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가 필요한 나라를 여행한 경우는 그리 많지 않지만 세상에 이렇게 어려운 나라는 처음봤다. 오죽했으면 내가 만난 어느 여행자는 이 나라는 여행자가 오는 걸 원치 않는 것 같다며 그렇지 않고선 이렇게 비자 받기 어렵게 만들어 놓을 수 있냐며 대놓고 비자 시스템이 개판이라고 욕을 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상한 나라에 대한 호기심에 찾아오는 여행자는 나처럼 몇 명 있다.
나에겐 캅카스(코카서스) 3국 여행을 완성하기 위해서, 그 보다 더 중요한 육로 여행 루트가 꼬이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아제르바이잔 비자가 필요했다. 그런데 인터넷을 뒤져봐도 아제르바이잔 비자를 직접 받았다는 내용보다 어디서 긁어온 정보만 가득하고, 경험담 역시 오래된 거라 크게 도움이 되질 않았다. 결국 직접 부딪혀 보는 수밖에 없었다.
아래는 험난했던 아제르바이잔 비자 발급 과정 소개인데 혹시라도 과정보다는 신청방법을 바로 읽고 싶다면 스크롤을 아래로 쭉 내리면 된다.
1. 초청장 받기
아제르바이잔 비자를 어떻게 받아야 하는지 인터넷에서는 여러 정보가 혼재된 상태라 혼란스럽기만 했다. 가장 확실한 아제르바이잔 대사관에서 비자 관련 내용을 읽어봐도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한 가지 확실한 건 아제르바이잔 비자를 받기 전에 초청장(Invitation Letter)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이건 대사관에서 받았든, 여행사를 통해서 받았든 전부 초청장 이야기뿐이었다. 초청장이라니, 대체 이게 뭔지 벌써부터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초청장을 어떻게 받는지 알아야 하는데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우리 입장에서는 여행을 하는데 초청장이 필요하다는 것도 이해가 안 된다. 일단 다른 방법이야 제쳐두고 초청장은 꼭 필요하다는 걸 알았기에, 카우치서핑을 통해 현지인에게 쪽지를 보냈다. 너희 나라 가고 싶은데 초청장 좀 보내줄 수 없냐고. 카우치서핑 특성상 답장이 바로 오지는 않았고, 5명 정도에게 보냈을 때 한명으로부터 답장이 왔다. 초청장 보내 줄테니 이메일 주소 불러달라고 말이다. 기쁜 마음에 그 친구랑 메일을 주고받으면서 필요한 정보인 여권 사본과 여행 일정 등을 전달해 줬다.
아무래도 현지인이 보내주는 거라 바로 해주진 않았고 일주일 정도 걸렸던 것 같다. 덕분에 바로 다음날 아제르바이잔 대사관을 갈 생각이었는데 초청장이 늦게 와서 다음 주로 미뤘다.
우여곡절 끝에 아제르바이잔 현지인의 초청장과 ID카드(주민등록증 같은) 사본을 받게 되었다.
2. 대사관 가기
먼저 아제르바이잔 비자 업무는 화, 목 오전 10시부터 오후 1시까지만 한다. 가뜩이나 비자 받기도 힘든데 영사 업무도 고작 이틀만 한다. 이것부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만약 비자 받는데 약간의 문제가 발생하면 이틀 뒤나 재수 없으면 5일 뒤에 다시 찾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홈페이지에서 대사관은 관광비자 업무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꺼림칙했지만 일단 가서 확인이라도 해보고 싶었다. 온라인으로 접수하라고 하는데 온라인으로 완전히 접수도 아니고, 그냥 회원 가입한 후 내 개인정보 등록일 뿐이라 초청장이 없으면 이것만으로는 비자 신청이 가능한지 알 수가 없었다.
온라인에서 돌아다니는 신청서 1부를 작성한 후 초청장을 챙겨 한남동에 있는 아제르바이잔 대사관에 갔다. 다음커뮤니케이션(이젠 다음카카오인가?) 바로 맞은편에 있는 한남타워 1층에 있으니 그리 찾기 어렵지 않다. 다만 10시부터 업무 시작이라고 하는데, 실제로는 10시 반쯤 만났다.
