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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미얀마 여행을 할 때 대강 세웠던 계획이 어차피 항공편으로 양곤에 도착하니 다른 도시를 빨리 돌아보고 다시 양곤에 돌아왔을 때 더 열심히 돌아보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양곤에 도착한 후 순식간에 주요 관광지를 둘러봤고, 다른 관광지는 공항보다도 더 먼 거리여서 좀 귀찮다고 느껴졌다. 그래서 방콕으로 돌아가기 전에 나의 양곤 여행은 그냥 걷고, 또 걷는 것이 전부였다. 어차피 이미 다 본 풍경이라 크게 감흥은 없었지만 말이다. 


미얀마 어느 거리를 걸어도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그래도 옛수도였던 양곤인데 참 어두웠다. 사실 거리가 밝아 보이는 것은 가로등 때문이 아니라 거리에 자리잡고 있는 노점이나 가게들의 불빛 덕분이었다. 나는 천천히 눈에 익은 거리를 걸으면서 저녁 먹을 장소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950짯 밖에 없었던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음식이라고는 노점의 이름 모를 음식들 뿐이었다. 샨 카욱쉐를 너무 맛있게 먹기는 했지만 하필 1000짯도 아니고 950짯만 남아서 너무 애매했다. 하필 돈이 얼마 없을 때 거리에서 보이는 음식들은 전부 맛있어 보였다. 


그 때 나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 노점이 있었으니 바로 한국음식을 파는 곳이었다. 물론 미얀마에 한국 음식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거리에서 그것도 미얀마인이 음식을 만들고 있다는 것으로도 너무 신기했던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음식은 1200짯이라서 내가 가진 돈으로는 사먹을 수가 없었다. 이대로 물러설 수 없었다! 

나는 그 즉시 숙소로 돌아가 카운터에 있었던 할아버지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했다. 

"저기... 혹시 1달러만 환전 해주실 수 있나요? 제가 저녁을 사먹고 싶은데 950짯 밖에 없거든요."

내가 말하고도 참 배고픈 여행자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할아버지는 빙그레 웃으면서 돈이 필요할 거라면서 흔쾌히 1달러도 환전해줬다. 그렇게해서 나에겐 1950짯이라는 돈이 생겼다. 이제 김밥을 먹을 수 있을거라는 생각에 차이나타운 방향으로 빠른 걸음으로 달려갔다. 


마침 내가 도착을 하니 남자분이 김밥을 싸고 있었다. 야채와 햄 등을 넣고 돌돌싸는 모습이 제법 그럴듯해 보였다. 나도 김밥이 먹고 싶어서 하나 주문을 했지만 방금 전에 마지막 김밥이 팔렸다는 비보를 듣게 되었다. 밥이 다 떨어져서 재료는 있어도 김밥을 만들 수가 없는 것이었다. 하는 수없이 밥이 들어가지 않는 자장면을 선택해야 했다. 


외국에서 한국 음식을 먹는 것이 뭐가 그리 대수냐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래도 다른 나라도 아니고 미얀마다. 미얀마에서는 한국 음식점은 양곤에 몇 군데 있기는 하지만 다른 지역에서는 거의 없다보 봐도 될 정도이다. 게다가 한국 음식점들은 대부분 고급 음식점에 속한 편인데 이런 노점에서 한국 음식이라고 파는 장면을 보고 놀라지 않는게 이상하지 않는가? 

어떻게 이런 미얀마에서 양곤 거리에서 한식을 파는 것이 가능할까? 그건 미얀마에서 불고 있는 한류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미얀마 내에서 한국 드라마의 인기는 가히 상상을 넘어서는 수준이었는데 아마 이러한 한류로 인해 자연적으로 한국 음식도 인기를 얻을 수 있는 것이었다. 


거리가 너무 어두워서 제대로 사진을 찍을 수 없었지만 분명히 자장면과 비슷한 요리가 나왔다. 면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먹는 자장면과는 다르게 넙적하긴 했지만 그 위에 올려져 있는 완두콩 몇 개는 제법 그럴듯한 모양새를 갖췄다는 느낌을 받게 만들었다. 


게다가 반찬으로 김치까지 나왔다. 

