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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 싶은 글은 많지만 일단 여행을 떠난 지 100일을 자축하는 글(한국 시간으로는 101일)이라 쓰고, 일단 급한 불부터 끄자는 심정으로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훑어보고자 합니다. 러시아와 아제르바이잔을 제외한 아르메니아부터 루마니아까지 최대한 굵직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짤막한 여행기를 올립니다. 앞으로 실시간 여행기는 이런 식으로 올릴 예정입니다.


※ 최대한 요약했음에도 대충 썼음에도 스크롤 압박이 심합니다.


아르메니아 : 다국적 여행자들의 대가족 생활기


아르메니아에는 새벽에 도착했다. 잠도 덜 깬 상태에서 찾아간 곳은 카우치서핑으로 알게 된 벤과 빅토리아의 집. 조심스럽게 뒷골목으로 돌아가 맨 꼭대기에 있던 그들의 집에 문을 두드리니 졸린 눈을 부비적거리며 나온 한 여자가 문을 열어줬다. 그리고는 방으로 돌아갔다. 그게 나와 카우치서핑 호스트의 첫만남이었다. 소파에는 이미 2명의 벗고 있는 남자가 거의 껴안고 있는 듯한 자세로 자고 있었는데 이 상황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난 2시간 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렇게 난 이들과 예레반에서의 잊지못할 인연이 시작됐다.


첫날, 아르메니아인들의 성지와도 같은 아라랏을 보기 위해 캐스케이드에 올라갔다. 날씨가 맑아도 구름 때문에 산이 안 보일 수 있는데 다행히 이날 아라랏이 보였다. 그것도 아주 선명하게 말이다. 한동안 난 캐스케이드 계단에서 멍하니 앉아 있었다.


거리를 방황하던 도중 조지아에서 만났던 옌스와 피더를 발견했다. 예레반이 워낙 작은 동네이긴 하지만 이렇게 쉽게 다시 만날 줄은 몰랐다. 서로 엄청 반가워하다가 맥주 마시러 어디론가 갔다. KFC에서 치킨을 먹고, 카페로 옮겨서 맥주를 마시고, 다시 다른 카페로 옮겨 맥주를 마시니 어느덧 9시가 넘어 슬슬 호스트인 벤과 빅토리아가 날 걱정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막상 집으로 돌아갔더니 날 걱정하긴 커녕 뭔가 만들고 있거나 와인을 마시며 놀고 있었다. 오전에 봤던 다른 여행자 리투아니아인 2명은 물론이고, 그리스인과 시리인이 함께해 집은 훨씬 복잡했다. 그런데도 엄청 재밌었다. 빅토리아는 대체 여태까지 어딜 갔었냐며 어느 여자랑 있었냐고 묻기 시작했고, 캐스케이드에서 산을 봤다고 하니까 무슨 산을 몇 시간 동안 보냐며 꼬치꼬치 묻기 시작했다. 


다음날에는 프랑스인 2명이 더 합류해 무려 6명의 여행자가 함께 생활했다. 그날 저녁에 펍에 갔는데 무려 5시간 동안 맥주를 마셨던 것 같다.


벤과 빅토리아 집에서 함께 생활했던 다른 여행자는 프랑스인 올가와 엘로이지, 리투아니아인 타다스와 레지, 그리스인 커스타스, 그리고 한국인 나, 이렇게 6명이었다. 게다가 우리 호스트는 특이하게도 영국인 벤과 시리아인 빅토리아였다. 비록 좁고 불편했어도 매일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여행을 하고 있는 지금도 아르메니아가 계속 그리운 이유는 바로 이들 때문이다.


우린 함께 여행도 했다. 가르니 사원으로 소풍을 갔던 적이 있는데 사원에서 떨어진 절벽을 구경할 때는 택시 기사의 유혹을 뿌리치고 무작정 걸어서 이동했다. 다들 히치하이킹이나 자전거 여행자이다 보니 그냥 걸어가는 게 더 편했던 것 같다.


또 다른 날에는 벤의 동생이 만든 영화를 다함께 보고 어느 펍에서 몇 시간 동안 수다를 떨었다.


