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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의 게스트하우스는 정말 좁았다. 딱 침대 하나 놓여져있는 공간에서 잠을 청해야 했는데 창문쪽에 달려있던 에어컨은 작동도 하지 않았다. 에어컨이 있다고 은근히 좋아했는데 그냥 장식품이었던 셈이었다. 내가 묵었던 게스트 하우스는 100홍콩달러로 무척 저렴한 숙소였기 때문에 이렇다 할 편의시설은 기대하기 어려웠다. 어차피 홍콩에 있는 동안 아침부터 밤까지 돌아다녔기 때문에 잠만 자는 공간이어도 괜찮았다.

아침부터 재빨리 씻고 나갈려고 보니 카운터 바닥에서 직원 2명이 자고 있었다. 이들에게는 이곳이 자신들의 직장이자 집이었던 것 같다. 벽면을 보니 커다란 네팔 지도가 붙어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네팔인인가 보다.  


청킹맨션은 확실히 이상한 건물이었다. 엄청나게 커다란 건물 안에 상점이나, 게스트 하우스가 들어서 있는데 구조도 참 복잡해서 미로를 연상케 했다. 또 오래된 건물이라 그런지 바깥으로 보이는 창문이 아니라 내부 창문을 들여다 보면 이런 파이프와 쓰레기 더미에 영화 '매트릭스'의 또 다른 세계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청킹맨션에 있는 게스트하우스는 대부분 이런 구조로 되어있었고, 같은 층에도 게스트하우스가 3개는 더 있었다. 조금은 음산해 보이기까지 하지만 다른 어떤 나라에서도 이런 구조의 게스트하우스를 볼 수 없어서 신기하기만 했다. 사실 내부로 들어가면 좁긴 하지만 나는 적당히 지낼만 했다. 그리고 청킹맨션뿐만 아니라 홍콩의 다른 게스트하우스도 대부분 이런 식으로 커다란 빌딩 안에 게스트하우스가 여러 개 있던 것 같았다.

엘레베이터를 타고 아래로 내려오니 까무잡잡한 친구들과 카레 냄새가 가득했다. 청킹맨션에는 유난히 인도계열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청킹맨션 내부에는 사설 환전소가 무척 많았는데 바로 옆이라도 천차만별이었다. 그 중에서 가장 좋은 곳으로 가서 100호주달러를 환전했다. 홍콩에 있는 동안 돌아다니면서 많은 사설 환전소를 봤지만 여기가 가장 좋게 쳐줬다. 환전소는 많았지만 각 환전소마다 차이가 큰 편이었다.  


홍콩에는 늦은 밤에 도착했기 때문에 거리도, 사람도 제대로 볼 수 없었는데 아침에 보니 바쁘게 지나다니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수 많은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는데 '나는 이제 어디로 가야하나?'라는 식의 대책없는 생각이 들었다.


화려한 홍콩이라 그런지 대낮에도 네온사인을 켜놓고 있었다.

 

거리를 무작정 걷다가 구룡공원(Kowlooon Park)이 보여 그냥 들어가봤다.


구룡공원은 꼭 호주의 큰 도시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보타닉가든을 연상시킬 만큼 도심 속 녹지공간이자 주민들의 쉼터로 이용되고 있었다.


저건 뭐지? 지나가다 한 아저씨가 옷도 벗은채로 무언가에 심취하신 모습을 보았다. 쿵후일까? 아니 손을 천천히 저으면서 발을 이동하는 모습이 태극권 같아 보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난 그저 독특하신 분이라고만 생각했다.


구룡공원에는 재미있는 조형물이 몇 개 있었다.


공원을 걷다 보니 아까 전 그 아저씨만 독특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번에는 한 사람이 손을 휘휘 저으면서 다른 한 사람에게 알려주고 있었다. 홍콩영화나 중국영화를 보면 흔하게 등장하는 소재가 소림무술이기는 하지만 이렇게 쉽게 공원에서 볼 수 있을 줄은 몰랐다. 당연히 보는 외국인의 눈에는 재미있는 광경이었다. 이미 나에게 구룡공원은 관심 밖이었다.


맙소사! 이번에는 칼을 들고 무술 연마를 하고 계셨다. 느리게 움직이는 무용같은 동작으로 봐서는 태극권이 맞는 듯 한데 나야 직접 물어보지는 않았으니 알 수는 없고, 오로지 추측만 할 뿐이었다. 이 후에도 홍콩을 돌아다니면서 넓은 공터나 공원같은 곳에서는 저런 광경을 많이 목격할 수 있었다. 아마도 홍콩인들의 생활 속에서 태극권이란 꼭 무술이나 격투기를 연마한다기 보다는 자신들의 건강을 유지하는 일종의 운동이라는 개념으로 자리잡은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