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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적 최근에 여행을 다녀왔던 오키나와에서 만났던 친구들 중에서 남들과는 조금 다른 친구들이 있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봤을 당시에는 몰랐지만 대화를 몇마디 나눠보니 이내 이들은 뭔가 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들의 이름은 타카시와 유키, 바로 청각장애인이었다.

이 두 친구들은 우선 발음이 좋지 않았으며 잘 들리지 않는 장애가 있는지 보청기를 착용하고 있었다. 그나마 유키는 타카시에 비해 적극적이고, 장애의 정도가 조금 덜한 듯 했고, 무엇보다도 영어를 어느정도 했기 때문에 의사소통이 가능한 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유키의 목소리가 작거나 발음이 좋지 않아 알아듣지 못한 경우가 허다했다.

아무튼 이들과 만나게 된 것도 그저 우연히 게스트하우스에서 말을 주고 받다가 이든님(http://blog.daum.net/mickeyeden)이 우리도 밥을 먹지 않았으니 같이 저녁을 먹으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했던 것이다. 이제 막 나하에 도착했던 이들도 싫지는 않았는지 쉽게 응했다. 나는 이때까지만 해도 이들이 그리 심각한 장애가 있는지 몰랐다. 같이 나하의 밤거리를 걸으면서 대화를 몇 번 해보고서 거의 통하지 않자 그제서야 이들이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는 힘들다는 것을 알았다.


그나마 다행스러웠던 점은 우리는 저녁을 먹으면서 서로 조금씩 가까워지기 시작했고, 이들도 한국인 2명과 어울리는 것이 신기했는지 좋아하는 눈치였다. 검색을 통해서 원래 찾던 집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 맛집이 문을 닫는 바람에 바로 옆의 식당에서 오키나와식의 라멘을 먹게 되었다. 

밥을 다 먹고 커피를 마시러 가자고 했는데 이들은 가까운 스타벅스를 가자고 했지만 이든님은 맥도날드 할인쿠폰이 있다며 별다방을 지나쳤다. 공짜 쿠폰을 가지고 좋아하던 이든님과 겉으로는 아닌척 했지만 속으로는 역시 공짜라면 좋아했던 나는 역시 배낭여행자였다. 아무튼 우리는 커피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유키와 타카시는 오사카에 살고 있고, 오키나와 여행을 하려고 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너희는 내일부터 오키나와를 본격적으로 여행할 계획이겠네? 내일은 어떤 일정이야?" 이든님이 유키에게 물었다.

"우리는 렌터카를 이용해서 북쪽을 가볼 생각이야." 유키의 대답을 듣자마자 이든님은 눈을 반짝였다. 사실 우리도 북쪽으로 갈 생각이긴 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비용이 많이 들어서 렌터카를 빌리지 못한 우리의 준비성을 탓하고 있었는데 이 친구들은 렌터카로 여행을 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조심스럽게 말을 하기는 했지만 렌터카에 우리도 합류할 수 없는지 혹시 주유비라도 우리가 부담하는 식으로 태워줄 수 없는지 물어봤다.


유키와 타카시는 서로 속삭이는 대화 및 수화로 열심히 상의를 하기 시작했다. 말을 전혀 알아들을 수 없기 때문에 유키는 타카시에게 상황을 설명하는듯 했고, 타카시는 들으면서 조금 꺼리는 느낌도 들었다. 물론 내가 추측하는 것이 맞는지는 확신할 수 없었으나 그냥 그런 느낌이었다. 몇 분간 대화를 나눈 끝에 유키가 말했다.

"좋아. 내일 우리 렌터카를 타고 같이 가자고!"

나는 괜히 폐를 끼치는 것이 아니냐고 이든님께 물었고, 이든님도 괜히 말했나 걱정을 하기도 했다. 이들이 상의할 때 마냥 반기는 모습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괜히 친하지도 않은데 불편하게 여행을 하게 되는 것이 아닌지 불안했다. 게다가 몇 마디 더 나눠보니 이들은 저녁에 나하로 돌아오는 일정이 아니었다. 결국 시간이 되는 일정까지 같이 다니고, 저녁에 나하로 돌아올 때 우리를 터미널까지 데려다 달라는 요청을 했고, 이들도 그 부탁에 응했다.


다음날 아침, 약속대로 우리는 렌터카를 타고 여행을 시작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슈리성을 먼저 가자고 제안을 했다. 전날 저녁에 나하에 도착했던 이 친구들은 당연히 슈리성을 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이미 봤지만 차를 가지고 있던 이들의 제안이라 거절할 수는 없었다.

이든님이야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들과 함께하는 여행이 마냥 편하지만 않았다. 우선 말이 잘 통하지 않았다는 점이 컸고, 친하지 않아서 그런지 몰라도 타카시의 가끔 알 수 없는 행동이 이상했다. 당연히 수화로 의사소통을 하는 이들의 대화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지만 뭔가 불만이 있는듯 보였고, 슈리성에서 주차할 때는 주차장 관리아저씨가 차를 훔치지 않는지 의심하기도 했다. 게다가 우리가 제안을 하면 항상 유키에게 오랫동안 수화를 하니 우리가 싫은게 아닌지 착각을 하게 만들었다.


