 이렇게 경치를 감상할 수 있었던 것도 잠시였다. 큐슈에서는 현재 가고시마와 구마모토 구간만 신칸센이 달리고 있는데 이곳은 유난히 터널을 많이 지나쳤던 것이다. 처음 출발을 제외하고는 5분이상 바깥 경치를 구경할 수 없을 정도였다.


구마모토에 도착한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나는 또 릴레이 츠바메로 갈아타야만 했다. 그나마 이번에는 바로 옆에 있는 열차로 갈아타면 되었기 때문에 그리 어렵지 않았다.


열차가 출발하는 순간까지 지켜보고 있던 JR직원들의 모습을 보면 역시 일본이라는 생각도 든다. 요즘은 우리나라 KTX도 승무원들이 있어 일본과 크게 차이점을 구분하기 어렵긴 하지만 말이다.


또 달린다. 구마모토로 향하는 이 열차는 나를 싣고 달리고 달린다. 어느새 주변은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아마 구마모토에 도착하는 순간 초라한 여행자는 깜깜한 밤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일본 열차를 타면서 신기하다면 신기했던 것은 바로 표를 검사하는 모습이었다. 우리나라도 필요에 따라서 검사를 하기도 하지만 일본처럼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표를 검사하지는 않는다. 한사람 한사람 표를 받아서 살펴보며 지나가는 모습은 과거 옛추억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구마모토까지 여정이 생각보다 쉽지만은 않았다. 남들의 걱정과는 달리 어설픈 여행자는 그래도 이래저래 잘 찾아간다. 물론 구마모토에 도착하고나서도 여기가 맞는지 한참동안 확인을 했지만 말이다. 단번에 KUMAMOTO글자가 보였으면 오죽 좋았을까.

'가만있자 구마모토에 도착했으니 이제 뭘해야 한담...'

여행자의 출발은 설레임을 낳고, 도착은 고민을 낳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