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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분명 마케도니아로 가려고 했다.


그리고 이리스와 마지막으로 맥주를 마시면서 작별 인사를 할 생각이었다.


헤어지기 직전 이리스는 나와 함께 여행하지 않겠냐는 제안을 했고, 난 어떻게 해야 할지 망설였다. 물론 이리스는 히치하이킹으로만 1년 반 여행하고 있어 만약 함께 하면 무척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을 예전에 했던 적이 있었다. 그렇지만 마케도니아를 코앞에 두고 멀어지는 건 쉽지 않은 결정임에 틀림 없다. 몇 분간 고민을 하다가 이리스의 꼬임에 넘어가고 말았다. 그렇게 여행을 시작한 두 명의 히치하이커는 코루처(Korcë)로 향했다.

매우 친절했던 아저씨의 차를 금방 탈 수 있었다. 아저씨는 나는 9개월 째 여행 중이고, 이리스는 1년 반째 여행 중이라는 말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코루처에는 아주 독특하게 생긴 정교회 예배당이 있었다. 여기를 구경하던 도중 어떤 아주머니가 나에게 한국 사람이냐는 질문을 했다. 나는 깜짝 놀라며 어떻게 알았냐고 하니, 우리가 가지고 있던 히치하이킹용 사인 코루처(Korcë)를 얼핏 보고 코리아인 줄 알았다는 거다. 이 착각으로 인해 아주머니를 비롯한 이 가족 여행자를 우리가 얼마나 자주 만나게 될지 당시엔 몰랐다. 아무튼 이 가족은 원래 알바니아 사람이지만 아주 오래 전부터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잠시 휴식도 취할겸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여기서 이리스에게 한글을 가르쳐 줬는데 내 짧은 설명으로도 금방 이해했다. 글자를 다 알려주는 건 애초에 불가능에 가깝지만 대충 어떻게 읽는지 구조를 알게 됐다. 불과 10분 만에.

이슬람 사원은 특별하지 않았다. 우리는 다시 히치하이킹을 하기 위해 이동했다.

우리는 걷다가 히치하이킹하는 것을 계속 반복했다. 마른 하늘에 갑자기 날벼락처럼 비가 오기도 했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 없었다.


생각보다 훨씬 차가 안 다녀 히치하이킹이 아주 쉬운 코스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친절한 알바니아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그들은 우리를 기꺼이 태워줬다.

간혹 택시인지도 모르고 탔다가 내렸지만(알바니아에서는 일반 차량을 택시처럼 운행하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웃으며 헤어졌다.


가장 대박이었던 건 5번 째 히치하이킹이었다. 우리는 지나가는 버스를 향해 손을 들었고, 승객이 없던 버스는 우리를 태우고 에르세카(Ersekë)로 데려다줬다.

살짝 어두워질 무렵에 에르세카에 도착했다. 갈 길이 한참 남았는데 해는 벌써 지고 있었다. 우리는 여기서 치킨케밥과 맥주로 저녁을 해결했다.


비가 올 것 같아 떠나지 말고 여기서 잘 곳을 찾아 보자는 나의 의견과 달리 이리스는 오늘 레스코빅(Leskovik)까지 가자고 했다. 우려했던 것처럼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날은 점점 어두워졌다. 몇 분 뒤 차가 한 대 멈췄지만 택시였다. 처음에는 돈을 요구했으나 몇 차례 이야기를 나누더니 그냥 타라고 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어두운 산길을 달리고 달렸다. 난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는데 기억은 안 나지만 꿈을 꿨던 것 같다. 지금 내가 여행을 하고 있는 것인지 아닌지 착각하게 만드는 그런 꿈. 무려 1시간을 달려 레스코빅에 도착했다. 여전히 비는 내리고 있었다. 나는 비몽사몽인 채로 건물 아래로 달렸다. 우리는 여기서 비가 그치길 기다리면서 오늘밤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그랬다. 우리는 잘 곳이 없었다.