12시에 펍에서 나온 후 2차를 가자고 나왔는데 우리는 어디에도 가질 못했다. 왜 펍을 가지 않고 계속 거리에 서있는지도 모른채 얘기를 하다가 술이 떨어지면 슈퍼에서 와인을 사가지고 와서 서로 돌려가며 마시곤 했다.


술도 그리 많이 마신 것도 아닌데 새벽 4시까지 거리에서 떠들었던 것만 보면 확실히 웃긴 상황이었다.


그렇게 늦게까지 떠들고 집에 들어왔으니 다음날 점심 즈음에 일어나는 건 당연했다. 우린 아침인지 점심인지 모를 식사를 해치웠다. 여기는 완전 로컬 식당이라 여행자는 절대 올 수 없는 곳인데 엄청나게 많이 먹어도 1000드람도 나오지 않았다.


나를 제외한 나머지 여행자가 떠날 시기가 왔다. 그래서 이들은 각자 자신들의 나라 음식을 준비하기로 했는데 그 모습을 보고 내가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무작정 수제비를 만들겠다고 반죽을 시작했는데 정말 고생 꽤나 했다.


프랑스식 파이, 리투아니아식 스프에 이어 수제비까지 등장하니 다들 배터질 지경이었다.


처음 만들어 본 수제비는 정말 그럴 듯했다. 보기만 그런 게 아니라 내가 만들고, 내가 놀랐다. 다들 맛있다고 난리였는데 수제비라고 이름을 알려줘도 다들 '강남스프'라고 불렀다.


폴란드인 크리스토퍼와 리투아니아인 오리마스까지 벤네 집에서 자는 바람에 집안꼴은 대충 이러했다.


크리스토퍼와 오리마스는 히치하이킹을 하기 위해 아침 일찍 떠났다.


함께했던 다른 4명도 떠나는 날이었다. 우린 허름한 그 식당에 가서 아침을 먹었다. 아침을 먹으면서 떠나는 친구들을 위해 홈메이드 와인을 마시고, 현지인이 마시라고 준 와인을 또 마시고, 커스타스가 쏘는 거라며 와인을 따라주는 걸 또 마시다 보니 어느덧 3시가 넘어버렸다.


심지어 밖에서 '강남스타일' 노래가 나온다며 나를 데리고 가더니 길거리에 춤을 추기 시작했다. 이 상황이 어찌나 웃기던지.


이젠 떠나야 한다며 배낭을 챙기던 이들은 결국 이날 예레반을 떠나지 못했다.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 못한 여행자들은 다시 벤네 집으로 돌아갔다.


저녁으로 '강남스프'를 먹은 뒤 우리가 한 게임은 놀랍게도 마피아였다.


다음날 그들은 거짓말처럼 떠났다. 일주일간 함께 했던 친구들이 갑자기 사라지니 가슴이 텅 빈 것처럼 느껴졌다. 살짝 우울하기도 했다. 나 역시 이들처럼 이란으로 가고자 몇 가지 방법을 찾아보다가 쉽지 않아 결국 포기하고 나고르노-카라바흐만 가기로 결심했다.


예레반 거리에서 만난 필리핀인, 스페인인, 아르메니아인과 함께 한 시간도 즐거웠다.


나고르노카라바흐 : 다시 혼자가 됐지만 외롭지 않았던 순간


무려 10일이나 있었던 벤과 빅토리아 집을 떠나며 마지막으로 사진을 찍었다. 빅토리아는 좀 더 있어도 된다고 했지만 나는 다시 여행자로 돌아가기 위해서 떠나야만 했다. 계획도 없었다. 무작정 히치하이킹을 할 수 있는 고속도로까지 어떻게 가야 하는지 벤에게 물은 뒤 집을 나섰다.


쉽게 손이 내밀어 지지 않았다. 히치하이킹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도움을 요청하는 상황이 아닌 단순히 이렇게 먼거리를 이동하기 위해 히치하이킹을 해보는 건 처음이었다. 게다가 난 혼자였다. 20분간 고민한 끝에 손을 내밀었는데 바로 어느 할아버지가 태워줬다. 그리 먼거리까지 이동하진 못했지만 곧바로 다음 차를 히치하이킹했고, 또 다시 히치하이킹에 성공해 목적지인 고리스까지 쉽게 갈 수 있었다.


