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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했던 만좌모는 별로였다. 오키나와에서 기대했던 장소들이 생각보다 별로여서 그런지 몰라도 다음 목적지인 츄라우미 수족관도 그냥 그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국의 섬이라 불리는 오키나와에서 자연보다 수족관이 더 볼만한 관광지라는건 조금 이상하지 않는가. 게다가 수족관이 대단해봐야 얼마나 대단하다고 가장 큰 볼거리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츄라우미 수족관으로 향했다. 우리는 중간에 나고시 버스터미널에서 돌아올 버스 시간을 확인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갈 때는 유키와 타카시의 렌터카가 있어서 편했지만 돌아올 때는 버스를 타고 돌아와야 했다. 유키와 타카시는 그날 나하로 돌아가지 않기 때문인데 그래서 나고에서 어떻게 버스를 타고 돌아가는지 알아본 것이다. 사실 이런 정보는 버스터미널에 가기 전까지만 해도 알 수 없었다. 우리나라에 판매되고 있는 오키나와 가이드북은 전부 볼거리, 먹거리에만 치중하고 있을 뿐이다.

아무튼 나하로 돌아가는 버스편이 저녁까지 있는 것을 확인하고 다시 츄라우미 수족관으로 향했다. 차창 밖으로 뿌연 하늘를 보면서 오키나와의 날씨는 항상 이런건지 의문을 품었다. 어떻게 오키나와에 있는 동안 하루도 맑지 않을 수 있는 걸까?

잠깐 졸다보니 츄라우미 수족관 근처까지 왔다. 그러나 여기서부터 엄청나게 막히기 시작했다. 원래 츄라우미 수족관이 인기있는 관광지라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일본의 연속되는 휴가철인 탓인지 모르겠지만 무지하게 차가 많아서 움직이기가 힘들었다. 거의 명절의 귀성길을 연상케 할 정도였다.


거의 1시간 반이나 걸려 도착할 정도로 정말 힘들었다. 차를 추자한 뒤 츄라우미 수족관으로 서둘러 갔다. 우리에게 남아있는 시간이 별로 없어 혹시라도 츄라우미 수족관을 제대로 못 보고 돌아가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아까 엄청나게 많은 차량을 보면서 짐작은 했지만 역시 수족관 부근은 관광객들로 가득했다.


역시 이런데 오면 어른들은 피곤해지고, 아이들은 신나나 보다. 그렇다면 나도 아직 어린이인가?


츄라우미 수족관의 규모는 상당했다. 밖에는 아이들이 놀 수 있는 공간과 휴식공간을 비롯해 돌고래쇼를 할 수 있는 별도의 공연장도 있었다. 물론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시간이 너무 없어서 서둘러 수족관을 들어갔기 때문이다. 츄라우미 수족관의 입장료는 성인 기준으로 1800엔이었다. 꽤 비싼편이지만 그래도 수족관이다보니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그런데 수족관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유키와 타카시가 누군가에게 장애인증을 보여주면서 말을 했다. 슈리성에서도 우리는 무료로 들어갈 수 있었는데 세상에 츄라우미 수족관도 장애인을 포함한 동행자에게는 무료 입장이었던 것이다. 예상치도 못했던 일이라 얼떨결 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다. 애초에 유키와 타카시가 장애인이라는 것도 잘 몰랐고, 일본에서는 장애인이 무료로 입장할 수 있는 곳이 많다는 사실도 몰랐다.

새삼 일본에서 장애인을 위한 배려가 참 많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유키와 타카시가 가지고 있던 장애인증을 보여주자 수족관 직원은 마치 VIP를 맞이하는 것처럼 직접 안내해주었다. 과정도 복잡하지 않았다. 그냥 장애인증을 확인했고, 다른 사람보다 우리를 먼저 입구로 안내해줬을 뿐이다. 그리고는 다른 사람에게 전후 사정을 이야기하더니 즐겁게 관람하라고 했다. 정말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이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전혀 생각지도 못하게 츄라우미 수족관을 무료로 입장할 수 있었다. 슈리성에서도 그랬지만 동행자도 입장이 가능하다는 사실에 놀랐다.


여행을 하면서 싱가폴 센토사에 있던 언더 워터 월드라는 수족관을 갔던 적은 있다. 언더 워터 월드에도 입구 앞에는 불가사리 등을 직접 만져 볼 수 있는 공간이 있었는데 츄라우미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만져봐서 신기할 것은 없지만 가까이 가서 볼 수도 없을 정도로 사람이 너무 많았다. 이날이 가장 많은 관광객이 츄라우미를 찾았을 것이라고 추측하게 만들만큼 사람에 치여 움직이기도 힘들었다.