1시간 뒤 비가 그쳐 동네 중심가를 향해 걸었다. 어두웠지만 카페 몇 군데가 빛을 밝히고 있었다. 그 중 늦게까지 하는 카페를 하나 발견해 여기서 맥주를 마시며 인터넷을 이용했다. 우리는 이런 동네도 와이파이 사용이 가능한 시대에 살고 있다. 여기서 맥주를 마시다가 카페에 있던 현지인들에게 오늘 잘만한 곳을 찾을 수 있는지 물어봤다. 그들은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슬람 사원으로 데려다줬다. 12시가 넘은 늦은 밤, 이슬람 사원에 있는 관리인을 큰 소리로 깨운 뒤 우리를 재워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우리는 이슬람 사원에서 잘 수 있었다. 바닥이 깨끗한 편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실내였고, 게다가 우리는 침낭과 매트리스가 있어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침에 관리인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만 짧게 하고 우리는 다시 발걸음을 페르메트(Permet)로 이동했다.


걷기도 참 많이 걸었다. 멀리서 한 대의 차가 우리를 향해 왔고 우리가 손을 들자 바로 멈췄다. 경찰이 영어도 가능해 우리의 목적지인 카르쵸브(Çarshovë)까지 태워주는 동안 많은 대화를 나눴다.


높고 구불구불한 산을 넘어 카르쵸브에 도착했다. 여태껏 보지 못한 여행자를 여기선 쉽게 볼 수 있었는데 그리스 국경과 매우 가까운 곳이라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마케도니아를 가려던 내가 어쩌다가 그리스와 가까워졌는지 모르겠다. 이제는 원래 목표인 오흐리드까지 돌아가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잠시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자고 들어갔는데 흥겨운 음악 소리가 들렸다. 이 음악의 주인공은 프랑스인과 벨기에인으로 자전거로 무려 2년간 여행 중이라고 했다. 아코디언과 바이올린, 그리고 알 수는 없지만 여러 악기를 가지고 여행하는 그들의 모습은 연주하는 음악만큼이나 흥겨워 보였다.

그리고 코루처에서 만났던 알바니아 가족을 여기서 또 만났다. 정말 반가워 사진도 같이 찍었다.

커피를 마시면서 2시간 정도 시간을 때운 뒤 목표인 파르메트(Përmet)로 향했다. 원래 카페에서 우리를 태워준다고 했던 아저씨가 있었는데, 좀 더 머물겠다고 해서 히치하이킹을 해야 했다.

너무 차가 안 다닌다. 거의 50분가량을 기다렸다. 그늘진 곳에서 앉아 음악을 들으며 시간을 보냈다.

드디어 작은 트럭을 탔다. 이 아저씨와 영어로 의사소통은 불가능했지만, 마음만큼은 통했다. 정말 동네 아저씨 같았다. 심지어 우리를 내려줄 때 돈 200렉을 쥐어줬다. 히치하이킹을 하며 여행을 많이 해봤지만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아저씨가 내려준 키니콜(Kinikol)마을에서부터 걷다가 히치하이킹을 했다. 이번에도 지나다니는 차가 별로 없어 히치하이킹이 그리 쉽지 않았다. 30~40분 정도 기다린 후 차를 탈 수 있었다. 두 명의 알바니아인들은 이곳에 사업차 온 것이라고 했고 우리를 페트란(Petran) 마을을 지나 식당 앞까지 태워줬다.


이 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는데 여기에 독일인 단체관광객이 있었다. 이리스는 네덜란드와 영어는 물론, 독일어까지 가능해 그들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이후에도 이 그룹은 몇 번이나 다시 만났다.


시커먼 하늘을 보고 고민이라도 했어야 했는데 그저 온천에 도착했다는 이유만으로 신나서 달려갔다. 며칠간 씻지도 못했으니 우리는 그만큼 찝찝한 상태였다.


온천은 두 군데가 있는데 우리는 다리 밑에 있는 곳을 선택했다. 반대편은 알바니아 사람들이 즐기고 있었다.

