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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부르게 점심도 먹었으니 이제 카라츠의 볼거리인 카라츠 성을 찾아갔다. 지도는 들고 있었지만 어차피 카라츠 성은 눈앞에 있을 정도로 가까웠기 때문에 내 감만 믿고 걸어갔다. 카라츠가 유후인처럼 예쁜 마을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걷다보니 소박해 보이는 돌담길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멀리 카라츠 성이 보인다. 이미 큐슈 여행을 하면서 고쿠라 성, 구마모토 성, 시마바라 성을 봐서 그런지 카라츠 성도 특별한 느낌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기존에 봤던 성보다 더 작아 보여서 굳이 꼭 봐야 할지 고민이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일본의 성은 바깥에서는 기대하게 만들지만 안에 들어가면 별로 대단한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카라츠 어디에서도 성은 쉽게 볼 수 있을 정도로 높은 곳에 위치해 있고, 아무래도 눈에 띄는 것은 성밖에 없어서 카라츠 성을 쫓아 걸었다.


"안녕하세요."
"어... 응."

동네 꼬마로 보이는 아이가 나를 보면서 인사를 한다. 왜 인사를 할까? 내가 이곳에 살고 있는 주민인 것처럼 보여서인지 아니면 예의가 바른 꼬마라서 그랬는지 모르겠다. 이런 궁금증은 더해 갈수록 아이는 무심하게 그냥 지나갔다.


카라츠 성 앞에 도착했다. 이제 계단을 따라 올라가기만 하면 된다. 엘리베이터까지 있는 성이라 너무 높은 것이 아닌지 걱정을 할 수도 있지만 계단을 따라 올라가도 생각보다는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 왜 100엔짜리 엘리베이터를 만든 것인지 조금 궁금할 정도였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카라츠 성의 천수각이 보였다. 일본 성을 구경하다보면 항상 가장 높은 건물인 천수각을 볼 수 있는데 카라츠 성도 마찬가지였다. 일본의 성을 몇 개나 봤다고 이제 좀 아는 척을 할 수 있다. 아무튼 성벽을 포함한 내부 건물도 전부 성이라고 할 수 있지만 관광객들을 위한 곳은 항상 천수각이었다. 대부분 천수각에 당시의 모습을 담은 물건이나 자료 등을 전시해 놓고, 꼭대기에는 주변을 살펴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었다.

카라츠 성의 천수각을 학의 머리로 보고 좌우에 펼쳐진 소나무 숲을 학의 날개로 보아, 이 성을 마이즈루(舞鶴:춤추는 학)라는 별명으로 부르기도 한다고 한다. 춤추는 학이라는 표현이 무척 멋진 것 같다.


카라츠에서 하는 행사일까? 천수각으로 가는 길에 사진이나 그림을 전시하고 있었는데 무척 흥미로웠다. 이런 행사를 직접 보면 재밌을 것 같다.


주변의 경치는 참 좋았다. 시원하게 펼쳐져 있는 바다 때문인지 관광객들은 이 주변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주변을 구경하고, 까마귀는 사람을 구경하고, 고양이들은 지들끼리 싸우며 놀고 있었다.


카라츠 성으로 들어갔다. 정확히 말하자면 천수각으로 들어갔는데 입장료는 400엔이었다.


천수각에 들어가자마자 보였던 전시물인데 뭐라고 표현을 해야할지 모르겠다. 설마 예전부터 있던 인형은 아닐테고 그렇다면 카라츠의 명물을 귀엽게 인형으로 만들어 전시해 놓은 것인지 아무튼 잘 모르겠다.


1층에는 카라츠의 옛날 모습을 보여주는 전시물이 있었다. 확실히 카라츠 성은 다른 지대보다 높은 곳에 있고, 바다에 둘러싸여 있어 수비하는데 용이해 보였다. 성의 역할을 생각할 때 역시 이런 요충지에 위치한다는 것은 당연했다.


큐슈의 다른 성을 구경했을 때도 그랬지만 카라츠 성도 사진 찍는데 제약이 있었다. 대부분의 전시물이 사진 촬영을 금지하고 있어서 그냥 구경만 해야했다.


카라츠 번정기의 갑주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갑옷처럼 반짝거리거나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일본의 갑옷을 실제로 보니 정말 신기했다.


3층으로 올라가면 당시에 사용했던 도자기가 전시되어 있는데 이중에는 한반도에서 건너온 것도 있다고 한다.


4층의 사진 전시실을 지나 5층으로 올라가면 전망대가 나온다. 카라츠 성의 주변을 한눈에 볼 수 있어서 무척 좋았다. 역시 일본의 성은 전망대를 올라가기 위해서 구경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높은 빌딩이 없는 작은 마을에서 항상 천수각 꼭대기를 올라가면 경치를 구경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천수각 전망대는 360도 돌아볼 수 있기 때문에 바다가 보이는 쪽과 카라츠 시내를 다 구경할 수 있었다. 바람을 맞으며 바다를 구경하고, 지나다니는 자동차를 구경했다. 주변 경치가 아름답지 않더라도 전망대에 있으면 기분이 무척 좋다. 그렇게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전망대에서 한참동안 있다가 내려왔다.


아까 올라왔던 그 길을 따라 내려갔다. 열차가 그리 자주 있는 편은 아니라서 후쿠오카로 돌아가려면 조금 서둘러야 했다.


카라츠 역이 있는 방향으로 가로질러 갔다. 작은 다리를 건너 뒤를 돌아보니 멀리 카라츠 성이 보였다. 문득 아주 오래전에도 카라츠는 이런 모습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건물만 조금 바뀌었을 뿐 이 주변은 1600년 대에도 이렇지 않았을까?

여전히 한적해 보이는 카라츠 거리를 걸었다. 역까지 그리 멀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시간이 얼마 남지 않으니 왜 이리 멀게 느껴지는지 결국 내 걸음을 재촉하게 만들었다. 후쿠오카로 가는 보통열차가 3시 35분에 있었는데 고작해야 10분도 남지 않았던 것이다. 그랬다. 나는 멀리 역이 보이기 시작하자 또 뛰기 시작했다.

역에 간신히 도착해서 가뿐 숨을 몰아쉬었다. JR큐슈레일패스를 보여주면서 안에 들어가니 정확히 3시 33분이었다. 정말 조금만 늦었더라면 이 열차를 놓칠뻔 했다.


후쿠오카로 돌아가는 보통열차를 탔다. 카라츠에서 1시간 넘게 걸리니 저녁이 되기 전에 후쿠오카에 도착할 것 같았다. 그런 계산을 해보니 뛰느라 숨이 찼어도 이 열차를 타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한적한 시골 마을을 지나는 열차를 타고 오면 지루한데 마침 맞은편에 있던 소녀들과 몇 마디를 할 수 있었다.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아서 조금 힘들었지만 내가 아는 일본어 몇 마디를 하니 좋아했다.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은 이 근처가 집인지 잠시 후 내게 손을 흔들면서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