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쿠타에서 당일 치기로 떠난 여행이기에 우붓에서 오래 머물 시간이 없었다. 몽키 포레스트를 뒤로 하고, 서둘러 쁘라마 버스를 타러 이동했다. 근데 이미 4시 반에 있던 버스는 놓쳤기 내가 쿠타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은 6시 밖에 없는 상태였다. 다리도 아픈데 굳이 뛰어갈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우붓에서는 아주 짧게 머물러서 그런지 특별한 느낌이 들지 않았다. 물론 예쁜 거리와 상점이 눈에 띄기는 했지만 딱히 볼만한 게 없었다는 점은 실망스러웠다. 그나마 몽키 포레스트에서 원숭이들을 보고, 사람을 구경할 수 있었다는 점이 다행이라고 할까? 만약 우붓 궁전과 시장만 봤다면 아주 악평을 했을지도 모른다.


비록 내가 우붓에 대한 평가가 그리 좋지 않지만 돌아가는 길에 본 상점들은 유난히 눈에 들어왔던 것도 사실이다. 다른 곳에서 볼 수 있는 비슷한 기념품 가게가 대부분이었지만 어느 한켠에는 조각을 하고, 예술품을 전시해 놓은 곳도 있었기 때문이다.


역시 예술의 마을답다. 어쩌면 우붓도 하루가 아니라 2박 3일 정도 여유를 가지고 돌아 본다면 숨은 매력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쿠타 비치에서 하루 종일 모래사장에서 앉아 사람 구경을 했던 것처럼 발리에서는 뭘 봐야겠다는 욕심을 버려야 했는데 너무 성급하게 우붓을 왔나 보다.


5만 루피아나 주면서 쿠타로 돌아가는 쁘라마 버스를 예매하기는 했는데 출발까지는 무려 2시간이나 남았다. 비싼 버스비도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하루에 몇 대 없는 버스라니 길바닥에서 하염없이 기다려야 할 상황이 왔다. 아니지. 이럴 때는 시간을 때울 무언가를 찾아 나서면 된다. 주변을 둘러보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된장남 놀이뿐이었다.


전망이 탁 트인 식당에 들어가 가장 싼 커피를 한잔 주문했다. 가장 싸다고는 하지만 1만 8천 루피아였고, Tax까지 붙어 결코 싸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인도네시아 여행을 하면서 먹었던 한끼 식사보다 더 비싼 커피를 마시며, 유유자적한 분위기를 즐겼다. 나에겐 어울리지도 않은 된장남 놀이였지만 여기에서 시간도 때우고, 무료 와이파이로 인터넷도 할 수 있었다. 근데 페이스북에다 발리에서 혼자 커피를 마시고 있다고 올리니 대부분 별로 부럽지도 않다는 반응이었다. 


살짝 눈치가 보일 정도로 식당에서 버틴 후 쁘라마 버스를 타러 갔다. 아까 아침에 나랑 같은 버스를 타고 왔던 서양 여자 2명도 있는 것으로 보였다. 기념품으로 보이는 물건들이 손에 들린 것으로 보아 시장에서 쇼핑을 좀 하다가 다시 쿠타로 돌아가는 모양이다.


날씨는 무척 더웠는데 돌아가는 버스도 여전히 더웠다. 창문을 열 수 있어 그나마 조금 시원한 바람이 들어왔다. 쿠타로 돌아가는 쁘라마 버스는 우붓의 좁은 길을 벗어나 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저 창밖너머 오가는 차량의 모습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배고프다.'

날이 어두워지고 한참이 지나서야 쿠타에 도착했다. 쁘라마 회사 앞에서 내렸는데 시계를 보니 정확히 7시 34분이었다. 쿠타에 들어설 때 좀 막힌다 싶었는데 생각보다 제 시간에 도착한 것이다. 몸도 피곤하고, 배도 고파서 얼른 뽀삐스 거리로 돌아갔다.


