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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후인에서 다음 장소로 정한 곳은 하카타가 아니라 벳푸였다. 오이타현 내에 있던 다른 도시 벳푸를 갑자기 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유후인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기 때문에 아침 일찍 일어나 벳푸로 갔다가 저녁이 되기 전에 하카타로 돌아간다면 딱 맞을 것 같았다. 그리고 이미 운젠을 다녀왔지만 운젠과는 또 어떻게 다른 도시인지 확인해 보는 것도 무척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몸은 조금 피곤했지만 일찍 일어나 유후인 역으로 향했다. 정말 작은 마을이었던 유후인이었지만 역 앞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의 모습을 아주 쉽게 볼 수 있다. 소박한 역을 등지고 바라보면 거리의 중앙에 거대한 산이 보이는데 이게 정말 그림같기 때문이다.


날씨까지 좋아 사진찍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유후인을 떠나기 전 마지막 기념촬영을 하기 위해 다들 밖에서 사진을 찍는 것은 어쩌면 예정된 수순이었다. 나도 시간이 좀 남아있어서 밖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때 여자 3명이 가까이 오더니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을 했는데 한번에 한국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대학교 신입생처럼 나이가 어려 보였는데 알고보니 나처럼 벳푸로 갈 예정이었다. 벳푸에서도 몇 차례 만나기는 했지만 역시 인사만 하다가 헤어졌다.


유후인에서 벳푸로 한번에 가는 방법이 없기 때문에 우선 오이타로 갔다가 열차를 갈아타야 한다. 열차표를 보고 나서야 알게 되었지만 오이타에서 벳푸까지는 고작해야 10분이면 도착할 정도로 가까웠다.


드디어 오이타행 열차에 올라탔다. 그런데 열차에 올라타기 전부터 주변에서 뭔가 시끌벅적했는데 잠깐 살펴보니 카메라를 들고 뭔가 촬영하고 있었다.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올라탔다.


배낭을 메고 내 자리로 이동했는데 앞에 사람들로 가득해서 들어갈 수 없었다. 아까 그 촬영하던 팀이었는데 뒤에서 멀뚱멀뚱 서있다가 방송 관계자로 보이는 사람에게 뭐하는 것이냐고 물어보니 케이블TV 촬영중이라고 했다. 드라마냐는 내 물음에 버라이어티쇼라고 대답했다. 그리고는 내가 자리로 못가는 것을 보고 관계자들이 미안하다며 자리를 비켜줬다. 그제서야 나는 내 자리로 가서 앉을 수 있었다.


이 열차는 토스에서 유후인으로 데려다줬던 유후 디럭스로 같았다. 유후인 특급열차인 유후인노모리를 타보지 않았지만 이 열차도 독특한 외관과 더불어 내부가 열차 여행을 하는데 재미를 붙여주었다. 특히 맨 뒤쪽으로 가면 앉아서 정면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승객들에게 이런 소소한 즐거움을 줄 수 있다는게 바로 일본 열차 여행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열차는 오이타로 열심히 달렸다. 그리고 일본에서 열차를 탈 때마다 항상 표를 검사하는 분이 와서 내가 가진 표를 확인했는데 이 열차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렇게 내 자리 근처에서 사진을 찍고 있을 때 옆으로 앉아있던 남자 두 사람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내가 일본 사람이 아니라 "칸코쿠진 데스(한국 사람입니다)." 라고 말을 하니 곧바로 웃으면서 알았다고 했다. 알고보니 이 사람들 아까 그 촬영을 하던 팀의 멤버였다. 나하고 영어로 대화를 했던 사람에게 혹시 PD냐고 물어보니 그렇다고 했다.

