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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스코 버스터미널에 도착하니 여기저기서 삐끼가 달라붙었다. 아레키파로 간다는 말에 서로 이쪽에서 버스를 타라고 난리였는데 정말 정신이 없었다. 페루는 같은 노선이라도 여러 버스 회사가 운행하고 있어 경쟁이 치열했다. 여행자가 가장 많이 찾는 쿠스코는 말할 것도 없다. 가격이 어느 정도인지 살펴보려고 떠 봤는데 더 낮은 가격의 버스 회사를 소개해 주거나 조금씩 가격이 깎였다. 버스 가격도 흥정이 가능하다니 재밌다. 마침 내 옆에 있던 독일 여자 2명도 버스를 알아보고 있다가 같이 협상 테이블에 앉게 되었다. 조금 더 넓은 좌석인 까마(Cama)가 40솔이라고 했는데 가격을 조금 더 깎아 35솔에 샀다.


페루 제 2의 도시 아레키파(Arequipa)에는 아침에 도착했다. 호스텔에 도착해 체크인을 했지만 아직 시간이 되지 않아 침대에서 쉴 수는 없었다. 딱히 할 일이 없었던 나는 마침 로비에 있던 프리워킹투어 종이를 보고 나갔다. 야간 버스를 타고 와서 몸이 조금 피곤하긴 했지만 익숙하지 않은 도시에서 워킹투어를 하면 빨리 적응할 수 있다.


워킹투어는 호주에서 온 부부 여행자와 나밖에 없었다. 게다가 영어 가이드가 아니라 스페인어 가이드가 대신 나왔다고 했다. 다행히 영어를 아주 못하는 가이드는 아니었고 최선을 다해 알려주려고 했다. 가끔 말문이 막힐 때면 우리가 괜찮았다고 호응해줬다. 


아레키파 중심에 있는 대성당을 구경한 후 곳곳에 있는 작은 성당을 돌아다녔다. 보통 성당의 내부만 잠깐 들어갔다 나오기 마련인데 나는 가이드의 설명에 따라 이곳저곳 살펴보게 되었다. 특히 건물 내부와 외부에 있는 작은 조각, 그러니까 천사나 아기 예수에 대한 설명이 많았다.


가이드의 말 중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바로 남미의 '최후의 만찬'이었다. 자세히 살펴보면 평상시 우리가 보던 그림과는 많이 다르다. 가운데는 페루에서 많이 먹는 기니피그 요리인 꾸이가 자리 잡고 있고 다른 음식도 전부 남미에서 나오는 것들이다. 페루인들에게는 유럽의 음식이 생소할 수밖에 없으니 자신들의 음식으로 채워 넣은 것이다. 똑같은 그림이지만 문화적인 배경에 따라 달라진다니 무척 재미있다.


아레키파는 근처에 화산이 많다고 한다. 근처에 무려 18개의 화산이 있다고 하는데 가장 최근에 있었던 폭발은 15세기라고 가이드는 설명했다. 아레키파는 화산 활동과 지진이 늘 있는 곳이라 성당의 일부가 무너지거나 벽화가 깨진 것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건물을 지을 때도 화성암을 주로 사용했다고 한다.


가이드를 따라 아레키파의 대표적인 시장인 메르까도 산 까밀로(Mercado San Camilo)에 갔다. 실내에서 있어 깔끔한 편이고, 볼거리가 풍부했다. 특히 한쪽에는 볼리비아 라파스 마녀시장에서 봤던 허가되지 않은 각종 약재나 이상한 제품을 팔고 있었다. 페루 사람들은 여전히 그러한 제품이 효과가 있다고 믿는가 보다.


어느 나라를 가더라도 시장 구경이 가장 재미있는 것 같다.


가이드를 따라 치차도 마셔봤다. 치차는 페루뿐만 아니라 남미에서 즐겨 마시는 발효주인데 약간의 알콜이 있기도 하다. 시장에서는 커다란 양동이를 들고 와서 한 잔씩 팔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발효주인만큼 맛은 시큼하다. 


달콤한 과일향이 가득하다.


