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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뭔가 다르다. 기존에 내가 접했던 잡지와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이번에 나온 컬러스 매거진 82호만 봐도 알 수 있는데 주제가 무려 무려 '똥'이다. 아니 왜 하필 그 많고 많은 주제 중에서 똥이야! 그 이름을 입에 담기도 부끄럽고, 늘상 더럽다고 생각하는 똥을 주제로 하다니 컬러스 매거진을 처음 접했을 때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재밌다는 생각도 들었다. 매호 색다른 주제를 가지고 만드는 이런 잡지가 여태까지 있었던가?


아마 광고인이라면 파격적인 베네통 광고를 기억할 것이다. 컬러스 매거진은 바로 그 베네통 그룹이 설립하고 후원하는 커뮤니케이션 리서치 기관인 파브리카에서 제작된다고 한다. 어쩐지 좀 독특하더라. 아무튼 컬러스 매거진은 베네통 광고처럼 파격적이고, 의미심장하다. 1년에 4번 발간을 하는데 항상 다른 주제를 선정하고, 이에 대한 취재를 통해 잡지를 만든다. 이번에 출간한 똥을 비롯해서 운송수단, 에이즈, 전쟁, 춤 등 일반적인 현상부터 사회적인 이슈까지 매달 다른 주제를 다룬다는 것이 특징이다.

컬러스 매거진은 생각보다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었는데 출간한지 무려 20년이 넘었고, 총 40개국의 독자들에게 읽히고 있었다. 2010년부터 한국어로도 접할 수 있는데 현재 영어/스페인어, 프랑스어, 스페인어로 출간되고 있다고 한다.  


이번에 출간된 똥, 서바이벌 가이드를 천천히 살펴본다. 일단 주제가 똥답게 표지도 그와 관련된 그림들이 그려져 있었다. 잡지를 보다가 갑자기 이상한 게 튀어나올까봐 은근히 걱정되었다.


목차부터 범상치 않다. 똥의 위험과 제대로 알기는 그렇다고 해도 씻어내기, 똥을 처리하는 일꾼, 그리고 어떤 자세로 눌 것인가에 대한 제목을 보면 마냥 더럽다고 여겨지지 않는다. 어느 누가 씻어내기와 어떤 자세로 눌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해봤단 말인가.


걱정했던 더럽거나 충격적인 장면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내가 몰랐던 새로운 시선으로 사회 현상을 바라볼 수 있었다는 점은 무척 유익했다.

세상에서 가장 흔한 화장실은 세라믹이나 금속으로 만든 변기가 아니라, 바로 풀밭이나 비포장 도로의 갓길입니다. 인류의 3분의 2는 사용할 화장실이 없으며, 배변할 수 있는 곳을 찾아 적당히 알아서 일을 해결해야 합니다. 야외 배변이라고 알려진 이 행위는 위험할 수도 있으며, 특히 여성에게 더욱 그렇습니다.

새벽 4시,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인근의 수풀을 겨우 찾아가 적당히 일을 봐야 한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그렇게 일을 본 뒤엔 자기 밭에다가 볼일을 봤다고 화난 농부에게 두들겨 맞는다든가, 어둠을 노린 누군가에게 강간당한다고, 그러고도 잠자코 있어야만 할 상황을 상상해 보십시오. 배변 욕구를 오랫동안 억누르는 것은 내장과 방광에 감염을 유발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집중력과 학교 출석률에도 나쁜 영향을 미칩니다. 개발도상국의 여학생 중 최대 20퍼센트가 학교 내에 화장실이 없어 학교를 그만둡니다.  -본문 발췌-


나름 재밌게 봤던 전세계의 화장실. 우리에게는 익숙한 수세식 화장실부터, 재래식 화장실, 퇴비화 화장실, 화학 화장실, 소각 화장실, 심지어 변을 던지는 날으는 화장실까지 그림이었지만 다양한 화장실을 적나라하게 소개한 장면이 재밌었다.


어디 이뿐일까? 직접 만드는 일명 DIY화장실도 여기 있다.


조금만 넘겨 보면 컬러스 매거진이 단순히 흥미로운 사진과 독특한 주제만 다루는 것임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페이지가 나온다. 현재 인도에서는 엄연하게 불법이지만 여전히 백만 명의 인분 청소부가 있다는 것이다. 카스트 제도가 남아있는 인도에서 단지 가장 낮은 계급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높은 신분을 가진 사람의 인분을 청소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바르샤 씨는 매일 다음과 같은 일을 합니다. 그녀를 고용한 다섯 가족이 사용하는 건식변소를 향해 걸어갑니다. 거기서 그녀는 양철조각으로 똥을 퍼 금이 간 그릇에 담은 뒤 머리 위에 이고 갑니다. 똥이 매일 새서 떨어지지만, 우기의 비가 상황을 더 나쁘게 만듭니다. 비가 오면 벌레들이 들끓게 되기 때문입니다. 가끔은 맛이 간 음식을 임금으로 받기도 하지만, 이 일로 그녀는 매년 각 가족에게서 1500루피(약 삼만 오천원)를 받습니다. 그녀는 카스트가 더 높은 계급의 여인들이 다 씻기 전 까지는 우물을 사용할 수도 없고, 탈출을 꿈꾸며 기도를 드리기 위해 사원에 들어가는 것도 허용되지 않습니다.  -본문 발췌-


이외에도 똥, 서바이벌 가이드 편에서는 버리는 방법, 하수구에 있는 것들, 교도소의 대부분을 수감들의 대변에서 나온 에너지로 운영하는 나라 등 흥미로운 이야기와 사진을 담고 있다. 단순히 더럽고, 부끄럽게만 생각할 수 있는 똥(심지어 지금 이렇게 글로 '똥'을 쓰는 것도 왠지 모를 부끄러움이 생긴다)이지만 그건 그렇게 사회가 만들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똥. 편하게 받아들이면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컬러스 매거진을 처음 접했는데 굉장히 재밌었다. 쉽게 접하지 못하거나 너무 시시해 보여서 생각하지도 못하는 것을 주제로 들고 찾아오기 때문에 매번 특별할 수밖에 없다. 광고인, 아티스트 혹은 아이디어나 영감을 얻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컬러스 매거진을 꼭 찾아보길 바란다. 독특한 사진과 사회적인 이슈는 눈과 머리를 자극시키기 충분하다. 아니 그것보다 일단 재밌으니까 볼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