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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마모토에 도착한 내가 해야할 일은 우선 인포메이션 센터를 방문하는 것이었다. 일정이 조금 촉박해 보일 수도 있었겠지만 내일 나가사키로 이동해야 했기 때문에 어떻게 이동해야 할지 알아봐야 했다. 일반적인 방법인 열차로 나가사키로 가는 것이라면 크게 상관없을테지만 나는 구마모토에서 배를 타고 나가사키로 갈 계획이었기 때문에 구마모토항구로는 어떻게 가는지, 가격과 시간은 어떠한지 미리 알아봐야 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우선 구마모토 지도를 얻고, 내가 찾아가야할 컴포트 호텔의 위치부터 물어봤다. 안내데스크에 있던 직원은 처음에는 영어로 답해주더니 어떻게 내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았는지 곧바로 한국어로 바꿔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갑작스러운 한국어에 나는 깜짝 놀랐다. 물론 우리 기준으로 보면 완벽한 한국어라고 보기는 힘들지만 생각보다 꽤 능숙해서 한국사람이냐고 물어볼 정도였다. 


게다가 외모도 기존에 내가 봤던 일본인들과는 다르게 한국적인 분위기가 다분히 풍기고 있어서 착각할만 했다. 이분의 친절하고도 능숙한 한국어 덕분에 구마모토항구로 이동하는 방법, 시마바라까지 가는 배의 가격, 시마바라에서 나가사키까지 이동하는 열차 시간표 등을 얻을 수 있었다. 이제 필요한 정보도 다 얻었으니 구마모토역을 빠져나갔다. 


비는 주륵주륵 내리고 있었던 구마모토의 하늘은 어두침침했다. 주변에는 여행자로 보이는 사람은 전혀 없었고, 오직 나만 커다란 배낭을 메고 트램(노면전차)을 타러 역으로 갔다.


큐슈에서 지하철이 있는 도시는 후쿠오카가 유일했다. 나머지 다른 도시들은 지하철 대신에 노면전차Street Car가 버스와 함께 대중들의 발을 대신해줬다. 보통 이러한 열차들을 서구권에서는 트램이라고 불렀는데 일본에서는 영어로 스트리트카라고 불렀다.  

노면전차를 기다리며 옆에 있던 아주머니께 카라시마쵸로 가려면 여기에서 타는 것이 맞는지 물어봤다. 아주머니는 여행자의 모습이 풀풀 풍기는 나를 보더니 이곳이 맞다면서 여러번 손으로 가리켜줬다. 


잠시 후 노면전차가 누가 크리스마스 시즌이 아니랄까봐 화려하게 치장된 모습으로 들어섰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구마모토의 모든 노면전차가 일루미네이션 장식이 되어있는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았다. 난 운이 좋게도 특별한 노면전차를 탔던 것이다. 구마모토의 노면전차는 구간에 상관없이 150엔이었다.


조금 전에 나에게 친절한 안내를 해주셨던 아주머니도 같이 탔는데 나에게 어느 호텔에 묵냐고 물어봤다. 내가 컴포트 호텔에 묵는다고 하니까 갸우뚱하며 그런 호텔도 있냐고 되물었다. 그리고는 바로 옆에 있던 다른 사람에게 호텔에 대해서 물었는데 역시 옆에 있던 사람도 호텔을 알지 못한다고 했다. 아주머니는 내가 걱정이 되었는지 내가 가지고 있던 지도를 살펴보기도 하고, 무언가 계속 대화를 시도하시려고 했다. 어지간히 내가 걱정스러운 여행자처럼 보여졌나 보다. 

나는 이번 여행을 하며 익혔던 일본어 몇마디를 하면서 괜찮다는 의사를 표시했다. 이들의 생활속에 낯선 여행자가 끼어든 모양새이지만 항상 알게 모르게 만난 친절한 사람들 덕분에 두려운 마음들은 쉽게 녹아든다. 


