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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자카르타에 아침이 찾아왔다. 따사로운 햇살을 맞이하며 저절로 눈이 떠지면 좋을 텐데 그게 아니었다. 밖에서 어찌나 아이들 시끄럽게 떠들던지 도저히 일어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밖으로 나가니 가족으로 보이는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있었다. 물론 아이들은 복도에서 뛰어다니고 있었다. 이 가족 여행객도 옆에서 사람이 자고 있는 줄 몰랐던 것처럼 보였고, 시끄럽게 떠들던 아이는 동네 꼬마도 아니라서 그냥 뛰어 노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다.

아래로 내려가니 게스트하우스 카운터에 있던 친구가 아침을 먹으라고 한다. 옥상에서 무료로 아침을 먹을 수 있다고 하길래 가봤는데 정말 부실했다. 아침을 직접 차려주는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고, 그냥 빵을 집어 먹거나 커피를 마시는 게 전부였던 것이다. 하긴 이런 게스트하우스에서 뭘 크게 바라겠는가.

결국 아침은 먹지 않고, 티파 게스트하우스로 갔다. 전날 방이 다 차서 아침에 다시 찾아온 것인 것인데 다행스럽게도 체크아웃을 하는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점심에 여기로 이동할 계획을 가지고 방을 살펴봤는데 그냥 무난한 수준이었고, 대신에 사쿠라보다 가격이 절반 정도로 훨씬 저렴했다. 어차피 부실한 에어컨은 필요도 없었는데 가격도 이렇게 싸니 망설일 이유는 없었다. 점심에 다시 온다고 약속하고 밖으로 나왔다.

이제 점심까지 어디를 가는 것이 좋을지 결정해야 했다. 역시 여행자들이 많이 찾는 족자카르타에는 유명한 관광지가 많은 편이었다. 차를 타고 조금만 이동하면 볼 수 있는 세계 3대 불교유적지 보로부두와 힌두교 유적지 프람바난을 비롯해서 족자카르타 시내에도 술탄 왕궁 등 많은 관광지가 있었다.

점심까지 시간이 있었던 것이니 멀리 갈수도 없는 노릇이니 일단 족자카르타 시내부터 돌아보기로 했다. 첫 번째 목적지는 바로 과거 술탄이 살았다고 하는 술탄 왕궁(Kraton, Sultan Palace)이었다.


술탄 왕궁은 보통 걸어서 간다. 말리오보로 거리에서 계속 직진하면 나올 정도로 찾아가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고, 거리가 그리 멀지 않은 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리를 나서면 베짝에서 누워있던 아저씨들이 손을 들며 친한 척을 한다.

“어이~ 친구! 술탄 왕궁을 가나? 타지 않겠나? 원한다면 내가 일일 투어도 해 줄 수 있어.”

늘 그렇지만 그냥 웃으면서 걷는다. 어차피 베짝은 타고 싶다는 생각이 별로 들지도 않거니와 처음 도착한 도시는 항상 걸어 다니는 편을 선호한다.


말리오보로 거리는 밤보다 낮이 훨씬 깔끔했다. 거리는 좀 독특한 모양새를 갖추고 있었다. 중심거리 치고는 너무 좁은 도로 양 옆에는 사람이나 베짝 그리고 마차가 지나다닐 수 있는 길이 있었다.


이른 아침부터 베짝은 부지런히 움직이거나 혹은 그 자리에 멈춰 여행자를 맞이하는데 지나칠 때마다 술탄 왕궁을 가냐고 물어 본다. 거리를 걸으면서 느끼게 되었지만 베짝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타는 사람은 별로 없어 보였는데 베짝 아저씨들은 떼를 지어 누워 손님을 기다리니 영업이 잘 될리가 없어 보였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너무 많다고 해야 할까?


베짝을 자세히 살펴보니 번호판도 있었다. 정식으로 허가를 받아야 운영할 수 있나 보다.


조금은 한가해 보였던 말리오보로 거리였다. 사람들은 이제 상점의 문을 열기 시작한다.


일렬로 늘어선 베짝, 간혹 지나다니는 마차는 말리오보로 거리의 상징과도 같았다. 마차가 지나다니는 모습을 미얀마에서도 자주 보긴 했지만, 여전히 이런 풍경은 익숙하지 않았다.


트랜스 족자의 정류장으로 꼭 지상철의 역처럼 생겼다. 물론 족자카르타에 전철이나 지하철은 없다. 자카르타도 마찬가지였지만 트랜스 족자는 버스를 가리키는 말로 지하철과 비슷한 형태로 운행되고 있다.


트랜스 족자 말리오보로2 정류장 바로 옆에는 족자카르타 관광안내소가 있다. 여기에서 족자카르타의 관광지에 대해 물어볼 수도 있고, 지도도 얻을 수 있다. 지도는 상세하게 잘 나와있어 챙겨두면 무척 유용하다.


다시 술탄 왕궁을 향해 걸었다. 베짝이 지나가고, 마차가 지나간다.


한참 걷다보니 독특한 건물이 나와 이곳이 술탄 왕궁인줄 알았다. 그러나 술탄 왕궁은 아니었고, 입장료도 내야 해서 들어가지는 않았다.


말리오보로 거리의 끝까지 걸어가자 눈앞에는 작은 공터가 보였고, 나무 사이로 건물들이 보였다. 주변에 다른 독특한 건물은 없었으니 여기가 바로 술탄 왕궁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조금만 더 걸으니 술탄 왕궁 크라톤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술탄 왕궁이 보일 때 맞은 편에서 노란색, 보라색 히잡을 두른 여인이 걸어오는데 묘하게 눈길을 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