10분 정도 지나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가 오는데 온천을 즐긴다며(전혀 따뜻하지 않았지만) 좋아했다. 그러나 최악의 상황이 발생했다. 갑자기 하늘은 어둠이 깔리고 비가 내리는데 이거 그냥 비가 아니었다. 바닥에 굵은 무언가가 떨어지길래 자세히 보니 엄지손가락만한 우박이었다. 우박과 함께 떨어지는 폭우라니 지독하게 운이 없다.


다리 밑으로 피신했지만 비가 어찌나 세차게 오던지 가방이며 옷이며 다 젖어버렸다. 그리고 너무 추웠다.


다른 곳에서 온천을 즐기던 알바니아 사람들도 급하게 뛰어와 비를 피했다. 이들은 우리가 원하면 다른 마을까지 태워준다고 호의를 베풀었지만 정말 어처구니없게도 폭우로 인해 길이 끊겨 버렸다. 거의 이건 지구 종말 며칠 전의 모습 같았다. 난 비가 그치고 물줄기가 약해질 무렵에 건넜다. 모든 게 다 젖어버렸고, 우리 꼴도 엉망이었다. 그나마 깊은 웅덩이로 인해 차를 한 대 포기해야 하는 알바니아 친구들보다는 조금 낫긴 했다. 그들은 6명이 한 대의 차에 타고 돌아갔다.


우리는 곧바로 히치하이킹을 했고 한 아저씨는 중간까지 태워준 후 미리 연락한 다른 차가 오자 우리 짐을 옮겨줬다. 코소보 운전자는 우리를 페트란에 있는 카페까지 태워줬다. 그리고 카페에서 조금만 기다리면 자신이 파르메트까지 태워주겠다고 했다. 카페에서 우리를 온천으로 데려다 준 엔지니어 분들을 다시 만났다. 이 유쾌한 사람들은 커피 한 잔 하자고 우리를 불렀다.


저녁이 되기 전 우리는 파르메트에 도착했다. 거대한 바위가 인상적인 도시다. 바위를 올라가려 했으나 별로 내키지도 않았고, 무엇보다도 짐을 들고 가기는 힘들어 보였다. 그러던 와중 어느 건물에서 우리를 지켜보던 아저씨가 말을 걸어왔다. 물론 영어가 아닌 그저 짧은 단어 혹은 손짓발짓으로 설명하는 게 전부였지만 의사소통은 가능했다. 우리 짐을 건물 내부에서 맡아준다고 해서 바위를 올라갔다.


경치가 제법 멋졌다.


보통 혼자 여행하면 셀카를 안 찍는 편인데, 같이 여행하니 이렇게 사진이 많이 남는다.


맥주나 커피를 마시면서 인터넷을 할 생각으로 중심지로 이동했다. 여기서 영국, 덴마크, 네덜란드 등 다국적 아저씨들을 만났다. 당연히 나서기를 좋아하는 이리스는 먼저 말을 걸었다. 말이 통하니 그들도 반가워하는 게 당연했다. 그들을 잠시 중요한 회의가 있다고 해서 다른데 앉아 커피를 마셨다. 그러던 도중 독일인 단체여행객이 이 식당으로 왔다. 또 만나다니 정말 신기할 따름이다. 그들 중 일부는 우리에게 달달한 디저트를 주기도 했다.


잘 곳이 없던 우리는 일단 빌딩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경비원 아저씨에게 바닥도 괜찮으니 여기서 잘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처음에는 안 된다고 했지만 워낙 인상이 좋은 아저씨라 여기저기 전화도 해보고 생각도 해보더니 10시에 돌아오면 알려주겠다고 했다.


우리는 카페로 돌아갔다. 아직 남아있던 다국적 아저씨들은 우리에게 맥주를 사줬다.


저녁은 싼 음식 몇 개를 주문했는데 나쁘지 않았다.


10시가 되어 빌딩으로 돌아가자 아저씨는 2층 복도에서 자도 괜찮다고 했다. 우리에게 사과를 깎아주며 여러 대화를 시도했다.


방이 아니라 그저 복도지만 깨끗하고 바람을 피할 수 있는 실내라며 어디든 상관 없었다. 잠들기 전 우리는 영화를 한 편 봤다.