생각보다 대화는 즐거웠다. 한국에도 자주 왔다고 하면서 한국 음식도 즐겨 먹는다고 했다. 어떤 음식이 좋냐고 물어보니 설렁탕과 감자탕이라고 한다. 한국 음식이 맵지 않냐는 물음에도 자신은 매운 음식이 좋다면서 껄껄 웃는다. 그렇게 10분 정도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카메라를 들고 촬영을 하던 무리가 우리 칸으로 들어왔다. 나는 촬영하는데 방해가 될까봐 내 자리로 돌아왔다.

촬영하는 모습을 보니 연예인으로 보이는 남녀가 열차에서 앉아 경치를 구경하고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카메라로 담고 있는 것을 보니 큐슈열차 여행에 관한 프로그램일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내 예상은 어느정도 맞긴 했다.

그렇게 촬영을 하고 난 후 아까 나와 대화를 나눴던 사람이 잠깐 쉬는 연예인의 사진을 찍고 있었다. 얼른 나도 옆으로 가서 혹시 나도 찍어도 되냐고 물어보니 웃으면서 좋다고 한다. 물론 연예인도 내가 한국 사람이라고 하니 함박웃음을 짓고 좋아했다.


물론 누군지도 모르지만 일본 여행을 하면서 독특한 경험을 해봤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예쁘고 귀엽게 생긴 여자는 내가 큐슈일주를 하고 있다고 하니 "스고이(굉장해)."라고 말을 하면서 옆에 있던 작은 주머니에 자신의 카메라를 꺼내면서 같이 사진을 찍자고 했다.


나도 같이 찍고 싶다고 하니 아까 그 PD분이 내 카메라를 받아들고 사진을 찍어줬다. 고맙다고 말을 한 뒤에 일본 연예인이 누가 누군지 모르니 이름이라도 알고 싶어서 PD분께 물어봤다. 여자는 모리타 스즈카(Morita Suzuka라고 영어로 적어줬다)라고 했고, 남자는 미나미다(Minamida)라고 알려줬다. 그러면서 모리타 스즈카는 아이돌링의 멤버라고 했는데 내가 아이돌링이 뭔지 모르는 눈치니까 일본의 유명한 아이돌그룹인 AKB48과 비슷한 가수라고 했다. 사실 일본 연예인은 잘 모르지만 어쨌든 그게 중요한게 아니라 귀여운 여자 아이돌을 만나서 그저 기분이 좋았다.

자리로 돌아간 후에도 오이타에 도착하기 전까지 명함도 건네받고, 대화를 이어갔는데 나에게 일본 음식을 추천해주겠다면서 전화번호까지 적어줬다.


원래 유후 디럭스를 타면 기념 사탕을 주고, 기념 촬영도 하게 되는데 전형적인 일본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 여행을 하면 쉽게 볼 수 있는게 스탬프를 찍는 것인데 아마 이 열차도 그런 것과 비슷하게 판넬을 들고 기념촬영을 하도록 권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미 아이돌과 찍었기도 했고, 괜히 저 판넬을 들고 사진을 찍으면 뻘쭘할 것 같아서 승무원을 촬영했다.

잠시 후 오이타에 도착했다. 오이타까지 원래 멀지 않은 거리인데 나는 촬영팀과 대화를 했기 때문인지 더 가깝게 느껴졌다. 열차가 오이타에 도착할 때 다시 촬영팀이 부산해졌는데 내리는 장면부터 다시 촬영이 시작되었다.


내가 먼저 내렸기 때문에 촬영하는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었다. 아무래도 같은 칸에 있었기 때문에 다시 눈길을 끌 수밖에 없었고, 아까 대화를 나누고 사진을 찍어서 그런지 저절로 관심이 생겼다. 연예인들은 오이타에 내리자마자 서로 사진을 찍으면서 대화를 나눴다. 그런식으로 촬영이 진행되었다.


나는 이제 벳푸로 가는 열차를 갈아타기 위해 이동했다. 계단을 따라 내려가 벳푸행 열차가 도착할 것이라는 플랫폼에 섰다. 반대편에는 촬영팀이 보였는데 아마 나와는 다른 방향으로 가는 것 같았다.