가이드와 함께 시장을 한 바퀴 둘러본 후 다시 아르마스 광장으로 돌아왔다. 우리는 식당으로 들어가 피스코사워가 아닌 코카사워를 시음했다. 페루니까 마약의 원료인 코카잎으로 칵테일도 만든다.


워킹투어 일정을 모두 마친 후 허기를 채우기 위해 다시 시장으로 돌아왔다. 숙소에서 거리가 멀긴 했지만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은 내가 아레키파에 머무는 동안 시장에 자주 올 것만 같았다. 실제로 그랬다.


가볍게 세비체를 먹었다. 시큼하고 고수의 향이 느껴져 세비체를 싫어하는 사람이 더러 있지만 나는 항상 맛있게 먹었다. 페루를 여행하는 동안 세비체를 거의 매일 먹었을 정도로 자주 먹었다.


작은 의자에 쭈그려 앉아 커다란 컵에 담겨 나온 상큼한 과일 주스는 후식으로 최고였다. 다 마시고 "야빠!"라는 말을 하면 믹서기에 남아있는 과일 주스를 더 준다. 물론 말을 하지 않아도 더 주는 경우가 많긴 하다. 독일 친구로부터 배운 스페인어 야빠의 정확한 뜻은 모르겠으나 우리로 치면 '서비스'에 가깝다. 남미를 여행하는 동안 자주 써먹었다.


빵에 웬 아저씨 얼굴이 붙어있다.


아르마스 광장을 잠시 거닐어본다. 쿠스코의 아르마스 광장도 무척 인상적이었지만 아레키파의 아르마스 광장은 '예쁘다'는 말이 어울렸다. 작은 정원처럼 꾸며진 공간 뒤로 흰색 건물이 사방에 배치되어있다.


아레키파는 페루 제 2의 도시지만 그리 크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심지어 아르마스 광장 주변은 한적하기까지 했다.


아레키파 도시 내에는 관광지라고 할만한 곳이 많지 않았다. 그 중 가볼 만한 곳이 산타 카탈리나 수도원(Monasterio de Santa Catalina)인데 알록달록한 색상으로 더 유명하다. 입장료는 40솔로 조금 비싼 편이었다.


평소라면 수도원은 관심 밖이었을 거다. 파란색과 빨간색으로 칠해진 내부는 무척 독특했을 뿐만 아니라 규모도 굉장히 컸다. 중간에 있는 나무와 작은 정원이 수도원을 더욱 아름답게 꾸며줬다. 


스페인이 잉카제국을 정복한 후 페루인들에게 남아있는 '태양신'을 지우고 자신들의 카톨릭을 전파하기 위해 이 수도원이 세워졌다고 한다. 산타 카탈리나 수도원은 1579년부터 1970년까지 약 400년 간 역할을 하다가 개방된 곳이다. 수녀들이 생활했던 곳이라 수녀원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고개를 들어 보면 곳곳에 있는 성화가 눈에 띈다. 


수녀들이 이곳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작은 침대가 놓여 있는 방, 불을 피운 흔적이 남아있는 부엌도 살펴볼 수 있다.


지금은 관광객들에게 개방된 곳이라 꽃을 놓고 예쁘게 꾸며 놓았다. 성가가 잔잔히 울리고 꽃 냄새가 코끝을 자극한다.


미로같이 복잡한 골목을 걸으며 과거로 돌아갔다. 비슷한 장소가 계속 나오기도 하지만 과거 종교를 의지하며 이곳에서 생활했던 수녀들의 삶을 엿볼 수 있어 의미가 있다. 그런데 의외로 이곳에 온 수녀들은 스페인 귀족들의 자녀라 많은 지참금을 내고 하녀도 거닐 수 있었다고 한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수도원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완전히 관광지로 바뀐 수도원에는 현재 수녀들이 없고, 근처 현대식으로 지어진 수녀원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수도원 그 자체로도 박물관의 역할을 하지만 어느 방에 들어가면 성화나 당시 쓰였던 물건들로 가득하다. 