처음에는 산호의 바다, 열대의 바다로 시작하는데 예쁜 색깔을 가진 물고기들이 헤엄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특히 이곳은 오키나와의 산호가 서식하는 환경을 그대로 재현했다고 한다. 이뿐만이 아니라 이곳에서 번식한 산호는 바다로 이식하기도 한다는데 이는 세계최초라고 한다.


웃음을 참지 못할 정도로 웃기게 생긴 녀석이 보였다. 혹부리 처럼 생긴 머리와 작은 눈은 그렇다 치더라도 두꺼운 입술은 너무 신기했다. 이런 물고기도 있었네! 물론 사람의 기준이지만 아름다운 색을 뽐내던 열대어와 참 비교되었다.


이날은 유모차를 끌고 온 사람이 많을 정도로 가족단위 관광객이 많았다. 어린 아이들이 신기하게 쳐다보며 좋아했는데 실은 나도 그 아이들과 크게 차이가 없을 정도로 감탄을 하면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물속에 있는 생명체들이 아름답거나 귀여운 녀석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바다의 신비한 매력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해파리나 오징어가 헤엄치는 모습이 꼭 입체영화를 보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개별 수조를 지나가면 이제부터 본격적인 츄라우미 수족관의 위용이 드러난다. 길게 뻗은 기둥 사이로 수조의 모습이 보이는데 그 안에 셀 수 없을만큼 엄청난 양의 물고기가 헤엄치고 있었다.


도저히 크기가 어느정도일지 짐작도 되지 않는 거대 가오리 만타와 고래상어는 정말 압권이다.


바다에서 헤엄치는 것이 아니라 우주에서 유영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정도로 너무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아래에는 그 분위기를 아주 제대로 살려서 카페인지 식당인지 모를 곳을 운영하고 있었다. 비싸더라도 저기에서 앉아 바다속 세상을 구경하며 마시는 차는 정말 특별할 것 같다.

하지만 여기에서 놀라면 곤란하다. 벽을 지나니 정말 거대함 그 자체가 눈앞에 펼쳐졌다. 여태까지 수족관을 많이 가보지 않았지만 이런 곳은 처음 봤다. 마치 거대한 스크린에 영화를 상영하고 있는 것처럼 수조의 단면은 그대로 보여줬다.


여기의 규모는 말이 나오지 않을 정도였다. 계속 감탄을 하면서 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었다. 사람이 너무 많아 뒤에서 구경했지만 오히려 그것 때문에 이 수조의 거대함과 가오리의 크기를 비교할 수 있다. 거대 가오리 만타가 천천히 날개짓을 하면서 헤엄치고, 그 주변에는 아주 작은 물고기들이 떼를 지어 움직인다.


그리고 츄라우미 수족관의 가장 큰 백미는 바로 고래상어다. 관광객들 앞에 고래상어가 나타나면 탄성을 지르면서 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다.


고래상어가 서식하는 이 대수조의 규모는 깊이 10m, 폭 35m, 길이 27m라고 한다. 수조의 규모도 규모지만 세계최초로 사육을 목표로 2마리의 고래상어를 사육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또한 고래상어와 만타의 장기사육 최고기록을 가지고 있어, 앞으로도 세계최초, 세계제일은 갱신이 가능하다.


대수조 옆에는 상어만 전시해 놓은 일명 '위험한 상어의 바다'가 있다. 죽은 상어도 전시되어 있고, 수조에는 다양한 종류의 상어가 헤엄치고 있다.


문득 게스트하우스에서 사키가 츄라우미 수족관만 3번을 가봤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때는 무슨 수족관을 3번이나 가냐고 말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니 3번도 넘게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하루 종일 대수조 앞에 앉아 헤엄치는 물고기를 구경해도 재밌지 않을까?

넋놓고 구경하고 있을 때 유키가 구석에 무언가를 가리키며 얘기했다. 자세히 살펴보니 기네스에 올랐다는 내용이었다. 츄라우미 수족관은 2가지로 기네스에 올라간 상태인데 하나는 세계최대 아크릴 판넬 수조, 또 다른 하나는 번식을 목표로 한 고래상어와 만타의 사육이 세계최초라고 한다. 현재 츄라우미 수족관은 일본에서는 최대, 세계에서는 두 번째로 거대한 수족관이다.


수족관을 나가기 전에는 대수조를 아래에서 볼 수 있었는데 여기도 참 신기했다. 일단 츄라우미 수족관 자체의 거대함에 압도당했고, 다양한 물고기들이 생생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게다가 쉽게 보기 힘든 고래상어나 만타의 모습을 마음껏 볼 수도 있었다. 오키나와에서 꼭 가봐야 한다는 곳이 츄라우미 수족관이라는데 실제로도 정말 그랬다. 아마 누구라도 츄라우미 수족관의 거대하고 신비로운 바다를 보게 된다면 감탄에 감탄을 할 수밖에 없다.



* 츄라우미 수족관의 신비로움을 동영상으로 담아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