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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제키바시(만관교)의 빨간색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사실 만제키바시는 빨간색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아 다른 유명한 다리와 비교하기엔 무리가 있다. 아마 그냥 다리를 구경한다면 재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보다는 이 다리가 왜 생겼는지 역사적인 사실을 알고 간다면 조금 흥미롭게 보인다. 혹시 역사가 머리 아프다면 현재 둘로 나뉘어진 대마도 본섬을 만제키바시가 이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 정도만 알아둬도 좋다.


여전히 날씨는 흐리멍덩하고, 바람이 거칠게 불었지만 의미가 가득한 만제키바시를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우리는 모두 차에서 내려 다리의 중앙으로 걸어갔다.


운이 좋았는지 마침 배가 지나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다. 과거 일본은 대마도를 돌아가지 않고, 바로 이동할 수 있는 항로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는데 그게 이 만제키바시가 만들어진 이유다. 본래 하나의 섬이었던 대마도는 운하 착공에 들어갔고, 결국 길게 뻗은 섬의 중앙으로 큰 배가 드나들 수 있었던 것이다. 현재 볼 수 있는 만제키바시는 3번째 만들어진 다리이며, 예전에는 2번째 다리와 함께 있었지만 철거되었다. 지금도 2번째 다리가 있었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만제키바시가 유명한 또 다른 이유는 바로 러일전쟁 때문이다. 격변의 시기였던 1905년, 러시아와 일본은 만제키바시가 있는 이 운하에서 전투가 벌였는데 러시아는 대패를 하고 만다. 결국 이 전투 이후 러일전쟁의 승리는 일본이 되었고, 일본은 조선의 지배권을 확보하게 된다. 만약 여기서 벌어진 전쟁의 승리가 일본이 아닌 러시아가 되었다면 우리나라의 역사 또한 바뀌었을지 모르는 일이다.

당시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한 러시아가 패한 이유가 사뭇 궁금해지는데 그것은 일본이 철저하게 함정을 팠기 때문이었다. 러시아는 일본과의 전투를 위해 세계 최강이라는 발틱함대를 블라디보스토크로 불렀다. 원래 발틱함대는 지중해의 수에즈 운하를 거쳐 인도양으로 갈 계획이었으나 일본이 이를 미리 눈치 채고 영국이 운하 통과를 허가하지 않도록 협조를 요청했다. 결국 발틱함대는 아프리카 희망봉을 거쳐서 돌아와야 하는 엄청난 이동을 해야 했고, 시간이 지체되었기 때문에 쉬지 않고 곧바로 블라디보스토크로 가는 항로인 쓰시마 해협을 지나치게 된 것이다. 지칠 대로 지친 러시아 함대와 정신 무장을 단단히 한 일본 중에서 누가 이길지는 안 봐도 뻔했다.


배가 다리를 지나간 후 눈에 들어온 것은 아주 작은 어촌이었다. 대마도를 여행하면서 작은 마을을 지나왔기 때문인지 이제는 이런 소박한 풍경이 익숙했다. 대마도는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조용한 동네였다. 일본의 작은 마을도 여행을 해봤기 때문에 이런 풍경이 어색하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대마도는 넓은 면적에 비해 사람이 적게 살아서 더 그렇게 느껴졌나 보다.


만제키바시에는 이렇게 전망대 역할을 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해뒀다. 운하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라고 만들어 놓은 것 같다.


다리에서 짧은 시간만 머물고 주차장으로 돌아왔다. 사실 만제키바시 자체만 놓고 본다면 크게 볼거리가 가득한 곳은 아니기도 했지만 날씨가 추워서 더 머물기도 힘들었다. 한국도 마찬가지였지만 대마도의 봄은 아직 멀었나 보다.


주차장으로 돌아오는 길에 좁은 도로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전신주 위에 '대마 만제키 휴식광장'이라고 써있는 파란색 간판도 발견할 수 있었다. 아무것도 아닌 풍경인데 지나다니는 차량조차 거의 없는 한적한 도로를 보고는 걸음을 멈춰서서 셔터를 눌렀다. 외진 곳이라고는 하지만 대마도가 이런 곳임을 알려주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잠시 후 이즈하라에 도착하면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조금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이 여행은 쓰시마시, 여행박사, 시그마 협찬과 도움으로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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