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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레 파고다 앞에서 멍하니 있다가 이내 숙소를 찾아나섰다. 술레 파고다 주변에는 여러 게스트하우스가 몰려 있었기 때문에 큰 걱정은 하지 않았지만 처음 양곤에 도착했을 때도 방이 하나도 없어서 퇴짜 맞았던 적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역시 내 생각대로 오키나와 게스트하우스와 가든 게스트하우스는 방이 없었다. 다시 술레 파고다 앞에서 어디로 갈지 멍하니 고민만 했다. 마치 미얀마에 이제 막 도착한 서툰 여행자처럼 말이다. 

배낭속에 넣어뒀던 론리플래닛 동남아 슈스트링을 꺼내들고 주변의 숙소가 어디있는지 천천히 살펴봤다. 가만보니 술레 파고다 주변의 메이샨 호텔이 론리플래닛의 추천 숙소였던 것이다. 거리도 술레 파고다에서 2분 거리에 있을 정도로 매우 가까웠다. 

메이샨 호텔에 들어서서 먼저 가격부터 물어봤다. 중국계 아주머니에게로부터 15달러라는 말을 듣자마자 밖으로 나왔다. 내가 원하는 적정수준의 가격은 아니었던 것이다. 

다시 론리플래닛의 지도를 살펴보고 있을 때에는 이미 날은 상당히 밝아진 상태였다. 이제 내 앞에 있었던 황금빛 술레파고다는 조명이 꺼져있었고, 도로에는 차량들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내가 다시 선택한 게스트하우스는 그나마 술레 파고다에서 멀지 않아 보였던 화이트 게스트하우스였다. 

'좋아! 화이트 게스트하우스로 가볼까?'

이제 막 목적지를 정하고 발걸음을 옮기려고 하던 찰나 도로 반대편에서 머리는 장발에 수염은 덥수룩한 흡사 예수님이 연상될 정도의 아저씨가 손을 흔들며 말을 했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며 누구에게 말을 거는지 살펴봤는데 이 아저씨는 나에게로 뛰어오는 것이었다. 다름이 아니라 배낭을 메고 론리플래닛을 들고 있으니 숙소를 찾고 있는 사람으로 보여 도와주러 온 것이다. 

물론 내가 양곤이 처음이 아니었고, 알아서 잘 찾아갈 수도 있었지만 수염은 덥수룩한 이 아저씨의 선한 눈망울을 바라보니 호의를 거절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마침 이 아저씨와 아주머니는 화이트 게스트하우스에 지내고 있다고 했다. 내가 화이트 게스트하우스를 찾아간다고 하니 웃으면서 직접 안내해주겠다고 했다. 화이트 게스트하우스로 걸으면서 스페인에서 왔다고 하는 아저씨와 잠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우리는 며칠 전에 양곤의 남쪽 도시를 다녀왔다네. 거기도 꽤 괜찮았지."
"저는 인레호수에서 이제 막 도착했죠. 그러니까 양곤은 이제 두 번째인 셈이죠."
"우리도 이제 미얀마 여행을 마무리 하는 단계지. 이 새벽에 왜 돌아다니냐고? 산책이야. 산책. 아침먹기 전에 동네 한 바퀴 돌아보는거지. 아! 그리고 화이트 게스트하우스는 숙소는 정말 별로인데 아침은 정말 근사하지. 무려 부페라고!"
"오오~ 그게 정말인가요?"

아침식사가 부페라는 말에 나는 눈을 반짝였다. 이 얼마나 반가운 소식이란 말인가. 미얀마의 거의 대부분의 게스트하우스에서는 아침식사가 제공이 되지만 부페를 준다는 것은 정말 놀라웠다. 부페라는 말에 기대감을 가지며 몇 블럭을 걸어가니 화이트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할 수 있었다. 


화이트 게스트하우스에서 가장 싼 방은 7달러였다. 방은 정말 침대 하나만 놓여져 있는 수준이었고, 가격이 싼 방이었기 때문에 5층까지 올라가야 하는 정말 최악에 가까워지만 몸이 피곤해 그냥 체크인했다. 하루만 지내고 다른 숙소로 옮기면 그만이었다. 그것보다 난 로까찬타 파고다에 정말 흰코끼리가 있는지 거리는 얼마나 먼지 카운터에서 물어봤다. 근데 흰코끼리가 있기는 한데 공항보다도 더 멀다고 해서 그냥 단념했다. 

