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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국의 섬, 오키나와까지 왔는데 바다를 안 보고 돌아갈 수는 없다. 오키나와를 전혀 몰랐을 때는 그냥 작은 섬이라 바다도 쉽게 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주요 해변은 전부 배를 타고 나가야 했다. 특히 여행자들이 많이 가는 게라마 열도라면 더더욱 그랬다. 일반적으로 게라마 열도의 자마미섬을 많이 가는데 우리는 거리가 조금 더 가깝고 배삯도 저렴한 토카시키섬으로 목적지를 정했다. 사람들이 많이 가는 곳보다 안 가는 곳을 가보는게 더 재밌다는 생각이 반영되었다고나 할까?

우리가 머물고 있었던 미에바시역에서 페리를 탈 수 있는 터미널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다. 걸어서 20분 정도면 충분했다. 그런데 배를 타고 바다를 가는데 오늘도 날씨가 흐리멍텅하다. 어째 조금 불안했다.


로손이라는 글자 때문에 하마터면 지나칠 뻔 했다. 나하에서 페리를 타고 이동할 수 있는 터미널(토마린항)은 바로 여기였던 것이다. 그래도 여객터미널이라면 영어로 써 있을 줄 알았다. 복잡했던 것은 아니지만 내부로 들어가서도 표를 사는 곳을 찾아 여기저기 돌아다닌 끝에 겨우 창구를 찾을 수 있었다.


아침인데도 사람이 정말 많았다. 왜 이렇게 사람이 많은지 당시에는 몰랐는데 나중에 일본인 친구에게 들어보니 황금연휴기간이라서 여행객이 많았던 것이라고 했다. 어쩐지 오키나와 어딜 가도 여행객이 보이더라. 그런데 오키나와에 머무는 동안 한국 사람은 거의 본 적이 없었다.


토카시키섬으로 가는 일반 여객선 시간표다. 가격은 왕복기준으로 3080엔이고, 소요시간은 무려 1시간 반이었다.


고속선은 3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지만 가격은 4620엔이었다. 3080엔도 비싸다고 생각했는데 4620엔은 더 부담이 되기도 하고, 그냥 바다만 보러 가는 것이기 때문에 일반 페리를 타기로 했다. 물론 결과적으로 따져보면 일반 페리를 탔기 때문에 토카시키섬에 머문 시간이 너무 짧았다.


배를 타는 것이기 때문에 신상정보를 기록해야 한다. 까막눈이니 옆의 사람을 보면서 영어로 대충 휘갈겼다.


토카시키섬으로 가는 왕복편, 그리고 항구세 영수증이었다. 항구세로 100엔을 내야 했다. 가장 싼 편을 이용하는데도 오키나와에서는 교통비로 들어가는 비용이 꽤 됐다.

토카시키섬으로 가는 왕복편을 무사히 구입했으니 이제 아침을 먹기로 했다. 허기진 것도 있었지만 일단 시간이 너무 남아서 할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배를 타기까지 무려 1시간이 넘게 남은 상태였다. 아무튼 아침을 먹을 곳을 찾아다녔는데 마땅한 곳이 별로 없어 그냥 편의점 로손으로 갔다. 아침이니까 간단히 김밥 종류를 먹을 생각으로 갔는데 막상 가보니 다른게 눈에 들어왔다.


바로 한글로 선명하게 적힌 비빔밥이었다. 빵이 아닌 밥이라서 식욕을 자극했고, 무엇보다 일본에서 먹는 비빔밥은 어떤 맛일지도 궁금했다. 가격은 398엔으로 우리나라 편의점에서 먹는 음식과 비교하면 아주 싸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일본이니까 이정도는 적당한 수준이라고 생각했다.


비빔밥과 아주 잘 어울릴 것 같은 된장국(미소국)도 하나 샀다. 근데 이렇게 막상 사고나니 먹을 장소가 보이지 않았다. 비빔밥도 전자렌지에 돌린 상태이고, 된장국도 뜨거운 물을 부었는데 앉을 곳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주변을 돌아다니다가 커피숍 앞에 있는 야외탁자에서 먹기로 했다. 커피숍 앞이라 조금 눈치는 보일 수 있지만 거리가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어서 신경도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생각보다 훨씬 먹음직스러웠다. 김치와 야채는 물론 계란까지 들어가 있는게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편의점 음식처럼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된장국은 뜨거운 물만 부었을 뿐인데 정말 그럴듯 했다. 일단 맛을 보니 비빔밥은 일본인들 식성에 맞춰서 그런지 매운맛이 조금 떨어지긴 했지만 달달하면서 무척 맛있었다. 된장국도 식당에서 먹는 것과 차이가 없을 정도로 너무 맛있었다. 맛있을까 걱정하며 샀지만 아침은 대만족이었다.


밥을 여유있게 먹었는데도 출발 시간까지 30분이나 남았다. 그렇다고 마냥 밖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지루해서 페리를 타러 갔다.


토마린항은 건물에 둘러싸여 있어서 그런가 바다로 나가는 터미널같지 않았다.


외부와 내부에는 좌석이 있었는데 이날은 워낙 사람들이 많이 타서 페리 안을 구경하다보니 자리가 없었다. 물론 밖에서 바람을 쐬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나중에는 자리를 찾아다녀야 했다. 결국 바깥에서 철푸덕 앉아 토카시키섬까지 갔다.


날씨도 흐린데다가 구석에 앉아 가야 하다니 뭔가 처량했다. 제발 토카시키섬에 도착해서 비는 오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오키나와에 왔는데 예쁜 바다를 못 보고 돌아가야 한다면 그건 너무 슬픈 일이다.


1시간 반의 짧은 항해였지만 생각보다 너무 멀게 느껴졌다. 주변에는 외지에서 온 일본 여행객들로 가득했는데 다들 바다를 보러 간다는 기대감에 부푼 모양이다. 그런데 한국인은 단 한명도 안 보이는 걸까?


가는 동안 비가 와서 걱정을 하기는 했지만 다행히 토카시키섬에 도착했을 때는 비가 그쳤다. 여전히 날씨는 흐리긴 했지만 이게 어디냐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페리가 정박할 동안 주변을 바라보니 순박한 시골의 모습이 느껴졌다. 하긴 오키나와에 있는 아주 작은 섬 중에 하나가 토카시키섬이니 그럴만도 하다. 오키나와를 구성하고 있는 유인도 중에는 몇 백명 밖에 살고 있지 않은 작은 섬도 있는데 토카시키섬의 규모도 그리 크지 않았던 것이다.


오로지 바다 하나만을 위해 1시간 반 항해한 끝에 토카시키섬에 도착했다. 이제 바다를 보러 아하렌 비치를 찾아가면 되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