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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 테라스에서 홍콩의 끝내주는 경치를 보는 것도 지겨워질 때쯤 느낀 것이지만 내가 아무 생각 없이 이곳을 온 탓에 가장 큰 볼거리였던 야경까지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있었다. 아직은 해가 지려면 좀 더 있어야 했는데 막연하게 스카이 테라스에 있는 것보다는 안에 들어가서 다른 거라도 구경하려고 했다.


그때 마침 한 관광객이 안내원에게 다가가 화장실에 가려고 하는데 안에 들어가야 하냐고 물었는데 화장실은 안에만 있고, 그보다도 안에 들어가면 다시 이곳에 들어오기 위해서 입장료를 또 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럴수가!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나는 입장료를 또 내야 한다는 그 말 때문에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시간은 흘러 계속 보는 것으로는 지겨워졌고, 몸도 너무 피곤해서 그냥 그 자리에 주저 앉았다. 남들이 보면 좀 불쌍해 보일 정도로 쭈그려 앉아서 잠이 들어버렸다. 그 25홍콩달러(약 4000원)가 아깝다는 생각에 나가지 않고 밤이 되길 기다린 것이다. 조금 다행스럽다고 해야할까? 내 옆에는 외국인 몇 명도 앉아서 밤이 되길 기다리고 있었다. 하루 종일 걸어다닌 탓에 너무 피곤해서 그런지 눈이 스르륵 감겨버렸다.



무언가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을 즈음에 눈을 떠보니 날은 어두워져 있었고 시끌벅적했다. 사람들은 홍콩의 야경을 보기 위해 몰려들었고, 낮에는 그래도 한적했던 것에 반해 저녁이 되니 사람들이 가득했다. 아직 완전한 밤이 되려면 시간은 남아 있었지만 그래도 높은 빌딩들이 하나 둘씩 빛을 내며 관광객들을 위한 '쇼'를 준비하고 있었다.



확실히 어두워졌을 때 바라본 홍콩의 모습은 거의 환상적이었다. 홍콩의 야경이 더 멋졌던 것은 노란 빛만 보였던 것이 아니라 빌딩의 외벽에 있던 알록달록한 색깔뿐 아니라 마치 네온사인을 보는 것처럼 깜빡이고 움직이는 모습때문이었다.

왼쪽에 보이던 빌딩은 마치 물결을 치듯 빛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움직이고 있었고, 중국은행 타워China Bank Tower(오른쪽 X자 빛을 내던 빌딩)는 불규칙적으로 반짝였다. 그리고 저 멀리 구룡반도(카오룽Kowloon) 앞에 펼쳐진 바다는 강물처럼 유유히 흐르는듯 했고, 그 위에 조각배처럼 떠있는 배들은 홍콩의 은은한 풍경을 더해주었다.



조금 더 어두워지자 각 빌딩들은 서로 뽐을 내듯 더 환하게 빛을 내고 있었는데 정말 환상적이었다. 아! 이래서 홍콩의 야경을 백만불짜리라고 하는구나! 나는 이 백만불짜리 야경을 보기 위해 25홍콩달러를 지불했으니 상당히 많은 이득을 챙긴셈이었다. 꼭 이런 미사어구를 들어 평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도 나는 낮부터 몇 시간동안 이 전망대에서 구경을 했으니 한마디로 '본전은 뽑았다' 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나에게도 여길 쉽게 못 떠나는 이유가 있었으니 그건 이런 멋진 배경으로 사진 하나 남기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낮보다 더 많은 사람들 그리고 같이온 무리들은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었고, 시끄러운 분위기 속에 나만 동화되지 못한 느낌이 들어버렸다.

그래도 간간히 사진을 찍으면서 다른 사람에게 부탁을 해보긴 했으나 너무나 어두워서 그런지 아니면 캠코더로 야경을 찍으려 해서 그런지 대부분 흔들리거나 어둡게 나왔다. 사실 예전부터 외국인에게 사진을 부탁해서 잘 찍힌 적이 없긴 했다.



야경이 더 멋있어 질수록 사람들은 더욱 많아졌고, 나는 멍하니 바라보면서 사진 찍는 것만 반복했다. 스카이 테라스에서는 야간이 되자 돈을 받고 멋진 사진을 찍어주는 것도 있었는데 마치 지미짚 카메라처럼 높은 곳에서 찍어주기 때문에 상당히 잘 나오는듯 했다. 물론 나갔다 들어오는 돈 25홍콩달러도 아깝다고 생각했으니 찍을 생각도 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스카이 테라스에 장시간 있다보니 가끔씩 한국말도 들렸다. 하긴 여기는 홍콩의 대표적인 관광지인데 한국 사람이 없을리가 없었다. 근데 대부분 친구들, 가족들, 혹은 연인끼리 온 듯 보였다. 심지어 혼자 있던 한국 사람도 보기는 했는데 어느새 짝을 찾았는지 이야기를 하며 사진을 찍어주고 있었다. 혹시 둘이 연인 관계로 발전했을까? 아니 그건 그렇다치고 나는 혼자 여기서 뭐하고 있는거지?



밤이 더욱 깊어질 때의 야경을 보기 위해 오래 있기는 했지만 이제는 가야만 했다. 심지어 비도 살짝 내리기까지 했다. 비는 한 20분만에 그치기는 했지만 이미 나는 불어오는 바람과 습기 탓에 기름범벅이 되어 버린 상태였다. 나는 머리를 만지면서 혼잣말로 "와~ 이거 완전 떡이 됐네"라고 중얼거렸는데 지나가던 한국 사람이 슬쩍 웃으면서 쳐다봤다.

사진을 찍어줄 사람을 찾다가 중국계로 보이는 연인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어둡고 캠코더라서 사진이 잘 나오지는 않았지만 여러 번 찍어주는데 많이 찍어본 폼이 나왔다. 나도 이들의 사진을 찍어주기도 했다. 그러자 여자는 나에게 어디 사람이냐고 물어봤는데 내가 한국 사람이라고 하니 반갑다고 자신은 대만인이라고 했다. 둘다 순박하게 생겨서 그런지 인상이 무척 친근하게 느껴졌다.

이들과 헤어진 후에 나는 곧바로 나왔다. 원래 이렇게 오래 있을 생각도 없었는데 야경을 보기 위해서 몇 시간 동안 있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정말 오래 있긴 했다. 이 찝찝함을 견디기 힘들어 빨리 숙소에 돌아가 씻고, 저녁을 먹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내려갈 때도 피크 열차를 타고 갔다. 참 질리도록 봤던 홍콩의 야경이라 그런지 피곤했지만 만족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