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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뒤라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태국이 너무 친근해서 그런 것일까? 아직 여행이 끝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긴장의 끈이 풀어진 느낌이었다. 마치 한국에 돌아온 것처럼 느긋하게 방바닥에서 자다가 일어나 빨래를 맡기고, 배가 고프니 밥을 먹으러 나갔다. 태국에 도착한 순간부터는 이미 여행자의 마음가짐이 아니었다. 


카오산로드는 이미 나에게 너무 익숙한 곳이 되어버렸다. 처음 여행을 온 사람이라면 카오산로드는 너무 신기한 장소가 틀림없지만 조금만 익숙해지면 여기도 같은 풍경이 반복되는 것을 알 수 있다. 밤에는 그렇게 시끄럽게 떠들고 술에 취한 사람들이 넘치던 거리가 아침이 되면 쥐죽은듯이 조용하게 변했다. 물론 밤에 술을 그렇게 먹는 모습을 봤는데 아침에도 또 거리에 앉아 술을 먹는 이상한 녀석들도 가끔 보인다. 

아침으로 국수를 먹고나니 할일이 없다. 어디로 가야할지도 모르겠다. 우선 인터넷카페에 가서 1시간정도 인터넷을 하다가 그것도 별로 재미가 없어서 카오산로드의 메인거리로 돌아와서는 아이스커피를 한잔 마셨다. 


밥값보다 더 비싼 60밧짜리 커피였지만 느긋하게 앉아서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여유가 좋았다. 거리에는 지나다니는 한국 여행객들이 부쩍 늘었는데 아마도 방학이나 휴가시즌을 이용해서 태국을 온 모양이다. 지나다니는 한국인을 보면서 나와는 다른 그들의 모습에 조금은 이질감이 느껴졌다. 그렇다고 내가 외국에서 한국인 여행자를 만나는 것을 거부하는 무개념적인 여행자는 전혀 아니다. 


커피 한잔을 놓고 오랫동안 자리에서 버티다가 일어나 간식으로 팟타이를 먹었다. 아침으로 먹은 국수가 양이 너무 적어서 금방 허기졌던 것인데 그럴 때는 거리에서 파는 25밧짜리 팟타이가 딱이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팟타이를 먹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팟타이를 구입해서 아무데서나 앉아 먹는 모습도 재미있다. 근데 이런 모습이 재미있다고 해놓고 나도 이들과 똑같이 앉아 바로 옆에서 팟타이를 먹었다. 이렇게 다 똑같은 여행자가 모여있는 이곳이 바로 카오산로드다. 

다음날 공항으로 가는 비니밴 티켓을 예약하고, 숙소로 돌아와 쉬다가 다시 배가 고프면 점심을 먹으러 나갔다. 원래는 오랜만에 한식을 먹어볼까 생각했는데 남은 태국돈이 별로 없어서 그냥 40밧짜리 새우볶음밥을 먹었다. 


볶음밥과 함께 물을 하나 구입하고 역시 천천히 느긋하게 식사를 했다. 


돌아가는 길에는 10밧짜리 파인애플을 사서 입에 물면서 걸어갔다. 그냥 밥먹고 후식으로 파인애플 먹는 것이 내 하루 일과였던 것이다. 


그러다 프라수멘 요새Phra Sumen Fort의 공원에 가서 아주 덥지 않았던 햇볕을 쬐면서 앉아 있었다. 이곳에는 유난히 자리를 깔고 앉아서 책을 보거나 누워서 낮잠을 자는 서양인들이 많이 보였다. 호주에서 자주 보이던 장면을 태국에서도 똑같이 볼 수 있었던 것이다. 


나도 그런 서양인들을 보며 동참이라도 하듯 아무 생각도 없이 햇볕을 쬐며 앉아 있거나 짜오프라야강을 바라보기만 했다. 지금 내가 방콕에서 이러고 있는 것이 여행일까? 아니면 일상일까? 조금은 헷갈리던 순간이었다. 그저 이제 여행이 마무리되어 간다는 사실만 조금씩 실감할 뿐이었다. 

그래도 출렁이는 강을 바라보며 편안한 마음이 생겼다. 사람들이 널부러진 모습도 편안해 보였고, 새들의 지저귐까지도 새롭게 들렸다. 누구도 여기에서는 바쁘게 움직이라고 재촉하지 않았다. 


프라수멘 요새 근처에는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자전거들이 보였다. 아마 시에서 대여의 용도로 새로 설치한 모양인데 자전거 운영이 제대로 될지는 조금 걱정스럽기도 했다. 혹시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설치한 것일까? 


아마 나는 팟타이 중독이 틀림없다. 오전에도 먹었던 팟타이를 오후에도 또 먹고 있었다. 이 팟타이의 가격은 25밧이었는데 주머니를 뒤져봐도 20밧도 되지 않는 동전만 나올 뿐이었다. 큰 돈을 받지 않던 아주머니는 그냥 내 손바닥에 펼쳐진 동전 몇 개를 집어가는 것으로 계산을 해버렸다. 

숙소로 돌아와서 쉬다가 저녁이 되자 또 배가 고파서 밖으로 나갔다. 여전히 변함없이 시끄럽고 화려한 카오산로드를 걸으면서 구경을 하다 혼자 맥주를 마셨다. 어쩐 일인지 혼자 맥주를 마셔도 이제는 친구가 생기지 않았다. 맥주 한 병을 마시고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카오산로드에 오면 늘 새로운 뭔가 보였다. 작년에는 고무줄을 이용해서 하늘을 날리는 프로펠러가 보이더니 이번에는 날아다니는 나비가 나타났다. 사람들은 부단히 여행자들의 관심을 끌려고 하늘을 향해 쏘아대고, 날리고 있었다. 


밤은 더욱 깊어졌지만 마땅히 할게 없었던 나로써는 그저그런 평범한 밤이 되고야 말았다. 카오산로드의 밤을 다시 언제 볼 수 있을지 모르는데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