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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는 2006년 해외봉사를 다녀온 후 2008년에 개인적으로 다시 같은 곳을 방문한 이야기입니다.

학원을 졸업하고 나는 무작정 올랑고로 향했다. 일반적으로 학원을 졸업하고 곧바로 비행기를 타는 수순을 밟겠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이미 출발할때 부터 2주정도 더 머무른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어쨋든 나는 필리핀에서 2주동안 계획도 없이 무작정 체류하게 되었다. 정말 대책 없었다. 또 다시 발동한 나의 '그냥 어떻게든 되겠지...' 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 렇게 찾아간 올랑고. 가자마자 나는 정말 대책없이 오긴 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곳은 말하자면 아무것도 없는 그런 곳.그런데 내가 이 곳에서 있겠다라는 생각은 조금은 '염치 없는 짓'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이미 난 갈 곳이 없는몸이었다.

이 날 저녁은 폴네 집에서 머무르게 되었다. 폴네 집에서 내가 가져온 노트북가지고 영화도 보여주고 사진도 보여주고 놀다 보니 여차저차해서 폴네 집에서 자게 되었던 것이었다.

다 음 날 아침 사방에서 울리는 시끄러운 닭울음 소리에 잠이 깨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온 집들이 닭을 키우다보니 새벽 5시만 되면닭들이 여기 저기서 울어댄다. 이게 8시까지 지속된다. 원래 내가 한국에서는 게으르기도 하지만, 해외에서는 정말 부지런한편이다. 그래도 5시는 이르긴 이른 시각이다.

너무 폴네 집에서 머무르는게 미안해서 예전부터 머물러도 좋다고 했던 티나네 집으로 갔다. 대충 짐을 놓고는 밖을돌아다녔다. 그리고 만난 아저씨들 닭들을 목욕시키고 있었다. 푸핫~ 강아지 목욕은 봤어도 닭들을 저렇게 목욕시키는 것은 처음본다. 아주 정성스럽게 닦아내는 모습에서 이들이 얼마나 닭들을 좋아하는지 알게 된다. 물론 그 닭자체보다는 닭싸움이라고 하는게맞다.



너도 언젠가는 싸움터에 나갈 닭이로구나!

그 바로 옆에는 엘머가 있었다. 엘머가 닭싸움 구경하러 가지 않겠냐고 해서 나는 좋다고 따라갔다. 2006년에 이 곳에 왔을 때도 닭싸움을 처음 본 적이 있었는데 ([필리핀해외봉사 2006] - 올랑고의 도박장 닭싸움장에 가보다!) 처음에는 잔인하다고 생각되었지만 생각보다 볼만했다. 집에 있는 오토바이를 끌고 나온 엘머와 함께 옆 마을로 놀러갔다.



도착해서 내렸는데 한 눈에 저쪽에서 닭싸움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멀리서부터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니 한참 싸움이 진행중인가 보다.

닭싸움은 사실 남자들의 주 놀이 문화인듯 보였다. 죄다 남자밖에 없다.



닭싸움은 간단하면서도 순식간에 끝날 때도 많지만 사실 여러 과정을 거친다. 사회 또는 심판을 보는 사람이 닭싸움을 원하는 사람을 찾는다. 한쪽이 준비되면 다른 한쪽도 준비하고, 그러기 전에 뒤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닭을 쓰다듬으면서 다른 닭과도 연습시켜 보기도 한다.

대부분 사람들이 유심히 지켜보면서 언제쯤 내 닭이 투입되는게 좋을까 혹은 언제 돈을 거는게 좋을까라고 기웃거린다. 그래서인지 닭싸움이 시작되는데는 시간이 좀 오래걸리는 편이었다.


닭싸움이 결정이 되면 각 닭들의 다리에 칼을 착용한다. 대부분 이 부분에서 잔인하다는 느낌을 가지게 된다. 아주 날카로운 칼을 착용하고 별다른 문제점이 없는지 확인한 후에야 비로소 싸움터에 올라선다.

전쟁터에 나가는 사람들처럼 비장함마저 느껴지는데 싸움터에는 닭들의 주인과 심판들만 올라설 수 있다. 심판은 먼저 칼집을 빼지 않고 닭들을 살짝 싸움을 시켜보인다. 그 이유는 사람들에게 돈을 더 많이 걸게 하기 위한 일종의 쇼맨십이 될 수도 있고, 닭들이 서로 화나게 만들어야 싸움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부러 한쪽을 쪼게 만들고, 또 다른 한쪽의 닭이 다른 쪽을 쪼게 만든다.

적당히 사람들이 돈을 건다고 생각되면 이제 칼집까지 빼고 닭싸움이 펼쳐진다. 칼은 달았지만 닭싸움이 피가 튀긴다거나 칼에 찔려 어디가 잘려나간다는 그런 끔찍한 광경은 나오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닭들의 기세라고 해야할까? 이 기세에 눌려서 한 닭이 도망가기도 하고, 오히려 더 높이 날아 올라 부리로 쪼으기도 한다.



'푸드덕~ 푸드덕' 날라다니는 소리와 함께 사람들의 함성이 쏟아진다. 먼지와 깃털이 공중에 날리는 와중에도 사람들은 오로지 닭들에게만 시선이 간다. 다만 사람들 틈에서 캠코더를 들고 있다보니 각도가 나오지 않아서 제대로 찍지도 못했다.

처음에는 잘 몰랐지만 필리핀 사람들이 닭싸움에 열광하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다. 어차피 돈이 걸린 내기라서 그럴수도 있다. 우리가 복싱이나 격투기에 열광하듯이 이들도 오랫동안 사랑을 받아온 닭싸움 속에는 사람들의 함성을 부르는 에너지가 있었다. 애나 어른이나 할 것 없이 닭싸움이라면 미쳐서 소리를 지른다.

닭싸움 꽤나 스릴있다. 물론 싸움에서 진 닭은 곧바로 퐁당 냄비속으로 들어가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