아저씨의 부탁대로 우리는 6시에 짐을 챙겨 나왔다. 상쾌한 공기가 코로 들어와 온몸 구석구석 통과했다. 우리는 여기에서 멍하니 앉아 2시간을 때웠다.


그리고 어제와 다른 카페로 가서 커피를 마셨다. 카페 주인 아저씨는 여행자인 우리를 보자 무척 좋아했다. 3시간을 카페에서 버티며 충전하고, 인터넷을 이용했다.


다시 히치하이킹, 무려 티라나행 버스에 올라탔다. 이 버스는 갈림길에서 우리를 내려줬고, 지로카스트라(Gjirokaster)로 갈 때는 택시를 히치하이킹했다. 분명 개인택시인데 옆에는 경찰이 앉아 있어서 그런 것인지 그냥 태워줬다. 좀 신기했다.


도시 입구에서 영국인 여행자 트루디를 만나 갑자기 동행하게 되었다. 그리고 포그라데츠부터 계속 길에서 만난 마가린을 여기서도 또 만나 같이 맥주를 마셨다. 갑자기 세찬 비가 쏟아져 맥주를 한 병 더 마셨고, 이는 마가린이 샀다.


지로카스트라는 언덕 위에 형성된 도시로 경사가 굉장히 심했다. 걷는데 땀 좀 흘렸다.


베라트와 마찬가지로 이곳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다. 언덕 위에 빼곡하게 늘어서 있는 집과 성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여태까지 알바니아를 여행하면서 가장 관광지다워 보였다.


지로카스트라 성은 들어가지 않았다.


우리는 지로카스트라 성을 뒤로 하고 언덕 길을 올라 동네를 탐험했다. 관광객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보자 인사를 하는 어린 아이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지로카스트라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면 뭐하나. 절벽에 알록달록한 색상의 엄청난 양의 쓰레기를 보고 정말 충격을 받았다.


다른 길로 언덕을 올라 무척 힘들었지만 실제로 여행자가 자주 가는 골목은 그리 경사가 심하지 않다. 저녁에 다시 독일 여행자를 만났고 그들을 가이드하는 알바니아인의 도움으로 호텔의 정원에서 잘 수 있었다.


다음날 트루디까지 동행이 되어 사란다(Sarandë)로 이동했다. 다만 여기서 애초에 동행자가 추가되는 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으나 나에게 얘기를 하지 않아 기분이 살짝 언짢았다. 그리고 2명이 아니라 3명이면 히치하이킹이 어려운 건 사실이다. 30분 정도 기다린 후 난 혼자 히치하이킹하겠다고 했고, 그 둘이 먼저 차를 타고 사란다로 이동했다.


나도 곧바로 히치하이킹을 했는데 1분만에 차를 탈 수 있었다. 표정은 무뚝뚝했던 그리스인으로 알바니아에 오래 전부터 살고 있다고 했다. 물론 영어로 의사소통은 불가능했다. 이 아저씨는 거의 사란다에 도착하기 직전 내려줬고, 난 여기서 히치하이킹을 다시 했다. 그때 한 대의 차가 지나가더니 다시 돌아왔는데 놀랍게도 이리스와 트루디를 태운 차였다. 이들은 근처 유명한 관광지인 블루아이를 보고 온 뒤라 나보다 늦게 지나가게 되었던 것이다.


어쨌든 사란다에 모두 함께 도착했다. 우리를 태워준 아저씨는 미국에 살고 있는 알바니아인으로 해변에 같이 가자고 제안했다. 돌이 너무 많아 우리가 상상하는 그런 해변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그래도 바다가 정말 예뻤다. 이런 도시 한 가운데 있는 해변인데도 말이다.


물에 잠깐 들어갔다 오니 맥주도 사줘서 편하게 누워 시간을 보냈다.


우리는 오랜만에 여유로운 시간을 즐겼다.


트루디는 그리스로 떠났고 다시 나와 이리스 둘이 남았다. 워낙 이리스가 고지식한 히치하이커라 주로 캠핑을 했는데 사란다에서는 적당한 장소를 발견하지 못했다. 1시간을 걸었고, 2시간을 걸었다. 정말 운도 따라주지 않는 날이었다. 


