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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카르타는 유명한 관광지가 별로 없어 보였다. 일반적으로 두꺼운 가이드북에 그 나라의 수도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편인데 인도네시아는 예외였다. 자카르타의 어딜 둘러봐야 하나 싶어 살펴봤는데 눈에 띄는 곳은 독립기념탑인 모나스(Monas)와 오래된 항구도시 코타(Kota)였다. 어차피 자카르타에 머무는 시간도 얼마되지 않으니 코타와 모나스만 딱 둘러보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일단 코타로 향했다.


인도네시아의 버스(트랜스 자카르타)는 굉장히 독특했다. 지나가다 보면 언뜻 지하철처럼 생긴 플랫폼이 있는데 거기가 바로 버스 정류장이었던 것이다. 더 신기했던 것은 각 버스 노선이 지하철처럼 되어있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버스마다 정해진 노선이 있는 것은 물론 환승할 수 있는 시스템도 있던 것이다. 심지어 스크린도어처럼 안전문도 있었다.

감비르1 정류장 안으로 들어가서 코타로 가고 싶다고 이야기하자 친절하게 하모니에서 갈아타야 한다고 알려주는 것은 물론 승차권을 구입하는 것도 도와줬다. 모든 노선이 같은 가격인지는 모르겠지만 코타까지의 요금은 3500 루피아였다.


곧이어 버스가 도착했지만 코타쪽으로 가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지나갈 때마다 코타쪽으로 가냐고 계속 물어봤다. 정류장이 좁은 탓도 있지만 버스가 올 때마다 정신이 없었다. 사람을 가득 태운 버스는 정류장에서 사람을 내리고, 싣는데 출퇴근길의 지하철을 연상케했다.

몇 대의 버스를 보내고 거의 닭장차와 같았던 버스에 겨우 오를 수 있었다. 사람이 너무 많아 에어컨이 나오면 다행일거라 생각했는데 역시 예상대로 무지하게 더웠다. 그래도 처음 도착한 자카르타라 그런지 창문쪽을 빼꼼히 내다보며 신기하게 쳐다봤다. 내 바로 앞에는 할머니와 함께 있는 손녀가 있었는데 무척 귀여웠다. 하지만 나에게 그다지 관심이 없는지 창밖만 바라봤다.


환승하기 위해 내린 하모니는 훨씬 더 정신이 없고, 더웠다. 트랜스 자카르타가 신기한 시스템이기는 하나 지하철도 아니고 버스를 이용한 것이라 많은 사람들을 한번에 수용할 수도 없고, 정류장도 지상에 있어 무지하게 복잡했던 것이다. 게다가 도착하는 버스마다 항상 만원이니 이건 도저히 타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어쩌겠는가. 코타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정말 길고 긴 줄을 기다렸다. 직원은 사람을 거의 떠밀다 싶을 정도로 한 무리를 태우고, 출발하고 또 다른 버스가 오면 태웠다. 이렇게 떠밀려 타는 건 출근길에 지하철 이후로 거의 처음이었다.


다행이라면 코타로 가는 버스는 조금 지나자 사람이 우르르 내려 공간도 확보되었을 뿐만 아니라 자리까지 생겨 앉을 수 있었다. 내 옆에는 서양인 아주머니가 앉았는데 딱 보기에도 프랑스 사람 같았다. 인사를 나누고 국적을 물어보니 예상대로 프랑스 사람으로 아주 정확하게 들어 맞았다. 이제 막 자카르타로 들어왔던 나와는 반대로 아주머니는 이제 거의 막바지 단계였다. 몇 마디를 주고 받다가 나에게 자카르타의 국립 박물관을 꼭 가보라고 추천했는데 안타깝게 그럴 시간이 없었다. 코타에 도착하자 별다른 인사도 없이 이 아주머니와는 헤어졌다.


코타에 도착하자마자 어디로 가야할지 잠시 헤맸지만 가는 길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남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지하도를 따라 반대편으로 이동하니 바로 오래된 항구도시 코타가 나왔다 .


가는 도중에 과일을 파는게 눈에 띄어 수박도 하나 사먹었는데 안타깝게도 맛이 별로 없었다. 조금만 더 걸어가자 코타의 중심거리로 보이는 곳이 나타났다.