천지창조와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고 쫓겨나는 장면이다. 개신교나 이슬람교에서는 신을 특정 이미지로 구체화하고 보이는 것을 숭배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성화도 금지하고 있지만, 카톨릭의 경우 성화에 관대한 편인데다가 오히려 식민지 건설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활용되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토착신앙이 아닌 카톨릭을 믿게 하기 위해서는 그림만큼 좋은 것이 없었을 테니까. 


아레키파에서는 알 수 없는 이유로 며칠 더 지내게 되었다. 쿠스코에 비해 물가가 저렴해 정말 좋았다.


어김없이 시장에 가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평소 먹어보지 못했던 음식이 보여 시도해봤다. 큰 고기 덩어리를 썰어 줬는데 돼지 껍데기에 고기가 조금 붙어 있었다. 이름을 물어보니 치차론이라고 했다. 딱딱한 부위도 조금 있지만 고기가 부드러워 보쌈을 먹는 느낌이었다. 나중에 여행을 더 하다 알게 되었는데 보통 치차론은 돼지 껍데기 부위를 튀겨서 만드는 음식인데 이렇게 고기가 붙어있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치차론 과자도 있는데 그리 맛있지는 않았다.


원래 내 계획은 아레키파에서 3일 정도 지내다 떠날 생각이었다. 그런데 페루에 들어온 날부터 사진으로 봤던 콜카캐년이 바로 아레키파에서 출발한다. 얼마간 갈까 말까 망설이기를 수십 번, 결국 여행사에서 7솔이나 깎아준다는 말에(보통 50솔) 예약을 해버렸다. 콜카캐년은 트레킹으로도 갈 수 있지만 나는 투어를 이용해 당일치기로 떠났다. 새벽에 일어나 정신 없이 달리다 보니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고지대라 그런지 무척 추워 몸이 덜덜 떨었다.


아침을 간단히 해결한 후 우리는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크게 볼거리가 있는 곳은 아니었고 작은 성당이 하나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투어는 이곳을 꼭 거쳐가야 하는지 기념품을 파는 노점이 꽤 있었다.


높은 산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다.


알파카를 마치 애완동물처럼 데리고 다니는 사람들이 몇 있었다. 당연히 팁을 목적으로 관광객들에게 사진을 찍으라고 꼬신다.


야마와 독수리를 양 옆에 두고 사진을 찍는 남자는 무척 즐거워 보였다.


콜카캐년은 미국의 그랜드캐년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깊다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계곡의 깊이가 무려 3,270미터다.


사진에서 봤던 그 장소, 콜카캐년 전망대가 보였다. 전망대 앞은 끝을 알 수 없을 정도의 깊은 계곡이다.


날개를 활짝 펴고 비행하는 콘도르가 내 머리 위로 지나갔다. 많은 사람들이 콜카캐년에서 기대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콘도르를 직접 보는 것인데 간혹 보지 못했다는 후기도 있다. 나 역시 콘도르는 딱 두 마리만 봤다.


아무래도 멀리서 비행하고 있어 콘도르를 사진으로 담기란 무척 어려웠다.


계곡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사람들은 사진을 찍는데 정신이 없었다.


사실 기대를 많이 했었는데 짧은 시간 동안 돌아본 콜카캐년은 그리 만족스럽진 않았다. 콜카캐년으로 들어올 때 외국인은 입장료로 70솔이나 내야 했던 것도 아까웠다. 어쨌든 여기까지 왔으니 사진은 하나 남겼다.


다음 장소로 이동한 곳에는 작은 박물관이 있었다. 기념품 상점과 코카사워를 팔고 있었지만 그리 흥미를 느끼지 못했고 대신 바로 앞에 있던 알파카와 놀았다. 


알파카에게 먹이를 주던 아이가 더 귀여웠다.


다른 사람들도 나와 생각이 크게 다르지 않은지 알파카 무리에게 관심을 보였다.


내 친구 알파카와 사진을 찍었다.


가이드는 사진 찍기 좋은 장소가 있다며 차를 세웠다. 아쉽게도 근사하게 펼쳐진 이 계곡을 사진으로 다 담을 수 없었다.