"오늘 식사를 해도 좋아요. 무료입니다."

체크인을 하고 열쇠를 받을 때 직원이 말을 했다. 공짜라는 말에 신나서 얼른 씻고, 밥을 먹으러 갔다. 정말 부페처럼 원하는데로 가져다가 먹을 수 있는 아침이었는데 생각만큼 대단하지는 않았다. 식당 내에는 '최고의 아침을 제공해주는 게스트하우스'라고 써있었지만 솔직히 그정도까지는 아니었다. 하지만 7달러짜리 방에 머물면서 이렇게 마음껏 아침을 먹을 수 있는건 너무 좋았다. 


빵도 직접 굽고, 파이도 집었다. 과일도 듬뿍 담아서 먹었는데 입맛에 안 맞는 음식도 있었지만 대부분 괜찮았다. 원하는만큼 계속 먹을 수 있으니 아침을 저녁처럼 마구 먹었다. 실제로 그런 경우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게스트하우스에 머물지 않는데 식사를 하려면 돈을 내야 한다고 경고성 문구까지 있었는데 나는 아침에 체크인해서 공짜로 먹을 수 있어서 기분이 무척 좋았다. 너무 배부르게 먹어서인지 점심 먹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느낌이었다. 

아침을 무려 1시간동안 먹은 뒤 보라색 가방을 둘러메고 양곤 거리로 나갔다. 


거리로 나가니 새벽에 도착했을 때와는 다르게 사람들과 소음으로 가득했다. 이게 바로 양곤의 일상적인 풍경이었다. 물론 처음 온 사람에게는 거리는 지저분한 시장과 같다는 느낌을 들게 했고, 발전기 돌아가는 소리 덕분에 귀가 멍멍할 지경이지만 그래도 이제는 나에게 익숙하게 다가왔다. 


그냥 거리를 걷기만 했다. 처음 미얀마에 왔을 때 양곤의 주요 관광지인 쉐다공 파고다와 술레 파고다 그리고 보타떠웅 파고다 등을 다 구경했기 때문에 이제는 갈 곳이 없는 상태였다. 그렇다고 입장료가 있는 파고다들을 굳이 다시 갈 필요도 없었다.


어차피 난 술레 파고다 주변을 계속 걷고 있었을 뿐이었다. 택시도 잘 이용하지 않았던 내가 멀리가기엔 너무 더웠던 것이다. 다리도 조금 아프고, 사실 버스에서만 잠을 잤기 때문에 잠도 부족해서 그냥 숙소로 돌아가 낮잠이나 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술레 파고다 주변에는 아주 당당하게 LG전자나 삼성전자의 간판이 간혹 보이기도 했다. 


피곤하다. '얼른 들어가서 자야지'라는 생각을 하며 거리를 걷고 있을 때 멀리서 아주 익숙한 남자가 걸어오고 있었다. 내가 손을 흔들자 그도 반가워했다. 바로 독일인 크리스챤이었다. 당연히 같은 도시를 이동했기 때문에 만날 수도 있었겠지만 이렇게 거리에서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하하하 또 만나게 되었군. 근데 다른 친구들은 어디있어?"
"걔네들은 아직도 뻗어 있을껄? 나만 인터넷을 하려고 잠깐 나온거야."

우리는 곧바로 PC방으로 향했다. 1시간에 300짯으로 매우 저렴한 편이었는데 인터넷은 느리긴 했지만 그래도 어느정도 할만한 정도였다. 물론 중간에 갑자기 정전이 되어서 컴퓨터가 모두 꺼지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지만 말이다. 인터넷을 마치고 크리스챤이 돈이 없어서 내가 대신 내줬다. 오늘 환전을 해야한다면서 환전하러 가자고 했는데 나는 얼마나 필요하냐고 물어봤다. 

"얼마나 환전해야 하는데?"
"4달러! 온리 4달러."
"뭐라고? 푸하하하. 아니 4달러만 환전하겠다니 너무 웃긴데?"

그만큼 4달러도 미얀마 내에서는 매우 작은 돈이긴 했다. 너무 웃겼지만 크리스챤은 정말 4달러만 환전할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