코타는 뭔가 대단히 이국적이거나 오래된 도시의 모습은 아니었다. 노점이 가득해서 그런지 쇼핑하는 사람이 많아 오히려 시장처럼 느껴졌다.


시장처럼 사람이 많고, 복잡하긴 했지만 이런 분위기를 싫어할 내가 아니다. 사람이 북적거리는 풍경도 좋고, 재미있는 물건을 파는 노점도 좋다. 아직 인도네시아가 익숙하지 않아서 그냥 이런 거리를 구경하는 것도, 걷는 것도 다 좋았다.


비록 원래 방문 목적인 오래된 도시를 구경한다는 의미를 퇴색되었지만 말이다. 코타는 자카르타에서 가장 오래된 지역으로 바타비아(Batavia) 혹은 코타(Kota)라고 부른다. 과거에는 항구도시였기 때문에 외국의 영향권을 가장 많이 받은 곳이기도 하다.


여기가 옛날 대법원 건물인지 모르겠는데 지금은 난장판이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건물인지는 모르겠고, 그냥 아이들의 놀이터처럼 보였다.


이 주변에서는 먹거리를 파는 사람도 많이 보였다.


이 넓은 광장에서는 유독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근데 재밌는 것은 꼭 모자를 쓰고 자전거를 탄다는 점이었다. 왠지 파란 원피스를 입고 해변을 걷는 여인에게 어울릴 법한 모자를 쓰고 광장을 누비는 자전거 행렬이 무척 신기하기만 하다.


광장 끝에는 어쩐지 조금 어울리지 않은 고급 카페가 있다. 바타비아 카페인데 론리플래닛에서도 소개가 되어있어 한번 들어가 보기로 했다. 안으로 들어갔더니 전부 외국인 뿐이었다. 코타에 외국인이 안 보이는 것은 아니었으나 여기는 아예 외국인들이 점령한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좀 심했다.


물론 분위기 자체는 괜찮았다. 고풍스러워 보이는 인테리어에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오는고 있었는데 딱 서양인들이 좋아할 만한 장소라고 생각했다. 여기서 밥먹기는 사치인 것 같아서 나중에 다른 곳에서 밥을 먹기로 하고 일단 커피만 주문했다.

커피를 주문하고 나서 우리나라에서도 인도네시아 커피는 자주 봤던게 생각났다. 보통 자바 커피라고 많이 얘기를 하는데 자카르타가 있는 큰섬이 바로 자바(Java)였던 것이다. 자바에서 자바 커피를 마셔보는구나!


밖은 너무 더웠는데 이 카페에 앉아 시원한 커피를 마시니 좀 살 것 같았다. 자바 커피는 다른 동남아의 커피와 많이 달랐다. 동남아 그러니까 인도차이나 반도에 있는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 태국 등에서 마시는 커피는 아주 쓸 정도로 달달하게 연유를 넣는 것이 특징인데 인도네시아는 커피를 갈아서 넣었다. 여기에서 마셨던 커피는 그나마 괜찮은 편인데 다른 곳에서 마셨던 커피는 대부분 커피 알갱이가 씹힐 정도였다.

비록 연유가 들어간 다른 동남아식 커피는 아니지만 설탕인지 시럽인지 넣어서 이 커피도 역시 달달했다. 항상 여행을 하면서 딱히 무엇을 보지 않더라도 이렇게 시원한 커피 한잔을 마시며 시간을 보내는게 무척 좋았다. 커피 한잔을 시켜놓고 꽤 오랜 시간을 앉아 있었다.


카페 바타비아를 나와 다시 코타를 걸었다.


인상을 한가득 쓰고 있던 아저씨지만 자전거에 꽃까지 달아 놓은 모습이 재밌기만 하다. 자카르타에서 자전거를 타려면 꼭 이래야 하는 것인가?


코타를 제대로 다 둘러보지는 못해 확실치 않지만 생각보다는 그리 크지 않았다. 좀 복잡하게 느껴질 수 있는 곳이기도 한데 처음부터 인도네시아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 그냥 즐겁게 돌아다닌 것 같다. 코타 주변의 거리는 매연도 심하고, 지저분한데도 말이다. 다만 배낭을 메고 돌아다닌 까닭에 기동력이 떨어졌다는 점이 많이 아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