고리스는 아르메니아에서 꽤 큰 도시라고 들었는데 생각보다 훨씬 시골스러워 무척 놀랐다. 저녁엔 안개가 너무 심해 아무 것도 볼 수 없을 정도였다.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고 떠난 여정이라 어디서 묵을지도 몰라 1시간 동안 헤맸다.


저녁 먹을 적당한 식당을 찾아 들어갔는데 그 넓은 식당에 손님은 딱 한 팀뿐이었다. 이 사람들은 자꾸 나보고 오라고 해서 결국 저녁을 얻어 먹게 되었다.


나고르노-카라바흐의 수도 스테파나케르트까지도 히치하이킹으로 이동하기로 결심했다. 일단 도로가 시작되는 곳까지 나간 후 손을 들었는데 바로 차 한 대가 멈춰섰다. 식료품을 배달하는 것으로 보이는 차를 타고 스테파나케르트까지 갈 수 있었다.


카라바흐에서는 여행자를 무척 신기하게 쳐다본다. 곁눈질로 힐끔 쳐다보는 수준이 아니라 어떻게하면 말을 걸 수 있을까 궁리하는 게 느껴진다. 아이들은 지나갈 때마다 "헬로우"라며 관심을 보인다.


숙소에는 나와 빈센트뿐이었다. 빈센트는 예레반에서 만났던 프랑스인으로, 스테파나케르트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어쩌면 카라바흐에 외국인이라곤 우리 둘 뿐일지 모른다는 수다를 떨며 어느 장군에게 받았다는 브랜디를 함께 마셨다.


스테파나케르트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꼽는다면 단연 빨래널기다. 만국기를 연상케 할 정도로 하늘 위에 색색의 빨래가 가득했다.


날씨가 춥다고 예레반으로 돌아가려고 했던 빈센트를 붙잡고 아그담을 같이 가자고 꼬셨다. 아그담은 1992년 전쟁으로 폐허가 된 곳으로 여행자는 출입금지 지역이다. 아제르바이잔 국경과 가까워 괜찮을까 걱정했지만 현지인 말로는 괜찮다고 해서 히치하이킹으로 들어갔다.


원래 으스스한 분위기인데 비까지 오니 정말 유령 도시나 다름 없었다. 우리는 비를 맞으며 아그담을 구석구석 탐험했다. 그리고 돌아올 때는 군용 차량을 얻어타고 돌아왔다.


카라바흐에서 히치하이킹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다.


다디반을 혼자 갈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 먼거리까지 가려고 히치하이킹으로 5번의 차량을 얻어타고, 1시간 반 동안 걷기도 했다. 몇 십 분 동안 차도 지나다니지 않는 이런 오지에서 혼자 걸을 때는 기분이 참 묘했다. 그렇게 계속 걷고, 히치하이킹하면서 이동했다. 비가 오는 와중에도 말이다. 그러나 막상 다디반에 도착해서는 어두워져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진짜 미아가 되는 순간이었다.


억세게 운이 좋은지 몰라도 오전에 만났던 다른 여행자 무리를 다디반에서 만났다. 그리고 소닉 할머니 집에서 머물게 되었는데 정말 생명의 은인이나 다름없다. 그날 저녁 비가 어찌나 쏟아지던지 하마터면 오지에서 얼어 죽을뻔했다. 참고로 다디반에는 집이 24채 밖에 없다고 한다.


다디반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온천이 있을 줄 누구도 몰랐을 거다. 추위에 벌벌 떨던 우린 감탄을 하며 온천욕을 즐겼다. 아마 여기를 찾은 한국인으로는 내가 세 손가락 안에 들지 않을까 싶다.


다디반에서 소닉 할머니와 헤어진 후 히치하이킹으로 스테파나케르트까지 이동했다. 두 번째 탔던 차량이 스테파나케르트까지 간다고 해서 생각보다 빨리 도착할 수 있었다.


그 후에는 카라바흐에서 미국인 다니옐과 만나 함께 슈시를 여행하기도 하고, 나 혼자 티그라나케르트를 다녀오기도 했다. 그리고 카라바흐를 떠나 예레반으로, 그 다음날에는 트빌리시로 이동했다. 아르메니아에 더 있고 싶어도 비자 문제 때문에 떠나야 했다.


