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과연 태국은 무지하게 더웠다. 겨울이었던 호주에서 건너왔던 나로써는 이 더운 날씨가 반가웠던 것도 잠시 또 불평을 하게 만드는 요인이었던 것이다. 한번 나갔다오면 샤워는 하지 않고서는 못 베기는 그런 날씨였다. 하루에 3번 이상은 꼭 샤워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샤워를 하고 난 후 나는 카오산에서 걸었다. 딱히 할 일도 없었지만 그냥 사람 구경, 옷 구경, 시끄러운 음악 소리 감상 등 이 거리에서는 심심할 것이 별로 없었다.


날이 점차 어두워지면서 카오산은 더욱 활기를 띄었다. 이 짧은 길 위에 사람들이 가득했고, 길 양 옆에는 낮에는 안 보였던 상점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대부분은 서양인들로 가득했던 이 독특한 곳은 더이상 태국이 아니었다. 사실 카오산은 예전에 비해 여행자들이 너무 넘쳐 본래의 싸고 좋은 곳보다는 그저 비싼 동네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미있는 공간이었다. 그냥 카오산 자체로도 즐거웠다.


거리에서 팔고 있는 망고가 날 유혹했다. 거리에서 팔고 있는 달콤한 과일들은 보통 10~20밧(300~600원)정도면 먹을 수 있는데 파인애플은 수 없이 사먹었다.


보통 카오산에서도 한국인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데 이 때는 거의 볼 수가 없었다. 생각해보니 6월 중순 아직은 많은 학생들이 태국으로 오지 않았나 보다. 그래서 그런지 나중에 캄보디아를 갔다가 돌아오니 부딪히면 한국인들이었을 정도로 정말 많이 보였다.


카오산을 구경하는 것으로도 심장이 두근 두근거릴 정도로 즐거웠다. 무언가 새로운 에너지가 나의 몸 안에 들어와서 막 발산하는 것처럼 혹은 오랜 친구와 만나 옛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카오산을 볼 때마다 예전 기억이 떠올라서 너무 신났다. 양 옆에 있던 주점에서 시끄럽게 흘러나오는 음악소리가 나를 계속해서 정신없도록 때려댔다.


카오산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어두워진 밤거리를 돌아다니며 이 흥분되는 기분을 만끽했다. 상대적으로 조용했던 호주의 밤거리에 비해 여기는 완전히 반대였다. 아니 태국도 우리나라처럼 새벽에도 북적거린다. 그게 카오산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나는 전 날 사람들을 만났던 거리의 주점에 다시 눌러 앉았다. 역시 맥주를 혼자 마시면서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었는데 그 때 옆에 앉아있던 한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이 친구는 영국에서 왔다고 했는데 잠깐이었지만 너무 재미있었다.


애석하게도 한국에는 와보지 못했다고 했는데 빈말이었을지는 몰라도 꼭 가보고 싶다고 얘기를 했다. 이상하게 영국 친구한테 호주의 지루함을 이야기하니 공감이 된다는 듯이 무척 즐거워했다. 그리고는 이 친구도 나와 사진을 찍자고 먼저 제안을 해왔고 나도 내 카메라로 사진을 한번 더 찍었다.

그리고는 내 캠코더를 들이 밀고는 나에게 어떤 메세지를 줄 수 있냐고 했다. 필리핀, 호주를 거치는 동안 나는 여러 사람에게 메세지를 영상으로 받고 있었는데 그걸 태국에서도 하고 싶었던 것이다. 흔쾌히 응했던 3사람은 나에게 메세지를 남겨줬다. 이 친구들은 사진을 같이 찍은 뒤에 나와 악수를 하고 헤어졌다.


나는 옆에 있던 호주인 아저씨, 그리고 태국인 2명과 같이 놀고 있었다. 전 날 만났던 태국인은 자신의 친구와 함께 놀러왔는데 이 때 술이 잔뜩 취한 한국인 한 명이 같이 있었다. 하지만 이 사람은 썩 마음에 들지 않았던게 술을 얼마나 먹었는지 몰라도 정신이 없어 보였다. 게다가 같이 있던 태국인 여자의 무릎에 엎드리려고 하기도 했었다. 난감해 하던 태국인에게 내가 대신 사과를 해야만 했다. 거의 우리끼리 놀았다.