대사관 앞에는 역시 그들의 웬수 아르메니아에 대한 증오가 가득하다. 특히 나고르노-카라바흐 점령에 대한 불법을 강조하고 있으니 관심이 있다면 읽어보자. 그리고 여기에서도 비자 신청 방법이 있는데 내 머리가 나빠서 그런지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비자 신청을 하려고 왔다고 초청장과 작성한 신청서를 보여주니 바로 거부당했다. 이유는 이 초청장 가지고는 안 된다고 한다. 과거에는 이 초청장으로도 비자 발급이 가능했는데 지금은 법이 바뀌어서 안 된다고. 비자 신청하러 간 시기가 8월이었는데 무려 5월에 바뀌었다고 했다. 정말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그러면서 아제르바이잔 외교부의 공식 문서를 이용한 초청장을 보내면 자신이 비자를 발급해 주겠다고 했다.
대체 대사관에서는 관광비자 발급을 안 해준다는데 다른 초청장을 가지고 오면 비자를 준다는 건 무슨 말인가. 대사관을 다녀왔지만 비자를 어떻게 신청해야 하는지 여전히 알쏭달쏭했다.
3. 현지 여행사 접촉
결국 현지 여행사 접촉만이 유일한 길임을 깨달았다. 2014년 8월 이후로 아제르바이잔 외교부에서 공식 승인한 45개 여행사(링크 혹은 아래 첨부파일 참조)를 통해서 비자를 발급 받으라는 식의 안내문을 읽었기 때문이다. 초청장을 보내준 그 친구에게는 고맙지만 비자 신청이 불가능했다고, 이제부턴 내가 알아서 해보겠다고 전했다. 우리가 주고받은 메일은 23통이나 됐다.
일단 여행사를 선정하는 건 대충 위에서부터 아무 곳이나 찍어 메일을 보냈다. 바로 답장이 왔다. 초청장을 받을 수 없냐고 했는데, 결국 비자까지 대행해 주는 서비스이고 가격은 60유로였다. 원래 비자(E-Visa)는 20달러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너무 비싸다는 생각에 다른 여행사에 연락을 해봤다. 거긴 더 복잡한 요구에 65유로 달라고 했다.
고민끝에 아타트레블(ATATRAVEL)이라는 곳에 비자 신청을 맡기기로 하고 여러 가지 물어봤다.
Q. 기차를 타고 입국할 예정이다. 항공권은 없는데 괜찮나?
- 항공권은 선택 사항이라 괜찮다.
Q. 호텔을 꼭 예약해야 하냐?
- 호텔 예약은 꼭 해야 한다. 바우처를 보내줘야 한다.
Q. 현지인 집에서 머물 수도 있는데 호텔 취소해도 괜찮나?
- 비자 신청할 때 예약하고, 취소해도 상관없다.
대략 이런 내용이었고(간단해 보여도 시차도 있고, 메일을 주고받는 시간도 있어 이틀 걸렸다), 여권 사본, 사진, 호텔
예약확인서, 신청서를 작성한 뒤 스캔해서 보내줬다. 두 번째 장에 빠진 부분이 있어서 다시 보내라는 말에 다음날 다시 보내줬다.
그리고 4일 뒤에는 호스텔스닷컴이 아니라 부킹닷컴으로 다시 예약해서 확인서 보내달라고 해서(아직도 이해가 안 됨), 호스텔스닷컴으로 예약한 숙소를 취소하고 부킹닷컴에서 그냥 아무거나 골라잡고 2일 예약해 보내줬다.
4. 결제
서류를 다 보내주니 드디어 결제만 남았다. 결제는 송금을 하거나 웨스턴유니언으로 할 수 있었는데, 송금은 환전 수수료까지 더해서
35유로를 더 내라는 안내 덕분에 그냥 웨스턴유니언으로 보냈다. 웨스턴유니언의 경우 수수료가 있지만 어차피 환전 수수료로 35유로
내는 것보다는 저렴한데다가 보낸 즉시 확인할 수 있어서 비자 받는데도 유리할 것 같았다.