며칠간 함께 여행한 다니옐과는 트빌리시에서 헤어졌다. 그리고 난 다시 혼자가 되었다.


우크라니아 : 흑해를 건너 우크라이나로


이 여행을 처음 생각했을 때부터 흑해를 배로 건너 우크라이나로 가자고 생각했다. 내가 본 건 오로지 구글 지도의 항로뿐이었지만 분명 배로 건널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그래서 아자리야의 수도 바투미로 이동했다.


바투미는 터키와 가까워서 그런지 터키식 음식점, 터키식 찻집, 터키식 이발소 등이 참 많았다.


트빌리시만 해도 엄청 추웠는데 바투미의 낮은 무려 20도를 넘을 정도로 따뜻했다.


내가 묵었던 호스텔에서 놀라운 여행자를 많이 만났다. 오토바이로 여행하고 있는 헝가리인, 히치하이킹으로만 여행하고 있는 체코인, 자전거로 여행하고 있는 프랑스인을 보며 감명을 받았다.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바투미에 있는 동안 아무 것도 안 한 것 같아 보타닉가든을 다녀왔다. 정말 엄청나게 컸다.


여러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손에 넣은 우크라이나행 페리 티켓이다.


떠나기 전 크릭크리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이 친구는 자전거를 타고 여행 중인데 나중에 한국에 갈 예정이라며 나에게 간단한 회화를 물어 적기도 했다.


우크라이나로 가는 페리는 바투미 시내로 진입하기 전에 있는 항구에서 탈 수 있었다. 그것도 모르고, 정확히 말하자면 여행사에서 제대로 알려주지 않아 러시아 소치로 가는 터미널에 갔었다. 다행히 조지아 사람들의 도움으로 페리에 올라탈 수 있었다. 화물 트럭 운전사를 제외한 탑승객은 21명이 전부였고, 우크라이나인과 조지아인을 뺀 외국인은 나와 매튜 딱 2명뿐이었다.


페리는 정말 좋았다. 동해에서 블라디보스토크로 가던 페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넓었고, 무엇보다도 하루 아침, 점심, 저녁 밥을 줘서 좋았다. 다만 페리에 올라탄 후 그 다음날 점심까지 페리는 출발하지 않고 바투미 항구에 정박해 있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뭔가를 사왔어야 했는데 조지아인들이 빵이라든가 햄을 줘서 배불리 먹었다.


다음날 점심이 지나서야 바투미를 떠나기 시작했다.


캐나다인 매튜와 나는 유일한 외국인이다 보니 함께 시간을 보냈다. 미국 드라마를 보기도 하고, 매튜가 챙겨온 브랜디와 보드카를 해치웠다. 덕분에 그 다음날은 점심때까지 누워있어야 했다.


3일간의 항해 끝에 오데사에 도착했다. 매튜는 바로 몰도바로 이동할 계획이라 이날 하루만 같이 돌아다닌 후 헤어졌다.


오데사에 있는 동안 너무 추워 밖에도 많이 안 나갔다. 사실 나가더라도 오데사가 크게 볼거리가 많은 곳은 아니라 매일 동네 한 바퀴 돌다가 돌아오는 게 내 하루 일과였다. 오죽 심심했으면 역사 박물관을 갔을까.


다시 러시아로 돌아온 느낌이 많이 들었다. 적당히 어두운 골목에 건물을 비추는 조명까지 많이 닮았다. 소비에트 연방이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걸까.


거리에서 커피를 파는 사람이 보였는데 너무 추워 마셔볼 생각조차 안 했다. 차라리 따뜻한 카페를 들어가는 게 낫다.


오데사에서는 8일간 지냈는데 처음에는 인사만 하던 사람들과 많이 친해졌다. 하루는 뱅쇼를 만들어줬다.


짐바브웨인 에르네스트는 굉장히 유쾌한 친구였다.


데낄라 한 병에 모두가 미친 듯이 웃었다. 이 사진에서 술 마신 사람은 딱 두 명뿐이라는 건 충격적이랄까.


몰도바 : 다시 만난 친구들


몰도바 키시너우에서는 엘레나를 다시 만났다. 7년 전 말레시아와 태국을 함께 여행한 이후 처음 보는 건데 정말 신기했다. 몰도바에 있는 동안에는 엘레나 집에서 머물러 돈을 많이 아낄 수 있었다.


