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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후인은 첫느낌부터 아주 마음에 들었다. 마치 동화속에 온 것처럼 느껴지는 마을의 분위기를 느끼며 천천히 걸었다. 거리를 잠깐 걸었는데 주변에는 예쁜 기념품가게와 맛있어 보이는 먹거리를 파는 곳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여자끼리 돌아다니는 사람이나 모녀지간으로 보이는 사람이 팔짱을 끼며 걷고, 그 사이로는 간혹 한국 사람을 볼 수 있었다. 유후인은 그런 곳이었다. 관광객들이 이 조용한 마을을 살아 움직이게 만들고 있었다.


일본에서 간혹 한국어로 쓰여진 메뉴판을 보기는 했지만 유후인에서는 더 쉽게 볼 수 있었다. 단지 메뉴만 적어 넣는 것이 아니라 맛있다는 말과 함께 눈웃음 이모티콘이 눈길을 끈다.

이제 찾아가야 할 곳은 바로 타츠미 료칸이었다. 흔히 일본 드라마나 만화를 보면 쉽게 볼 수 있는 온천이 딸린 일본식 여관이 바로 료칸이다. 처음으로 가보는 료칸이라 무척 기대를 했는데 문제는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 분명히 유후인 역에서 5분이면 도착한다고 나와있는데 아무리 찾아도 료칸을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주변 사람에게 물어보면 가까이에 있다고 알려주었지만 나는 또 이상한 길을 가버렸다. 유후인이 그리 큰 도시도 아닌데 그렇게 헤맨 시간이 무려 30분이었다.


결국 찾기는 찾았다. 정말 허무하게도 내가 몇 번이나 지나쳤던 곳에 타츠미 료칸이 있었던 것이다. 왜 이렇게 쉽게 찾을 수 있는 료칸을 못 찾았냐면 바로 가이드북과 다른 표기 때문이었다. 가이드북에는 카타카나로 적혀있었는데 이 료칸 앞에 있던 간판에는 히라가나로 적혀있었던 것이다. 덕분에 무지하게 헤맸다. 혹시나 싶어서 들어가 물어보니 타츠미 료칸이 맞다고 했기 때문에 알 수 있었지 그렇지 않았으면 어두워질 때까지 못 찾을 뻔 했다. 


기다리고 있었다면서 환하게 웃던 아주머니는 2층에 있던 방으로 안내해주셨다. 열쇠로 문을 열고, 다음에 나타난 미닫이 문을 밀어보니 일본식 료칸의 방이 보였다. 다소 추운 날씨였기 때문에 나무로 된 방의 내부를 보자 더 쌀쌀하게 느껴졌다.


멋진 경치라고 할 수는 없지만 창밖을 통해서 거대한 산도 볼 수 있었고, 바로 앞에 있던 개울가의 거리도 구경할 수 있었다. 날씨만 조금 따뜻하다면 여기에 앉아 차를 마시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날씨가 너무 추워 이 미닫이 문도 닫아버렸다.


료칸이라면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온천과 바로 유카타다. 온천을 이용한 후 유카타를 입어보는 재미있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처음으로 유카타를 보고, 입어봤는데 조금 어색하긴 했지만 크게 불편하지는 않았다. 생각해보니 유카타를 입고 사진을 찍는 것은 어쩌면 일본 여행의 필수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역시 남자라서 그런가.


아주머니는 추우니까 따뜻한 차를 마시라고 따라줬다. 료칸이니까 뭔가 기존의 호텔과는 느낌이 많이 틀리다. 호텔이 아니라 일본 친구집에 놀러온 그런 느낌이 든다고 해야 할까? 뭔가 어색한 분위기를 따뜻한 차를 마시며 녹였다. 차를 다 마시고는 온천이 어디있는지도 살펴보고 싶어서 료칸 구경을 하러 일어났다.


카운터가 있던 1층이었는데 오른쪽 미닫이 문을 열면 아침을 먹는 식당이 있었다.