투어의 마지막 일정은 생뚱맞게도 온천이었다. 여기도 입장료를 내야 하고 애초에 난 수영복도 가지고 오지 않아 밖에서 시간을 때웠다.


반대편에 있는 이곳도 온천인지 탕 안에 사람들이 있었다.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해 아래로 내려가 봤다. 나처럼 온천에 가지 않은 사람들은 근처 풀밭에 앉아 쉬거나 간식을 먹고 있었다. 나는 미국 아저씨랑 친해져 몇 마디 나누게 되었다.


이런 고지대에도 마을이 있는 법, 아이들 몇 명이 개울가에 앉아 있었다. 말을 걸어보려 해도 별로 반응이 없었다. 점심을 먹으러 이동했을 때는 부페만 팔고 있어 내키지 않았다. 나는 비싸다고 밥을 먹지 않았는데 밖에 나갔다 온 미국 아저씨가 빵을 사와서 나에게 내밀었다. 미국 아저씨는 평소 여행을 다니면서 영상을 촬영하고, 사진도 편집해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있다고 나에게 보여줬다.


또 어디로 이동해 도착한 곳은 작은 돌탑이 가득했던 곳이었다. 현재 우리가 있는 곳이 5,976미터인 것인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머리가 띵하게 아파올 정도로 고지대라는 것은 분명했다.


바람도 세차게 불어 한기가 느껴졌다. 원래 콜카캐년 투어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야마와 알파카를 보는 시간이 있는데 어찌 된 일인지 바로 아레키파에 도착했다.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야마와 알파카가 보이지 않아서 그냥 왔다고 했다.


저녁에는 다시 아르마스 광장으로 나왔다. 평소와 달리 지나가기 힘들 정도로 사람들로 빼곡해 특별한 공연을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니 주민들이 나와 미사를 드리고 있었다.


가격이 그리 비싸지 않은 것 같아 아레키파 대성당이 보이는 2층에서 저녁을 먹었다. 야경도 근사했고 저녁도 나쁘지 않았다. 혼자라는 사실만 빼곤.


아레키파를 떠나기 전 야나와라 전망대(Mirador de Yanahuara)로 걸어갔다. 다리를 건너고 좁은 골목길을 따라 조금 걸어야 했다.


전망대는 그리 높지 않다. 그래도 주변이 탁 트여 경치를 바라볼 수 있고, 무엇보다 저 멀리 있는 미스티 산이 잘 보인다.


아레키파 사진을 보면 항상 뒤에 보이던 산이다.


특별한 것은 그리 많지 않아도 아레키파가 마음에 들었는데 페루에서 너무 몸이 무거워진 것 같아 떠나기로 했다. 다음 목적지인 이카(Ica)까지는 거리가 멀어 야간 버스를 타는 게 아무래도 좋아 보였다.


버스터미널에 도착하면 쿠스코처럼 여러 명의 삐끼가 달라붙을 줄 알았는데 아무도 나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평소에는 그렇게 귀찮다고 여겼는데 아무도 오지 않으니 뭔가 외로웠다. 삐끼가 없었으니 내가 직접 버스 회사를 돌아다니며 가격을 물어봐야 했다. 너무 많은 버스 회사가 있어 어떤 곳이 괜찮을지 고민이 됐다. 이름이 있는 버스와 가격 차이는 거의 2배였다. 


그때 내 옆에 있던 한 가족이 이것저것 조언을 해줬다. 유창하진 않지만 영어로 대화를 나눌 수 있어 무척 반가웠다. 이카까지 적당한 가격을 알려줬고, 나는 카운터로 가서 가격을 조금 깎아 40솔에 표를 구입했다. 다시 돌아와 표를 구입했다고 하니 잘했다며 이야기 꽃을 피웠다. 놀랍게도 나보다 한참 어린 20대 중반이었고, 여동생은 케이팝을 좋아한다며 수줍게 한국말 몇 마디를 꺼내면서 음료수를 하나 줬다. 아주머니는 그런 우리를 보며 웃음을 지었다. 여행을 하다 보면 잠깐이지만 호의가 베풀던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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