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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오카의 밤은 이제 더이상 새롭지 않았다. 큐슈를 한바퀴 돌아보고 다시 돌아온 후쿠오카였기 때문에 어찌보면 당연한 사실이었다. 일단 나는 지도가 없어도 후쿠오카 시내를 돌아다니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이제 어디로 갈지 고민을 하다가 이내 한밤중이라 멀리 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그냥 자주 찾아갔던 나카스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가득했지만 거리는 화려한 편은 아니었다. 텐진을제외하면 밤거리는 한적해 보이는 곳도 많았고, 불빛도 강렬하지 않았다.나는 이 거리를 마치 오랫동안 후쿠오카에서 지냈던 사람처럼 아주 익숙하게 걸었다.


어느새 캐널시티 앞에 도착했다. 캐널시티는 후쿠오카의 대표적인 쇼핑센터인데 늦은 시각이라 그런지 상점들은 거의 닫은 상태였다. 대신 캐널시티 내부에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가득한 조형물을 설치해 놓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특히 중앙에는 크리스마스 트리 및 루돌푸가 있었고, 위에는 눈을 형상화한 조형물이 달려있어 사진을 찍기에 가장 좋았다.


물론 이런 곳에 연인이 빠질 수가 없었다.


곧장 나카스로 자리를 옮겼다.


나카스 포장마차는 이제 질릴 법도한데 여기만 오면 재밌다. 나카스의 포장마차는 후쿠오카 현지인들이 애용하는 곳이라기 보다 관광객들이 대부분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가격도 좀 비싼 편이다. 그런데도
꼬치나 생선구이 냄새가 코를 자극하고, 그 좁디 좁은 포장마차에 사람들이 가득한 모습은 여행자에게 너무나 매력적이다.


확실히 관광객이 많은지 주변에서 사진을 찍는 모습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그렇게 나카스 포장마차 거리를 걷고 있다가 멀리서 노래 소리를 듣게 되었다. 평소에도 이 주변에는 거리 악사들을 자주 볼 수 있는데 이번에는 여자 혼자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가까이 가보니 건반 하나와 MR을 틀을 수 있는 기기만 놓고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의특징이기도 했지만 그녀는 유난히 해맑았다. 그 추운 날씨에 웃음을 머금고 열심히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았다. 그래서인지 잠깐 구경이나 해볼까 갔다가 그 자리에 서서 몇 곡을 듣게 되었다.



나카스의 야경이 화려한 편은 아니었지만 유유히 흐르는 나카스 강과 주변을 밝히고 있는 포장마차 때문에 제법 운치가 있었다. 거기에다가 감미로운 노래가 흘러나오니 이보다 더 좋은 분위기가 없었다.



이미 주변에는 걸음을 멈추고 그녀의 노래를 감상하는 사람이 몇 명있었다. 술에 진득하게 취한 아저씨들도 많았는데 한곡이 끝날 때마다 주변이 떠나갈 정도로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건반 옆에 Kinuyo가 보이는 것으로 보아 그녀의 이름은 키누요 같았다.



지나가는 사람들 중에는 "카와이(귀엽네)"라고 말을 하며 걸음을 멈추기도 했고, 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내 손에 쥐어주기도 했다. 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보니 호주에 있을 때가 생각났다. 그때도 이런 거리악사를 자주 볼 수 있었는데 그냥 지나치다가도 목소리에 이끌려 걸음을 멈춘적이 꽤 있었다. 전혀 다른 분위기의 일본에서도 이런 느낌을 가질 수 있다니 재밌기만 했다.




노래 가사에 '아리가또'가 있는데 지나가는 사람이 돈을 주자 "아리가또고자이마스!"라고 말할 때 무척 웃겼다.



대부분 내가 모르는 노래를 불렀지만 마지막에는 나도 알고 있는 노래 'I love you'를 불렀다. 우리나라 가수 포지션이 리메이크해서 불러서 대부분의 사람이 익히 알고 있는 그 노래다.


노래를 다 부르고는 친필로 쓴 것처럼 보이는 종이를 나눠줬다. 자신의 이름과 유투브 주소, 어디서 주로 공연을 하는지 적혀 있었다.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물어보니 아주 해맑게 웃으면서 포즈를 취해줬다.



나카스 주변의 밤은 그랬다. 취하지 않을 정도로 적당히 술을 마시기도 하고, 거리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도 할 수 있다. 관광객들에게는 이런 장소가 더 운치있는 법이니까 나카스로 모여드는 것 같다. 나 역시 거리에서 노래를 감상한 뒤라서 그런가 기분이 무척 좋아졌다. 이제 필요한건 역시 맥주랄까?

아주머니가 들어오라고 손짓을 하니 포장마차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한국 사람이라고 하니 웃음을 지으면서 반가워하셨다. 일단 그렇게 앉았는데 역시 주문이 문제였다. 맥주는 비루, 그렇다면 안주는 뭐라고 말해야 할까? 이 포장마차는 생선구이를 주로 팔고 있었는데 아주머니가 손으로 가리킬 때마다 나는 "오이시?(맛있나요?)" 라는 뻔한 질문을 했다. 당연히 맛있다고 하겠지.


잠시 후 갈치 한 토막이 나왔다. 우리나라에서도 자주 먹는 생선이라 특별하지는 않지만 방금 구워서 따끈따끈해서 맛있다는 느낌이었다. 여기도 상당히 좁은지라 맥주를 마시며 주변을 살펴보니 다른 사람과 눈이 마주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말은 잘 통하지 않았다. 몸으로 혹은 되지도 않는 일본어로 이야기를 하면 저절로 웃게 된다. 그런면에서 소통이라는게 꼭 정확한 말이 아니라 진심과 마음이 느껴지면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재밌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그렇게 한참을 떠들었다.


나카스는 이런 매력이 있다. 처음 만난 사람과 맥주를 마시며 대화를 하고, 소소하지만 거리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를 들으며 걸음을 멈출 수 있다. 아무데나 앉아 따끈한 라멘을 먹는 것도 좋다. 생각보다 별거 없는 나카스라고 하더라도 매번 이런 분위기가 느껴져서 무척 좋았다.

* 유투브에 Kinuyo라고 치면 그녀의 동영상을 쉽게 찾을 수 있다.
http://youtu.be/UxyHGR-CjRI
http://youtu.be/MfbanevTM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