내가 한국인이라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 '한국 사람이예요?' 라고 했던 아저씨들과도 만나 사진도 찍었다. 어색하게 하던 한국말이었지만 꽤나 수준급인 모로코 아저씨들이었는데 삼겹살과 소주가 그립다는 이야기에 웃음이 터져버렸다. 

그 이상한 한국인은 우리 앞 테이블에 있던 외국인들과 앉아서 이야기를 하는데 여전히 술에 취해서 이상한 소리만 하고 있었다. 그렇게 30~40분 있더니 어디론가 비틀 비틀 가버렸는데 자연스럽게 앞 테이블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한국인이었는데 그냥 신경쓰지 말라고 이야기를 하니 이해한다고 얘기를 했다. 그렇게 이야기를 주고 받다가 아예 자리를 같이 하자고 했다. 이들 역시 영국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패트릭, 조지아, 브라운이라고 소개를 했던 이 친구들과 어찌나 재미있게 놀았는지 아예 날 새는 분위기였다. 이들은 너무 재미있다면서 우리에게 술을 사기도 했다. 이미 태국과 라오스 캄보디아를 여행하고 이틀 뒤에 영국으로 돌아간다고 했는데 무척 아쉬워 했다. 조지아는 특히 캄보디아가 아주 강렬하게 느껴졌는지 캄보디아 이야기를 할 때 열변을 토했다.

그리고 항상 한국 사람이라고 하면 단골로 들어오는 질문이 바로 북한에 대한 것이었다. 한국이 북한과 대치 상태인데 위험한거 아닌지 아니면 북한 사람들과 만나거나 여행할 수 있는지 매우 궁금해 하는 것이었다. 물론 우리는 휴전 상태이지만 안전한 나라라는 것과 북한에는 일반인들이 갈 수 없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 다음 질문이 무척 어렵다. 왜 북한과 나누어졌는지 북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나에게 질문했다. 영어로 답한다는게 이럴 때는 참 어려운 것 같다.

그래도 이들은 나보고 영어를 잘한다고 칭찬을 해주었다. 물론 내가 영어를 잘하지 않았지만 이들은 내가 영어로 말을 한다는게 신기했는지 알아듣고 말을 할 수 있으니 그런 얘기를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이어진 조지아(여자)의 다소 충격적 발언이 나왔다. 내가 먼저 영국은 화폐 가치도 높고, 영어를 따로 공부할 필요도 없으니 여행하기에 정말 좋겠다는 부러움을 표시했다. 그랬더니 조지아는 그 말은 어느정도 맞긴 하지만 자신은 다른 나라 사람들이 다양한 언어를 접할 기회가 있다면서 영국은 영어만 할 줄 안다고 다른 나라의 문화, 언어를 익힐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정말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이들이 이런 사고를 가지고 있었을 줄은 정말 몰랐다.

"너는 영어도 할 줄 알고, 한국어도 할 줄 아니까 최소한 2개국어를 하는 거잖아. 나는 그게 더 부러워!"


나는 꼭 외국 친구들을 만나면 한국에도 와보라고 얘기해준다. 이 친구들은  한국에 꼭 와보고 싶다는 말을 했고, 이메일을 달라고 했다. 그러면서 혹시나 영국에 오면 꼭 연락을 하라고 했다. 이메일도 주고 받으면서 런던의 어디가 좋은지 직접 써주기도 했다. 그러면서 사진을 같이 찍었다. 이미 새벽 4시가 넘어간 시점이었는데 우리는 새벽 5시 반까지 놀다가 헤어졌다.

신기했던 것은 혼자이긴 했어도 전혀 외롭거나 심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태국에 있는 동안 항상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같이 놀고, 이야기할 수 있어서 너무 즐거웠다. 오히려 영어권의 나라였던 호주보다도 더 많은 외국인들을 만나고 더 많이 영어로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기회가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나에게는 겉모습은 화려했던 호주보다도 더 즐거웠던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 아닐까? 사실 호주는 나에게 너무 심심한 나라였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