슈리성에 도착하고 우리는 이미 봤기 때문에 다른 곳을 돌아보기로 했다. 그런데 이들이 슈리성의 입구에서 뭔가 얘기하더니 우리까지 입장시켜주는 것이었다. 그제서야 알게 된 사실은 이들이 장애인이기 때문에 슈리성이 무료입장이었는데 동반자 1명도 무료였던 것이다.


아무튼 이들을 슈리성을 보내고 우리는 다른 곳을 둘러보러 갔다. 약 40분 뒤에 다시 만나 슈리성 앞에서 류큐왕조의 전통 춤을 볼 수 있었는데 굉장히 독특하고 신비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아니 어쩌면 신비보다는 기묘한 느낌이었는데 지난번에 슈리성에 왔을 때는 이 공연을 보지 못해서 아쉬웠는데 그래도 이렇게 두 번째 왔을 때 봤다는 것은 어쩌면 큰 수확이었다.


우리는 북쪽으로 향했다. 시간이 된다면 만자모와 츄라우미 수족관 외에 다른 곳을 보자고 했지만 사실 그 두 곳만 봐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점심을 나하에서 먹을 생각이었지만 이 친구들이 또 인터넷에서 검색한 맛집을 결국 찾지 못해 점심도 못 먹고, 시간만 허비했다. 이때까지도 난 같이 여행은 다니지만 그냥 은근히 불편하기도 하고, 이 친구들이 우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줄 알았다.


우리는 오키나와 고속도로를 타고 만자모까지 이동한 뒤 배고픔을 참으며 구경했다. 그리고 근처 어느 맛집에서 점심으로 오키나와식 소바를 먹었다. 점심을 다 먹은 후 이든님이 기름값이라며 3000엔을 건넸는데 유키와 타카시는 깜짝 놀라면서 받지 않는 것이었다. 기름값이라고 재차 설명을 하자 유키는 1000엔만 받으려고 했는데 우리가 계속해서 돈을 밀어넣자 그제서야 겨우 받았다. 원래 기름값을 우리가 내주겠다고 했는데 받지 않는 것을 보고 괜히 이 친구들을 오해하지 않았나 공곰히 생각하게 만들었다.


츄라우미 수족관에 갔을 때는 우리가 더 고마워해야 할 일이 벌어졌다. 오전에 슈리성에 갔을 때도 그랬지만 이들은 청각장애인이라서 수족관도 동반자 1인 포함해서 무료 입장이 가능했던 것이다. 돈도 거의 없었던 내가 1800엔을 내지 않고 공짜로 수족관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이든님도 신이나서 "완전 고마워서 저녁은 우리가 사야겠는걸?" 이라고 말을 했다. 타카시와 유키를 만났을 때 이런점을 노린 것도 아니고, 그저 이들이 여행을 하는데 태워줬으면 좋겠다는 심정 뿐이었는데 참 여러모로 도움을 많이 받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가난한 여행자에게 버스비 굳히고, 수족관 입장료 굳힌다는 것은 대단한 행운이었다.


더 놀랐던 점은 저녁을 먹으러 갔을 때였다. 버스터미널이 있는 나고로 돌아온 뒤 저녁을 먹었는데 이든님이 화장실에 간 사이에 갑자기 이 친구들이 계산을 하겠다고 나서는 것이었다. 아니 일본 이쪽 동네들도 쏘겠다는 문화가 있던가? 오히려 내가 계산해야 하는 거라며 돈을 꺼내자 타카시와 유키는 나를 뜯어 말리며, 계산대에서 옥신각신하는 사이에 먼저 돈을 내버렸다.

정말 어이가 없었다. 싱긋 웃으면서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 유키와 반대로 나는 소위 뻥진 상태였다. 뒤늦게 이든님이 와서 사태를 확인하고 돈을 내겠다고 하는데도 이 친구들은 무척 완강했다. 하지만 결국 차 안에서 돈을 던져주다시피 쥐어주는 것으로 사태를 일단락했다. 유키와 타카시는 우리를 나고 버스터미널까지 태워주었고, 그곳에서 고맙다는 말을 한 뒤 헤어졌다.

여행을 하면서 이런 짧은 인연은 참 많이 스쳐지나간다. 그런데 유독 이 친구들과는 말이 잘 통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색안경을 끼고 보지 않았나 싶다. 타카시와 유키가 수화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우리를 싫어하는 모습으로 보게 되었고, 말이 잘 통하지 않으니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다고 생각했다. 일본인이라서 아니면 청각장애인이라서 그랬을까?

배낭여행자는 항상 열린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좀생이 같은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한국인 여행자들과 이미 친해졌다고 생각하는 이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것이 아닌지 순간 부끄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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