뽀삐스 거리는 태국의 카오산로드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가령 좁은 골목길 사이로 쉴새없이 지나다니는 오토바이가 카오산과 다른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대신 카오산로드처럼 밤늦게까지 사람들로 붐비고, 노점이 펼쳐지는 광경은 볼 수 없었다. 어차피 르기안 거리에는 펍과 클럽이 많아 항상 시끌벅적하지만 적어도 뽀삐스 거리만큼은 생각보다 훨씬 차분했다. 그나마 어딜봐도 서양인들로 가득해서 여기가 여행자 거리라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골목길에서 잠시 멈춰서 사진을 찍고 있는데 지나가던 서양인 친구들이 내 카메라 앞에서 멈춰선다. 그러면서 사진을 찍어 보라는데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 술에 취했는지 아니면 여행자 거리의 분위기에 취했는지 난데없이 나타난 어린 친구들의 사진을 찍어주게 되었다. 그렇다고 이 친구들이 사진을 달라고 했냐면 또 그것도 아니다. 그들은 또 보자고 인사하면서 지나갔다. 


내가 묵고 있었던 리타 게스트하우스는 뽀삐스 거리 1의 거의 끝에 있었기 때문에 한참 걸어가야 했다. 리타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하니 브로모부터 같이 여행을 했던 동생이 남긴 쪽지를 하나 건네 받았다. 원래 리타에서 계속 머물려고 했는데 그 옆에 저렴하면서도 훨씬 괜찮은 숙소가 있어 옮긴 것이다. 내가 우붓을 간 사이에 배낭도 다 들고 이동했는데 몇 호실에 머무는지 남겨놓은 쪽지를 보고 알 수 있었다.


이동한 숙소는 같은 소르가 골목에 위치한 아레나 호텔이었다. 잠깐만 걸어가면 찾을 수 있는데 겉모습은 생각보다 훨씬 좋아보였고, 거대했다. 수영장도 있었다. 난 작은 게스트하우스로만 생각하다가 거대한 아레나 호텔에 들어서니 일단 방을 찾는 것도 쉽지 않았다. 옆건물에서 조금 헤매다가 겨우 방을 찾을 수 있었다.

방에 들어서니 내부도 상당히 괜찮았다. 우리가 묵었던 방은 트리플 베드가 있던 곳으로 공간도 넓을 뿐만 아니라 발코니도 있고, TV와 에어컨, 그리고 뜨거운 물이 나오는 화장실도 있었다. 이만하면 비쌀법도 한데 가격도 25만 루피아로 무척 저렴했다.


잠시 쉬다가 늦은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저녁을 먹고나서 할일이 없는 것처럼 또 걷기만 했는데 오늘도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던 윌리 일행은 만나지 못했다. 마음만 먹는다면 숙소로 찾아가도 되지만 시간이 너무 늦었던 것이다. 새벽에 발리를 떠나야 했기 때문에 인사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늦은 시각이라 딱히 할 것도 없고, 그냥 피로를 풀겸 마사지를 받으러 갔다. 우붓을 돌아다니느라 피곤했기에 마사지를 받으러 가자는 이야기에 솔깃했던 것이다. 마침 가까운 곳에 마사지샵이 있었는데 들어가 가격을 물어보니 1시간에 6만 5천 루피아라고 했다.

의자에 누워 건장한 남자에게 발마사지를 받는데 확실히 피로가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아저씨들이 마사지 해주는 것은 좋은데 심심한지 심하게 수다를 떨었다. 나중에는 점점 마사지보다 얘기하는 게 더 많은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사실 그렇다 하더라도 아저씨들과 이야기를 하며 인도네시아어도 배우고, 나름 재밌었다.

마사지를 받고 원래는 술이라도 마실 생각이었는데 너무 피곤해서 숙소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눕자마자 잠이 들었다. 우붓을 다녀온 게 정말 피곤하긴 피곤했나 보다. 발리에 온지 얼마 되지도 않은 것 같은데 벌써 마지막 밤이 지나갔다. 그렇게 자카르타에서 시작한 인도네시아 배낭여행도 막바지로 치닫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