열차를 기다리며 주위를 둘러보는데 내 옆에는 외국인이 한 명 있었다. 눈이 마주치길래 내가 인사를 건네니 무척 반가워했다. 흑인이었는데 어디로 가냐고 물어보니 벳푸로 간다는 것이었다. 내가 반가워하며 나도 벳푸로 간다고 혹시 여행중이냐고 물어보니 자신은 APU라는 대학교에 다니는 학생이라고 대답했다.

"나도 들어봤어. 그 대학 유명하지 않아?" 라는 나의 물음에 멋쩍어 하면서 그렇지는 않다고 했다. 한국 여행할 계획은 없냐고 물어보니 한국의 겨울은 너무 추워서 나중에 갈 생각이라고 했다. 말이 잘 통해서 꽤 재밌게 얘기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계단 아래서 일본 사람으로 보이는 누군가가 올라오더니 네가 탈 열차는 다른 플랫폼이라고 말을 해주는 것이다. 알고보니 벳푸로 가는 열차가 비슷한 시간대에 또 있나보다. 황급히 손을 흔들면서 내려가던 그 남자에게 내가 벳푸에서 보자고 하니 씨익 웃으면서 그러자고 했다.


반대편에 보이던 촬영팀은 내가 하카타에서 탔던 소닉열차를 타는 것처럼 보였다. 곧바로 드디어 내가 탈 벳푸행 열차가 역으로 들어왔다. 열차는 유후 디럭스에 비하면 조금 평범해 보였다. 이 열차를 타면 10분도 되지 않아 벳푸에 도착할 수 있다. 나도 이 열차에 올라탔고, 아까 유후인에서 봤던 3명의 여학생도 이 열차에 탔다.


열차가 출발하자 곧바로 바다가 보이는 멋진 풍경이 나타났다. 마침 하늘도 너무 새파랗고, 구름도 깃털처럼 흩어져 있어서 끝없이 펼처진 바다와 너무 잘 어울렸다.


큐슈 여행을 하면서도 가장 짧은 이동이었지만 창밖의 풍경은 가장 멋졌다. 잠시 후 나는 또 다른 온천도시 벳푸에 도착하게 되었다.

뒷이야기 1.
큐슈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 PD분께 메일을 보내 사진을 전해줬다. 사진을 당사자에게 전해줬으면 좋겠다고 이야기를 했는데 돌아온 답장에는 만나서 반가웠고, 사진도 꼭 전해주겠다고 했다.

뒷이야기 2.
그래도 나름 연예인이고 아이돌이기 때문에 일본 사람들은 당연히 알 줄 알았는데 내가 아는 일본 친구들은 대부분 모른다고 했다. AKB48에 비교할 정도는 아닌 줄 알았지만 그래도 아무도 모른다고 하길래 깜짝 놀랐다. 오키나와에서 만난 일본 친구들은 인터넷에서 찾아서 보여주니 수영복 사진이 많아 그라비아 모델이 아니냐고 묻기도 했다. 근데 한국에서 검색을 해보기도 하고, 조금 더 찾아보니 아이돌링 출신의 가수이기도 하고, 지금은 드라마나 각종 쇼에 출연하는 배우로 활동하는 것처럼 보인다.

뒷이야기 3.
모리타 스즈카는 한국에서도 아는 사람이 꽤 많은지 블로그나 웹사이트에서 검색을 통해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아무튼 실제로 봐도 귀여웠다는게 중요하다.

뒷이야기 4.
모리타 스즈카도 블로그가 있다. 일본 연예인들은 일기처럼 블로그 사용을 많이 하는데 찾아보니 당시 촬영 현장에 대한 이야기도 올라와있다.
http://ameblo.jp/morita-suzuka/archive18-201012.html#main
http://ameblo.jp/morita-suzuka/archive17-201012.html#m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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