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지난 주말, 일본인 친구 다이스케를 한국에서 다시 만났다. 무려 4년 만이었다. 다이스케는 4년 전 태국 방콕에서 고작 딱 1번 만났을 뿐이다. 우리는 길거리 이름 없는 노점에서 새벽 5시까지 맥주를 마시다가 알게 되었는데 그 짧은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진 것이다. 이래서 여행이 재미있나 보다.
 
(당시 사진을 들춰보면 참 풋풋하다.)
 
서울에 도착했다는 다이스케의 페이스북 메시지를 받자마자, 홍대의 한 게스트하우스를 찾아갔다. 홍대와 가까운 곳이라 쉽게 찾을 줄 알았는데 조금 헤맸다. 어느 골목길을 따라 언덕을 올라가니 그 게스트하우스를 찾을 수 있었다. 게스트하우스에 들어가서 주변을 살펴보고 있을 때 앉아있던 다이스케가 먼저 나를 발견하고는 반갑게 인사했다.

우리는 곧장 홍대 앞으로 나갔다. 처음 한국을 방문한 친구에게 많은 것을 소개해 주고 싶었지만 늦은 시각에 만났고, 너무 추워서 무얼 하기가 쉽지 않았다. 추위에 벌벌 떨면서 거리를 방황하는 것도 결코 아름답지 않은 상황이라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오로지 먹는 것뿐이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우리의 테마는 본격 ‘한국음식 탐방기’가 되어버렸다. 


1. 어묵
먼저 관심을 보인 것은 다이스케였다. 홍대에서 무얼 먹을까 고민하면서 돌아다니는 도중 길거리에서 파는 꼬치 어묵을 보며 무슨 음식이냐고 물었다. 흔히 말하는 오뎅을 파는 곳이었다. 아무래도 어묵은 일본 사람에게 친숙한 음식일 것 같아 하나 먹자고 했다. 

옆에 큰 통에 담긴 검은 액체를 꺼내 보이자 긴장하는 눈치였다. 내가 간장이라는 말과 함께 어묵에 살짝 뿌리니 다이스케도 역시 간장통을 건네 받고, 한국식으로 어묵에 뿌렸다. 이렇게 무식하게 간장을 뿌려 먹는 사실에 조금 놀랐을지도 모르지만 그나마 분무기가 아니라서 다행이다.


어묵을 한입 먹더니 눈이 휘둥그레졌다. 정말 맛있나 보다. 한국말로 ‘맛있다’를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재차 물어봤다. 처음 이 음식이 ‘어묵’이라고 말했을 때는 잘 몰랐지만 ‘오뎅’이라고 하니 그제야 일본식 음식을 떠올렸는지 알 것 같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정확히 말하자면 오뎅과 어묵은 다른 음식이긴 하다. 


2. 불고기
지하철을 타고 명동으로 이동하는 도중 시청에서 내렸다. 갑자기 청계천이나 광화문 광장을 보여주고, 명동까지 걸어가면 더 좋겠다는 판단 때문이다. 근데 너무 배고팠다. 그래서 광화문 근처 식당으로 들어가 저녁을 먹기로 했다. 불고기와 함께 버섯두부찌개를 정식으로 파는 곳이었다. 


고추장이 듬뿍 들어간 버섯두부찌개를 바라보며 매울까 걱정했다. 안 매울 거라며 말했지만 실제로는 한국 사람에게도 살짝 매운 편이었다. 그런데도 맛은 괜찮았는지 땀을 뻘뻘 흘리면서 먹었다. 


물론 다이스케가 좋아했던 음식은 이 찌개가 아니라 불고기였다. 고추장 양념이 된 불고기를 정말 맛있게 먹었다. 이날 먹었던 음식 중에 단연 불고기가 최고라고 했다. 반찬으로 나온 아삭한 깍두기도 일본에서 먹었던 것과 다르다며 맛있게 먹었다. 


3. 해물파전
저녁을 먹은 뒤 가볍게 술 마시러 갔다. 원래는 족발이나 보쌈을 먹을까 하다가 양이 너무 많을 것 같아 해물파전을 시켰다. 해물파전도 마치 일본 음식인 오꼬노미야끼를 먹는 것 같다며 자신의 입맛에 딱 맞다고 했다. 그러고 보면 내가 메뉴 선택을 참 적절하게 잘했나 보다. 


해물파전에 맥주도 마시고, 파전에 빠질 수 없는 막걸리도 마셨다.  

술을 마시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했다. 여러 이야기가 오고 갔지만 역시 가장 재미있는 건 여행 이야기였다. 다이스케는 예전에 일본 전국일주를 했는데 자신의 고향인 아오모리에서부터 오키나와까지 자전거로 여행했다고 한다. 자전거 여행을 할 때 돈이 없어서 굶은 적도 많고, 편의점에서 남은 음식을 얻어먹었던 적이 있다고 할 때 서로 웃음을 지었다. 고생이 가득한 여행이지만 충분히 멋지고, 즐거운 추억이기 때문이다. 하긴 나도 호주에 있을 때는 그와 비슷하게 돌아다녔으니 어느 정도 공감대 형성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4. 소금구이
다시 홍대로 돌아와 조금 걷다보니 야심한 밤에 특별히 갈만한 곳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맥주와 막걸리를 마셨으니 이번에는 소주를 마시자는 말에 다이스케도 좋다고 했다. 생각보다 배부르게 먹지 않아서 그런지 또 뭘 먹게 되었다. 소주인데 안주가 없으면 또 곤란하지 않은가. 그래서 이번엔 고기를 먹었다.

 
다이스케는 소금구이를 굽는 장면부터 무척 신기하게 바라봤다. 노릇하게 익은 고기 한 점을 먹더니 또 다시 눈이 커지면서 정말 맛있다고 했다. 그리고 소주도 한 병 시켜서 마셔봤는데 의외로 잘 마셨다. 잔을 채워주면 홀짝홀짝 계속 마시곤 했다. 그가 말하길 한국음식은 다 맛있단다. 


이렇게 늦은 시각까지 먹고 또 먹기만 했다. 한국의 다양한 문화를 보여주지 못해 아쉽지만 다이스케와 한국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과 아주 짧은 인연도 계속 이어진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신기했다. 일본에서 또 만나자는 다이스케의 말처럼 다시 만나는 날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