역시 날씨만 조금 따뜻하다면 이런 곳에 앉아 쉬면 참 좋을 것 같다. 이 료칸에는 작은 정원이 있었는데 역시 그 앞에서 차를 마실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온천은 당연히 남녀 구별이 되어있었고, 손님이 없는지 아무도 안 보여서 들어가 구경을 해봤다. 저녁을 먹기 전 온천에 몸을 담글 예정이기 때문에 한번 살펴봤는데 생각보다는 아담한 규모였다. 항상 일본 만화를 보면 거대한 온천을 갖춘 료칸만 봐서 그런지 내 생각보다는 규모가 많이 작아 보였다. 그냥 가볍게 온천을 즐길 수 있는 정도였다. 밖으로 나가면 역시 비슷한 규모의 노천 온천도 있었다.


다른 료칸을 이용해보지 않아서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 다른 곳에 비해 가격대가 높지도 않고, 적당히 괜찮은 수준인 것 같다. 온천이 조금 작다는 아쉬움은 있지만 저렴한 가격대의 료칸을 즐기기에는 무리가 없어 보인다.


드디어 기다리던 저녁시간이 왔다. 타츠미 료칸의 경우 저녁식사와 아침식사가 포함되어 있었는데 저녁은 이렇게 한상 가득 차려줬다. 저녁이 되면 방으로 직접 음식을 가져다 주는데 하나씩 탁자 위에 올려 놓으며 음식에 대한 설명을 해줬다. 일본식 저녁을 먹어보는 것도 처음이고, 료칸에서 묵는 것도 처음이라 모든게 다 신기하기만 했다.


반찬의 화려함으로 본다면 우리나라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대부분 정갈하면서도 다양한 음식을 내놓아서 무척 맛있게 먹었다. 회도 한점 먹고, 치킨도 한조각 먹고, 두부도 먹는데 짜지 않은 깔끔한 맛이 역시 일본다웠다. 온천을 마치고 유카타를 입은 후에 이런 음식을 먹으니 기분도 무척 새로웠다.

음식을 하나씩 집어서 먹을 때마다 주인 아주머니는 다음 요리를 계속 놓으면서 반응을 살피기도 했다. 간간히 이야기도 하면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니 이런게 진짜 휴식이라고 느껴졌다. 정말 그랬다. 맥주와 함께 저녁을 먹고 나서도 밖으로 나갈 생각은 하지 않고, 계속 누워서 이야기 꽃을 피웠다. 사실 저녁을 먹기 전에 마을의 거리를 걸어보니 맛있어 보이는 간식거리가 잔뜩해서 나중에 꼭 먹어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아예 밖을 나가지도 못한 것이다.


물론 배불러서 다른 먹거리가 생각나지 않은 탓도 있지만 두꺼운 이불 안으로 들어가 누우니 도저히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침대가 없었을 때처럼 이불을 덮고 누워 그렇게 몇 시간을 이야기 하다보니 시간가는줄 몰랐다. 늦은 새벽이 되어서야 겨우 잠들었다.


아침이 되자 한기가 느껴져 저절로 잠에서 깼다. 방에는 온풍기가 있었지만 료칸이라 그런지 한기가 가득했던 탓이다. 미닫이 문을 열고 밖을 보자 온천 수증기가 올라오는 것처럼 곳곳에서 밥짓는 연기가 보였다. 굉장히 재밌는 풍경이었다.


료칸에서 제공되는 아침은 당연히 일본식이었다. 하얀 쌀밥에 계란, 생선, 어묵, 된장국 등이 있었다. 간단하기는 하지만 아침 입맛을 돋구는데 충분했다.


특히 김과 된장국이 맛있었다. 이른 아침인데 어찌나 맛있던지 한그릇 더 달라고 말하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타츠미 료칸은 확실히 고급스러운 료칸급은 아니다. 하지만 저렴하게 료칸을 이용해보고 싶은 사람, 유후인 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의 숙소를 찾는다면 타츠미를 추천한다. 개인적으로 온천은 조금 작아 실망했지만 숙소도 나쁘지 않았고, 아침과 저녁식사도 무척 맛있게 먹었다. 주인 아주머니도 친절했는데 간혹 한국말로 대화를 시도하시기도 했다. 유후인과 같은 온천이 있는 곳이라면 하루쯤은 료칸에서 온천도 즐기고, 맛있는 음식도 먹고, 시원한 맥주도 마시는 즐거움도 무척 괜찮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