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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정말 큰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카스 포장마차에서 기분 좋게 꼬치에 맥주 한잔을 마시고 계산을 하려고 일어섰는데 내 주머니에 지갑이 없었다. 약간 당황하면서 뒷주머니와 외투를 뒤집어봐도 지갑은 없었고, 카메라 가방을 샅샅이 뒤져봐도 지갑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의자에 다시 도로 앉아서 곰곰히 생각해봐도 내가 지갑을 들고 계산을 했던 적이 없기 때문에 분명 호텔에 지갑을 놓고 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주머니에게 지갑을 호텔에 두고 온 것 같으니 잠시만 기다리면 찾아와서 계산을 하겠다고 말하고 혹시 못 미더울까봐 내 카메라를 보관하고 있으라고 전해줬다. 아주머니는 대충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이셨다. 

호텔은 하카타역 부근이었다. 물론 멀지 않은 거리이긴 하지만 지갑을 놓고 왔다는 생각에 달려간다고 하면 그 거리가 절대로 가깝지는 않다. 빠른 걸음과 뜀박질을 반복해가면서 하카타역으로 그리고 호텔로 갔다. 적어도 15분이상 걸리는 거리였다. 

힘들게 헥헥거리며 방문을 열고 내 지갑이 올려져 있을 테이블을 바라봤는데 그 자리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분명 내가 호텔에서 나갈 때 그 자리에 지갑이 있는 것을 확인한 것까지는 기억했기 때문에 그곳에 지갑이 없다는 것은 내가 분명히 지갑을 들고 나갔다는 것을 의미했다. 갑자기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면서 이불을 뒤집어 보고, 테이블 위를 다시 한번 찾아봤는데 역시 지갑은 없었다. 

망했다. 여행을 떠난지 불과 만 하루도 되지 않았는데 무려 3만 4천엔이 든 지갑을 잃어버린 것이다. 이불을 몇 번 뒤지다가 호텔을 빠져나왔다. 하카타의 밤은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보일수록 내 마음은 타들어 갈 정도로 절망적이었다.

'어쩌지. 지갑엔 무려 3만엔이 넘는 돈이 있었단 말야. 카드는? 아니 그것보다 여행은 어떡해? 진짜 미치겠네.'

하카타역 앞에서 한없이 나 자신을 채찍질하다 다시 냉정을 되찾고 내가 갔던 길을 되짚어 보기 시작했다. 나카스를 가기 전까지 내가 갔던 길은 너무 단순했는데 하카타역부터 걷기 시작해서 화장실 때문에 잠깐 캐널시티에 들렀던 것이 전부였다. 그런즉슨 유일하게 들렀던 곳이 바로 캐널시티의 화장실이라는 말이 된다.  

그러나 나카스에서 맥주 한잔을 마시고 놀았던 시각은 이미 한참 전이었다. 캐널시티를 갔었을 때는 몇 시간 전으로 지갑을 거기에 놓고 왔다고 하더라도 누군가 집어가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다른 방법은 없었다. 하카타역에서 캐널시티까지 전력질주로 뛰기 시작했다. 나카스에서 호텔까지 올 때는 당연히 지갑이 있을거라는 생각에 여유있게 왔다고 한다면 이번에는 백지장처럼 되어버린 내 머릿속처럼 오직 한가지 뛰어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여태까지 여행을 하면서 이런적은 없었는데 멍청하게 지갑을 잃어버리다니 정말 내가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었다. 나를 원망하는 것도 잠시 헥헥거리며 뛰다가 다시 걸음이 느려지면 누가 채찍질을 하듯이 저절로 뛰기 시작했다. 캐널시티에 도착했을 무렵에는 이미 땀으로 온몸은 젖어있었다. 

내가 지나왔던 그길을 따라 화장실에 가봤다. 지갑은? 당연히 없었다. 화장실 문을 열고 닫아봐도 지갑은 나오지 않았다. 혹시나 싶어서 세면대와 휴지통 주변을 살펴봐도 지갑은 없었다. 예상은 했지만 정말 없으니 망연자실했다. 

캐널시티 화장실을 나와 곰곰히 생각을 다시 해봐도 지갑이 없어진 지점을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 혹시 포장마차에서 지갑을 떨어트렸는지 추측을 하기도 했다. 가능성이 아예 없던 것은 아니지만 확실히 지갑은 캐널시티에서 잃어버렸을 확률이 가장 높았다. 

그 때 이런 큰 쇼핑몰이라면 분명 인포메이션센터나 분실물센터를 운영하고 있을거라 생각이 들어 찾기 시작했다. 이미 대부분의 가게들을 문을 닫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어서 마음은 급했는데 정작 인포메이션센터는 보이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서 1층의 인포메이션센터를 찾을 수 있었다. 