엘레나의 동생 아르좀과의 재회도 반가웠다. 우리는 틈틈이 맥주 마시러 다녔다.


매튜와도 다시 만났다. 내가 우크라이나에서 무려 8일이나 있을 동안 매튜는 계속 키시너우에 있었다.


키시너우는 수도치곤 정말 작은 도시다. 그럼에도 크리스마스가 다가오자 화려해진 분위기는 여느 다른 도시 못지 않았다.


처음에는 엘레나와 아르좀이 데려다 주는 곳만 다녔는데 나중에는 트롤리 버스를 타고 혼자 잘 다녔다.


하루는 매튜와 아르좀이랑 올드 오르헤이를 다녀왔다. 비록 마르슈트카를 타고도 목적지 근처에 내릴 수 없어 한참을 걸어갔지만 시골 분위기가 나쁘진 않았다.


언덕 위까지 올라가 수도원을 봤는데 내부에는 특별한 게 별로 없었다.


미승인국 나고르노-카라바흐를 다녀와서인지 평소 관심있던 지역인 트란스니스트리아도 다녀왔다. 소비에트의 향수가 그대로 묻어나는 곳으로 몰도바와는 완전히 다른 나라처럼 느껴졌다.


심지어 트란스니스트리아 루블이라는 독자적인 화폐를 사용하고 있다.


곳곳에서 소비에트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그래서인지 트란스니스트리아 국기 바로 옆에는 러시아 국기가 같이 걸려 있는 경우가 많다. 몰도바는 루마니아를 비롯한 유럽과 친해지고 싶어하는 반면 트란스니스트리아는 러시아와 더 가깝다.


트란스니스트리아의 수도 티라스폴이 워낙 작은 동네고, 생각보다 볼거리는 거의 없는데 너무 추워서 돌아다니기 힘들었다.


트란스니스트리아에서 유명한 건 브랜디(꼬냑)이다. 여기선 엄청나게 싸지만 다른 나라에 가면 10배는 비싸진다는 말에  딱히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몇 병 샀다.


몰도바로 돌아와서는 크리코바에서 와이너리 투어를 했다. 무작정 마르슈트카를 타고 크리코바로 가서 투어를 할 수 있는지 물어봤는데 다른 사람들과 붙여줘서 들어갈 수 있었다. 와이너리 투어를 많이 해보진 않았지만 여기 규모에 정말 놀랐다. 엄청나게 넓고 복잡한  터널을 차를 타고 이동해야 한다.


10일 넘게 지냈던 엘레나 가족과 사진을 찍었다. 고마웠다.


루마니아 : 본격적인 유럽 국가로 진입


루마니아로 넘어오니 분위기가 확실히 달랐다. 더이상 소비에트 스타일의 건물을 찾기가 어려웠다.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기존에 지나왔던 캅카스와 우크라이나 등도 유럽이라 말하기도 하지만, 사실상 EU에 속해있는 진짜 유럽은 루마니아부터 시작이었다. 그나저나 루마니아에 처음 도착한 도시는 이아시였는데 비가 오는 와중에 숙소를 찾지 못해 1시간 넘게 헤매고 다녔다.


이아시는 몰도바 국경에 있어 시골일 줄 알았는데 무척 큰 도시 규모에 많이 놀랐다.


이아시에는 오래 머물진 못했다. 제대로 본 건 딱 하루인데 주로 시티센터 주변을 돌아다녔다. 역시 추워서 힘들었다.


도로 위에 그물처럼 이어진 조명이 제법 화려했다.


갑자기 기차가 타고 싶어서 부쿠레슈티까지 기차를 타고 이동했다. 이아시에서 출발하는 기차는 하루에 딱 한 편, 그것도 새벽 6시에 있다.


부쿠레슈티에 도착하니 날씨가 정말 좋았다. 따뜻하다고 느낄 정도였다. 다만 이 생각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는데 부쿠레슈티에 있는 동안 추웠던 날이 훨씬 많기도 했고, 감기로 고생하느라 힘들었기 때문이다.


