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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니(Uyuni)에서 일주일이나 지내는 여행자도 별로 없을 것 같지만 나는 그렇게 오래 지냈다. 우유니를 데이, 선라이즈, 선셋 투어를 다 하고나서야 이렇게 비싼 도시에서 오래 있을 이유도 사라져 수크레로 이동했다.


낡은 버스에 큼지막하게 와이파이가 된다고 써있어 기대를 했건만 우유니 시내를 벗어나자 와이파이 신호는 사라졌다. 그리고 다시는 와이파이를 쓸 수 없었다. 호스텔도 와이파이가 느린 경우가 많았던 볼리비아에서 기대를 많이 했던 내 잘못이 크다. 낡은 버스는 북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구불구불하고 황량한 길이 이어졌다. 멀미가 올 것만 같았다.


볼리비아의 사법수도 수크레(Sucre)로 가기 위해서는 포토시(Potosi)를 들러야 했다. 포토시는 과거 은을 캐던 광산으로 유명한 도시다. 물론 그 이면에는 스페인 정복자들이 은을 많이 캐도록 온갖 비인간적인 노동력 착취가 있었고, 그로 인해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 예전만 못하지만 현재도 광산으로 유명한 곳이라 일부 여행자들은 광산을 체험하는 투어를 위해 이곳을 찾는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은 낡은 건물이 가득해 과거 부가 집중되었다고 믿기 힘들었다. 사실 볼리비아는 남미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다. 포토시 버스터미널에서 내려 수크레로 가는 다른 버스로 갈아탔다. 포토시는 그리 끌리지 않았다.


버스를 타고 이동하니 볼리비아가 남미에서 가장 가난하다는 말을 실감했다. 척박한 환경, 무너지기 직전처럼 보이는 벽돌집, 낡은 옷을 입은 사람들의 거친 피부, 내가 여행했던 아프리카의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딱히 나아 보이지 않았다. 늦은 저녁에 수크레에 도착했다. 지금 짓고 있는 건물보다 식민지 시대에 지어진 훨씬 오래된 건물이 도시를 채우고 있었는데 오히려 더 세련된 느낌이었다. 노란 불빛과 어우러져 유럽의 좁은 골목길을 걷는 것 같았다.


호스텔 체크인을 하고 적당히 먹을만한 곳을 추천해달라고 하자 ‘뽀요’를 알려줬다. 뽀요는 닭고기, 그러니까 볼리비아에서 흔하다 못해 질리도록 먹게 될 치킨이었다. 그나마 치킨은 질려도 먹을 수 있으니 다행이랄까.


숙소에서 날 관심있게 쳐다본 금발머리의 외국인이 아주 당당하게 “아마, 넌 중국인이겠지?” 라고 말했다가 내가 왜 중국인처럼 보이냐는 대답에 무척 당황했다. 나는 한국인이고 중국어는 한마디도 못한다는 말을 하자 그 즉시 미안하다는 말을 건넸다. 물론 내가 이런 것을 이해 못할 여행자는 아니다. 덕분에 네덜란드인 디미트리와 급격하게 친해져 며칠 동안 같이 다니게 되었다.


수크레에 공룡 발자국을 볼 수 있는 곳이 있다고 해서 디미트리와 찾아갔는데 예상치 못한 휴관이었다.


다음날 다시 공룡 발자국을 보러 갔다. 표를 구입하고 들어서니 커다란 공룡이 눈에 들어왔다. 분명 공룡을 보니 반갑긴 한데 어린이들을 위한 놀이동산에 온 것 같았다. 


사실 이곳의 하이라이트는 12시 정각에 있는 공룡 발자국을 볼 수 있는 무료 투어다. 


볼리비아는 과거 지반이 융기하면서 공룡 발자국이 화석으로 남아있는 곳이 몇 군데 있다. 수크레는 비교적 최근에 발견된 곳으로 절벽에 공룡이 이동한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다.


가까이 가서 보면 사람에 비해 훨씬 큰 발자국을 확인할 수 있다. 1시간 동안 화석에 대한 설명을 듣고, 발자국을 구경하는데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옆은 공사장이다.


수크레로 돌아가는 버스를 타면 복잡한 시장을 지나가게 된다. 자연스럽게 볼리비아 현지인들의 삶을 훔쳐보게 된다고나 할까.


확실히 그전까지 여행했던 남미의 여러 나라와는 완전히 달랐다. 아무래도 원주민 비율이 높다 보니 사람들의 모습에서 이국적인 느낌이 많이 풍겼고,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아야 하는 서민들의 삶은 주름이 하나 더 늘게 만든 것 같았다.