슥삭슥삭 비벼서 자장면을 입에 넣으니 맛은 그럭저럭 평범한 수준이었다. 애초에 중국집에서 먹는 자장면의 맛을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는 했지만 면의 식감이나 자장소스의 맛이 조금씩 틀렸다. 면은 너무 얇아서 자장면을 먹는다기 보다는 국수에 자장소스를 넣어 먹는 느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깨끗히 맛있게 잘 먹었다. 그리고는 음식을 만들었던 미얀마인에게 한국 음식은 어디서 배워서 이렇게 만들 수 있냐고 물었다. 아저씨 뻘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이미 결혼을 했던 이 남자는 삼촌이 한국 식당에서 일을 해서 만드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고 했다. 한국 사람의 입맛을 만족시키려면 조금 힘들긴 하겠지만 열심히 하는 모습이 너무 좋아 보였다. 결혼한지 얼마되지 않았다고 하는데 아내 분은 중국계 미얀마인이라 중국어를 할 줄 아는데 자신은 전혀 못한다고 웃었다. 

쉔 카욱쉐를 먹은 뒤 자장면까지 먹으니 정말 배불렀다. 쉔 카욱쉐는 600짯, 자장면은 1200짯이었는데 미얀마 음식과 한국 음식 2가지를 먹어본 경험치고는 매우 저렴하게 저녁식사를 한 셈이었다. 


밥을 먹고 난 후 거리를 걸었다. 외국인은 거의 보이지 않는 양곤 한복판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지난밤만 하더라도 친구들과 함께 맥주를 마시며 밤을 지새웠는데 이제는 혼자라서 그런지 아니면 돈이 없어서 그런지 그냥 거리를 돌아다니며 구경만 했다. 

'후식으로 차를 마시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맥주?' 


그렇게 고민을 하고 있을 때 거리에서 과일을 팔고 있는 노점들을 보게 되었다. 커다랗게 잘려져 있는 수박이 너무 먹음직스럽게 보였다. 노점상인들은 수박을 정확한 비율로 잘라놓은 뒤 이쑤시개로 씨를 걷어내고 있었다. 어차피 나에게 남은 금액은 750짯 밖에 없어서 맥주를 마시기에도 애매한 돈이었다. 


과일을 파는 거리로 가서 잘라져있는 수박 하나 달라고 했다. 가격은 500짯이었다. 


나에게 탁월한 선택을 했다고 얘기하는 듯 아주 맛있는 수박이라면서 깨끗하고 수박을 도려냈다. 길었던 수박을 세로로 자른 뒤 마지막에는 아래부분을 깔끔하게 베어 비닐봉지에 담아줬다. 비닐봉지를 받아 들어보니 내 생각보다 양이 꽤 많았다. 

양곤 거리를 걸으면서 나는 수박을 한 조각씩 먹었다. 확실히 수박만큼은 우리나라가 가장 맛있기 때문인지 아주 맛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래도 여태까지 동남아에서 먹었던 수박에 비한다면 꽤 맛있는 편에 속했다. 그나저나 수박을 먹기 좋게 조금 잘게 썰어줬으면 좋겠다. 


거리에 왜 말이 있는 것인지 아마 잠깐 태워주고 돈을 받나 보다. 


땅콩을 볶는 노점도 있었다. 


10시가 되기 직전의 양곤 거리는 참 활기가 넘쳤다. 야시장처럼 거리를 가득 메운 노점, 차이나타운 구석에 자리잡은 주점, 그리고 인도를 가득 메운 찻집까지 어디를 돌아다녀도 즐거움이 가득했다. 나는 미얀마만의 시끄러운 분위기를 한참 즐기고는 수박이 담긴 비닐봉지를 들고 숙소로 돌아왔다. 

밤이었지만 남쪽에 위치한 양곤은 확실히 다른 도시보다 더웠다. 땀에 젖어서 찝찝했기 때문에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웠다. 내 방에서는 거리의 소음이 그대로 들려왔다. 트럭이 움직이는 소리, 멀리서 들리는 음악소리에 한동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이제는 나에게 새로운 추억과 여행의 즐거움을 안겨줬던 미얀마도 떠나는 날이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