폐건물이 많아 몇 군데를 둘라보다가 어느 한 건물 아래에서 침낭만 깔고 잤다. 어차피 나야 이리스와 헤어지면 호스텔로 갈 생각이었기에 하루 정도는 더 바깥에서 자도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여기는 정말 힘들었다. 개미가 계속 물어 도저히 잠을 잘 수 없었다.


다음날 새벽 6시부터 부트린트(Butrint)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지나가는 차가 없어 우리를 반겨주는 건 동네 개뿐이었다.


히치하이킹을 두 번 해서 도착한 부트린트, 그러나 입장료가 700렉(현지인은 300렉)이라 들어가지 않았다.


우리는 히치하이킹을 해서 사란다로 돌아왔고, 여기서 이리스와 헤어졌다. 물론 나도 돈 쓰는데 민감한 여행자지만 이리스는 더 심해 조금 불편할 때도 있었지만 애초에 여행을 같이 하면서 모든 게 짝짜꿍 잘 맞을 수는 없다. 당연히 같이 여행하면서 즐거웠던 적이 더 많았고, 특별한 경험도 많이 해서 마케도니아가 아닌 알바니아 남부를 여행을 선택한 것을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 우리는 서로 안는 것으로 작별 인사를 했고 이리스는 다시 히치하이킹을 하기 위해 언덕을 올랐다.


난 사란다에 있는 호스텔에 체크인했다. 무려 5일간 씻지 못해 찝찝한 기분을 날려버리려 샤워를 했는데 정말 물이 졸졸졸 나왔다. 겨우 샤워를 마치고 앉아 쉬는데 살 것 같았다. 캠핑이나 노숙도 2~3일이면 괜찮은데 이번에는 좀 너무 오래 했다. 게다가 난 텐트도 없었다.


저녁에는 호스텔에서 만난 프랑스인 가브리엘과 함께 맥주도 마시고, 그리스 음식인 지로스를 산 뒤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선거가 이제 얼마 안 남았는지 시끄러운 음악 소리가 들렸다.


사란다는 지로카스트라보다 더 관광지다워 보였다. 아무래도 바다를 끼고 있는 휴양지인데다가 그리스와 가까우니 자연스럽게 그리 된 것 같다. 여기서 마가린을 또 만났다.


알바니아의 첫 번째 도시였던 쉬코드라에 비하면 야경이 정말 화려하다. 사실 쉬코드라의 밤은 그저 암흑 그 자체였으니 아예 야경이 없었다.


더위를 피하던 사람들은 밤이되자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한 달 전 코소보를 같이 여행했던 캐나다인 알렉스와 다시 만났다. 돈이 얼마 남지 않는 나를 위해 맥주를 샀던 알렉스와 이야기를 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저녁에는 일몰을 보러 성을 올랐다. 이미 7시가 지난 시점이라 빨리 가지 않으면 해가 떨어질 것 같아 빠른 걸음으로 단숨에 정상 부근까지 올라갔다. 그리고 올라오는 차를 히치하이킹해서 2분 정도 차를 탔다. 성 자체는 기존에 봤던 다른 성에 비해 초라했다. 내부는 그냥 식당이 있었다.


그러나 일몰은 정말 괜찮았다. 사란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경치, 그 뒤로 강렬한 태양이 서서히 힘을 잃고 산 뒤로 넘어갔다. 


여기서 먼저 출발한 가브리엘과 미국인 하나와 그레이스를 만났다. 땀을 흘리며 올라온 나에게 그들이 건네준 물병에는 물이 아닌 50도짜리 라키가 들어 있었다.


알바니아 여정은 이제 거의 끝나가는데 새로운 만남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다.


저는 지금 세계여행 중에 있습니다. 이 글이 마음에 든다면 다양한 방법으로 도움 및 응원(클릭)을 해주실 수 있습니다. 작은 도움이 현지에서 글을 쓰는데 큰 힘이 됩니다. 세계를 여행하고 있는 배낭여행자에게 커피 한 잔 사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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