짧은 키와 소녀처럼 땋은 머리도 인상적이었지만 알록달록한 보자기가 눈에 띄었다. 정확히 뭐라고 부르는지 모르는 보자기는 여러모로 쓰임새가 많았는데 시장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상인들은 물건을 가득 담거나 아이를 등에 업고 있었다.


디미트리와 전날에도 왔던 식당에 와서 점심을 먹었다. 메뉴판은 없고 매일 메뉴가 바뀌는 독특한 곳이었는데 우유니에서 가지게 되었던 볼리비아 음식은 역시 맛없다는 생각을 단번에 사라지게 해줬다.


볼리비아부터는 매운 소스, 매운 음식을 조금씩 보게 되었는데 내가 이날 먹은 음식은 한국의 닭볶음탕과 똑같은 맛이 났다. 디미트리는 조금 맵지 않냐는 말을 했지만 나는 국물을 떠 먹으며 매콤달콤한 맛에 감동했다. 


우리 옆에는 볼리비아 아저씨, 아주머니가 있었다. 스페인어가 능숙했던 디미트리와 몇 마디 대화를 나누는 동안 나는 전혀 끼지 못했지만 나름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이어갔다. 아저씨는 일어나더니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내 카메라를 달라고 했다. 점심을 다 먹은 후에는 광장을 보여주겠다며 차에 타라고 했다. 


사실 걸어서도 얼마 걸리지 않는 가까운 거리라 망설였지만 아저씨는 외국인에게 수크레를 소개한다는 즐거움이 느껴져 흔쾌히 응했다. 아저씨는 광장을 몇 바퀴 돌고 우리를 내려줬다. 스치는 인연이지만 악수대신 포옹을 하며 따뜻함을 느꼈다.


디미트리가 수크레 전망을 볼 수 있는 곳이 있다고 해서 광장에서 멀지 않은 산 펠리페 네리 교회(Museo San Felipe Neri)를 갔다. 교회인데 입장료를 내는 곳이라 조금 망설였지만 2,000원 정도에 해당하는 15볼리비아노라 부담되진 않았다. 


교회에 들어가면 무료 가이드가 우리를 안내해준다. 어떻게 무료로 가이드를 해줄 수 있냐고 물어 보니 자신은 관광학과에 다니는 대학생이며 경험 및 자원봉사로 이 가이드를 하고 있다고 한다. 어리지만 능숙한 영어에 여유 넘치는 가이드를 받으니 만족스러웠다.


생각만큼 높지는 않지만 빨간 지붕을 내려다 볼 수 있어 무척 좋았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수크레는 가만히 있어도 좋았다고 하는데 나 역시 수크레가 이유 없이 좋아졌다. 좁은 도로와 매연이 가득한 이 도시에는 이상하게 여유가 느껴졌다. 일주일도 머무를 자신이 있었다.


교회에서 내려오니 우유니에 있을 때부터 궁금했던 볼리비아의 간식거리가 있어 하나 집었다. 뻥튀기처럼 생겼는데 맛도 우리나라의 뻥튀기와 정말 똑같다. 가격은 고작 2볼리비아노, 약 300원이었다. 


가로등에 얽혀있는 전선은 무질서하면서도 질서가 있다.


하루는 디미트리가 추천해준 레콜레타(Recoleta)에 올라가기로 했다. 가는 길에 엠빠나다를 하나 사서 먹었는데 빵이 부드럽고 고기와 소스가 너무 맛있어서 다음날에도 먹으러 다시 왔다.


레콜레타로 가는 길은 완만한 경사로라 그리 힘들지 않았으나 날씨가 조금 더워 땀이 나기 시작했다.


끝까지 오르면 넓은 광장에 강아지 한 마리가 누워있는 익숙한 풍경이 드러나고 광장의 뒤로는 수도원과 주차장이 있다. 꽤 많은 사람들이 버스나 택시를 타고 오른다. 수크레에서 제법 유명한 관광지인가 보다.


한쪽에는 기념품 가게가 늘어서 있다. 여행을 오래했지만 기념품은 불필요한 짐이라 생각하고 눈길도 주지 않았는데 남미에서는 계속 멈춰서 보게 된다. 언제 돌아갈지 기약도 없지만 괜히 하나 정도는 사도 괜찮을까 싶어 기웃거렸다.


전망이 좋은 곳은 언제나 카페가 자리를 잡고 있다. 서양인 여행자 입맛에 맞게 적당히 꾸며진 카페는 전망대 바로 아래 있었고, 덕분에 수크레 전망이 확 트인 느낌은 아니었다.


