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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오토바이를 하루 종일 타서 그런지 피로가 전혀 풀리지 않았다.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조차도 힘겨웠다. 조금 누워 있다가 잠이 완전히 깼을 때 나가서 아침을 먹었다. 아침은 간단하게 토마토에그 샌드위치(8500 루피아)와 파인애플 주스(7500 루피아)로 했다.


그리고는 다음날 파라팟(Parapat)에서 메단(Medan)으로 돌아가는 미니밴을 예약했다. 미니밴은 6만 5천 루피아였는데 리베르타 홈스테이에서는 5천 루피아만 예약금으로 받았다. 사실 여기에서 예약을 하지 않더라도 그냥 아침에 파라팟에 가서 바로 타도 상관없다.


아침을 먹으니 또 피곤해졌다. 어제 만난 한국인 여행자 광호에게 오토바이를 빌려주곤 방으로 들어가 잤다. 또바 호수에서는 역시 이렇게 자다가 일어나 먹고, 그리고 또 자는 게 최고다. 그러고 보면 난 대체 무슨 욕심으로 8시간 동안 오토바이를 탔는지 모르겠다.

꿀맛 같은 단잠을 자고 일어나니 벌써 1시. 해는 이미 중천에 떠있었다. 광호도 그쯤에 돌아왔다. 돌의자(Stone Chairs)를 보고 왔다고 하기에 나도 2시에 오토바이를 끌고 나갔다.


언덕에서 바라본 호수는 정말 아름다웠다. 지붕 끝이 뾰족한 바탁식 가옥은 호수의 신비로움을 더해줬다. 뚝뚝(Tuk Tuk)이 여행자가 많이 찾는 곳이지만 다른 여행지에 비해서는 시골이라 항상 한적함과 여유가 느껴졌다.

돌의자가 어디 있는지 몰라 한참 돌았다. 중간에 우리 숙소에 머물던 스코틀랜드인을 만나 잠깐 인사를 하고, 또 달렸다. 가까운 곳에 있다고 들었는데 난 구석진 동네까지 다 뒤지고 다녔다.


사람들에게 계속 물어 겨우 돌의자가 있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주변에는 기념품을 파는 곳이 몇 군데 있지만, 역시 이곳도 한가해 보였다. 오토바이를 세워놓고 들어갔다. 입장료는 3천 루피아로 저렴한 편이다.


들어가자 보이는 것은 일렬로 늘어서 있는 바탁식 전통 가옥이었다. 그때 멀리서 나를 보고는 다가오는 남자가 있었으니, 다름 아닌 가이드였다. 이곳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겠다고 말했지만 5만 루피아라는 말에 단박에 거절했다.


여기에서도 여행자는 볼 수 없었다. 오로지 말레이시아인으로 보이는 단체 여행객만 보였다.


큰 나무 아래에 식탁처럼 보이는 돌판과 의자가 놓여져 있다. 이게 바탁족들이 사용했다는 돌의자라는 말인데 생각보다 소박한 모양새였다. 그렇다고 고인돌만큼의 거대함을 기대했다는 것은 아니지만.


말 그대로 돌로 만든 의자이기 때문에 특별히 기대할만한 부분은 없었다. 다만, 이 돌의자에는 역사적인 내용을 알아야 흥미롭게 관람할 수 있다. 그래서 가이드가 이야기를 들려주겠다고 다가온 것이니 정말 자세히 알고 싶다면 돈을 지불하고 듣는 것도 괜찮다.


내가 이곳저곳에서 주워들은 이야기로는 이 장소가 바로 바탁족의 왕이 죄인을 공개 심판하고, 처형하던 곳이라고 한다. 죄를 많이 지었으니 처형까지 했겠지만 무서운 건 그게 아니라 바로 그 다음 행위다. 처형한 죄인을 그 자리에서 배를 갈라 함께 먹었다는 사실. 죄인의 간도 먹고, 피도 마시고, 인육을 구워 먹었다는데 정말 섬득하지 않을 수가 없다. 다시 말해 불과 200년 전까지만 해도 또바 호수에는 식인 문화가 있었다는 것이다.


죄인을 처형하는 모습을 재연하고 있다. 옆에서 단체여행객들이 하는 것을 지켜보니 죄인의 눈을 가린 채로 돌 위에 머리를 올려놓고, 처형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나면 마냥 또바 호수에 있는 사람들이 순박하게만 보이지 않는다. 물론 과거에는 거대한 호수로 인해 단절된 이들만의 폐쇄적인 환경이 크게 작용했을 테고 부족 간의 전쟁에서 두려움을 가지게 하려는 의지도 있었을 것이다.

식인 문화가 없어진 이유에는 종교도 어느 정도 영향을 줬다. 유난히 사모시르 섬 내에 교회가 많은데 인도네시아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풍경이다. 인도네시아인 대부분이 이슬람교를 믿는 것도 신기하지만, 단순히 사모시르 섬, 그러니까 또바 호수만 벗어나도 대부분이 이슬람교를 믿는다. 특히 수마트라는 이슬람교의 세력이 강한 지역이기도 하다. 어찌되었든 지금은 식인 문화는 찾아볼 수 없는 평화로움을 간직한 곳이다.


돌의자 옆에는 역시 관광지에선 빠질 수 없는 기념품 상점이 모여 있다. 주변사람에게 간단하게 줄 수 있는 자석을 선물용으로 구입했다.


과거 죄인의 피가 묻어 있었던 돌의자 주변을 한참 쳐다보다 이제는 바탁 전통가옥으로 시선을 돌렸다. 뾰족하게 솟은 지붕과 2층 구조가 매우 특이하다.


가까이에서 구경하다 보니 작게 박물관이라고 적힌 곳이 보였다. 주저하지 않고 들어갔다.


과거에 사용했던 화로, 그릇 등이 있고, 옷감을 짜는 방직기도 있다. 실제로 이 옷감이 바탁 전통 방식인지는 모르겠지만 판매중이라는 사실은 ‘For Sale’을 통해 정확히 알 수 있었다.


이건 악기인 것으로 보인다.


사실은 무시무시한 이야기가 숨어있는 사모시르 섬의 돌의자를 뒤로 하고, 나는 다시 오토바이에 올라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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