카라시마쵸역에 도착했다. 구마모토역에서 만난 아주머니도 역시 여기에서 내렸는데 지도를 한번 살펴보면서 내가 잘 찾아갈 수 있는지 걱정하셨다. 역에서 받은 지도를 살펴보니 컴포트 호텔은 카라시마쵸역에서 2블럭만 올라가면 쉽게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서 걱정하지 않으셔도 알아서 잘 찾아갈 수 있다는 여행자의 자신감을 보여줬다. 물론 자신의 일처럼 걱정을 해주신 분께는 감사하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물론 내 생각만큼 컴포트 호텔을 쉽게 찾지는 못했다. 바로 코앞에서 빙빙 돌았는데 다행히 길가에 있던 아르바이트생에게 물어 컴포트 호텔의 골목길을 찾아갈 수 있었다. 


컴포트 호텔은 일본의 비지니스급 호텔답게 소박하면서도 갖출건 갖춘 호텔이다. 조식과 인터넷이 무료로 제공될 뿐만 아니라 가격도 저렴한 편이다. 물론 일본의 호텔답게 방이 비좁은 것도 하나의 특징이기는 하지만 항상 허름한 게스트하우스에서 자던 나에게는 이런 호텔도 특급호텔과 별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편이다. 미야자키에서 구마모토로 여러번 열차를 갈아타고 이동하느라 무척 피곤한 상태여서 방에서 조금 쉬기로 했는데 이내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밖으로 나갔다.  


구마모토에 도착했을 때도 흐리면서 비가 살짝 내리긴 했지만 여전히 비가 주륵주륵 그칠줄 모르고 내리고 있었다. 우산을 살까 말까 고민이 될 정도로 비가 많이 내리기도 하다가 다시금 그치곤 했다. 돈이 아까워서 우산을 구입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고 정말 비가 애매하게 왔다. 그리고 밖으로 나와 걸으면서 눈치를 챌 수 있었지만 컴포트 호텔은 구마모토 시내 한복판에 있었다. 덕분에 화려한 네온사인 아래에서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배고픔에 식당을 찾아다니던 나는 어느새 구마모토 거리를 구경하며 걷고 있었다. 지도는 깊숙히 집어넣은채 발가는데로 걷고 있었는데 처음 도착한 도시에서 이보다 방향감각을 익히기 좋은 방법은 없다고 생각한다. 미야자키보다는 더 활기가 있어보이고, 쇼핑 아케이드에도 사람들이 가득했다. 


배낭여행자는 소소한 것에 행복을 얻고, 즐거워한다. 피곤한 여정이었지만 구마모토에 도착한 후로 걷는 것을 멈추지 않았고, 그들의 삶을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다. 

이제는 더 참을 수 없을만큼 배가 고팠다. 까막눈인 내가 어디가 식당인지 어디가 술집인지 알 수가 없던 상황이었지만 용케 맛있어 보이는 라멘집을 찾아냈다.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가니 소박한 라멘가게의 테이블과 주방이 눈에 들어왔다. 


자리에 앉아서 어떻게 주문을 해야할지 고민하고 있다가 한국사람이라고 말을하니 한글로 적힌 메뉴판을 가져다줬다. 메뉴도 다양하기도 했지만 라멘에 대해서 거의 아는게 없었던 나로써는 굉장히 친절한 메뉴판이었다. 고민을 조금 하다가 내가 선택했던 것은 야키부타(구운 돼지고기) 라멘이었다. 가격이 950엔으로 조금 비싼편에 속하긴 했지만 배고픈 나로써는 다른 라멘보다 더 풍성해 보였던 것이 선택의 이유였다. 


메뉴판에도 전통을 자랑하는 구마모토의 라멘집이라고 써있었는데 확실히 유명한 집인듯 옆에는 사인으로 가득했다. 이게 연예인의 사인인지 내가 알수도 없었고, 당장에 라멘을 먹어보지 못해서 맛집인지는 파악할 수 없었으나 우연히 들어온 이곳이 실패하지는 않았다는 확신이 생겼다.


잠시 후 내 앞에 놓인 라멘은 구운 돼지고기로 가득했다. 국물은 걸쭉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너무 느끼하지도 않았다. 무엇보다도 잘익은 돼지고기를 베어먹는 맛이 끝내줬다. 국물 한방울까지 남김없이 흡입한 후 정말 맛있었다고 말을 했다. 조금 딱딱해 보이던 사람들도 내가 칭찬을 하자 급친절모드로 바뀌며 고맙다는 반응을 했다. 

이제 배도 든든해졌겠다 다시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구마모토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