은행에서 웨스턴유니언으로
송금을 받아 본 적은 있어도 보내본 적은 없던 터라 적잖아 당황스런 사건이 있었는데, 대표적으로 웨스턴유니언은 유로로 보낼 수
없었다. 때문에 현재 환율을 계산해서 대략 60유로가 될 정도의 금액을 보내는 수밖에 없었다. 60유로의 금액과 수수료 1만
5천원을 내니 거의 10만원이 들었다. 아제르바이잔에 대해 아는 것도 하나도 없는데, 꼭 가야만 하는 나라도 아닌데, 결국 비자
문제로 계속해서 씨름하다 보니 이제는 안 갈 수가 없었다. 아니, 꼭 가야만 했다. 오기가 생긴 셈이다.
5. 비자 받기
비자는 끝내 한국에서 확인할 수 없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도 확인할 수 없었다. 7일간의 열차 이동이 끝나고 모스크바에
도착했을 때 엄청나게 울리는 알림 속에서 아제르바이잔 비자(E-Visa)를 확인할 수 있었다. 참 오래 걸렸다. 처음 비자를
신청하려고 알아봤을 때가 8월 초였는데 비자는 9월 29일에 받았다. 내가 여행을 시작한지 9일째 되던 날이었다.
아제르바이잔 비자는 PDF로 날라오니 이걸 인쇄해서 가지고 가면 된다.
[아제르바이잔 비자 신청방법]
① 현지 여행사를 골라 메일을 보낸다. 아제르바이잔 외교부에서 공식 승인한 여행사 목록은 여기에 있다.
② 여권 사본, 사진, 비자 신청서(첨부파일), 호텔 바우처를 준비해 보낸다. 여행사마다 조금씩 다를 수 있으나 대부분 비슷하다.
③ 서류 작성이 끝나면 수수료를 내면 된다. 대부분의 여행사는 수수료 명목으로 60유로 정도로 가격이 책정돼 있다.
④ 비자를 받고 인쇄를 해서 아제르바이잔으로 가면 된다.
⑤ 입국할 때도 비자에 도장이 찍히기 때문에 항상 소지하는 게 좋다.
[주의해야 할 점]
아제르바이잔 비자를 신청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가장 이상하고 멍청한 시스템이 아닐 수가 없는데, 내가 숙소를 며칠
예약했느냐에 따라 체류기간이 정해진다. 다시 말해서 호텔을 2일만 예약하고 바우처를 보내준다면 3일짜리 비자를 받을 수 있다.
비자 유효기간이 한 달이라도 체류기간이 3일이면 3일 내에 떠나야 한다. 당연히 난 비자가 30일이니까 체류는 30일 내에 가능할
거라 생각했는데, 3일 체류기간이 확정된 채로 비자가 날라와 무척 황당했다. 단순히 내 잘못이라고 보기도 어려운 게 신청서를
작성할 때 혹시나 싶어서 최소 5일에서 10일 정도 머물고 싶다고 말할 때는 답장이 없었다. 아무튼 예약을 취소하더라도 일단
체류기간 확보를 위해서 숙소를 길게 예약하는 게 좋다. 딱 예약한 날짜만큼 비자에 체류기간으로 적힌다.
체류기간을
초과하면 국경에서 나처럼 걸린다. 바쿠에서 트빌리시로 가는 야간열차를 탔는데, 그 다음날 아침 국경에 도착해 걸리고 말았다.
봐주거나 그런 건 당연히 없고, 출입국사무소로 찾아가 페널티를 받아야 한다. 페널티는 두 가지가 있다. 하루당 300마나트 지불
혹은 2년간 입국불가. 당연히 입국불가를 택했다. 300마나트면 300유로와 거의 비슷한데 미쳤다고 그걸 낼 수는 없었다. 어차피
아제르바이잔 내 평생 또 올까 싶은 나라인데 입국불가된다고 크게 걱정할 일도 아니었다.
또 하나 아제르바이잔 내에 있는 아르메니아 계의 독립국 나고르노-카라바흐 공화국을 입국한 도장이 있으면 비자를 받을 수도, 입국할 수도 없다.
아제르바이잔 비자를 신청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지만, 혹시나 모를 여행자를 위해 이 글을 남기며 아래에 비자신청서와 외교부에서 공식 승인한 45개 여행사 목록을 첨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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