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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탄 왕궁 크라톤을 나오고 다음 목적지로 정한 곳은 물의 궁전(Water Castle)이었다. 물의 궁전은 술탄 왕궁 못지 않게 족자카르타에서 유명한 관광지라 대부분의 여행자가 들리는 곳이다. 물의 궁전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흥미로운데 안 갈 수는 없었던 것이다. 지도를 살피며 천천히 이동했다. 물론 걸어갔다.


어느새 나는 술탄 왕궁의 뒷문인지 어딘지도 모를 이상한 곳을 헤매고 있었다. 물의 궁전을 찾아가기는 커녕 점점 더 이상한 쪽으로 가고 있었는데 특유의 낙천적인 성격탓인지 아무 생각없이 거리를 걷기만 했다. 그러는 와중에 멀리서 베짝에 앉아 혹은 누워 손님을 기다리는 아저씨들이 눈길을 끌었다.


베짝은 인도네시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교통수단이다. 인도네시아 여행을 하면서 다른 곳보다 특히 많이 보였던 곳은 족자카르타였는데 도로에는 자동차와 베짝이 뒤엉켜 있을 정도였다. 가장 서민적이면서도 원시적인 동력으로 이동하는 교통인 셈이다.

베짝(Becak)은 쉽게 말해서 자전거 택시라고 보면 된다. 자전거를 약간 개조해서 앞에는 사람이 앉을 수 있는 의자를 만들어 놓고, 아저씨는 뒤에서 페달을 밟는다. 사실 이러한 교통수단은 다른 나라에도 많다. 미얀마에서는 사이까, 인도에서는 릭샤, 베트남에서는 씨클로라고 생김새나 이름은 조금씩 다르지만 전부 자전거를 개조한 것은 같다.

보통 사람이라면 이런 형태의 교통수단은 선호되지 않기 마련이다. 뒤에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 자전거 페달을 밟는데 타는 입장에서는 마음이 편치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다면 가격도 그리 싸지 않다.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한 번쯤 타주는 것이 이 아저씨들에게는 도움이 될 것이다.


좁은 골목 사이로 무수히 많은 베짝이 오고간다. 그러다 내 앞을 향해 오는 베짝을 보자 자연스레 카메라를 들고 셔터를 눌렀다. 족자카르타에 도착했을 때부터 베짝에 관심이 생겼는데 베짝의 모습 뿐만 아니라 페달을 밟는 아저씨의 모습, 타고 있는 사람들의 표정까지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지나가는 베짝 행렬을 보느라 물의 궁전으로 가는 내 발걸음은 상당히 더뎌졌다. 뭔가 화려하지도 않고, 신기한 것도 아닌데 그냥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재밌다.


거리에서 베짝 구경하다가 티셔츠 가게에 들어가 옷을 구경하다 보니 정작 중요한 물의 궁전은 뒷전이었다. 일단 다시 거리를 걷기 시작했는데 방향 감각까지 잃어 제대로 가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지도를 한참 살펴봤는데 내가 있는 거리 이름이 뭔지도 몰라 또 무작정 걸었다. 또 이렇게 헤매면서 걷다보면 어떻게든 물의 궁전에 도달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감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