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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바 호수에서부터 달린 미니밴은 정말 다행스럽게 공항까지 바래다줬다. 수중에는 공항세 15만 루피아를 제외하면 내가 쓸 수 있는 돈은 고작해야 1만 1천 루피아라서 혹시나 공항까지 가지 않을까 조마조마했던 것이다. 상대적으로 편한 미니밴을 타고, 6만 5천 루피아로 공항까지 올 수 있었던 건, 도심과 아주 가까운 공항이라 가능한 일이었겠지만 그럼에도 정말 다행이라 생각했다.


내가 메단을 갔던 불과 몇 달 전만 하더라도 도심과 아주 가까운 폴로니아 공항을 이용했었지만 지금은 신공항 쿠알라 나무을 이용한다.

그런데 너무 일찍 도착했다. 무려 5시간이나 남았다. 또바 호수와 메단까지는 4시간이 걸렸는데 아무래도 메단의 교통상황이라든가 갑자기 문제가 생길 것을 대비해 일찍 출발했던 게 결과적으로는 엄청난 대기시간을 가져다 줬다.


딱히 할 게 없던 나는 KFC에 가서 기다리기로 했는데 여기에서 슬픈 사실을 깨달았으니, 그건 바로 내가 가진 돈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배고파서 햄버거라도 사먹으면 좋으련만 내가 선택한 건, 아니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아이스크림뿐이었다. 눈치는 보였지만 조금이라도 시원한 KFC에서 최대한 시간을 때웠다.


1시간이 한계였다. 밖으로 나가 공항으로 갔다. 사람과 더운 열기가 대합실에서 다시 하염없는 기다림이 이어졌다. 딱히 할 만한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무엇보다도 난 돈이 없었다. 돈이 없다는 게 이렇게 서러울 줄이야.


심지어 물을 사먹으려고 했지만 500ml가 평소 다른데서 샀던 것보다 비싼 7천 루피아였다. 공항이라 비싼가 보다. 정말 슬펐다. 인도네시아에서는 그보다 작은 물을 팔긴 한다. 200ml정도 되려나. 얼마냐고 물으니 3천 루피아라고 해서 이걸 사서 마셨다.


기다리는 건 엄청 지루했다. 잠깐 어떤 아저씨가 다가와 말을 걸긴 했지만 이내 대화는 끊겼다. 그저 멍하니 내가 탈 항공기의 체크인이 뜨기만 바라볼 뿐이었다.


수마트라(Sumatra) 섬에서 파는 수마테라는 무슨 맛일까? 아마 수마트라와 카스테라가 합쳐진 합성어인 것 같은데 이 상자를 보고 피식 웃었던 기억이 난다.


몇 시간을 기다린 끝에 드디어 체크인 카운터가 열렸다. 카운터는 무척 낡아 보였고, 바깥과는 다르게 이곳은 무척 한가해 보였다.

이제 공항세만 내면 되는데 어떤 아저씨가 내 앞에 등장하더니 티켓을 빼앗다시피 해서 어디론가 나를 데려갔다. 바로 공항세 내는 카운터였는데 나보고 여기에서 공항세를 내야 한다며 알려줬다. 그건 나도 아는데 괜히 생색을 내면서 나보고 팁을 달랬다. 기가 막혀서 단호하게 싫다고 했다.


그래도 15만 루피아인 줄 알았던 공항세가 딱 절반인 7만 5천 루피아라는 사실에 무척 기뻤다. 발리에서는 공항세가 15만 루피아였기 때문에 메단도 똑같을 줄 알았던 것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KFC에서 햄버거나 먹을걸.

생각지도 못한 횡재에 신이나 여권에 도장을 찍자마자 기념품 가게로 들어가 살만한 게 있는지 찾았다. 선물로 줄만한 자석을 4개나 샀다. 그리고 슈퍼로 가서 남은 돈을 탈탈 털어 인도네시아 싸구려 커피와 망고 주스를 샀다.


1만 4천 루피아(편하게 생각하면 1400원쯤 되려나)짜리 커피. 생각보다 괜찮다.


망고 주스는 싸구려 맛이 났다. 피크닉과 비슷한 맛이라고 할까.


망고 주스를 다 마시고 나서, 2층으로 올라갔다. 1층보다는 조금 더 정돈된 느낌의 기념품 가게와 커피를 파는 곳이 보였다. 내가 샀던 싸구려 1만 4천 루피아짜리와는 달리 여기는 루왁 커피와 같은 비싼 제품을 팔고 있었다. 난 싸구려 커피에 만족했다.


공항에 들어왔지만 또 기다림이 이어졌다. 그리고 예상은 했지만 에어아시아의 연착 소식이 들렸다.


정말 지루했던 기다림 끝에 탑승이 시작됐다. 이 공항에서는 비행기가 있는 곳으로 내려가 직접 걸어가야 했다.

나는 거의 끝 좌석이라 뒤로 탔다. 다시금 깨닫게 되는 에어아시아의 친숙함이 있었으니, 시끌벅적한 탑승에도 잔잔하게 흘러나오는 노래와 청바지를 입고 안내하는 승무원들이었다. 한국에 취항하는 에어아시아는 장거리 전문 법인인 에어아시아 엑스라 이런 저가항공(LCC) 느낌이 덜한 편이다.

승무원 중에는 한국인도 있었다. 에어아시아 엑스가 아닌 에어아시아에서 한국인을 보다니 좀 신기했다. 내 앞쪽에는 나이가 많은 한국인들이 다수 있었는데 그 때문인지 아니면 원래 이곳에 배치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가장 예뻤던 것으로 기억한다. 역시 내가 한국인이라서 그런가.


1시간의 짧은 여정 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의 LCCT에 도착했다. LCCT는 에어아시아와 같은 저가항공이 취항하는 곳이다. 사실상 에어아시아의 본거지라 할 수 있다. LCCT에 도착한 후 가장 먼저 한 건 역시 굶주린 배를 채우는 일이었다. 계속해서 이동하고, 기다리느라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메단에서는 돈이 부족할까봐 아무것도 먹질 못했지만, 이제부턴 링깃이 있어 밥을 먹을 수 있었다.


터미널 내에서는 딱히 고를 수 있는 식당이 없다는 게 문제긴 했다. 그나마 가장 만만해 보이는 면 요리를 골랐다.


소고기와 피쉬볼이 들어간 음식으로 대만족이었다. 국물이 정말 끝내줬다.


한밤중에도 에어컨을 무지하게 세게 틀어서 장시간 대기할 때는 겉옷은 필수다. 옷을 입고 돌아다니는데 이미 몇 번 와봤던 곳이기도 하지만, 사실 여기는 구경할 거리가 별로 없다. 초콜릿을 구경하는 것도, 기념품 가게를 구경하는 것도 몇 십 분이면 충분하다.


기다리는 동안 휴대폰으로 영화도 한 편 봤지만, 시간은 한참 남았다. 하루 종일 이동과 대기를 계속해서 반복하던 순간이었다. 다행히 남은 링깃이 있다. 이걸로 뭘 할까 고민하다가 2층에 있던 던킨도너츠에서 커피를 마시며 휴대폰을 충전했다.


아침부터 시작한 여정은 아직 끝이 아니었다. 한국까지 6시간 20분. 그것도 다음날 아침 8시 20분에 도착하는 일정이다. 정말 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