헐레벌떡 달려갔던 나는 영어로 지갑을 캐널시티에서 잃어버린 것 같은데 분실물 중에 지갑이 들어온 것이 있는지 확인해 줄 수 있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우선 나의 이름을 물었다. 그리고는 공항에서 소지품 검사를 할 때 쓰는 질문지와 유사한 코팅종이를 나에게 보이고는 하나씩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지갑의 색깔, 무늬 등을 손으로 짚어줬는데 놀랍게도 한글과 영어가 병행표기가 되어있었다. 그렇게 질문을 마친 후 안내원은 전화를 걸어 뭔가를 확인하더니 마지막 질문의 답변을 자신이 직접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① 찾고계시는 물건이 여기에 있습니다. 
② 죄송합니다. 분실물이 들어온 것이 없으니 연락처를 남겨주시면 저희가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③ 고객님이 찾고 계시는 물건이 다른 곳에 있어서 지금 가지고 오는 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시기 바랍니다. 
대충 이런 항목이었는데 놀랍게도 3번을 가리키고 있었다. (실제로 3번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3번 항목의 내용이었다) 나는 너무 놀라서 진짜 여기에 있는 것이 맞냐고 물으니 잠깐만 기다리면 가지고 올거라고 했고, 내 지갑을 확신하는 표정이었다. 너무 놀라서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5분정도 기다리니 경비원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오더니 검정색 지갑을 나에게 돌려줬다. 확실히 내 지갑이 맞았다. 그런데 더 놀라웠던 것은 그 안에 있던 현금 3만 4천엔과 5만원, 카드 몇 장이 하나도 빠짐없이 그대로 있었던 것이다. 세상에 어떻게 이럴수가 지갑을 찾았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돈이 하나도 안 없어졌다는 사실에 너무 놀랐다.


너무 고맙다고 인사를 몇 번이나 하고 캐널시티를 나왔다. 지갑을 찾으니 갑자기 후쿠오카의 밤이 너무 아름다워 보였다. 정말 당연하기는 했지만 아마 누구라도 여행 첫날 지갑을 잃어버리고, 시내를 열심히 뛰어다닌 후 지갑을 찾았다면 여러 감정이 교차할 것이다.

나카스 포장마차로 돌아가 내가 먹었던 맥주와 꼬치값을 계산한 후 아주머니로부터 고히 모셔두었던 내 카메라를 돌려 받을 수 있었다. 

나는 포장마차에서 나와 곰곰히 생각해봤다. 과연 한국에서 지갑을 잃어버린다면 지금과 같이 찾을 수 있을까? 화장실에 갔는데 지갑이 떨어져 있는데 거기에 현금 50만원 가량 들어있다고 한다면 나역시 주인을 찾아줘야겠다는 생각은 별로 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일본이라고 지갑을 항상 되찾을 수 있을거라는 생각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단 1엔도 없어지지 않은 지갑을 돌려받으면서 일본에 대한 인상이 좋아진 것은 사실이다. 

당연하겠지만 애초에 일본이라고 지갑을 찾을 수 있을거라는 기대보다는 먼저 자신이 잃어버리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나도 여행을 하면서 이런 경험은 처음 겪었던 것이라 너무 당황을 했고, 짧은 시간동안 머릿속이 참 복잡했었다. 

지갑을 찾은 순간 아침에 후쿠오카로 향하기 직전 인천공항 게이트에서 또 하나의 지갑 사건이 떠올랐다. 많은 사람들이 후쿠오카행 비행기로 탑승을 시작하고 있었는데 나는 천천히 들어가려고 줄을 서지 않고 기다렸다. 그 때 내 앞으로 한 아저씨가 "여기에 지갑이 떨어져있네?" 라고 말을 하며 지나가는 것이었다. 뒤를 돌아보니 빨간색 장지갑이 의자에 떡하니 놓여져 있었는데 분명 후쿠오카로 향하는 사람의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애초에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지갑을 가질 생각도 하지 않았지만 아무도 지갑을 보고 찾아줘야 한다는 사람이 없자 조금 망설이다 곧바로 집어들고 승무원에게 지갑 건네주었다. 

"누군가 지갑을 떨어트린거 같은데요?"

내가 승무원에게 전달을 해주는 동시에 이제 막 탑승 하려던 어느 손님이 자신의 지갑이라며 얼른 받으셨다. 나에게 인사를 몇 번이나 하시면서 들어가셨는데 아마 나처럼 여행을 막 떠나는 찰나였기 때문에 환전해 둔 돈도 꽤 들어있을테고 카드나 신분증이 들어있었을 가능성도 무척 높았을 것이다. 사실 지갑을 찾아드린 것은 아주 쉬운 일이었다. 보는 사람도 많았고, 공항이었으니 나말고도 분명 찾아주려고 하는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난 오전에 지갑을 찾아주고 오후에 지갑을 잃어버리는 사건을 경험을 했는데 돌이켜보면 오전에 지갑을 찾아줬기 때문에 나역시 후쿠오카에서 잃어버린 지갑을 되찾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그냥 난 그렇게 믿고 싶다. 어쨋든 큐슈여행 첫날 지갑을 잃어버렸던 유쾌하지는 않았지만 뭔가 따뜻한 마음이 느껴지는 경험을 했다. 내 여행 중 가장 큰 실수를 할 뻔 했던 날이었다. 큐슈여행 첫날이었는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