한때 북한이랑 친해서 자주 만났는데 그때 김일성 주석궁에 반해 만들었다는 인민궁전의 위엄은 확실히 대단했다.


부쿠레슈티는 이상하게 재미없었다. 너무 춥기도 하고, 사실 동네를 돌아다녀도 흥미를 끌만한 게 보이지 않았다.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부쿠레슈티에는 저녁 4시만 되면 짙은 안개가 낀다. 마치 저주에 걸린 것처럼.


부쿠레슈티가 너무 지겹다고 느껴 아침에 지하철을 타고 기차역으로 갔다. 그리고는 브라쇼브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부쿠레슈티만 벗어나면 뭐든 괜찮을 것 같았다.


브라쇼브로 오는 동안 온통 하얀 눈으로 덮혀 있어서 추우면 어쩌나 싶었는데 날씨가 상당히 좋았다. 버스를 타고 시티센터로 이동하는데 무료 와이파이가 되는 걸 보고 무척 놀랐다.


브라쇼브 분위기는 정말 좋았다. 광장에 커다란 트리와 제법 잘 어울리는 회전목마가 있고, 그 주변으로는 노점이 있어 구경거리가 많았다. 골목엔 펍도 많아서 늦게까지 술마시는 것도 가능했다. 그리고 브라쇼브에서 신지누나를 만나 함께 여행하기 시작했다.


드라큐라로 유명한 브란성을 갔다가 엄청난 폭설에 눈사람되는 줄 알았다. 정말 많이 왔다. 


드라큐라가 아니라 눈 때문에 얼어 죽을뻔했다.


신지누나 덕분에 원래는 계획에도 없던 시비우로 이동했다. 처음 도착했을 때는 너무 늦은 시각이라 그런지 사람도 없고, 가게 거의 다 닫아 적잖아 실망했는데 다음날 보니 분위기가 나름 괜찮았다.


특히 올드시티 중심 거리를 따라 설치된 일루미네이트가 무척 예뻤다. 물론 도시 자체는 매우 작은 곳이었지만 이 일루미네이트를 비롯해 메인 광장 주변의 노점들 덕분에 유명 관광지 못지 않게 사람이 북적였다.


신지누나와는 헤어지고 다시 혼자가 된 나는 시비우부터 히치하이킹만으로 이동하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2시간 동안 시도했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그렇게 히치하는 사람이 많을 줄도 몰랐을 뿐더러 그렇게 멈추지 않을 줄 몰랐다. 옆에서 히치를 시도하려던 루마니아인을 만나 얘기를 들어 보니 크리스마스 이브라서 사람들이 멀리 가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결국 클루지나포카까지 버스를 타고 갔다.


클루지나포카에선 카우치서핑으로 만난 후너스 집에서 지냈다. 그의 부모님 집에 가서 크리스마스 이브를 기념하는 저녁을 먹었는데 무려 김치를 준비해 주셨고, 크리스마스 선물로 와인과 컵을 받았다. 그리고 저녁에는 친구들을 만나 함께 시간을 보냈다.


크리스마스라 거리에는 사람도, 차도 별로 없었다. 심지어 가게를 열지 않아 점심 먹을 곳을 마땅히 찾기 힘들었다.


헝가리로 가기 전에 후너스에게 받은 선물은 바로 강력한 메시지가 담긴 이 엽서였다. 후너스는 북한을 여행한 직후라 이 엽서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북한을 가보고 싶다는 여행자를 보긴 했어도 다녀온 여행자는 처음 만나 무척 신기했다.


현재까지 이동 경로 : 동해 → 블라디보스토크 → 모스크바 → 바쿠 → 트빌리시 → 예레반 → 고리스 → 스테파나케르트 → 다디반 → 예레반 → 트빌리시 → 바투미 → 오데사 → 키시너우 → 티라스폴 → 이아시 → 부쿠레슈티 → 브라쇼브 → 시비우 → 클루지나포카 → 부다페스트(현재 위치)


저는 지금 세계여행 중에 있습니다. 이 글이 마음에 든다면 다양한 방법으로 도움 및 응원(클릭)을 해주실 수 있습니다. 작은 도움이 현지에서 글을 쓰는데 큰 힘이 됩니다. 세계를 여행하고 있는 배낭여행자에게 커피 한 잔 사주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