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간의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기분 좋게 모스크바에 도착했지만, 사실 엄청나게 막막한 상황이었다. 대체 여기가 어디인지, 그리고 어떻게 해야 목적지까지 갈 수 있는지 전혀 몰랐기 때문이다. 목적지까지는 지하철을 타야 했으나, 까막눈에 말까지 안 통하니 정말 답답해 미치는 줄 알았다. 설상가상으로 그날은 무지하게 추웠다.
처음에는 아주 가까운 거리를 이동하는 것마저도 1시간이 걸릴 정도로 ‘멘붕’에 빠졌는데, 한 번 힘들게 타고 나니까 그 다음부터 요령이 생겨서 쉽게 탈 수 있게 되었다. 지금부터 모스크바 지하철 타는 과정을 소개하고자 한다.
지하철역 찾기, M을 찾아라!
당연히 모스크바가 처음이라 지하철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여러 사람에게 물어 알아낼 수 있었다. 대부분 ‘메트로’라고 하면 알아 듣는다. 그러나 지하철역이라고 마구 들어갈 순 없다. 우리네 지하철과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입구와 출구가 구분되어 있다는 점이다. 출구로는 아예 들어갈 수도 없고, 심지어 입구와 출구가 전혀 다른 곳에 위치하고 있다.
모스크바에서 지하철을 탈 때는 메트로의 약자인 M을 찾으면 된다.
승차권 구입은 바디랭귀지로
러시아에서는 영어가 전혀 통하지 않는다. 기차역에서도 영어로 된 간판이 거의 없는데, 지하철에서 영어가 통할 리가 있나. 승차권을 구입할 때는 바디랭귀지를 이용해 보자. 난 손가락을 하나 펴거나 다섯 개를 펴서 의사소통을 하고 돈을 지불했다.
일단 거리와는 상관없이 1회권, 5회권 등이나 90분이라는 시간 내에 무제한으로 탈 수 있는 승차권이 있다. 보통은 1회권을 많이 구입하는데 모스크바에 며칠 머문다면 5회권 이상을 구입하는 게 좋다. 5회권부터 할인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참고로 1회권은 40루블, 5회권은 160루블이다.
승차권은 1회권이나 5회권이나 똑같았다.
방공호 같은 지하철로 들어가기
지하철을 탈 때는 승차권을 가져다 대면 문이 열리면서 남은 횟수가 표시된다. 예를 들어 5회권을 구입한 후 들어가게 되면 4라는 숫자를 볼 수 있다. 이 승차권은 앞으로 4번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모스크바 지하철의 대부분은 아주 깊숙한 곳에 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긴 터널을 따라 들어가야 하는데 거의 3분 이상 걸린다. 예전에 평양의 지하철 사진을 본 적이 있는데, 꼭 닮아 보였다. 뭔가 지하철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고 해야 할까.
그래도 지하 땅굴 출입구 같은 어두컴컴한 분위기와는 달리 내부는 꽤 화려하다. 은은하게 비춰주는 조명과 곳곳에 독특한 조각이 있어, 흡사 박물관을 연상케 한다.
지하철 노선도 파악하기
본격적인 지하철 타기는 이제부터다. 사실 러시아 지하철이 어려운 점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역시 문자를 읽을 수 없다는 게 가장 힘들다. 영문으로 된 노선도를 찾을 수 없을뿐더러, 더 큰 문제는 노선의 간판 역시 색깔로 구분하지 않아 대체 어떻게 갈아타라는 건지 막막하기만 했다.
물론 한 번만 타면 익숙해지지만 한 가지 팁을 주자면, 영문 지하철 노선도를 가지고 있는 게 좋다. 스마트폰 소지자라면 Moscow Metro라는 앱을 다운 받자. 아주 단순한 앱이었지만 개인적으로 굉장히 유용했는데, 1번을 누르면 키릴문자, 2번을 누르면 영문으로 지하철역의 이름이 나와서 어떻게 찾아가야 하는지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신기했던 건 지하철을 타다 보니 이제는 키릴문자를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아예 생소한 글자는 아예 파악하기도 어려웠지만, 유심히 보면 영문과 비슷하거나 모양만 보고 읽어서 대충 파악할 수 있는 경우도 많아진다.
처음 모스크바 지하철 노선도를 봤을 때 굉장히 예쁘다고 생각했다.
본격적으로 지하철 타볼까
모스크바 지하철은 아담한 편이라 공간은 좀 협소하다. 대신 지하철은 굉장히 자주 있다. 거의 2분마다 지하철이 올 정도라 사람이 많은데 굳이 힘들게 탈 필요는 없다. 짧은 시간 멈춰서고, 문이 금방 닫힌다.
지하철 내부에는 디지털 화면으로 어느 역인지 표시해 주는 경우도 있지만 일부 노선의 경우 그냥 지하철 노선표만 붙어 있다. 방송이 나오지만 시끄럽기도 하고, 처음에는 무슨 소리인지 모르니, 몇 번째 역에서 내리는지 미리 파악해 두는 편이 좋다.
갈아탈 때는 역과 역 사이가 꽤 멀다. 그리고 갈아타는 표시가 잘 보이지 않아 헷갈릴 수 있다. 갈아탈 때는 바닥을 보면 갈아타는 노선의 숫자와 색깔이 나와 있으니 그걸 보고 따라가면 된다. 이상하게 모스크바 지하철에는 노선별로 색깔 구분이 잘 되어 있지 않았다.
또 하나 특이한 점은 환승하는 역이라도 노선별로 이름이 다르다. 예를 들어 붉은광장에서 가까운 지하철인 플로샤디레볼류치역은 오호트니랴트역과 테아트랄나야역으로 환승할 수 있다.
들어올 땐 찍고, 나갈 땐 그냥 나가
출구를 찾을 때는 가장 긴 에스컬레이터가 있는 양쪽 끝을 확인하곤 했다.
우리 지하철과 가장 다른 시스템은 바로 나갈 때 승차권을 찍지 않는다는 점이다. 나가는 출구가 입구와 구분되어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모스크바 지하철을 탈 때 입구에서 승차권을 찍고 바로 쓰레기통에 버리는 사람을 많이 볼 수 있다.
모스크바 지하철을 타보면 알겠지만, 생각보다 굉장히 쉽고 웬만한 곳은 다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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