이왕 여기까지 올라온 거 예수상이 있다는 곳까지 올라가기로 결정했다. 지도에서 봤을 때는 그리 멀지도 않아 금방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산 꼭대기에 있어 시간이 오래 걸렸고, 무엇보다 차를 타고 가면 산을 빙빙 돌아 가지만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무수히 많은 계단을 올라야 했다. 그래서인지 나처럼 걸어 올라가는 사람은 볼 수 없었다.


얼굴은 땀으로 범벅이 됐다. 왜 이런 고생을 사서 하나 싶어 헛웃음이 나왔다. 끝나지 않는 계단에 다리가 아파왔다.


더 걷다가는 다리가 풀릴 거라 생각했을 때 정상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규모는 아담했다. 벽돌탑 위에 작은 예수상이 있었다. 


벽돌탑에 작은 문이 있어 들어가봤는데 너구리 굴처럼 담배연기로 가득했다. 카톨릭 교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양초를 태우는 곳인데 사람들은 이곳에 앉아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힘들게 올라왔지만 볼만한 건 별로 없었다. 다른 도시에서는 커다란 예수상이 있거나 전망이 무척 예쁜데 여기서는 벽돌로 만든 탑이 전부였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괜찮아 보이는 식당이 있어 들어가봤는데 시장처럼 여러 사람이 음식을 가져다 놓고 파는 곳이었다.


이번에도 내 선택은 치킨이었다. 정말 질릴 법도 한데 볼리비아에서는 선택권이 별로 없다. 대신 가격이 11볼리비아노로(약 1,200원)으로 무척 싸고 맛도 괜찮았다. 빨간 양념이 들어간 치킨이 매워 돌아오는 길에 콜라를 사서 마셨다. 


수크레에 며칠 머물면서 자연스럽게 늘어졌다. 남들처럼 수크레에서 스페인어 공부를 하고 싶었으나 통장 잔고가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 상황에서 공부를 선택하기가 어려웠다. 같은 시간과 돈이 주어진다면 스페인어 공부보다는 여행이 먼저였다. 거기에 남미를 처음 여행할 때와는 달리 숫자와 같은 아주 기본적인 스페인어는 알아 듣고 말할 수 있어 스페인어 공부가 당장 급하진 않았다. 다음에도 기회가 있겠지.


낮에는 날씨가 더워 절로 아이스커피가 생각났다. 마침 광장 부근에 있는 괜찮은 카페에서 내 취향에 딱 맞는 커피를 마실 수 있었다. 밥을 먹을 때는 얼마나 싼지 찾아다녔는데 그보다 두 배나 더 비싼 커피는 아무렇지도 않게 마시다니 정말 이런 커피가 그리웠나 보다. 어쩌면 도시가 그리웠는지도 모르겠다.


해가 질 무렵 광장에 앉아 사람을 구경하고 강아지를 구경했다.

해가 진다. 이제 볼리비아가 익숙해진 것 같다.


저녁은 어디서 먹으면 좋을까 고민하며 정처 없이 골목을 돌아다녔다. 낮에는 익숙해 보이던 곳이 밤이 되자 낯선 곳처럼 느껴져 길을 잃고 말았다. 수크레에서 며칠이나 지났는데 처음 보는 골목과 광장이 나왔다. 항상 여유있게 여행을 한다고 할 때면 오히려 남들보다 놓치는 곳이 많다. 어쩌겠는가. 그만큼 게으른 여행자인걸.


지도에서 항상 보던 중앙시장도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가봤다. 잡다한 물건이 가득한 시장 구경은 여행의 즐거움 중 하나지만 배가 너무 고파 대충 보고 나왔다.


좁은 골목을 가득 메운 사람들 사이로 까만 피부의 소녀가 눈에 들어왔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걷고 있는데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꽃을 팔고 있었다. 길가에서 그냥 꺾어온 것 같은 그런 꽃을. 단지 불쌍하다는 이유로 바라봤던 것은 아니었는데 왜 나는 이 아이가 눈에 띄었을까.


밤이 깊어지자 시원한 공기가 가득했다. 매연 가득한 동네 골목이 시원하다고 착각하게 만들었다. 수크레에서 별 거 하지 않았는데 순식간에 일주일이 지났다. 다시금 무거워진 몸을 이끌고 떠나야 하는 여행자로 돌아가고 싶어졌다. 물론 별 거 하지 않은 수크레를 떠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강했지만, 느릿느릿해도 어차피 나는 떠나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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